권시우
[시리아에서 민중봉기가 내전과 국제전으로 발전해 온 과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지 토론하는 과정에서 나온 글이고 더 발전된 고민과 논의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시리아 혁명은 애초에는 반아사드 민주주의 혁명으로 출발했습니다. 물론 신자유주의적인 아사드의 정책에 대한 반대와 결합된 반독재 투쟁이자 반신자유주의 투쟁이었습니다. 애초에 튀니지에서 일어난 투쟁의 불꽃이 리비아·이집트 등으로 확대되면서 시리아까지 온 것이므로 국제적인 투쟁의 일부였습니다. 제국주의 국가들과 아랍의 독재 국가들, 왕정국가들은 확대되는 불길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이 혁명을 말살하기 위하여 아사드는 민주주의 혁명을 ‘테러리스트들의 책동’이라고 매도했습니다, ‘테러와의 전쟁’을 한다며 시민들을 무참히 학살했습니다. 이런 악선동은 혁명 초기에는 거의 먹혀들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사드 정부가 전투기를 이용한 공중폭격으로 무고한 시민들을 죽이고 화학무기까지 사용하자 ‘온건반군’ 등 속에서는 서방이 개입을 해서라도 아사드의 학살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들이 늘었습니다. 이런 부류들은 서방과 아랍왕정에서 무기와 식량을 공급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외세의 압력을 많이 받은 시리아인들은 이 혁명이 자결권을 가지는 민족혁명이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불행이도 그런 생각을 가진 부류는 좀 더 급진적인 이슬람 주의자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따라서 반군의 주도권은 서서히 이슬람주의자들에게로 넘어가기 시작하고, 아사드는 더욱 더 위기에 몰렸습니다.
하지만 아사드는 감옥에 갇혀 있던 급진적 이슬람주의자들을 대거 석방하면서 이슬람주의 반군과 저항세력 속에서의 분열을 획책했습니다. 이것이 일정 정도 성공해서, 석방된 세력중의 일부는 오늘날의 다에시(IS 이슬람국가, 이하 다에시)로 발전해 갔습니다. 다에시들은 주로 반군을 공격하면서 많은 영토를 확보했고, 혁명의 성격도 변질돼 갔습니다.
즉, 다에시들이 시리아 북부의 로자바 지역을 공격하면서 쿠르드족들은 생존을 위해서 미국과 손을 잡고 다에시들에 반격했고, 이제 전쟁은 제국주의의 간섭을 통한 대리전 양상으로 갔습니다. 반군들은 이제 서로를 믿지 못하는 조직들로 분열되었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핑계로 아사드는 러시아를 끌어들이고 이란, 헤즈볼라와 동맹을 맺어서 혁명의 성지인 알레포를 초토화 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히 이런 행위는 제국주의자들과 손잡은 백군들이 혁명을 말살하는 1917년 러시아의 반혁명과도 비슷한 것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슬람주의에 대한 악마화에 영향을 받아서 시리아의 혁명이 짓밟히는 것을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 후 혁명은 많은 곳에서 말살되었고, 반군들도 제국주의 국가나 지역패권을 지키려는 국가들과 연합하는 경향이 더욱더 커졌습니다.
이제 시리아는 제국주의자들 간의 대리전 양상으로 더욱더 치닫고 있습니다. 혁명의 잔재들 가운데 일부가 로자바, 이들리브, 하마, 동구타 등에 남아 있지만 이들은 아마도 제국주의자들의 먹잇감이 될 것 같습니다.
저항세력이 자주적으로 배트남 해방전선 같은 조직을 만들어서 단결했다면 충분히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도 있었다고 봅니다. 하지만 시리아가 지리적으로 매우 개방적이고, 역사적으로 아사드 부자의 장기간의 독재나 외세의 압력 등이 강력한 조건이었기에 저항세력이 그런 대안을 못 만들었다고 탓하기만 하는 것은 어려울 것입니다.
이번에 아프린은 터키의 공격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떠났습니다. 동구타는 러시아와 아사드 정부에 의해 초토화됐습니다. 그들은 국제적인 반전운동의 연대를 기다리며 8년을 버텨 온 것입니다. 유엔의 정전합의같은 것은 이들에게 아무 도움이 돼지 않았습니다. 사실, 아사드 정부군은 아직 한 지역을 완벽하게 고립시켜 포위할 힘은 없습니다. 점령을 유지할 힘도 없습니다. 러시아, 이란, 헤즈볼라의 힘을 빌려야만 그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사실, 반아사드 저항세력은 쿠르드족과 연합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매우 힘든 상황입니다. 전쟁 과정에서 이미 쿠르드와 반군의 원한이 생겨 왔습니다. 이제 쿠르드인들은 이렇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터키가 우리를 공격할 때 너희 반군은 우리를 외면했었지...’
2년전 아사드 정부군에 의해 저항세력의 핵심 근거지였던 알레포가 함락되기 전까지만 해도, 반군과 쿠르드의 사이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만약 당시 아사드 정부군이 알레포를 포위하고 공격하는 상황에서 반군이 쿠르드와 손을 잡으려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지 모릅니다. 또 로자바 지역이 다에시에 의해서 공격받을 때 반군이 대대적으로 쿠르드와 연대했다면 좋았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려면 반군이 쿠르드의 자결권을 분명히 지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미국과 쿠르드가 손을 잡은 이후에는 이런 연대는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반군도 이제는 계속 힘이 약해져서 터키 등에 많이 의존하는 처지로 바뀌었습니다. 반군들 사이의 갈등과 다툼도 심각합니다. 이슬람주의 반군이 알 카에다 계열을 조직에서 몰아내면서 반목이 심해지곤 했습니다. 어떤 반군은 서방과 손을 잡아야 생존할 수 있는데, 그러려면 급진파와 손을 끊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시리아에서 대안은 제국주의 강대국들이 물어나야만 가능해질 것입니다. 이번에 동구타에서도 러시아의 도움이 있었기에 아사드는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즉, 시리아 민중이 대안이 없어서보다는 국제적인 반전운동이 힘과 대안이 없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시리아 민중은 당장 버텨내는 것도 힘든 상황입니다.
아사드는 독재자이고 혁명의 마지막 한 가닥 흔적까지 제거하려는 자입니다. 2011년 시작된 ‘아랍의 봄’이 이집트에서 반혁명으로 물러서고, 아랍왕정들이 민주주의 혁명으로 제거되지 못함으로서, 시리아 혁명이 외로이 버티고 싸웠다고 보는 것이 올바를 듯합니다. 그들은 8년의 고통을 버티어 냈습니다. 국제적인 반제국주의 투쟁의 도움도 없이 말입니다.
터키에서 에르도간 정부의 독재에 맞선 저항이 등장하고, 이집트에서 다시 혁명이 시작되고, 사우디와 요르단에서 부패왕정이 타도되는 ‘아랍의 봄’이 다시 시작된다면, 시리아 민중은 다시 유리한 상황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8년이 지나도 그런 일은 아직 벌어지지 않고 있고 시리아 민중은 외로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열린토론) 시리아 전쟁 7년 - 평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발제: 압둘 와합(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에서 변호사로 일했었고 한국에 유학을 와서도 시리아 연대 활동 등을 건설해 왔다.)
일시 : 2018년 4월 7일(토) 오후 7시
장소 : 노들 5층 대교육장(혜화역 2번출구)
독재자 아사드에 맞선 민중저항으로 시작해 내전과 국제전으로 발전해 온 시리아에서는 지난 7년간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수백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습니다. 무엇이 시리아에서 이런 비극을 가져왔고, 누가 여기에 책임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이 참극을 끝낼 수 있을지 압둘 와합 사무국장님의 발제를 바탕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 미리 온라인으로 참가 신청해주세요 -> bit.ly/시리아토론회
(기사 등록 20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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