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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이제 저 강에 가지 못한다 - 황금색 동상을 보는 슬픔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8. 1. 4.

채효정(정치학자,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해직강사)





[이 글은 필자의 페이스북에 처음 실렸던 글을 옮긴 것이다. 옮겨 싣는 것을 허락해 주신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우리 동네 이야기다. 페북을 통해 회자되기 시작하더니 이렇게 기사화(http://v.media.daum.net/v/20180102154719554?f=m)까지 되었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하는 이야기다. 마릴린 먼로를 깊은 산과 높은 물의 땅인 인제의 상징으로 삼겠다는 발상이 어이 없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이 일을 두고 설왕설래 하는 말하기의 방식에서도 모욕감과 불편함을 느낀다.

 

요즘 시골 강둑길은 비슷비슷한 모양의 도시 강변 산책길처럼 재개발되고 있다. 내가 사는 인제도 46번 국도변 옆으로 내린천 둔치가 그렇게 되었다. 작년 한 해 내내 내린천을 한강 둔치처럼 수변공원화 하는 공사를 두고 동네 사람들은 혀를 끌끌 찼다. “저 돈이 있으면 수질 개선이나 할 것이지.... ”, “여름에 홍수 한 번 나면 어차피 다 쓸고 갈 것을, 괜한 일을 하고 있네.” 이곳은 상류 지역이라 물이 찼다가 빠지는 곳이 아니다. 평소엔 얌전하게 흐르지만 비가 조금만 많이 와도 엄청난 유속으로 모든 것을 쓸어가버리는 성난 강이 된다.

 

사람들은 강이 저것들을 부수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한바탕 홍수가 지나가고 포크레인이 가을 내내 강변 풍경을 잡아 먹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덧 뭔가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며 이어폰을 끼고 멋진 조깅화를 신고 걸어야할 것 같은 산책로가 작고 소박한 마을에 들어섰다. 강과도 사람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겨울이 되고 구간 정비가 끝나갈 무렵에 전혀 상상도 못했던 조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릴린 먼로 동상이었다. 바람에 치마가 뒤집어지는 모습. 웬 마릴린 먼로인가, 했더니, 그와 인제와의 인연을 억지로 이어붙이는 사연이 있기는 했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부대 위문공연 차 이곳을 방문했단 것이다. 그런 사연을 누가 발굴해냈을까.

 

동네 할머니들은 무참하고 부끄러워한다. 왜 옷을 홀딱 벗다시피한 여자를 저렇게 한데다 세워 놓았느냐고. , 할머니 홀딱 벗은 여자가 아니라 저게 마릴린 먼로라고요, 미국 영화배우, 마 릴 린 먼 로. 어느 동네나 안다니’, ‘똑똑이한 놈씩은 다 있지만 이렇게 얄밉게스리 뒤통수를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게 말하는 건 꼭 배웠다는 남정네요 방구나 낀다는 인사다. 무식한 건 너로구나. 나는 옆에서 눈을 흘긴다.

 

담벼락 밖에는 접시꽃을, 담벼락 안에는 돼지감자나 나무 수국을 담장 너머로 꽃이 보이게 심는 분들이다. 문간이며 마당이며 정간하기 그지 없이 가꾸는 안목이 있는 분들이다. 그분들이 흉칙스럽다는 건 무지의 소치도 보수성의 소치도 계몽되지 못한 소치도 아니다. 나도 내가 홀딱 벗고 서있는 것처럼 부끄럽다.

 

지역 문화컨텐츠 개발이라고 한다. 지역. 문화. 컨텐츠. 개발. 한 단어씩 또박또박 읽어본다. 우리에게 문화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개발해준다는 것이다.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이곳 사람들이 문화가 없어서 가난하였나. 그건 이 땅이 가진 문화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단지 토속이요 무속이며 민속지라 여길 뿐 인문으로 역사로 예술로서 보지 못하는 것이다. 그건 문화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걸 빼앗고 짓밟고 나서야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문화의 지배가 수립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시골에는 문화가 없다고 보는 건 흔한 생각이다. 문화도 문명도 도시의 상징이니까. 그 시선은 시골 사람에 대한 천대와 멸시다. “마릴린 먼로의 인제 방문을 스토리텔링하는 차원에서 동상을 제작했다. 인제군 요청도 있었고, 지역 관광콘텐츠 발굴에도 기여했다고 본다'원주지방국토관리청 관계자'의 말에는 시골에 대한 무시가 뚝뚝 떨어진다. 결핍된 존재들을 위해 무언가를 시혜적으로 해준 행정기관의 오만과 우월감은 얼마나 치가 떨리는가. “우덜을 무시하는겨민란의 장면마다 빠짐없이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이 저 말이라는 걸, 알아야 하리라.

 

밖에서 이 사건을 바라보고 비판하는 외부인의 시선 역시 마뜩치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 시선이 고스란히 내가, 우리가 받아내야 하는 것이니까. 일방적 행정의 문제, 펑펑 낭비되는 예산, 주민 참여와 소통의 부재, 그 모든 것을 지적하고 증명하는 것은 천박한 미의식이다.

 

댓글에 달린 강원도스럽다, 감자답다, 강원도의 힘, 자한당 뽑아주는 멍청이들, 미련곰탱이 강원도 놈들 같은 아귀들의 욕을 보고 있노라니 저 강가의 갈대 숲 속에 둥지를 튼 새들에게 미안하고, 구비 구비 이어지는 의연한 산 앞에서 고개가 떨구어진다.

 

이곳에 사는 나에게 도시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물어보는 것은 문화생활을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다. 나는 소비생활이겠지라고 수정해준다. 물론 이곳에 사는 사람들도 문화적 인프라를 많이 확충해야 한다고 한다. 내가 볼 때는 훨씬 더 풍부한 문화적 토대를 가지고 있는데도 그렇다. 그렇게 규정당해 왔기 때문이다. 극장이 있고, 영화관이 있고, 쇼핑몰이 있고, 잡지에 소개된 카페 레스토랑이 있어야, 마지막에는 입을 벌린 신용카드 결제기가 있는 곳이라야 문화도 있다고 여긴다. 도시 사람들이 시골에서 보내는 휴가와 여행, 캠핑, 트래킹, 피싱은 웰니스 라이프의 상징이고 하나의 문화생활이다.

 

그러나 시골에 사는 원주민들의 삶은 문화 없는 삶으로 쉽게 폄하된다. 이 황금 동상 하나로 인제는 갑자기 미적 감각도 형편 없고 정치적 문화적 수준이 낮은 곳이 되었다. 시골은 언제나 그렇게 된다. 섬마을이라 그렇고 산촌 오지라 그렇다고 한다. 하지만 저런 황금덩어리들이 수백 수천개가 있어도 도시에선 깜쪽같이 감춰지고 서울은 아이서울유로 탈바꿈한다. 다만 시골엔 뒷골목이 없고 쇼윈도가 없을 뿐이다.

 

나는 요즘 서울에 나갈 때마다 벌거벗은 황금덩어리들에 대한 숭배를 본다. 경의선 공유지에 갈 때마다 기린 캐슬 너머로 보이는 황금색 롯데 캐슬은 내 눈에는 내내 거대한 똥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런데도 그걸 '랜드마크'라고 한다. 잠실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똥덩어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창자에 포도밭이란 이름의 멋진 콘서트홀이 있다 한들, 그래봐야 똥창의 한 가운데일 뿐.

 

그냥 요즘 저 황금색의 여인을 보는 내 심정은 슬픔이다. 어떤 이는 욕을 하고 어떤 이는 빈정대고 어떤 이는 손가락질을 하는데, 내 마음은 가득한 슬픔으로 차오른다. 이 세계에서 짓밟히고 유린당하는 존재가 보일 뿐이다. 저 강이, 저 대지가, 이 시골이. 고대의 옛말과 신화는 그것들을 모두 여성으로 부른다. 저 파헤쳐진 강도, 저 능욕당하는 여인도, 다 나인듯 하여

 

이제 저 강에 가지 못한다.

 


(기사 등록 20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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