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트럼프가 지난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라고 공식 선언하면서 거대한 후폭풍과 충돌, 저항이 일어나고 있다. 분노과 저항의 목소리가 팔레스타인과 중동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이스라엘이 이것을 폭력 진압하면서 사상자도 늘어나고 있다.
이번 선언은 트럼프와 ‘대안우파’의 극단적 세계관으로 보자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지만, 단지 정치적 위기에 몰린 트럼프의 꼼수로만 볼 수는 없다. 미국은 이미 1995년에 ‘이스라엘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며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한다’는 법안을 상·하원에서 압도적 다수결로 통과시켰었다. 다만 기존 정권들은 이것의 시행을 계속 보류하며 중동의 불안정과 아랍 민중의 저항을 관리해 왔는데 트럼프는 그 선을 넘은 것이다.
중동 지역의 불안정, 이란과 러시아 등의 영향력이 커지는 속에 흔들리는 미국 패권이 배경에 있을 것이다. 거슬러 올라가 2003년 이라크 침공이 미국의 ‘전략적 대재앙’으로 끝난 것부터 봐야 한다. 오바마는 이란 핵 합의를 통해 변화된 현실을 관리하는 데 치중하는 듯 했다. 시리아에서도 지상군 투입은 배제하고, 공습과 국제연합군을 통해 대응해 왔다.
하지만 이제 IS 축출 작전이 일단락된 상황에서 트럼프는 이란 핵 합의도 뒤집겠다고 하면서, 사우디를 앞세워 이란과의 충돌을 부추기며 판을 흔들고 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프로세스’도 안정적 관리가 아니라 파괴적 충돌로 유도하고 있다.
지금 상황은 그동안 서방 정권들이 ‘대안’이라고 주장해 온,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국가가 공존한다는 ‘2국가 방안’의 파산도 보여주고 있다. 아래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충돌의 역사를 간략히 검토하면서 팔레스타인과 아랍 민중의 해방을 위한 길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충돌의 기원
서기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훨씬 전에도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많이 살고 있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땅이 워낙 척박했기 때문이다. 근대에 들어서 유대인들은 유럽 전역에 흩어져 주로 상업에 종사하며 살았다.
1880년에서 1930년 사이에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를 피해 이주한 유대인 4백만 명 중 팔레스타인 땅으로 간 사람은 10만여 명에 지나지 않았다. 대부분 미국으로 향했다. 그러나 1920년대부터 영국이 중동지역으로 유대인들을 이주시키기 시작했다. 비극의 뿌리는 1948년 식민지정착 국가 이스라엘의 건국이었다.
2차 대전 이후 1948년에 새로운 중동의 지배자인 미국에 의해 이스라엘이 건국됐다. 이 과정에서 팔레스타인인 75만여 명이 조상 대대로 살아온 자기 땅에서 강제로 쫓겨났다. '데이르 야신 학살 사건'같은 잔인한 학살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등으로 쫓겨가게 했다. 이 때부터 팔레스타인인들은 자기 땅을 빼앗고 자신들을 쫓아낸 미제국주의와 그 ‘경비견’인 이스라엘에 맞서 투쟁해 왔다.
시온주의
시온주의는 유대인들이 비유대인들과 분리해 구약성서에 명기된 팔레스타인 지역에 독자적인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사상이다. 시온주의는 19세기말 유럽에서 반유대주의에 맞서 처음 등장했다. 이곳저곳 떠돌며 상업에 종사했기에 유대인의 이미지는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듯 '돈많은 상인'이었다. 이런 이미지를 악용해 19세기말 유럽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자들은 불황과 실업의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희생양 삼으려 했다.
그러나 처음에 유대인 민중들은 이런 공격에 비유대인 노동자들과 단결해 지배자들과 맞서 싸우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래서 1917년 러시아 혁명과 1919년 독일 혁명에서 많은 혁명가들이 유대인이었고 유대인 좌파 단체와 노동조합에 많은 유대인들이 몰렸다.
그러나 1930년대에 나찌가 승리하고 히틀러가 6백만 명의 유대인들을 학살한 후부터 절망한 유대인들은 제국주의에 빌붙어 생존을 추구하는 시온주의를 지지했다. 안타깝게도 야만적인 대량학살을 당한 유대인들은 더 이상 비유대인과의 단결을 믿지 않게 됐다. 유럽에서는 억압받던 유대인들이 중동에서는 아랍민중을 억압하는 제국주의의 도구로 변했다.
침략과 학살의 역사
● 1차 중동전쟁 - 1948년 이스라엘 국가 건설. 강제 추방과 점령
● 2차 중동전쟁 -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로 촉발. 이스라엘이 시나이 반도와 골란고원을 점령.
● 3차 중동전쟁 - 1967년 가자 지구, 시나이 반도, 골란 고원, 요르단 강 서안 지역을 점령하게 되며 이때 이스라엘의 영토는 무려 3배 가까이 늘어나게 되었다.(6일 전쟁)
● 4차 중동전쟁 - 1973년에 이집트와 시리아가 6일 전쟁 시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고자 먼저 전쟁을 시작했으나 이스라엘이 승리.
● 5차 중동전쟁 - 1982년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하고 베이루트 공습. 민간인 2만 명 학살
이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병원, 학교 등 민간시설을 폭격하고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을 학살했으며 난민촌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불태웠다.
미국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 - 석유와 패권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의 모든 나라를 합친 것보다 더 큰 군사력과 핵무기까지 갖게 된 것은 미국 덕분이다. 미국은 지금까지 이스라엘에 수천 억 달러를 지원했다. 거의 매년 이스라엘에 수십 억 달러를 지원한다. 이스라엘의 전 총리중 한 명은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는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이익은 바로 중동지역에서 석유에 대한 통제권을 틀어쥐는 것이다. 미국은 '텍사코', '액슨모빌' 등 거대 다국적 석유회사를 통해 중동지역 석유의 공급과 유통을 통제해 왔다. 이 통제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선 중동지역에서 아랍 민중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을 짓눌러야 하고 다른 강대국들을 제치고 계속해서 유일 초강대국으로서 제국주의적 패권을 유지해야 한다. 이 때문에 미국은 '사냥개' 이스라엘을 앞세워 아랍민중을 학살해 왔다.
평생 감옥과 수용소 같은 삶
팔레스타인인들은 분리 장벽과 검문소에 갇힌 감옥같은 삶을 평생 살아가야 한다.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주변의 친척, 친구들이 이스라엘의 발포와 폭격으로 죽어가는 것을 일상적으로 보고 자라난다. 돌만 던져도 구속할 수 있으므로 팔레스타인 젊은이의 다수가 이스라엘의 감옥에 갇혀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실업률은 극단적으로 높고, 평균소득은 이스라엘과 비교하면 처참한 수준이며 기본적 생필품도 구하기 어렵다. 주변 아랍국가들의 원조로 근근이 살아갈 수 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난민촌에서 살고 있다. 이들은 비참하고 불결한 텐트 속에서 평생을 보내야 한다. 팔레스타인의 청년들은 오로지 이스라엘에 맞서 분노에 찬 저항과 투쟁 속에서만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됐다.
1차 인티파다
이스라엘과 미국에 맞선 팔레스타인인들의 투쟁이 가장 뜨겁게 달아 오른 것이 1987년부터 6년간 지속된 '인티파다'(민중봉기)였다. 이스라엘군 탱크가 자동차를 치어 아랍인 승객들이 사망하자 장례식에 1만 명이 모여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가 발전해 이후 이스라엘의 점령지에서 2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의 시위, 파업, 투쟁이 거대하게 벌어졌다. 모든 2천 명이 죽고 10만 명이 부상 당했다.
이 투쟁에 밀린 미국과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의장인 야세르 아라파트와 협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1993년 이스라엘은 오슬로 평화협정을 통해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에서 점차적으로 철수하고 팔레스타인 자치국가 건설을 인정한다는 양보안에 서명했다. 이것이 바로 ‘2국가 방안’의 출발이었다.
평화협상과 2차 인티파다
그러나 서안과 가자지구의 일부에서 제한된 권한을 갖는 자치국가를 건설한다는 보잘 것 없는 양보조차 이스라엘은 지키지 않았다. 지키기는커녕 수백 개의 정착촌 건설을 강행하며 더욱 더 팔레스타인 지역을 갉아먹어 들어 갔다.
이 때문에 팔레스타인인들은 PLO(파타당)보다 더 강경한 하마스 같은 무장단체를 지지하며 더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이런 저항 때문에 1998년에 '와이리버 평화협정'을 맺었고 1999년에는 다시 '리버Ⅱ협정'까지 맺었지만 이스라엘은 극우익 리쿠르당의 아리엘 샤론이 총리가 된 후 더욱 더 강경하게 나왔다.
샤론이 무장경찰들을 데리고 2000년 9월말 동예루살렘의 알샤리프 사원 방문을 강행하면서 2차 인티파다가 촉발됐다. 팔레스타인들은 자신들의 성지인 이곳을 우익 전쟁광이 방문한 것에 격분해 시위를 벌였고 이스라엘군은 이 시위를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폭격기와 미사일로 시위대와 민간인, 민간시설을 폭격하는 끔찍한 학살도 저질렀다. 4년간 이어진 2차 인티파다에서 팔레스타인인 3000여명이 사망했다.
진정한 대안은 어디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처럼 ‘평화협상’이 아무리 평화도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도 없다. 중동지역에서 평화란 아랍 민중이 미국과 이스라엘같은 억압자들에 순종하며 난민촌에서의 비참한 삶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억압자들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뜻한다. 중동에서 진정한 평화는 학살자와의 협상을 통해서가 아니라 학살자를 몰아내는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사우드 왕가같은 아랍의 전근대적 친미 왕조들은 이 투쟁의 연대의 대상이라 보기 어렵다. 이번에도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바레인의 왕정과 이집트의 군부독재 정권은 사실상 트럼프의 결정을 묵인, 방조했다는 의심과 비판을 받고 있다. 이들은 중동에서 2011년 아랍혁명같은 아래로부터 저항의 영원한 엔진 구실을 해온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기가 꺾이길 바랄 것이다.
아랍 민중의 해방과 중동지역의 평화는 아랍 민중들이 단결하여 친미 독재정권들과 왕정을 타도하고 제국주의와 식민권력을 몰아내며 종교과 민족을 넘어서 동등한 권리를 갖고 공존할 수 있는 민주적인 공동체를 수립하는 길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는 팔레스타인인들과 아랍 민중의 투쟁을 지지하고 연대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국제적으로 확대돼 온 ‘BDS 운동’[불매(Boycott)·투자회수(Divestment)·경제제재(Sanction)를 통해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하려는 캠페인]을 지지하고 동참해야 한다.
(기사 등록 2017.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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