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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종북몰이와 통합진보당, 그리고 계급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4. 3.

무엇이 진실이고 정의인지 돌아보자

 

전지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이 국정원의 조작과 날조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나면서 박근혜 정권은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정원이 간첩을 조작해 내고, 문제가 불거지자 이를 은폐하기 위해 또 다른 조작을 하고, 외국 공문서까지 조작한 행태는 정말 기가막힐 정도다. 국정원은 지방선거에서 ‘종북’ 공세를 펴기 위해 이런 짓거리를 했을 것이다.

 

이 같은 ‘종북몰이’는 박근혜 정권의 가장 핵심적인 통치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한겨레> 박창식 논설위원도 이 점을 지적했다. “종북 여론몰이를 강력하게 정교하게 꾸준하게 펼친 것이 박근혜 정부가 기반을 유지해온 으뜸 힘이라고 본다.”

사실 박근혜 정권은 강력하지만은 않다. 지난해 국정원 게이트는 우파의 위기와 균열을 보여 줬다. 무엇보다 박근혜 집권의 정통성이 의심됐다. 지배계급 분열은 채동욱 찍어내기와 윤석열 항명 사태로 이어지다가 수습된 바 있다.


박근혜는 선거부정 문제를 덮기 위해 NLL 대화록 공개 등 온갖 물타기를 했었다. 가장 강력한 물타기 카드는 ‘내란음모’ 마녀사냥이었다.

박근혜의 전략은 분명했다. 진보의 분열과 위기를 이용한 종북 몰이로 반박근혜 세력을 위축시키려는 거였다. 우파를 결집해서 위기를 벗어나고 다가오는 선거를 대비하려는 거였다. 무엇보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한 길닦기를 하고자 했다.


지리멸렬한 민주당은 박근혜의 전략이 관철되는 데 최상의 조력자 노릇을 했다. 민주당은 찬물을 끼얹고 뒤통수를 치면서 거듭해서 반박근혜 세력을 힘 빠지게 만들었다. 박근혜가 ‘대선불복하려는 거냐’라고 호통치면 소스라치며 지레 꼬리를 내리곤 했다.

 

그럼에도 대선 선거부정 의혹의 불씨는 쉽게 꺼지지 않았다. 그러자 박근혜는 내친 김에 헌정 사상 초유의 폭거라는 진보당 해산청구까지 치달았다. 정부는 진보당 해산 청구와 함께 정당 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도 냈다. 그 후 진보당 관련자들에 대한 압수수색과 소환조사, 구속은 수시로 이어져 왔다.


이처럼 종북몰이의 핵심 고리에는 명백히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이 있다. 지난 연말에 인터넷에서 유행한 ‘종북 셀프 테스트’에서도 첫 번째 질문은 “당신은 통합진보당 당원입니까?”였다. 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내란음모’를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무려 12년형을 선고받았다. 진보당 정당해산 심판의 결과도 매우 우려스러운 상황이다.

 

만약 진보당이 강제 해산당한다면 그것이 한국 사회와 노동운동에 끼칠 후폭풍과 해악은 매우 심각할 것이다. 노동운동 속에 두려움과 자괴감, 무기력이 퍼질 수 있고, 급진적 주장을 할 때 스스로 눈치보게 될 수 있다. 진보당뿐만 아니라 정부와 체제에 비판적인 모든 세력들의 눈과 입이 가려지고 손과 발이 묶이는 사태가 도래할 수 있다.


왜 사태는 이렇게까지 발전해 온 것인가. 나의 문제의식과 고민은 여기서 출발했다. 나는 이것을 단지 강성우파 정부로서 박근혜의 무지막지한 공격의 결과로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보진영이 이런 공격에 힘을 모아 제대로 맞서지 못한 것도 돌아봐야 한다.

따라서 나는 이 글에서 이에 대한 규명과 분석을 하고자 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갑갑한 상황을 풀어나가며 진보의 단결된 대응을 건설할 실마리를 찾고자 한다.

 

박근혜의 핵심병기 - 종북몰이

 

사실 ‘내란음모 마녀사냥’은 처음부터 의도가 뻔했다. 진보당 이석기 의원이 소위 ‘RO' 조직원들에게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고 지시하고, “준비한 총기로 국내 주요시설에 대한 타격 준비 내용까지 지시”했다는 게 공안당국의 주장이었다.


이것이 선거 부정 문제로 코너로 몰리던 박근혜와 국정원의 국면전환용이고, 노동운동을 위축·분열시키려는 시도라는 것은 명백했다. 박근혜는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 부정선거 의혹과 각종 공약 파기와 먹튀 등을 묻어 버렸다. 오늘은 친북좌파가 사냥감이 됐지만 내일은 더 넓은 세력에게 마녀사냥이 확대될 것도 분명했다.


그러나 진보진영의 대응은 충분치 못했다. 특히 8월 29일에 ‘이석기 녹취록’이 언론에 공개되면서 혼란이 생겼다. 진보진영의 일부는 ‘시대착오적인 망상에 사로잡힌 진보당과 선 긋고 거리두기’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압수수색당했던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은 진보 단체들마저 “‘조작된 내란음모 사건’이라는 문구를 쓸 수 없다”고 나왔던 것을 “무엇보다 마음이 아팠던” 일로 기억한다. (2014.2.12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 인권침해 보고회’)


심지어 일부 진보 단체는 우파와 함께 진보당에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 절정은 정의당이 국회에서 새누리당, 민주당과 손 잡고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킨 행위였다. 일부 진보 인사들은 ‘말 바꾸거나 거짓말하지 말고 사실을 솔직히 말해라’고 진보당을 다그치기도 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의 태도도 별로 다르지 않았다.


 

당시 상황은 정말 끔찍했다. 진보당 당사에 우익들이 난입해 폭력·난동을 벌였고, 길거리에서 이정희·이석기 허수아비 화형식과 전기톱으로 목 자르기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하지만, 국정원이 흘린 녹취록의 신빙성은 처음부터 매우 의심스러웠다. 그리고 이후 ‘내란음모’ 재판 과정에서 조작 의심은 사실로 드러났다. 녹취록에서 무려 450여 곳, 841 단어, 1천113자가 조작·왜곡됐다는 게 드러난 것이다.

국정원의 조작은 이런 식이었다. “전쟁 반대 투쟁을 호소하고”는 “전쟁에 관한 주제를 호소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하자”는 “전쟁을 준비하자”... 

따라서 진보진영은 왜곡·조작에 바탕한 이 엉터리 마녀사냥에 처음부터 함께 힘을 모아서 맞서야 했다. 물론 자신들과 진보당의 차이점이나 이견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탄압이야말로 이런 이견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지 못하게 한다는 점을 분명히 강조해야 했다.

 

하지만 진보진영의 상당수는 팔짱끼고 쳐다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식의 태도를 취하거나 별로 돕고 싶지 않다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진보당이 또 진보진영에 흙탕물을 튀기고 있다’며 원망하는 분위기도 나타났다.

이것은 단지 탄압에 낳은 위축 효과로만 볼 수는 없다. 이것은 진보당에 대한 진보진영 다수의 오랜 부정적 태도와 관련 있다. 여기에는 물론 진보당을 주도하는 자주파의 패권적이고 잘못된 행태가 영향을 끼쳤다. 많은 진보진영의 활동가들이 경험 속에서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을 직접 겪고 접해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 진보진영의 다수파로서 훨씬 더 두드러지기는 했지만, 자주파만 항상 잘못된 태도를 보인다고는 볼 수 없다. 또 자주파 동지들이 올바른 태도로 운동에 기여한 경우도 많을 것이다.
따라서 진보당이 진보진영 내에서도 일종의 따돌림을 당하는 듯한 분위기를 해명하려면 더 많은 것들을 살펴봐야 한다. 나는 그 중에 중요한 한 고리가 2012년 진보당 경선부정 사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서 내가 주되게 다루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진보 분열과 반목의 분기점 - 경선부정 사태


 

‘진보당 당권파가 의원 자리에 눈이 멀어 체계적·조직적으로 부정을 저지르고, 이를 덮어버리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 동지를 향해 조직적 폭력까지 자행했다’는 게 당시 진보진영의 대체적 인식이었다.

이것은 정말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고, 진보의 대의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따라서 진보진영의 다수가 진보당 당권파에 대해 큰 환멸감을 느끼고 부정적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은 극히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앞서 참여당과의 통합 과정에서 보인 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주의적 태도, 관악을에서 이정희 대표와 연관된 여론조작 시도, 청년비례 경선에서 부정 시비 등을 보아 온 사람들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그럴만도 했다.

그러나 지난 2년 동안 이 사태에 대해 새로운 사실들이 계속 드러나 왔다.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이 사건을 기억하던 나는 여기에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진실은 다른 곳에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사태의 출발점은 오옥만 후보와 윤금순 후보의 갈등에서 비롯됐다. 당시 오옥만은 온라인 투표에서 앞섰지만 현장 투표에서 역전당해 윤금순에게 순위 1번을 주고 9번으로 밀렸다. 국회의원직을 얻지 못할 처지가 된 것이다.

그러자 오옥만은 윤금순 측의 현장 투표에서 부정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다른 후보들에 부정 의혹도 제기되기 시작했다. 진보당 지도부는 일단 총선을 치른 후 진상조사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부정이 확인되면 윤금순 후보를 사퇴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총선 후,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 부정 의혹을 받고 있던 쪽의 사람들로 진상조사위원회(이하 진상조사위)가 구성된 것이다. 이렇게 구성된 진상조사위는 막상 구체적으로 누가, 어떻게, 어떤 부정을 저질렀는지 밝혀내지 않았다.
대신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총체적 부정·부실이니 경쟁명부 후보는 모두 사퇴하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상 당권파인 이석기·김재연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것을 뜻했다. 곧 진상조사위원장인 조준호 진보당 공동대표는 당권파를 겨냥한 폭로에 나섰다.


‘소스코드가 조작됐다, 데이터를 수정한 것 같다, 누군가 서버로 접근한 직후 이석기 득표가 수직 상승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똑같거나 2000000으로 된 유령 당원들이 있다, 투표 용지가 뭉텅이로 붙어있었다, 당원 수십 명의 거주지가 한 중국집으로 돼 있다...’

 

그런데 당권파에 대한 이런 공세는 ‘종북’ 색깔론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특히 참여당 출신의 유시민은 “‘당신 당은 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민노당에 지하지도부가 있었던 게 아닌지 의문”이라며 군불을 지폈다.

조중동은 물론 신이 나서 총공세에 나서며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조선일보>는 사건 발생 이후 3주 동안 단 이틀을 제외하고 매일 진보당 관련 기사를 1면에 실었다.


<한겨레>나 <경향> 등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부정의 진상은 잘 모르겠지만, 종북 이미지 때문에 야권연대에 도움이 안 되는 진보당 당권파는 이제 빠져줘야 한다’는 거였다. 진보당 안팎의 진보 인사들도 이런 분위기에 힘을 실어줬다. 그래서 거의 ‘범국민’적인 진보당 당권파 도려내기 분위기가 형성됐다. 
 

당권파를 편드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진보당 당권파는 이미 여론재판에서 부정의 주범으로 낙인찍혔다. 중앙위 폭력 사태는 여기에 완전히 못을 박았다. 당권파에 대한 전사회적 혐오감은 극대화됐다.


반면 유시민과 심상정이 주도하는 진보당 신당권파는 이런 당권파를 견제할 주체로 부각됐다. 검찰은 거리낌없이 진보당 서버와 당원 명부를 탈취해 갔다. 이어서 신당권파는 사퇴를 거부하는 이석기, 김재연 의원에 대한 제명과 출당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당시 두 사람에 대한 제거는 무엇보다 우파의 요구였다. 민주당도 두 사람을 진보당이 스스로 쳐내라고 강력 주문했다. 이 속에서 진보당 신당권파는 ‘야권연대의 걸림돌’이라며 두 의원을 솎아내려 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걸림돌에 걸리고 만다. 의원 총회에서 이석기·김재연 제명안이 한 표 차이로 부결된 것이다. 이미 한 지붕 두 가족이던 진보당은 그 후 급속하게 쪼개졌다.

그 후에도 우파는 종북몰이를 통해 우파를 결집하고 진보를 위축·분열시키려 했다. 민주당은 ‘종북’과 선을 그으며 우파에 굴복했다. 우파는 정국의 주도권을 쥐고 대선까지 끌고 갔다. 결국 위기와 분열 속에 지난 대선에서 진보의 독자적 목소리는 사라졌다. 16대, 17대 대선과 달리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매우 찝찝한 기분으로 문재인에게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드러난 진실

 

이 모든 사태는 진보당 당권파가 체계적·조직적 부정을 저질렀다는 것을 기정사실로 해서 전개됐다. 그러나 지난 2년간 밝혀진 사실들은 이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먼저 진보당 1차 진상조사위는 ‘형상관리프로그램이 없어서 부정의 구체적 내용과 책임 소재를 밝히기 어렵다’고 했었다. ‘당권파가 투표 시스템에 형상관리프로그램을 두지 않은 것 자체가 부정을 저지르고 밝힐 수도 없게 하려는 의도’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투표 시스템에 누가 접속해서 무엇을 했는지 모두 담고 있는 것은 ‘로그 기록’이었다. 1차 진상조사위가 이것을 확인하지 않은 것은 교통 사고에서 블랙박스를 열어보지 않은 격이었다.

 

반면 2차 진상조사위는 로그기록을 확인했다. 2차 진상조사위는 그 임무를 외부 전문가인 한양대 컴퓨터공학과 김인성 교수의 팀에 맡겼다. 김인성 교수는 ‘디지털포렌식’(컴퓨터나 온라인 상에 남아있는 증거·흔적을 찾아내는 기술이며 수사기법) 전문가였다.


김인성 교수팀은 로그기록 확인을 통해 그동안 제기된 많은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밝혀냈다. “소스 코드 조작을 통한 투표값 조작, 특정 후보의 득표값 고의 누락, 데이터 베이스 접근을 통한 투표 결과 조작 등 … 모든 의혹은 투표값 열람을 통해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김인성, <통합진보당 비례대표경선 온라인 조사 보고서>)

김인성 교수는 ‘서버를 열어 본 것은 선관위 관련자였고 투표 시스템의 정상적 운영을 위해 시스템 오류를 해결한 것 외에 다른 조작을 가한 흔적은 없다’고 밝혔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똑같거나 2000000으로 된 유령당원 의혹, 투표 용지가 뭉텅이로 붙어있던 현상, 당원 수십 명의 거주지가 한 중국집으로 돼 있던 것 등도 부당한 의혹 제기인 것이 밝혀졌다.

가족 당원은 주민등록번호 뒷자리 일부가 같을 수밖에 없다. 주민등록을 안한 해외 당원에게 임시로 2000000을 부여했던 것이다. 2차 진상조사위의 현장 실험에서도 실제로 투표 용지가 다시 붙었다. 철거대책위의 집단 가입으로 거주지가 같았던 것이다 등.


결국 총 투표의 87퍼센트를 차지한 온라인 투표에서 ‘당권파의 조직적·체계적 부정’은 없었다. 반면 김인성 교수는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발견을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로그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었고 그것을 본 저희들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김인성, ‘통합진보당 재선거 사태에 대하여’, 2012.6.28.)

 

참여계 오옥만 후보가 온라인 투표에서 벌인 체계적·조직적 부정을 발견한 것이다. 오목만 측은 콜센터와 대포폰까지 동원해서 부정을 저질렀다. 부정은 공식 투표소도 아닌 제주도에 있는 고영삼의 건설업체 사무실에서 벌어졌다. 여기서 선관위 관리자 아이디를 도용해 미투표자 조회를 수천 번 실시하고, 밝혀진 것만 수백 건의 대리 투표를 한 것이다.


이것은 큰 후폭풍을 낳을 수 있었다. ‘부정의 소굴’로 묘사된 당권파가 아니라, ‘부정 척결의 주체’로 보여지던 신당권파의 참여계가 오히려 문제였으니 말이다. 오옥만은 ‘시민주권모임’ 운영위원이자 ‘노무현재단’ 기획위원으로 유시민의 측근이었다. 심지어 고영삼은 경선부정 1차 진상조사위 위원이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2차 진상조사위는 김인성 교수의 이 ‘온라인 투표 시스템 분석 보고서’를 폐기해 버렸다. 곧 ‘김인성도 경기동부연합이다’는 황당한 얘기가 나돌았다.

진상 조사가 아니라 진상을 은폐한 것이다. 이 폐기를 주도한 사람은 2차 진상조사위 간사이던 참여계 이정훈이었다. 이정훈은 당내경선 당시 중앙당 조직국장이었다. 나중에 이정훈은 검찰 수사에서 오옥만의 부정에 연루된 게 드러나 구속됐다.

안타깝게도 김인성 교수가 밝혀낸 진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 시사평론가 유창선은 이렇게 논평했다.


“[진보당] 혁신비대위, 그리고 대한민국의 언론들[은] … 그렇게 경선부정의 실상에 목소리를 높이다가, 막상 그 경악할 증거가 발견되었다니 애써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 침묵하거나 동문서답하고 있다. … 진실은 이제 자신들이 가려는 길을 거추장스럽게 만드는 장애물에 불과할지 모른다.”

(유창선의 페이스북, 2012.7.1. 유창선 역시 ‘경기동부’가 아니다. 그는 종편에도 가끔 출연하며 민주당 좌파 정도의 포지션이다.)

 

검찰도 만들어내지 못한 꼬투리

 

이제 부정선거 논란의 칼자루는 검찰로 넘어갔다. 검찰이 탈취해 간 서버와 당원명부 속에는 13년 동안 입·탈당한 각급 노조와 시민단체 소속 20만 명의 기록이 담겨있었다. ‘앞으로 10년간 공안기관의 밥벌이는 해결됐다’는 말이 나올 만 했다.


게다가 검찰이 가져 간 서버에는 당내경선에서 당원들 각자가 누구에게 투표했는지까지 담겨있었다. 신당권파가 당권파의 부정을 입증하기 위해 당원 개개인의 투표값까지 열어봤고 이것을 검찰이 탈취해 간 것이다.

 

검찰은 당연히 당권파의 부정을 잡아내기 위해 먼지털이식 수사를 했다. 전국 14개 지방검찰청 공안부 검사가 총동원돼서 반년 동안 수만 명을 수사 대상으로 삼고 무려 1천7백35명을 소환 조사했다.(<경향신문> 2013.3.20.) 검찰은 당원들의 개인 정보, 휴대폰 사용기록, 문자 메시지까지 다 들여다봤다.


그러나 검찰도 소스코드 조작, 서버 접근과 데이터·투표값 조작 등을 찾아내지 못했다. 다만 오옥만 등이 저지른 조직적 부정은 검찰도 알아냈다. 결국 2012년 연말 검찰은 20명을 구속 기소하고 442명을 불구속 기소하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구속 기소자는 오옥만, 고영삼, 이정훈 등 대부분 콜센타·대포폰까지 동원해 수백 건의 대리투표를 한 참여계였다. 이들은 부정 의혹을 앞장서 제기했을 뿐 아니라 진상조사위원 노릇까지 했었다. 반면 부정 의혹 때문에 제명과 출당까지 당할뻔한 이석기·김재연은 아무 혐의도 드러나지 않았고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물론 불구속 기소 442명 중에는 당권파 당원들도 많았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부모, 배우자, 친구, 동료 등의 부탁을 받아 온라인 투표를 대신해 준 혐의였다. 이것은 기소 자체가 무리였다. ‘강도를 저질렀다’고 해놓고 증거가 없자, ‘그래도 이 사람들이 무단 횡단은 했다’고 우기는 꼴이었다.

 

이렇게 되자 이제 개혁·진보 언론 내에서도 다른 목소리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원희복 선임기자는 뒤늦게 개인적으로 사과했다. “사태가 여기까지 이른데 우리 언론의 책임이 큽니다. 분위기에 매몰돼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 바빴지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사과드립니다.”(<경향신문> 온라인, 2013.3.20.)


‘강도범은 아니었지만 무단횡단범이기는 하다’는 검찰의 기소도 지난해 연말에 빛이 바래고 말았다. 서울중앙지법이 이 부분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린 것이다.

서울중앙지법은 온라인 투표시스템 전문가, 진보당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자, 진보당 선관위 관계자 등을 증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그리고 서울지역에서 불구속 기소된 47명 전원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판결 요지는 다음과 같았다.

 

“통합진보당 자체조사 및 검찰의 수사 결과로도 인터넷 투표 시스템 자체에 의한 투표결과 조작 등은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5형사부 판결문 2013고합274’ 25쪽. 이 재판에 1차 진상조사위를 주도한 참여계 박무가 직접 증인으로 나와 ‘투표값을 확인했지만 부정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인터넷 미숙이나 시간 부족 등 때문에 가족·친척·동료 한두 명의 투표를 대신해 준 것은 도의적으로는 몰라도 법적으로 무죄다.’

(“가족·친척·동료 등 일정한 신뢰관계가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위임에 의해 이뤄지는 통상적인 수준의 대리투표는 … 선거제도의 본질적 기능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같은 판결문 20쪽)


한편, 이 판결에서 많은 사람들이 간과한 측면이 있다. 재판부는 ‘투표 의사를 위임받지도 않고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진행한 대리투표(“선거권자의 의사를 왜곡하는 상당한 규모의 조직적 대리투표”, “위임받은 적이 없음에도 위임받은 것처럼 속여서 투표”. 같은 판결문)는 처벌할 수도 있다’고 했다.


즉 오옥만 등의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후 대법원도 이 부분을 유죄로 판결했다. 물론 언론은 이것을 마치 진보당 당권파가 결국 유죄를 받은 것처럼 보도했다.

결국 진보당 당권파가 굴레처럼 쓰고 있던 부정선거 의혹은 한참이 지나서야 일부나마 벗겨졌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진실을 모르고 있거나 굳이 알려고 하지 않고 있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당권파가 뭔가 부정을 했을 것’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래서 당권파는 여전히 ‘부정’의 낙인을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폭력’ 문제는 남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부정을 저지른 자들이 그것을 덮고 책임지지 않기 위해 폭력을 저질렀다’는 인식은 사실이 아니었다. 앞서 살펴봤듯이 ‘부정’의 진실은 사뭇 달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폭력은 명백히 진보당 당권파의 잘못이었고 옹호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기만 했다.

 

재앙의 뿌리 - 무원칙한 묻지마 야권연대

 

지난해 왜 이런 난장판이 벌어졌던가. 역설적이게도 비극은 진보당 당권파가 앞장서 추진한 강령 후퇴와 참여당과의 통합에서 비롯됐다. 특히 이석기 의원 자신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것을 주장했다고 한다.

민주노동자전국회의 김장호 의장은 “참여당과 통합만 하면 원내 20석, 30석도 가능하고 연립정부도 갈 수 있을 거라는 과도한 정세인식과 주관적이고 선거공학적인 판단이 우경화의 시작이었다”고 후회했다.(<레디앙> 2012.8.25.)

 

노동자 진보정당이 계급적 이해관계가 다른 부르주아 정당과도 통합하거나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 있다는 논리가 문제였던 것이다.

참여당과의 통합 직후, 총선 후보 선출을 위한 당내경선을 앞두고 진보당은 ‘당비 한 번만 내면 당권을 주는 규정’을 마련했다. 그리고 무려 3만 5천여 명이 새로 밀려 들어왔다. 명백히 당내경선을 위한 쪽수 늘리기였다. 여기서 부정의 불씨가 마련됐다.

 

계급적 이해관계를 무시한 무원칙한 통합은 곧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권력의 배분방식과 배분내용을 놓고 사사건건 충돌”이 벌어졌다. “어차피 상대방은 도구화됐기 때문에 동지적 문제제기와 결과수용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다.”(김장민, 진보당 당원게시판 2012.8.3.)


이정희 대표 또한 이렇게 돌아본다. “뜻이 맞아서, 잘해보자는 마음으로 뭉치는 게 아니었다. … 저도 그랬고, 그분들도 그랬다. … 욕심, 출세, 야권단일후보만 되면 나도 국회의원이 될 수 있어, 그런 마음들이 확 일어났다. … 그런 마음에 대한 벌이었다고 이제는 생각이 든다.”(<민중의 소리> 2012.11.12.)


총·대선에서 야권연대와 연립정부까지 바라 본 3자 통합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참여계가 기대와 달리 겨우 국회의석 한자리를 얻으면서 비극은 예감됐다. 대의가 아닌 실리를 위한 결합은 실리를 못 챙긴 쪽에서 불만을 낳았다.
화학적 결합은 없었기에, 상호 불신은 극에 달했다. 아마 참여계는 자신들처럼 당권파도 부정을 저질렀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정을 책임지고 무대에서 내려가라고 요구했다. 유시민 등은 당권을 쥐고 대선 대응과 연립정부 구성을 주도하려 했을 것이다.


당권파의 ‘종북성’이 야권연대와 대선 승리에 도움에 안 된다고 보고 있던 자유주의 언론·지식인들이 여기에 가세했다. 진보당 당권파의 패권적 행태에 피해를 입고 상처받아 온 사람들도 굳이 당권파를 방어하려 하지 않았다.


오옥만 측은 스스로 부정을 저질러놓고, 진상조사위에 들어가서 진상을 은폐하며 당권파의 부정으로 사태를 몰아갔다. 어느 순간에는 유시민 등도 진실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진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의 논리는 ‘부정을 누가 얼마나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로 바뀌었다.


이 파국이 노동운동에 끼친 해악은 매우 크다. 사실 진보당의 의석수는 민주노동당 때보다도 늘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당시부터 이 사회 곳곳의 진보당 당원들은 어디가서 진보당을 지지한다거나 당원이라고 말도 못하게 됐다. 죄진 사람처럼 고개를 못 들고 다니게 됐다. 노동자들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졌고 곳곳에서 분열의 골이 깊게 파였다.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의원이 이 사태가 휩쓸고 지나간 현장의 분위기를 잘 표현했다. “현장에 가보면 활동가들 어깨가 바닥까지 쳐져 있다. 조합원들이 후원금 돌려달라, 탈당한다 난리란다. 가족들한테도 쪽 팔린다 한단다.”(김진숙 트위터, 2012.5.5.)

지금 한 쪽에는 여전히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 등을 반성하지 않는 진보당이 있다. 패권적으로 추진된 이 잘못된 전략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응어리가 생겼는데도 말이다.


이석기 의원은 “나는 여전히 대중적 진보정당의 노선은 옳았다고 본다. … 문제는 노선이 아니라 노선을 구현하는 방법”이라고 했다.(<한겨레> 2013.3.22.)

다른 쪽에는 ‘헌법 내 진보’를 말하는 정의당이 있다. 심상정 의원 등이 한때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했던 것은 자주파를 견제하기 위한 시늉일 뿐이었다.


심상정 의원은 참여계와는 함께 하면서 “구당권파[는] … 대중정당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낡은 요소”라고 저주했다.(<프레시안>, 2012.8.17.) 특히 정의당이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을 지지한 것은 진보 분열의 처참한 장면이었다.

 

우파 결집과 종북몰이에 노동운동의 단결로 맞서야

 

요컨대, 진보정당의 위기와 분열은 계속되고 있다. 당장 다가오는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은 사분오열 속에 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다. 이런 공백을 김한길, 안철수같은 기회주의적 정치인들이 낚아채가서 제대로 메꾸지도 못하는 모습은 씁쓸하기만 하다.


진보 분열 과정에서 ‘종북몰이’는 우파의 꽃놀이패였다. 어느 운동이나 집단이든 ‘종북이고 진보당과 관련있다’고 하면 분열·위축 효과가 나타났다. 이제 진보당은 오면 반갑기보다는 부담스럽고 껄끄러운 존재가 됐다.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 한 관계자는 이렇게 말한다.


“같이 모여 공동 대응해야 할 사안에서도 서로 따로 대응하거나 함께 모인다 하더라도 분란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 집회에 통합진보당이 결합하는 걸 경기를 일으키며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내가 통합진보당측에 깃발 같은 거 너무 많이 들고 나오지 말라고 부탁해야 할 정도”

(<레디앙>, 2013.11.7.)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 규탄 대책위’에는 여전히 주요 시민사회단체가 가입하지 않고 있다. 이름을 올린 단체들도 방어 행동에는 소극적이다. 이 대책위가 방어 집회를 열어도 참가자는 거의 진보당 당원들뿐이다. 물론 진보당에 대한 ‘종북몰이’는 “과거 안보 위협과 공포의 대상이던 북한이, 체제 경쟁에서 뒤처져 업신여김의 대상으로 추락한 현실에 터잡고 있다.”

(박창식 <한겨레> 논설위원)


 

이처럼 거부와 혐오의 대상이 된 북한 체제와 정권에 대한 진보당 지도자들의 잘못된 태도는 문제가 있다. 북한 체제는 남한 체제와 마찬가지로 억압·착취 체제일뿐이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북한 체제의 지배계급과 남한에서 북한 정권에 우호적인 투사들을 구분해야 한다. 북한의 스탈린주의 관료들은 억압·착취를 행하는 장본인인 반면, 남한의 친북 좌파 활동가들은 억압·착취에 맞서 싸워 온 노동운동의 중요한 일부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종북몰이에서 진보당을 분명히 방어하고, 박근혜에 맞선 공동 투쟁 속에서 협력하려고 해야 한다. 진보당에 대한 이견은 그런 연대와 투쟁 속에서 비판하고 토론하려고 해야 한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조작한 국정원이 내란음모 사건도 조작한 것이라는 진실을 분명히 말해야 한다. 이호중 교수도 최근 “법학자의 양심을 걸고 여러분들에게 자신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 사건은] 조작하고 날조한 사건입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나아가 진보당 마녀사냥의 분기점이 된 2012년 경선부정 사태의 진실도 말해야 한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멍에처럼 남아서 진보당 탄압이 이용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진보당 해산 청구의 주요 근거로 버젓이 이 사건을 들먹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나부터도 2012년 당시에는 이 사건의 실체에 대해 많은 잘못된 주장과 분석을 했던 게 사실이다. 당시에는 이 사건의 실체를 알기가 매우 어려운 조건이었던 해도 이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당시 진보당 박영재 당원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면서까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나는 이런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지 못했다. 이런 오류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활동가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그릇된 수치심 때문에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기를 거부”(레닌)하는 것이다.


최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조작된 실체가 밝혀지며 23년만에 무죄 판결을 받은 바 있다. 진보당에 대한 각종 마녀사냥도 결국 나중에는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그러나 그 ‘나중’을 앉아서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마녀사냥의 광풍 속에 몰린 인간의 고통과 상처는 ‘나중에’ 어루만질 수 없다.


한 구속자의 자녀가 쓴 편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아빠와 함께 배드민턴치고 했을 때가 그립네요. 진실은 승리한다! 아빠 사랑해.” 우리가 손 놓고 있어도 진실은 승리할 수 있을까?

다 같이 힘을 모아서 마녀사냥과 공안 탄압을 끝내자. 왜냐하면 이것이 박근혜가 자신의 통치를 관철하는 핵심 고리기 때문이고, ‘진보당 다음에는 우리’라는 말은 공문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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