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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2014년 정세 전망과 변혁운동가들의 과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4. 2.

전지윤


마르크스는 “중요한 것은 세계를 해석하는 것보다도 그것을 변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각주:1] 우리가 새로운 조직을 건설하려는 것도 세계를 변혁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무기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세계를 제대로 해석하는 것은 그것을 변혁하는 것과 긴밀히 연관된 과제이다.

 

이런 실천적 관점에서 나는 오늘날의 세계를 해석하기 위한 분석과 전망을 시도하고자 한다. 2014년의 정세를 조망하고 변혁 운동가들의 실천 과제를 고민하려는 것이다. 이런 분석은 끝없이 변화하고 발전하는 정세를 총체적으로 바라보고 추적하는 관점에서 시도돼야 할 것이다.

 

따라서 나는 세계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국제적 정세 분석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국제 정세의 토대가 될 세계 자본주의 위기의 현 상황부터 시작한다.


위기가 옮겨 다니는 세계 자본주의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는 여전하다. 지금 위기의 진앙지는 미국에서 유로존을 거쳐 이제 신흥국들로 번진 상황이다. 신흥국들이 들썩거리는 요즘, 그래도 미국과 유로존은 안정을 찾고 있지 않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과 유로존에서도 결코 진정한 회복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은 엄청난 돈을 쏟아 부어서 겉보기에만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미국과 유로존에서 지배자들이 쏟아 부은 돈은 무려 10조 달러에 달한다.[각주:2] 이런 돈풀기와 양적완화가 일시적인 효과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런 돈 풀기는 일시적 회복의 착시 효과만이 아니라 커다란 모순을 잉태할 수밖에 없다.

 

일단 이것은 기업과 가계의 부채를 국가의 부채로 이전하면서 각국에서 재정적자 악화라는 문제를 낳았다. 또한 이것은 곳곳에서 거품을 키우는 결과도 나았다. 실제로 2013년말에 미국의 주택가격은 전년 대비 13.7퍼센트나 상승하며 8년만에 최대폭의 증가를 나타냈다.[각주:3] 일본 아베노믹스 뒤에서 자라나는 불안감도 성격은 비슷하다. 무엇보다 양적완화는 당연히 무한정 계속될 수가 없다.

그래서 지금 미국 정부는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에 나서고 있다. 테이퍼링은 양적완화 기간 동안에 신흥국들로 몰렸던 달러들이 급속히 빠져나가는 결과를 낳고 있다. 더구나 중국 경기가 지속적으로 둔화하면서 신흥국들은 자원과 원자재 수출 시장이 줄어드는 문제도 겪고 있다.

 

바로 이런 문제들이 결합되면서 지금 신흥국들은 열병에 휩싸이고 있다. 얼마전 아르헨티나에서 벌어진 외환 위기는 상징적이었다. 나아가 소위 ‘프리자일 8’(남아공, 터키, 브라질, 인도, 인도네시아, 헝가리, 칠레, 폴란드 등 취약한 8개 나라)가 모두 우려의 시선을 받고 있다. 여기에 정치 위기가 결합되면서 상승 작용이 일어나고 있다. 타이, 우크라이나, 보스니아 등에서 정치적 불안정 속에 벌어지는 거대한 시위와 반란들을 보라. 우크라이나에서 처음에 벌어진 일은 경제 위기 속에 아래로부터의 불만이 거리 시위로 폭발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대통령이 야밤에 헬기를 타고 도망가는 국면으로 발전했다.

 

아랍 혁명, 유럽 총파업, 미국 ‘점거하라’에서 나타난 저항 정신이 이제 신흥국들에서도 불붙고 있다. 분노와 저항 분출의 초점이 계속해서 확장·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미국과 선진국에서 양적완화를 계속 축소할 뿐 아니라 금리 인상까지 조금씩 시작한다면 상황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제국주의 질서의 새로운 국면?


경제적 불안정은 지정학적 불안정과 연결된다. <파이낸셜 타임스>는 이렇게 우려한 바 있다. ‘양적 완화 축소로 안전판이 줄어들면 주요 국가간에 돌발적인 전쟁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중국과 일본이 동시에 NSC(국가안보회의)를 설치한 것 등을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라고 소개하며 “중국과 일본은 충돌로 가고 있다”고도 우려했다.[각주:4]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도 이렇게 경고했다. “이 게임은 너무나 위험하다. 중국군과 일본 자위대 전투기가 서로 공격하거나 중국 전투기가 민간 여객기를 나포하는 상황 같은 우발적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1차 세계대전의 발발 역사를 돌이켜보면 얼핏 볼 때 아주 작은 사건이 급속히 걷잡을 수 없는 재난적 상황으로 비화했다.”[각주:5]

 

지금 상황을 1차 세계대전 직전의 유럽 상황과 비교하는 것은 거의 유행이 되다시피하고 있다. 경제 위기 지속·심화 속에서 국가 간의 갈등이 지정학적 충돌로 나아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 우크라이나를 둘러싸고 러시아 제국주의와 서방 제국주의가 대결하는 양상을 보라.

 

미 국무장관 존 케리는 “21세기에 19세기적 행동을 하고 있다”며 러시아 푸틴을 비난했지만, 그것은 피차일반인 상황이다. 상황은 유라시아 대륙의 지정학적 주도권을 놓고 러시아와 서방의 전쟁 위기까지 들먹여지는 것으로 발전했다. ‘신냉전’의 신호탄이라는 말도 나왔다.

 

사실 이런 제국주의간 갈등과 충돌 위험성은 그동안 특히 동아시아에서 증가해 오고 있었다. 미국은 지난해 이란 핵 문제에 타협하면서까지 ‘아시아 회귀’에 더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미국은 중국이 제기하는 진정한 도전에 힘을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제국주의 간 경쟁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각주:6]

 

중국은 해군력을 증강하고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을 확대하며 야심을 드러냈다. 중국은 올해 국방비도 12퍼센트나 증액하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동중국해에 이어서 남중국해에서도 방공식별구역 확대를 추진한다면 미국도 더욱 민감한 반응과 대응을 할 수 있다.

 

미국 국방부는 최근 발표한 ‘4개년 국방검토보고서(QDR)’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주둔 미국 해군 자산을 2020년까지 60퍼센트로 끌어올릴 것”이라고 선포했다. 일본의 재무장과 군국주의화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태평양에는 각국의 항공모함들이 득시글대고 있다. 미국이 가진 항공모함 10척중 4척이 대서양에, 6척이 태평양에 배치된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같이 위험해지고 있는 곳은 한반도이다. 미국과 일본은 자신들이 동아시아 지역에서 개입하고 힘을 키우는 데 항상 북한을 핑계삼아 왔다. 존 케리는 근래 아시아 순방 과정에서 다시 북한을 “사악한 곳”, “악의 나라”라고 비난했다. 중국은 북한을 ‘전략적 자산이자 부담’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미국이 중동에 힘을 집중할 때 ‘불량국가’로 지목됐던 이라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기억이 생생하다. 물론 미국과 북한의 이런 갈등이 봉합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최근 박근혜 정부는 “통일대박”을 운운하며 북한의 급변사태를 대비라기보다 사실상 유도하겠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 김정은 정권도 장성택 처형에서 보여주듯 불안정성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국가자본주의가 오래 전부터 보여 왔고 해결하지 못한 모순과 위기가 이런 사태의 배경에 있다.

 

더불어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과의 군사적 동맹과 중국과의 경제적 협력 속에서 양다리를 걸치면서, 갈수록 가랑이가 찢어지는 모순을 느끼고 있다. 과거는 잊고 한미일 동맹을 강화하자는 미국의 압력 속에 곤혹스러움도 느끼고 있다. 한일 군사협정을 가장 바라고 뒤에서 압박하고 있는 게 바로 미국이다.

 

이런 모든 요소와 모순들은 이 지역의 긴장과 불안정을 높이는 데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센카쿠/댜오위다오에서 중국과 일본이 국지적 충돌을 일으킬 가능성은 실질적이다.


정치적 공백과 좌파의 도전 과제


이런 경제적·지정학적 상황은 전 세계적으로 몇 가지 공통된 정치적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먼저 불안정한 경제 위기 상황과 고통전가 속에서 나타나는 경제적 양극화는 정치적 양극화를 낳고 있다. 이것은 오랜 기간 정치적 주도권을 쥐어왔던 전통적인 중도우파와 개혁주의 정당들의 위기를 부르고 있다. 그러면서 생기는 정치적 공백을 한편에서는 급진좌파가, 한편에서는 극우익과 나찌가 파고들고 있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오바마에 대한 실망이 커지고 있지만, 공화당이 그 반사이익을 얻지는 못하고 있다. 공화당 내에서도 티파티같은 극우익이 득세해 오면서 불안정은 커졌다. 한편, 시애틀에서는 1백년 만에 사회주의자가 시의원으로 당선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선된 대안사회주의당의 크샤마 사완트는 “우리는 거대 기업과 이들 정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우리 자신의 정치 정당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는 미국인 60퍼센트가 ‘제3당을 원한다’고 답했다.[각주:7]

 

그리스에서는 중도적 정치세력들이 모두 실패를 겪으면서 이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집권할 가능성이 거의 확정적이 돼 가고 있다. 물론 그리스뿐 아니라 유럽 곳곳에서 황금새벽당같은 나찌가 부상하며 실질적 위협이 되고 있다.

 

정치적 공백과 기성 정치세력의 불안정과 위기는, 정치적으로 출구를 찾지 못하는 대중이 반란을 일으키는 토대도 되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 터키, 우크라이나 등에서 벌어지는 반란들은 기성 정치세력 중에 누구도 이것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브라질과 터키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중 반란이 정치, 지도, 조직의 문제를 가볍게 제치지 못한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줬다”고 지적했다.[각주:8]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상황은 대표적이다. 친러시아 정치인인 야누코비치도, 친유럽 정치인인 티모센코도 기층 민중의 불만과 요구를 진정으로 대변하거나 해결하지 못한다. 혼란과 모순 투성이인 스탈린주의 좌파는 당연히 이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이 때문에 극우익이나 파시스트, 아나키스트들이 거리 시위를 주도하며 진정한 요구와 쟁점을 흐려 왔다.[각주:9]

 

사실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이집트라고도 볼 수 있다. 이집트에서는 무슬림형제단이 혁명을 배신하면서 생긴 공백을 정치적 양극화 속에서 다시 군부가 반혁명으로 메우려 하고 있다. 이집트 군부는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엄청난 마녀사냥을 반혁명의 고리로 삼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집트의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군부도 무슬림형제단도 아니다’라는 입장을 취하며 이런 시도를 막는 데 취약함을 보여 왔다.

 

정치적 양극화와 공백이 낳는 기회를 엉뚱한 세력이 낚아채가지 못하게 하며, 이 기회를 이용해 투쟁을 발전시키고 조직을 성장시킬 좌파의 도전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3대 모순

 


한국 자본주의는 지난 몇 년간 심각한 위기를 겪지는 않았지만, 갈수록 성장률이 떨어져 왔고,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불안감을 보여 왔다. 이런 상황에서 양적완화 축소와 함께 신흥국들이 위기로 빠져드는 것은 불길한 조짐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은 신흥국들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다. 수출도 유지되고 있고, 외환보유고도 많고 등등. 2013년에 이 나라의 경상수지 흑자 규모는 2012년과 비교해서 거의 두배 가까이 늘었다. 그러나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신흥국들이 위기로 빠져들던 지난 1월 한 달간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주식시장에서 2조 원어치를 내다팔았다. 지난해 1년 내내 매도한 규모가 3조 원이었는데 말이다. 사실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일종의 ATM, 즉 돈을 넣고 빼기 좋은 현금인출기로 인식돼 왔다.

 

게다가 한국 자본주의의 3대 모순은 여전하며 갈수록 심화돼 왔다. 첫째는 극단적 ‘대외 의존 경제’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외 경제 환경과 주요 국제시장이 여전히 불안정할뿐 아니라 그것이 확대되는 양상은 한국 경제에 검은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특히 한국 경제는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율을 갈수록 높여 왔는 데, 중국 경제의 위기 조짐은 불길하지 않을 수 없다.

 

둘째 ‘삼성 의존 경제’라는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삼성, 현대 등 핵심 재벌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삼성·현대차그룹이 GDP의 35퍼센트, 법인세의 21퍼센트, 시가총액 37퍼센트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한국경제의 거의 3분의1을 차지하는 셈이다.[각주:10]

 

이것은 이 핵심 재벌기업들이 어려움에 직면하고 흔들릴 때 한국 경제도 같이 그럴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그룹은 또 삼성전자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삼성전자는 이익의 66퍼센트를 스마트폰 사업에서 올리고 있다. 스마트폰 사업이 부진해지면 그룹 전체가 휘청일 수 있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갈수록 감소하고 있다는 소식은 반가울 리가 없다.

 

셋째, ‘부채 의존 경제’라는 점이다. 2008년 경제 위기 극복 과정 등에서 이 나라의 부채 의존은 더 커졌다. 현재 가계 부채가 1천조 원, 공공부채도 1천조 원에 달한 상황이다.[각주:11] 특히 가계 부채는 부동산담보대출과 연관돼 있기에 주택시장의 거품이 급속히 꺼지면 사태가 심각해질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틈만 나면 부동산 경기부양책을 내놓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핵심 문제는 낮은 이윤율이 투자를 불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현재 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은 무려 508조 원에 달하고,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인 개인이 보유한 총자산도 366조 원에 달한다. 따라서 기업과 개인이 보유한 잉여금 874조 원에 달한다는 뜻이다.[각주:12] 그런데 이런 돈들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해서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2013년 세금 수입 총액은 애초보다 10조9천억 원이나 부족했고, 법인세 수입도 예산 대비 2조1천억 원이나 줄어들었다. 이 상황에서 2017년까지 135조 원을 투입한다는 박근혜의 ‘공약 이행 가계부’는 갈수록 무망해지고 있다. 뾰족한 돌파구가 없는 상황이니 최근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모두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 등 ‘사회적 경제’를 운운하며 위선이나 떨고 있다.

 

물론 지배자들이 진지하게 추진하고 있는 것은 자본가들에게 투자와 이윤 획득 기회를 주기 위한 규제 완화와 민영화, 공공부문 구조조정과 임금 억제 등 노동자들에 대한 경제 위기 고통전가이다. 특히 일단 철도민영화의 물꼬를 튼 이후 이 정부가 근래 본격화하고 있는 것은 의료, 교육 등 공공서비스산업의 민영화이다. 원래 노무현 때까지만 해도 전국적 네트워크 산업의 구조조정을 넘어서 실질적 민영화에 대해서는 일단 유보적인 게 지배자들의 태도였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태도가 분명히 바뀐 것으로 보인다.

 

또 통상임금에 대한 노동부의 지도지침을 보면, 얼마 전 법원의 누더기 판결마저 다시 완전히 걸레로 만들어버리는 수준이다. 최근에는 정부가 연공급 축소·성과급 확대의 ‘임금 체계 개악 방향’도 내놨다.

 

이런 임금 억제책 대문에 이미 지난해 노동자들의 [노사합의에 따른] 협약임금 인상률은 3.5퍼센트로 2008년 위기 직후였던 2009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각주:13] GM대우에서는 노동자 대량해고가 예고되고 있기도 하고, 최근 KEC에서는 실제 대량해고가 자행됐다.


우파 결집과 민주당 지리멸렬의 공백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에 대한 우려가 이 나라의 지배자들을 결집시키고 우경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지배계급에 기반하고 있으면서도 대중적 인기도 고려해야 하는 민주당의 처지는 갈수록 지리멸렬해져 왔다. 특히 민주당은 우파의 ‘대선불복하겠다는 거냐’는 협박과 종북몰이 속에서 혼비백산하며 알아서 기기 바빴다. 근래 민주당은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우클릭을 시도해 왔다.

 

북한민생인권법을 발의하겠다며 종북몰이에 굴복하고, ‘성장을 보다 중시하고 대기업과도 교류의 폭을 넓히자’며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이 상황에서 생기는 정치적 공백을 이용해 온 게 안철수다. 안철수 신당에 대한 여론 조사에서 80퍼센트는 ‘기존 정당이 싫어서’라고, 20퍼센트만 ‘안철수가 좋아서’라고 답했었다. 그런데 안철수는 국회에 입성하고 당 건설을 본격화하면 할수록 기존 정당과 다를 게 없는 ‘새 정치’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거품이 꺼져 왔다. 이것은 안철수 신당도 기성 지배자들과 낡은 정치인들에 기반해 있다는 데서 나온 모순이었다. 안철수 신당에는 새로운 얼굴은 별로 없고 새누리당, 민주당, 심지어 자민련 출신 정치인들이 똬리를 틀어 왔다. 무엇보다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 왼쪽이 아니라 새누리당과 민주당의 중간에서 자신의 포지션을 찾았다. 그러다보니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의 우클릭을 더욱 자극하는 구실만 했다.

 

그러면서도 안철수 신당은 지방선거에서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을 부정해 왔다. 사실 민주당과 손을 잡으면 안철수의 새 정치는 빛이 바랠 것이었다. 반면 민주당하고라도 손을 잡지 않으면 당선 가능성은 매우 적을 것이었다. 안철수의 초라한 실체가 드러나면서 갈수록 인기를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안철수 신당은 민주당과 기업인수합병식 통합을 하면서 새정치의 한심한 몰골만 드러내는 길을 택했다. 이 통합은 감동과 시너지 효과보다는 환멸과 실망만 낳고 있는 듯 하다. 두 당이 합친 지지율이 단순한 산술적 합계에도 못 미치는 여론 조사 결과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각주:14]

 

이런 상황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에게 어부지리를 안기고 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크게 바뀌지 않는다면 박근혜는 지방선거에서 패배를 모면하거나 패배의 정도를 매우 약화시킬 수 있을 듯하다. 사실 우파가 지금의 정치적 공백을 이용해 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안철수같은 자가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하려면 진보의 단결과 도전이 필요했다. 정치적 공백은 진보의 공간이 돼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현재 여전히 위기와 분열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보의 분열과 위기는 민주노동당이 무원칙하게 참여당과 통합하면서부터 그 씨앗이 잉태됐다. 이후 경선부정 사태가 터져 나왔고, 이것은 종북 마냐사냥과 결합됐다.

 

지난해 관권부정선거 규탄 촛불 시위 와중에 국면전환용으로 터진 내란음모 사건은 이것을 더욱 증폭시켰다. 당시 정의당이 새누리당·민주당과 함께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는 장면은 통탄스러울뿐 아니라 매우 상징적이었다.

 

올해도 이 상황은 이어지고 있다. 당장 정당해산 심판에서 법무부는 정의당 소속의 이청호 시의원을 증인으로 신청한 바 있다. 진보당이 ‘헌법 외 진보’라는 증언을 정의당으로부터 받아내려 한 것이다. 참여계 출신 이청호 시의원은 경선부정 때도 조중동과 인터뷰하며 진보당을 공격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의 분열·위축 효과는 지속될 수 있다.

 

박근혜의 공포정치는 반노조 정책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박근혜는 전교조 법외노조화를 추구하고 민주노총 건물에 경찰력을 투입할 정도로 막무가내였다. 오죽하면 한국노총 관료들조차 노사정위에서 이탈했을 정도다. 사실상 박근혜는 노조 관료들에게 ‘무릎꿇고 들어와서 항복문서에 사인해라’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무리 전투성이 사라진 노조 관료들이라도 이런 압박에 순순히 무릎 꿇을 수는 없을 것이다.

 

지난해 연말 철도 파업과 민주노총의 ‘박근혜 퇴진’ 투쟁 선언은 이런 분위기를 보여 준다. 물론 철도 노동자들의 투지와 강력한 지지 여론이 이 투쟁의 중요한 버팀목이었다. 그러나 결국 막판에 민주당과 친민주당 개혁주의 지도자, 노조 관료들의 중재에 의해 이 투쟁은 봉합돼 버렸다.


노동자 투쟁과 거리의 투쟁


다음번에도 이런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하려면 위로부터 박근혜의 압력보다 더 커다란 압력을 아래로부터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데 아직 조직 노동계급의 자신감 수준이 높아지고는 있지만 그 정도는 과장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전히 지도부의 통제를 뛰어넘거나, 지도부를 압박하며 파업을 하고 점거를 하기에는 부족한 수준인 것이다. 현대차에서 지도부의 잘못된 합의와 통제를 뛰어넘어 파업했던 엄길정, 박성락 두 동지를 해고한 것도 무엇을 겨냥한 것인지는 분명하다.

 

정권과 사법부가 쌍용차, 현대차비정규직, 한진중공업, 철도노조 등에 연달아서 수십∼수백억 원의 손배가압류를 판결하고 있는 것도 그런 부담을 키우기 위한 시도다.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은 합법 파업을 하기로 힘들지만, ‘파업을 하면 패가망신 당할 줄 알라’는 협박에 항상 노출돼 있다.[각주:15]

 

한편 많은 노조 관료들이 아래로부터 불만을 투쟁으로 발전시키기보다 적절한 타협점을 찾으려고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우리 편의 힘을 키우고 투쟁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예컨대 지난해 GM대우나 기아차에서는 ‘정규직 자녀 우선채용’이나 불법파견의 합법도급화를 인정하는 합의 등이 있었다.[각주:16]

 

올해도 GM대우 노조 지도부는 ‘정규직 고용안정을 위해’라는 핑계로 비정규직 구조조정을 수용하는 합의를 했다. 이것은 정규직 조합원들의 고용과 일자리를 지키는 게 아니라 노조의 힘만 약화시킬 뿐이다. 진주의료원에서는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거듭 자발적 구조조정안을 던지며 타협을 시도하다가 결국 폐업을 막지 못하는 결과만 낳았다. 올해도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의료민영화 중단과 수가 인상을 교환하려는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물론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관료적 파업을 추진하며 위로부터 압력에 대응하고 아래로부터 압력을 반영하기도 할 것이다. 2월 25일 민조노총의 ‘국민 파업’도 그런 경우였다. 민주노총 침탈 이후 두 달이나 지나서 시행된 이날, 실제 파업에 돌입하는 사업장은 많지 않았지만 이런 시도는 일단 환영할 만한 일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이런 상황에서 “지도부의 공식적인 투쟁 선언을 현장조합원들의 능동성과 결합시키면 노동계급의 자신감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각주:17]

 

더구나 아직 노조 관료의 통제력이 충분치 않고, 기층의 불만과 분노가 솟구쳐 오르는 신생 부문의 투쟁은 올해도 계속될 것이다. 청소노동자, 학교비정규직, 택배 노동자, 케이블비정규직, 삼성전자서비스 등이 그런 경우이고 올해도 또 새로운 부분이 여기에 추가될 수 있다.

 

지난해 촛불시위와 밀양송전탑 반대 투쟁 등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하는 불만과 분노가 거리에서 분출하고 연대가 이어질 가능성도 여전하다. 더구나 부정선거로 당선했다는 박근혜의 태생적 모순과 약점 때문에 이런 저항의 잠재적 폭발성은 여전히 크다. 근래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이 폭로되면서 일어나는 파장도 그것을 보여 준다. 이런 거리의 정치적 투쟁이 다시 노동자들의 투쟁과 결합되거나 서로를 고무하면서 발전할 수가 있다. 지난해 철도파업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그러나 자유주의 야당과 이에 친화적인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다시 이것을 봉합·무마시키며 제도정치권에 공을 넘기려 할 것이다. 지난해 촛불시위가 솟구쳤다가 가라앉은 과정, 철도파업이 갑작스럽게 종료되는 과정이 그것을 보여 줬다. 박근혜 취임 2년차인 올해 지방선거와 각종 재선거를 앞두고 이런 시도는 더 노골적일 수 있다.


전략적 방향성과 과제


정세에 대한 위와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변혁 운동가들의 전략·전술적 방향은 무엇이 돼야 하는가를 봐야 한다. 먼저 노동계급의 결정적 힘을 통해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혁하고 노동자 권력을 수립한다는 전략적 방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노동계급의 중심성 전략은 아랍 혁명 등에서 거듭 입증돼 왔다. 거리의 반란이 작업장에서 노동계급의 집단적 행동과 연결될 때 진정한 변화가 가능했던 것이다. 반면 터키, 브라질, 우크라이나 등에서는 거리의 반란이 이런 정치·세력과 만나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드러내 왔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라는 전략적 관점의 중요성도 이집트에서 교훈적으로 드러났다. 이집트에서 의회와 정부를 장악한 무슬림형제단은 국가 운영 과정에서 되려 군부와 협력해서 혁명을 배신했다. 이것이 낳은 환멸을 이용해 이집트의 군부는 다시 국가기구에 대한 통제력을 장악했고 지금 혁명을 파괴하고 있다.

 

국가기구는 일시적으로 뒤로 물러설 수 있지만 결국 자본주의와 반혁명의 최후 보루라는 점이 드러났다. 이런 교훈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그리스에서 급진좌파연합인 시리자가 정권을 잡더라도 또다시 모순에 직면하는 것은 필연적일 것이다.

 

또한 우리는 현장조합원 전략의 관점에 따라 노조관료의 구실과 한계에 대해서 분석하고 전술을 도출해야 한다. 우리는 노동자와 자본가 사이를 중재하면서 위로부터 협상을 중시하는 노조 관료가 바로 개혁주의의 인격적 토대라는 것을 지적하며, 개혁주의 정치인과 노조 관료의 분업 관계를 분석해야 한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이 활성화될수록 이런 전략적 관점은 중요할 것이다. 우리는 이에 따라 현장조합원들의 아래로부터 단결과 투쟁을 위한 전술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것은 단지 산업 현장에서 투쟁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산업 현장의 투쟁에서도 정치적·이데올로기적 대응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나아가 산업현장의 투쟁·요구와 정치적 투쟁·요구의 결합을 말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이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과 반제국주의를 위한 투쟁에서도 쓰여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더불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온갖 시도에 맞서 모든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투쟁에도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올해 또 강조해야 할 것은 국제주의 전략과 반제국주의적 관점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보여주듯이 제국주의간 갈등은 갈수록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제국주의간 갈등과 국지적 충돌 가능성까지 떠오르는 상황에서 가장 일관된 반제국주의 관점은 매우 중요하다. [각주:18]

 

마지막으로 혁명적 지도력과 네트워크를 건설해야 한다는 전략적 방향은 언제나 분명해야 한다. 노동계급에 정치적 뿌리를 내리고 있는 혁명적 중핵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더 효과적으로 투쟁을 발전시킬 수 있고, 혁명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혁명조직은 계급투쟁에 가장 효과적으로 개입하고 무엇보다 혁명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민주집중주의적 전통과 구조·제도가 확고해야 한다. 회원들이 조직의 현 상태를 판단할 수 있는 사실과 정보가 충분히 보고돼야 하고, 이 속에서 제한없고 자유로운 토론이 보장돼야 한다.


투쟁 개입의 전술적 방향


위와 같은 전략적 방향 속에서 전술적 방향도 고민돼야 한다. 전술은 전략과 정세에 대한 과학적 분석·전망에서 나와야 한다. ‘계획으로서의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런 취지이다.

 

예컨대 유럽의 극좌파들은 긴축에 반대하는 투쟁 건설과 반파시즘 투쟁 건설을 올해도 중요한 전술적 강조점으로 둘 것이다. 이것은 지금의 유로존 위기와 불안정에 대한 분석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서 긴축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배경과 그것에 맞선 투쟁 건설의 중요성이 도출된다. 또한 긴축이 낳는 정치적 양극화와 분열지배 전략 속에서 나찌와 인종주의에 맞선 단결과 투쟁 건설의 필요성도 나오기 마련이다.

 

이와 같은 잣대를 올해 이 나라에서 우리의 전술을 세울 때도 적용할 필요가 있다. 먼저 우리는 박근혜 정권이 무엇을 무기로 어떻게 우리 편을 공격할지, 박근혜의 약점은 어디에 있는지를 잘 분석하고 전망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6월로 예정된 의료민영화 반대 투쟁, 상반기 공공부문 구조조정에 맞선 투쟁 등을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다.

 

또 박근혜의 종북몰이와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수시로 벌어질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진보당 정당해산 심판 시기는 지방선거 전으로 예정돼 있다. 한편 박근혜의 약점인 부정선거 문제는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이고 언제든 다시 타오를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이런 분석과 전망을 바탕으로 우리는 올해 전술적 방향을 잡을 수 있다. 이런 전술적 방향을 올해 구체적 계급 역관계와 상황의 변화, 대중 정서 등을 판단하면서 시의적절하게 구체적 전술로 적용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전술적 유연성을 ‘과정으로서의 전술’이라고 매도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주로 구체적 상황 변화와 무관하게 1년 내내 산업현장 투쟁만 강조하는 극좌파들의 접근 방식이다.

 

그런데 이처럼 전술은 구체적 정세의 변화와 무엇보다 대중의 정서를 민감하게 포착·고려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금기·성역없는 토론이 이루어져야 발전할 수 있다. 이것이 조금이라도 위축되거나 가로막혀서는 안 된다. 특히 해당 부문에서 기층의 대중과 접촉하면서 대화하는 사람들의 판단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각 부문과 현장에서 기층의 대중과 접촉하며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있는 활동가들과의 접촉·토론 노력이 중요하다.

 

전술에서 어떤 상황에나 맞는 답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전술에서는 크게 두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 하나는 전술적 경직성이다. 보통 ‘전술은 24시간 안에도 바뀔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전술은 구체적 상황의 변화에 따라 언제든지 유연하게 변화될 수 있어야 한다.[각주:19]

 

또 하나는 과도한 일반화이다. 즉 전교조에서 성공했으니까, 철도에서 성공했으니까 하면서 그것을 다른 곳에 억지로 적용하려 해서는 안 된다. 그 점에서 구체적 상황과 상관없이 학생 투쟁 때는 ‘점거’, 노동자 투쟁 때는 ‘점거파업’, ‘전면파업’, ‘연대파업’을 일반적으로 반복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에 대한 전술적 관점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일단 두 가지 투쟁을 잘 구분해야 한다. 그것은 요구의 문제도 아니고 규모의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전국적이냐 부문적이냐의 문제로 봐야 한다. 즉 똑같은 8시간 노동제 요구라도 그것을 한 작업장이나 산업에서 요구하고 싸운다면 아직 그것은 부문적(경제) 투쟁이다. 그러나 8시간 노동제를 내걸고 노동조합 연맹이 정부를 상대로 요구하며 싸운다면 그것은 전국적(정치) 투쟁으로 봐야 한다.[각주:20]

 

그렇게 볼 때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은 둘 다 중요하지만 정치 투쟁이 좀 더 일반화된, 즉 발전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가지 투쟁을 대립/분리시키지 않고 항상 결합/연결시키려고 해야 한다. 예컨대 우리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에 맞서며 자신들의 근로조건을 지키려는 투쟁·요구를, 공공서비스를 지키려는 투쟁·요구와 연결시키길 바래야 한다. 더 나아가 이 투쟁이 민주노총의 박근혜 퇴진을 위한 투쟁과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정치적 노동조합 운동


민주노총이 이미 박근혜 퇴진을 구호로 채택하고 관료적 파업이라도 하고 있는 마당에 우리가, 그냥 각자 요구로 시기만 집중해서 싸워도 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뒤처지는 것이 될 것이다. 사실 민주노총의 박근혜 퇴진 구호도 채택도 다소 뒤늦은 감이 있었다.

 

부정선거의 몸통이 박근혜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광장의 시민들의 정서는 이미 분명해져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창신 신부, 장하나 의원 등이 이미 박근혜 퇴진을 말했었고, 민주노총은 초유의 총연맹 침탈이 있고서야 이 구호를 채택했다.

 

민주노총의 박근혜 퇴진 투쟁은 조직 노동자들이 대정부 정치투쟁의 주도권을 쥐고 앞장선다는 점에서도 의미있다. 그 점에서 우리는 국정원 시국회의가 아직도 박근혜 퇴진 구호를 주저하는 것에 대해서도 비판해야 한다.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에서도 우리는 보건의료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위한 요구와 대중의 의료 공공성에 대한 요구를 결합시키며 대정부 정치투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해야 한다. 따라서 단지 보건의료노조만이 아니라 의료연대노조, 사회보험노조 등 보건의료 관련 모든 노동자 조직뿐 아니라 정당과 사회단체들의 단결과 연대를 주장해야 한다. 정치투쟁답게 전국적 전계급적 방식의 파업, 거리시위, 행진 등을 발전시키자고 주장해야 한다.

 

반면 앞서 의료민영화의 디딤돌을 놓은 민주당은 이것을 지방선거에서 생색내기식으로만 이용하려 하는 듯하다. 의사협회는 계급적 기반의 한계 때문에 수가 인상 등을 받으며 타협하려 한다. 그런데 우려스러운 것은 보건의료노조 지도부가 민주당, 의사협회 등과 무원칙한 동맹을 맺으며 수가 인상을 받아들이고 있는 부분이다.[각주:21]

 

이미 진주의료원 투쟁 때도 보건의료노조 지도부는 자발적 구조조정과 양보안을 내놓으며 투쟁에 찬물을 끼얹은 바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점을 경고·비판하며 투쟁의 전술을 제시해야 한다.

 

결국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의 관점이 중요한 것이다. 신디컬리스트와 달리, 사회주의자는 노동조합 안에서 제국주의, 여성 차별과 동성애자 차별같은 쟁점들을 제기해야 한다. 중요한 정치 투쟁이 벌어질 때 거기에 참여해 될 수 있는 대로 그 투쟁이 체제와 국가에 맞서는 강력한 도전으로 발전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노동조합의 쟁점을 계급 전체의 관점에서 다뤄야 하고 더 폭넓은 정치와 연관시켜야 한다.[각주:22]

 

이것이 바로 정치적 노동조합 운동의 관점이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우리는 노동조합 투쟁만이 아니라 밀양희망버스 등 억압과 차별에 맞서는 투쟁에 대한 연대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한편, 박근혜 정부의 핵심 무기인 종북몰이에 맞서는 것도 올해 변혁 운동가들의 전술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야 한다. 이런 종북몰이에 타협하는 세력을 비판하며 진보의 단결을 촉구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내란음모 사건이 조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폭로하며 국정원의 약점을 공략해야 한다.

 

‘종북’은 핑계이며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 대한 공격이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2012년 경선부정 사태 이후 진보당에 덮씌워진 부정의 누명에 대해서도 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각주:23] 진보당과 자주파에 대한 우리의 전술은 그들이 노동운동의 주요한 일부라는 점을 분명히 하며 수립돼야 한다.

 

특히 자주파는 조직력이 탄탄하고 기층 기반도 강력하지만 동시에 북한에 대한 혼란이라는 정치적 약점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우리가 그것을 파고들 수 있다. 그러려면 그들과 공동의 적에 맞서서 함께 투쟁하면서 차이점에 대해 정치적으로 비판하고 토론한다는 점이 분명해야 한다.

 

일각에서 진보당을 배제한 진보정치연합을 추구하는 것이 부적절한 것도 이 때문이다. 참여계가 일부인 정의당은 포함하면서 진보당은 배제한 연합체 건설은 무엇보다 진보의 분열을 야기한다는 점에서 순탄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아 보인다. 더구나 종북 마녀사냥이 여전한 상황에서 말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얼마전 민주노총 중집에서도 이 방안은 부결됐고, 민주노총 중집은 ‘진보당을 포함한 진보 연합을 재추진하라’고 주문한 상태이다.[각주:24] 민주노총은 지방선거에서도 노동당, 진보당, 정의당, 녹색당, 노동계급정당추진위 등의 후보 단일화를 주문하는 선거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민주당과 안철수 신당에 대한 태도는 문제거리로 남아 있어 보인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행동강령적 요구를 중심으로 공동전선적 방식을 통해서 진보정치연합을 하고 선거와 투쟁에 대응해야 한다는 전술을 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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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칼 마르크스, ‘포이에르바하에 관한 테제 11’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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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그래서 레닌은 “모든 이론은 회색이며 영원한 것은 저 푸르른 생명의 나무”라는 괴테의 말을 좋아했다. [본문으로]
  20.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특정 공장이나 심지어 특정 업종에서 파업 등을 통해 개별 자본가에게 노동시간 단축을 강요하려는 노력은 순전히 경제적인 운동이다. 반면에, 법률 등을 통해 8시간 노동을 강요하려는 운동은 정치적인 운동이다.” [본문으로]
  21. 최근 의사협회 지도부의 배신적 타협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보건의료노조 지도부의 이런 문제점에 대한 지적은 별로 없다. [본문으로]
  22. 일부 약점에도 불구하고 레닌의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의 관점에서 가장 참고할 만하다. [본문으로]
  23. 이에 대해서는 내가 쓴 또 다른 글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돌아보자>를 참고하라. [본문으로]
  24. <레디앙> http://www.redian.org/archive/66052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