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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좌파 남성의 페미니즘 실천/ TERF에 관한 짧은 생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7. 11. 28.

윤미래

 

● 진보·좌파 남성의 페미니즘 실천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다면 서로 힘을 모아 그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 옳지 않나. 운동장을 기울게 한 적도 없고, 그 기운 운동장으로 인해 변변한 혜택도 받은 적없는 애먼 사람들에게 죄를 추궁하고 페널티를 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 페친분이, 아마도 페미니즘을 겨냥한 것으로 보이는 단문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 나는 이 말에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힘을 모으기 위해서는 불평등의 수혜자들이 최소한 불평등에 편승하지 않으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소위 말하는 정체성 정치로서의 페미니즘 - 시스젠더 중심적·성본질주의적으로 정의된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중심으로 한 신자유주의적 이익집단 정치 - 의 틀에서 벗어나 혁명적 이념으로서 페미니즘을- 총체적근본적 해방의 전망과 이를 위한 연대와 단결을 말하는 데서 일선 활동가들이 가장 자주 부딪히는 가장 강력한 장애물은 실제 자기 삶과 일상에서 남성들이 자꾸 동료나 연대자가 아니라 폭력과 차별을 휘두르는 위협으로 등장한다는 여성들의 경험, 그리고 그로 인한 두려움과 불신이다. ‘분리주의 페미니즘보다 운동 사회 내부에도 온존하는 성차별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훨씬 더 깊게 여성들을 운동으로부터 분리시킨다.

 

분리주의의 실천적 기초를 허무는 방법은, ‘분리주의 페미니즘을 비난하는 것보다 실천하기 훨씬 어렵지만 객관적으로 훨씬 단순하고 간단하다. ‘이 체제에서 남성 노동자가 얻는 이득보다 남성 노동자가 견뎌야 하는 고통이 훨씬 크다는 말을 남성 노동자들로부터 성폭력, 성차별을 당하고 분노해 있는 여성들이 아니라 그런 짓을 직접 하거나 또는 동조하고 정당화하는 남성 노동자들에게 하는 것이다. 집안일을 해주고 기를 살려줄여성을 찾고 그렇게 해주지 않는 여성들을 원망하고 분풀이하는 하층 계급의 남성들에게 당신의 고통은 그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이 손을 잡고 단결해 싸워야 당신도 해방될 수 있다고 설득하고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이 사회는 남성들에게 여성에게 가르침을 받는 것은 창피한 일이다라는 믿음을 꽤 어렸을 때부터 반복해 심어주기 때문에, 이런 작업은 남성들이 훨씬 더 잘 할 수 있다. 자기 기득권을 해체하는 데 누구보다 열심이고 누구보다 기여하는 남성들의 존재야말로 분리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최고의 실천적 반증이 될 것이다. 여성들에 대한 원한감정이 하층 계급의 남성들로 하여금 온갖 극우적인 사고방식과 행동까지 서슴지 않게끔 몰아가고 있는 지금, 진보·좌파 남성들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과업은 여성운동에 대해 물 밖에서 손쉬운 훈계를 던지는 것이 아니라 기층의 남성들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 TERF에 관한 짧은 생각

 

1. TERF를 여성주의의 언어로 정당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에도 반대하지만, 동시에 이들을 별로 경멸하지 않는다. ‘쌍욕하고 불링하는 게 다른 어떤 방법보다 빠르고 강력하게 세상을 바꾼다’ ‘사회가 하는 그럴듯하고 좋은 말들은 나를 속이고 착취하려는 세뇌일 뿐이다라는 믿음을 메갈리아 정도의 강력한 실천적 경험으로 가지게 된 사람들이 달리 뭘 하겠는가? 폭력 이외에 자기방어와 생존의 방법을 아무것도 배운 적 없는 사람들이 모든 스트레스 상황에 폭력으로 반응하는 것은 사람이 생존본능을 지닌 생물인 한 그냥 그저 당연한 일이다. 그 아래에는 물론 폭력이라는 방법조차 허락받지 못하는, 그저 참고 당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인간은 이성과 윤리를 알지만 동시에 할 수 없이 동물이기 때문에, 그것을 성찰하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언제나 있듯이 다른 사람의 상황 따위 내가 알 바냐 해버리는 사람들도 언제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지금 어떤 세계에 살고 있는가, 그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아니 죽임당하지 않고 살아남는 것을 넘어 사는 것처럼 살기 위해서 어떤 방법과 방식들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안전과 여유를 보장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가능하고 그러한 사람들에게도 더 나은 방법들을.

 

그러니까 나는 지금 TERF 현상을 보면서 여성운동에 기층이 부재한 결과, 여성 억압에 대한 자생적인 분노가 보다 발전된 정치적 의식과 방법으로 연결되지 못한 것이 지금 상황인 것 같아 안타깝고 고민되는 마음이 더 크다. 다만 내 이런 문제의식에 아무런 실천이 따르지 않는 건, 그들에게 그들의 입장이 있듯이 나에게는 나의 입장이 있고, 그들을 돕고 이끄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 그러니까 내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의 오류가 페미니즘 전체의 오류가 되지 않도록, 여성과 사회의 대립 서사 속에서 성소수자들의 존재가 지워지지 않도록 선을 긋고 나를 지키고 싸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다른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그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2. 워마디즘은 좌파와 여성 운동이 인터넷 세대와 미조직 여성 인민과 접점을 거의 완전히 잃은 반면에 반면 극우는(feat. 국정원) 인터넷을 활용하기 위해 나름대로 연구하고 돈과 시간, 역량을 투입했기 때문에 인터넷 세대가 운동보다는 신자유주의와 정치혐오의 언어사고에 훨씬 더 익숙해진 상태에서 인터넷 세대의 여성들 사이에서 자생적 의식화가 터져나온 결과가 아닐까? ‘도덕’ ‘윤리심지어 해방에 기초한 사회적 단죄와 비난들이 일베 유저들을 계도하는 데 실패했다면 워마드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은 키보드 밖에 있어요라고 백 번을 말해봐야 키보드로 결집하고 키보드로 학습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무리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고, 극우는 이미 그 환경에 적응한 새 세대를 키워내는 데 성공했고 문재인 팬덤을 위시한 자유주의자들도 이제 완전히 나름대로의 툴을 갖췄다. 좌파가 앞으로도 대응세력을 키우지 못한다면 학교나 대중매체 못지않게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장치를 고스란히 보수 세력에 넘겨주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온라인 좌파’ ‘넷페미의 언어는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것을 만들려면 누가, 어떤 기획의 틀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할까

 

 

(기사 등록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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