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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탄핵 승리를 발판삼아, 촛불을 더 크고 뜨겁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2. 9.

전지윤



230만 촛불의 힘이 마침내 중대한 역사적 전진을 이뤄냈다. 탄핵만은 피해보려고 온갖 꼼수를 쓰던 박근혜에게 결정적이고 속 시원한 한방을 먹인 것이다. 아래로부터 투쟁의 압력은 동요하며 타협할 기회만 노리던 야당을 돌아세웠고, 새누리 비박들의 장난질을 차단했을뿐 아니라, 나아가 친박 일부조차 촛불의 힘에 굴복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이 결과를 기뻐하고 자랑스러워 할 충분한 이유와 자격이 있다.

 

탄핵 표결 결과가 발표되는 시간에 나는 지하철역 화장실로 가고 있었다. 한 택배 노동자가 화장실 앞 의자에 앉아서 휴대폰에 집중하고 있는 게 보였다. 배달할 물건을 무릎에 놓은 채 국회 생중계를 보고 계셨다. 내가 결과가 나왔나요?”하고 물었더니 그 분은 이겼어요. 234표로!”하며 나를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시간에 이것을 자신의 승리로 받아들인 이런 사람들이 정말 많았을 것이다


반면, 부패우파를 대변하는 언론인 <조선일보>의 지면에서 요즘 느껴지는 것은 체념과 자포자기의 심정이다. <조선일보>는 요즘 부쩍 다른 생각에 대한 관용과 존중을 설파하고 있다. 탄핵에 맞서던 새누리와 정치인들이 거대한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 삼켜지는 것을 보고 겁먹은 것이다.

 

거대한 촛불이 자신들을 쏘아보며 윽박지르기 시작할까봐 똥줄이 타는 것이다. ‘다른 생각을 마녀사냥하고 강제해산시키던 자들이 이런 말을 하니 우습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우리는 탄핵보다는 즉각 퇴진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박근혜와 새누리는 탄핵조차 피하려 했다. 왜냐면 탄핵은 박근혜에게 불명예일 수밖에 없고, 당장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며, 헌재에서 탄핵안이 처리될 때까지 촛불이 계속될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와 새누리는 탄핵보다는 ‘4월 퇴진과 6월 대선이라는 여야합의를 바랬다. 그래서 일단 시간을 번 다음에 대통령 권한을 이용해 검찰수사와 특검 등을 피해가고, 헬조선을 위한 국정을 수행해 나가면서 우파를 결집하고 반격과 뒤집기를 한다는 계산이었다.

 

따라서 지난주에 촛불 시민들이 이런 꼼수에 분노하며 국회에 탄핵 강행을 요구한 것은 전적으로 정당했다. 촛불은 박근혜를 즉각 퇴진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 탄핵을 원한 것이다. 탄핵은 박근혜가 싫어하고 촛불이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지지받을만 했다.

 

그런데 탄핵이 통과된 지금, 탄핵의 또 다른 측면도 봐야 한다. 그것은 탄핵이 비록 박근혜의 직무는 즉시 정지시키지만 즉각 퇴진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문제를 제도권으로 넘기고 거기서 시간을 끌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조선일보>탄핵은 여러 문제에도 불구하고 사안을 법 절차 위에 올려놓는다는 장점은 있다고 했고, 박근혜도 그 과정을 차분하고 담담하게 갈 각오를 밝힌 것이다.

 

탄핵 과정에서 검사 구실을 하는 게 새누리당 소속 법사위원장 권성동이고, 무엇보다 헌법재판소가 이 문제의 칼자루를 쥐게 된 것도 우려스럽다. 최근에 통합진보당 해산 과정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헌법재판소가 바로 박근혜의 핵심 공범이라는 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우파 결집과 진보 분열이 박근혜 집권과 통치의 핵심 기둥이었으니, 이것은 박근혜 집단의 가장 중요한 범죄중 하나였다. 2012~13년에 그 어마어마한 광풍을 일으킨 종북몰이와 그것이 낳았던 진보진영의 분열과 위축, 상처를 돌아보면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나아가 경선부정 사태의 누명과 내란음모 조작 사건에 대한 진실도 밝혀져야 한다. 당시 마녀사냥에 단호하게 맞서지 못하고 머뭇거리거나 선긋기를 했던 사람들일수록 이 진실을 밝혀내는 데 앞장서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의 단결력은 다시 강화될 수 있다. 이것은 촛불의 중요한 요구중 하나가 돼야 하고, 종복몰이와 진보당 해산을 주도한 국정원, 검찰, 황교안, 헌법재판소 등은 반드시 단죄 받아야 한다. 결국, 탄핵안 가결은 중요한 승리이긴 하지만, 아직 투쟁의 출발점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즉각, 핵심 공범들인 총리 황교안 탄핵과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며 싸워야 한다. 헌법재판소에 탄핵 즉각 처리를 압박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청와대를 향해 명예·질서없는 즉각 퇴진을 요구하며 투쟁 강도를 높여야 한다. 청와대와 헌법재판소를 둘러싸고 천둥같은 촛불의 소리를 들려줘야 한다.

 

탄핵 투표가 있는 날 아침에 <조선일보>는 탄핵이 가결될 경우, 그것이 문제의 시작이 아닌 끝이 돼야만 한다는 사설을 실었다. 그러면서 촛불 시위대즉각 하야로 방향을 돌리거나’, ‘헌재를 위력으로 압박하거나’, ‘황교안 총리 탄핵까지 주장한다면 무책임한 질주가 될 것이라고 경계했다. 저들이 무엇을 두려워하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더 분명해진 것이다.

 

문제는 <조선일보>의 충고를 충실히 따르는 세력이 항상 있다는 것이다. 탄핵안 통과 직후 대통령의 즉각 퇴진이나 황교안 동반퇴진은 요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민주당이 대표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거듭 두길보기하던 제도권 야당들이, 탄핵 이후에도 그럴 거라는 점을 잊지말고 경계·비판해야 한다.

 

야당들은 이런 상황에서마저 최근 재벌·대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상을 포기했고, 세월호 7시간을 탄핵안에서 뺄듯 말듯 오락가락했다. 민주당 우상호는 탄핵 이후 퇴진시점에 대해 여야 협상의 용의가 있다고 했다. 탄핵 통과로 한숨 놓은 채, 이런 야당들을 믿고 주도권을 넘겨줬다가는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876월항쟁의 지도부였던 오충일 목사는 당시 직선제 쟁취 이후 주도권을 정치권에 넘겨버렸던 것을 가장 큰 패착이라고 돌아보며 탄핵이 가결 되더라도...박근혜 대통령이 구속된다 하더라도 방심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새로운 민주사회를 만들 때까지 촛불시민들이 계속 주도권을 쥐고 나아갈 때 촛불의 진정한 승리가 온다는 것이다.

 

지금은, 박근혜를 탄핵시킨 승리의 자신감을 바탕으로 곳곳에서 더욱 더 투쟁을 전진시킬 때다. 박근혜 즉각 퇴진, 새누리 해체, 재벌총수 구속, 김기춘 구속 등을 외치자. 세월호 진상규명, 국정화 폐기, 위안부 합의 폐기, 사드 배치 중단을 요구하자.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 위기 속에 노동의 권리를 외쳐야 하고, 민주노총 2차 파업도 건설돼야 한다.

 

현재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으로 결집한 1600개의 다양한 단체들은 매주 치열하고 민주적인 토론과 긴밀한 협력 속에서 이 거대한 투쟁을 건설해 왔다. 과거의 분열과 위기를 벗어나며 단결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다양성과 차이 속에서도 단결이 가능한 것이다. 이것이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을 포괄하는 더 지속적이고 단단한 연대체로 이어지고, 나아가 양당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도 함께 만들 수 있다면 정말 뜻 깊을 것이다.

 

지금 거리로 쏟아진 230만을 숫자로만 보는 것은 큰 실수이다. 광화문에서 쏟아져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람들은 이미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 시작했고,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게 얼마나 가슴 벅찬 것인지 알게 됐다. 우리가 끝까지 손을 놓지 않는다면 누구도, 무엇도 이것을 막을 순 없다.  




(기사 등록 2016.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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