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혁
지난 5월 21일 「한국경제」에서 공무원연금 삭감 계획을 보도했다. 이에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토씨만 고쳐가며 비슷한 기사를 쏟아냈다. 그리고 그 날 하루종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권에 올랐다. 정부는 보도내용에 대해 논의한 바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지난 5월 8일에도 안전행정부가 관보 고시를 통해 올해 공무원 전체의 기준소득월액 평균액이 447만원이라고 밝히자 언론들은 “대기업보다 센 공무원 월급”, “공무원 박봉 ‘옛말’”이라는 제목을 달아 공무원을 고임금 노동자로 포장해냈다.
이런 식의 왜곡된 주장들은 경제위기의 희생양이 되어온 일반 서민들, 특히 저임금 노동자, 실업자, 영세업자 등이 공무원에 반감을 갖게 할 뿐만 아니라 세월호 참사로 인한 정부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고위 관료가 아닌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일련의 시도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은 올해만 해도 여러 차례 이어졌다. 박근혜는 올해 신년기자회견에서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먼저 공공부문 개혁부터 시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2월 초에는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놓지 않는 ‘진돗개 정신’으로 공공부문을 개혁할 것이라고 밝혔다. 2월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에서도 가장 우선순위는 ‘공공부문 개혁’이었다.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과 함께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개 공적 연금을 손 볼 것임을 분명히 했다.
박근혜 정부가 추진해 왔던, 비정상의 정상화는 세 가지 측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첫째는 공기업의 민영화, 둘째 공공부문에 시장시스템 도입, 셋째 공적규제의 완화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공적인 분야를 가능하면 사기업에 넘기고, 사기업에 넘기기 어려운 부분들은 정부 또는 공기업이 하되 시장원리를 도입하고, 이미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간 부분들도 이윤 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장벽을 제거하는 것이다. 철도 민영화, 의료분야 영리화는 이러한 방향이 복합적으로 적용된다.
공무원도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이미 김대중 정권 때 대규모 구조조정과 함께 정부업무가 민간으로 이양되었고, 노무현 정부 때 총액인건비제 및 성과상여금 등이 도입되어 노동강도 강화와 개인간 경쟁을 강화시켜왔다. 공적 연금의 의의를 퇴색시키려는 개악하려는 공무원 개악 시도와 이에 맞선 투쟁 역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있어왔다. 표를 의식해야 하는 지방선거 시기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구체적인 개악논의가 진행될 것이기에 올 하반기에 뜨거운 이슈가 될 공무원연금에 대해서는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다.
더 내고 덜 받는
작년부터 진보, 보수 언론 가리지 않고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개편해야 된다는 기사가 줄기차게 나오기 시작했다. 공무원연금에 대한 공격은 적자 재정으로 인한 정부부담 증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측면에 대해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4월에는 80년간 국가가 지급해야 할 공무원, 군인연금 충당부채가 596조3000억원이라며, 공무원 연금 때문에 나라가 거덜날 것처럼 언론들이 기사를 써댔다. 600조에 달하는 부채를 적절한 방식으로 산출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차치하고라도, 부채에는 80년간 공무원과 정부가 내는 부담금을 제외하여 계산되지 않기 때문에 온전히 세금으로 부담해야 되는 것처럼 설명하는 것은 옳지 않다.
또한 공무원연금 적자가 이명박 정부이 7조 6930억원에 이르고 박근혜 정부는 14조9934억원이 예상된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하지만 적자의 책임이 공무원의 과도한 연금 수령에 있지 않다. 공노총의 주장처럼 “98년 IMF사태 등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15만명 수급자 양산, 정부에서 부담해야할 명예퇴직금과 퇴직수당지급 연기금 부당사용(약 7조원) 및 부실운용, 인구고령화에 따른 연금수령기간 증가와 퇴직 후 연금선택 수급자의 증가 등이 원인으로 정부의 부조리한 기금운영과 환경적 요인에 있”다.
평균소득월액에 대한 공무원연금의 지급율은 매년 1.9% 올라간다. 예를 들어 매달 100만원을 버는 20년간 일한 공무원이 있다면 수령액은 38만원이 된다.(100만원*1.9%*20년) 반면 국민연금은 1.175%(2014년 기준)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100만원을 받고 20년간을 일한다면 수령액은 23만 5천원이 된다.(국민연금에는 소득재분배 기능이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받는다.) 위 계산에 따르면 약 1.6배가량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많다. 하지만 이 역시 공무원연금 납부액이 과세소득의 14%(공무원, 정부 각각 절반 부담)인데 비해 국민연금은 9%(직장가입자는 사용자, 노동자 각각 절반 부담)로 약 1.55배 차이가 난다.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에 비해 더 내는 만큼 더 받는 구조인 것이다.
퇴직시 공무원은 퇴직금으로 별도로 받는 것은 없고, 퇴직수당을 받는데 이는 민간기업 퇴직금의 39% 수준에 불과하다. 안전행정부가 발표하는 통계치에 따르면 공무원의 보수 역시 2013년 기준으로 민간기업의 보수대비 84.5% 수준인데 2004년 95.9% 이후로는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상대적으로 높은 공무원연금은 낮은 임금에 대한 보상 혹은 퇴직금이 포함된 액수라고 봐야한다. 더군다나 주요 국가들에 비해 공무원 연금부담 대비 정부 연금부담이 턱없이 낮다.
이 밖에도 공무원들이 일반 노동자들에 비해 불리한 점은 많다. 근로기준법보다도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을 우선적용받기 때문에 초과근무수당을 통상임금에 기초하여 할증하여 받기는커녕 통상임금에도 못 미치는 금액을 받는다. 그나마도 하루 4시간밖에 허용이 되지 않기 때문에 휴일 하루에 10시간을 일한다 하더라도 4시간 밖에 인정되지 않는다. 노동절에 쉬지 못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고용산재보험의 가입대상도 아니다. 기초연금이나 재해보상 대상도 아니다. 정치적 자유나 노동3권도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금전적, 비금전적 손실에 대한 보상적 성격으로 공무원연금이 타 연금에 비해 수령액이 높다는 주장도 있다.
갈라치기
공무원연금 삭감은 노후 불안을 야기할 것이다. 이제껏 보수가 높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연금으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개악되어 국민연금 수준의 연금을 받게 된다면 재직기간 동안 노후 준비에 더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이는 상여금이나 승진 등을 둘러싼 공무원간 경쟁 심화, 장시간 노동, 부정부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이런 탓에 나의 주변 공무원들은 공무원연금법 개정 관련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런 상황과도 연관되어 올 연초에 500명대였던 송파지부 조합원이 곧 1000명 돌파를 앞두고 있다. 전국공무원노조에서 실시한 조합원 설문에서는 연가파업을 지지하는 응답이 60%가 넘게 나오기도 했다. 2014년 2월 26일 JTBC 여론조사에서는 공무원연금을 ‘더 내고 덜 받는 것’ 방향으로 개정하는 것에 반대하는 여론이 32.6%에 이르렀다. 물론 찬성하는 입장이 응답자의 절반 가까이 나오긴 했지만, 진보·보수언론 가리지 않고, 정부와 한 몸으로 공무원연금을 공격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대여론이 낮지 않은 수치다.
더 큰 단결과 투쟁을 위해 지난 공무원 연금개악 투쟁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09년 당시 공무원노조는 “공무원 임금을 민간사업장 수준으로 현실화 해줄 것 등을 요구하면서 ‘더 내고 덜 받는 형식’ 의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기꺼이 동참”(2014년 4월 9일 공무원노조 성명)하였지만 연금도, 임금도 얻어낸 것은 없었다. 더군다나 당시 합의로 2010년 이후 임용된 신규자들은 연금수령시기가 당초 60세에서 65세로 늦춰졌다. 보수언론들은 이점을 빌미삼아 기존 재직자(2010년 이전 임용자)의 이기주의를 공격하고 신규자(2010년 이후 임용자)와 갈라치기 하려 한다. 아직 구체적인 연금 개악안이 나온 것은 없지만, 신규자들을 기준으로 공무원연금을 하향 평준화하려고 할 것이다. 이때 신규자들이 선뜻 행동에 나서긴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렇게 단결을 해치는 방식인 재직자, 신규자를 나눠 협상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공무원연금은 다른 공적 연금들과 사실상 연동되어 있다. 소득대체율이 70%수준이던 국민연금은 몇 차례 개악되어 올해 47%에 불과하고 2028년에는 40%까지 떨어질 것이다. 그나마도 40년간 가입하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에 실제 소득대체율은 더 떨어진다. 반면 공무원연금 역시 몇차례 개악되었지만 33년 가입시 소득대체율이 62.7%로 국민연금과의 편차가 커지고 있어 하향평준화의 압력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연금이 개악되면 용돈 수준에 불과한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의 개악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공무원노조는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투쟁을 국민연금, 기초연금 개선을 위한 투쟁과 연계시켜야 한다. 최근 공무원연금공동투쟁본부에서 주요사업에 ‘국민연금과의 공동투쟁을 통한 공적연금 강화’를 추가 하였다. 실질적인 공동투쟁이 된다면 하향평준화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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