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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거리가 계속 공을 쥐고 있어야 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12. 2.

- 촛불, 파업, 동맹휴업, 농기계 진격의 4트랙으로 전진하자

 

전지윤




역시 제도권과 국회는 촛불 민심을 담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게 다시 드러났다. 박근혜가 왜 틈만나면 국회로 공을 넘기려고 안간힘을 쓰는지도 말이다. 국회에 자기의 공범인 새누리와 오락가락하는 기회주의 야당이 있다는 것을 잘 아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박근혜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정하면서 비박계가 탄핵 대열에서 이탈하고, 국민의당은 발을 빼면서 지금 박근혜 탄핵안은 상정조차 불투명해졌다. 개똥이든 새똥이든 똥은 똥이듯이, 비박도 결국 새누리였다. 특히 엘시티 비리에 대한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김무성이 말을 바꾸는 이유는 뻔해 보인다.

 

최근 새누리 원내대표 정진석은 새누리당이 반역자고 쓸어버려야 할 대상이냐!”고 민주당을 향해 물었는데 촛불의 대답은 당연하지!”일 수밖에 없다. 지금 박근혜와 새누리 친박, 비박 모두는 신보수연합이나 개헌 등을 통해서 어떻게든 자신들의 부와 특권을 지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사실, 원래 탄핵은 거리 촛불시민들의 공식적, 주된 요구도 아니었다. 물론 기층의 분노를 반영한 측면이 있지만, 탄핵은 주되게 국회와 여야 정당들이 거리의 힘과 주도권을 어떻게든 제도권 내로 가져가기 위한 시도로 등장했다. 정치적 득실 계산은 서로 달랐겠지만, 이를 통해 거리의 힘을 가라앉히고 싶은 것이 이들 모두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하지만 거리촛불은 결코 사그라들지 않았고, 탄핵 시도는 박근혜가 꼼수를 펼칠 틈만 마련해 줬다. 1129일 박근혜의 3차 담화는 그것을 보여 줬다. ‘범죄를 저질러 퇴학당하려는 학생이 학칙을 바꿔서 명예졸업시켜달라는 격이라는 이 담화는 야비한 꼼수의 끝장판을 보여주며 엄청난 분노를 일으켰다.

 

하지만 박근혜의 방조자였던 자유주의 야당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국민의당은 새누리 일부와 손잡고 개헌과 신보수연합을 할지 모른다는 세력답게 금방 태도를 바꿨다. 민주당도 추미애가 김무성과 긴급회동을 해서 거래를 모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실 박근혜 꼼수의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야당이었다. 바로 2주전에 질서있는 명예로운 퇴진을 말하던 게 바로 야당이었다. 탄핵으로 가면서 비박에게 캐스팅보드를 쥐어 준 것도 야당이다. 임기 단축을 위한 원포인트 개헌도 야당에서 나오던 이야기다. 특검 후보로 공안검사 출신의 우병우 친구를 추천해 박근혜가 숨쉴 구멍을 마련해 준 것도 야당이다.


이런 특검이 박근혜 5대 부역세력(검찰, 장차관, 언론, 재벌, 새누리당)들을 제대로 파헤치고 처벌할 수 있을까? 지금의 검찰을 만들다시피 한 김기춘을 건드릴 수 있을까? 벌써 검찰이 안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박근혜도 안도하고 있을게 뻔하다.

 

박근혜 담화 이틀전부터 벌어진 일도 눈여겨 봐야 한다. 27일에 먼저 여야 원로들(민주당, 국민당 고문 등 포함)이 이 꼼수를 제안했고, 28일에 친박이 그걸 받아서 불씨를 살렸고, 29일에 박근혜가 발표한 것이다. 이들 모두는 기존 지배 질서와 권력자의 명예까지 위협하는 급진적인 변화는 바라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영화 <대부>의 명대사를 떠올리게 한다. 거기서 대부는 자신의 자리를 승계할 아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만약 내가 죽은 다음에, 너에게 경쟁 마피아 두목을 만나자며 자리를 주선하는 부하가 있다면 그가 바로 배신자란 것을 명심해라.’

 

결국 내가 지난 글에서 지적한 민주당이 국민당과 타협하고, 국민당이 비박 우파와 타협하고, 비박 우파는 친박 우파와 타협하고, 친박 우파는 박근혜에게 굴종하는 타협과 굴종의 연쇄고리가 여전한 문제인 것이다.(촛불운동의 일부인 정의당이 3당 공조에 발목잡혀 이 고리의 일부가 되거나, 그것이 촛불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덕분에 박근혜는 꼼수를 던져놓고 다시 정상적 업무 수행으로 복귀하기 시작하고 있다. 박근혜는 세월호 막말 목사를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하고, 대구 상가 화재 현장을 방문해 우파 결집 시도에 나섰다. 박정희 생가 화재 사건도 뭔가 이상한 연기와 냄새가 난다.

 

게다가 조중동은 촛불 집회에 종북세력이 보이고 이상한 정치적 구호들이 등장했다며 종북몰이에 불을 붙이기 위해 꿈틀대기 시작했다. 만약 ‘4월 퇴진으로 방향이 굳혀지기 시작하면, 박근혜와 공범자들은 이렇게 번 시간을 이용해 거리촛불의 김을 빼다가 또 어떤 야비하고 악랄한 반격을 시작할지 모른다.

 

유엔대북 제재와 남한 단독의 북한 제재가 발표된 것도 심상치 않다. 남북간의 불안정은 여전하고 북한 관련 뭔가가 터지면, 우파는 언제든지 다시 그걸 고리로 공안정국을 조성하고 종북몰이를 하며 우파 결집과 저항세력 분열·위축을 꾀할 것이다. 박근혜 세력은 이를 통해서 불명예 퇴진과 구속을 피할뿐 아니라 5년 임기를 채우거나 심지어 권력 연장까지도 노리고도 남을 자들이다.

 

따라서 지금의 운동을 대변하고 있는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이 탄핵을 공식 지지하거나 그것에 기대지 않으며 투쟁을 강조해 온 것은 잘한 것이다. 만약 퇴진행동이 탄핵을 지지하고 야당에 기대고 있었다면, 지금쯤 비박이 정세의 열쇠를 쥐고서 우리를 농락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 야당에게 뒤통수까지 맞으며 기운이 꺾였을 수 있다.

 

지난 한달반 동안 급격하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 온 진정한 힘은 바로 거리와 광장에서 나왔다. 억압, 차별, 강탈 당하던 사람들의 단결과 투쟁이야말로 진정한 역사의 동력이고 그들이 바로 사회변혁의 주체라는 점이 다시 확인됐다. 역사는 소수 위인, 지식인, 혁명가가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아래로부터 대중 스스로의 행동이 만들어 온 것이다.

 

질서있는 퇴진이 야당의 입에서 박근혜의 입으로 옮겨진 것마저 이 투쟁의 효과로 볼 수 있다. 지난 1126일 집회에 추위와 악천후에도 역사상 최고인 190만 명이 모인 것은 거리시민의 엄청난 결의와 투지를 보여 줬다. 주변 상인들이 시위대에게 음료와 간식을 제공하는, 역사적 항쟁 때마다 등장하던 장면도 나타났다.

 

더구나 거리촛불은 지난 한달간 거듭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 누군가 말했듯 투쟁하는 대중은 역사를 만들어가면서 스스로도 변화시킨다.’ 구호부터 박근혜 퇴진을 넘어서 나아가고 있다. 새누리당 해체하라, 재벌도 공범이다, 노동개악 원천무효, 성과퇴출제 중단하라 등을 지난주 광화문에서 150만이 같이 외쳤다.

 

농민들이 당한 폭력에 대한 고발도 큰 호응을 얻었고 경찰 폭력 중단하라’, ‘폭력 경찰 물러나라의 구호도 나왔다. 또 촛불이 여성과 소수자들의 상처를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이전 촛불집회에서 여성차별과 혐오에 대한 경계와 자정의 목소리가 이번처럼 커진 적이 없었다. 여전히 부족하지만, 페미니스트 등의 오랜 노력과 투쟁이 거대한 촛불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주말 집회에서 또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북몰이에 균열이 가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광화문 대로 곳곳에 '이석기 석방하라'는 플래카드가 걸리고 집회 대열에서 이석기 석방 대형풍선인형이 같이 행진하는 모습은 한 달 전만해도 상상할 수 없던 것이었다. 북풍과 종북몰이에 불붙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는 자들은 아마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거리 시위와 행진에 그치지 않고 민주노총 파업, 학생 동맹휴업, 농민의 트랙터 진격 등으로 투쟁 수위도 확대돼 왔다. 물론 민주노총 파업은 규모와 위력이 기대보단 크지 않았다. 촛불의 열기가 작업장으로 흘러가고 있지만, 작업장의 울타리를 아직 무너뜨리진 못한 것이다. 하지만 오랜만에 정치파업에 나섰다는 출발로서 나쁘지 않았고, 이제는 한국노총에서도 파업하자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 투쟁은 앞으로도 거리촛불과 제도권(3당 공조)투트랙이나 병행이 아니라, 거리촛불과 대중 투쟁에 분명한 중심을 둔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2008년 촛불항쟁 때 야당 등이 거리의 힘을 이제 제도권으로 수렴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선거를 통한 변화를 추구하자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하는 데 일조한 것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의 투쟁적 방향을 계속 유지하고 더 강화해야 한다. 공은 국회와 제도권이 아니라 여전히 거리에 있어야 하고, 필요한 것은 3당 공조가 아니라, 거리시민과 시민사회·민중운동의 단결과 공조이다.

 

퇴진행동의 조직을 강화하기 위해서 지금 필요한 것도 야당과의 더 긴밀한 소통과 공조가 아니라, 종북몰이가 낳은 갈등과 불신을 넘어선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의 더 긴밀한 단결과 협력이다. 또 여성과 소수자들의 목소리를 더 많이 받아 안으면서 더 넓은 연대를 구축하려는 시도이다. 공동의 투쟁 속에서 서로의 의견과 차이를 존중하면서 토론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보수우파와 자유주의라는 양당체제를 넘어서는 제3 정치세력의 형성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스의 시리자나 스페인의 포데모스도 바로 거리의 반란 속에서 등장해 기성 양당체제에 도전하고 그것을 뒤엎은 바 있다. 시민사회와 민중운동이 힘을 모아 이러한 정치적 대안을 건설해 나가면서 박근혜 이후의 새로운 사회에 대한 구상도 더 구체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거리와 광장의 힘으로 박근혜를 반드시 즉각 퇴진시키자. 박근혜가 추진해 온 헬조선 정책들을 폐기시키자. 박근혜 5대 부역세력(새누리, 재벌, 언론, 내각, 검찰)들을 심판하자. 그리고 이 사회와 우리의 삶, 일터 곳곳에 존재하는 작은 박근혜들에 맞서는 투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DJ DOC와 여혐 논란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도 전에 DJ DOC를 좋아했었다. ‘생각없는 날라리 양아치’ ‘돈벌이 기획성 아이돌취급받던 그들이 사회와 경찰 비판 노래들을 발표할 때 기억이 난다. 그 노래들은 나에게 꽤 위로와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이번 DJ DOC의 노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다


의식적이고 심각한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미스’와 ‘세뇨리타’는 유럽연합에서도 성차별적이라며 사용을 금지한 용어이고, ‘하도 찔러대서 얼굴이 빵빵’, ‘생긴건 꼭 일수’ 등은 여성의 성형 중독을 비웃거나 외모를 비하하는 뜻으로 들리는 게 사실이다. 나아가 DOC가 베이비복스에게 가한 상처와 DOC 멤버가 지독히 성차별적인 케이블방송 등에 출연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차별, 혐오적, 외모비하적 표현없이는 풍자와 해학이 가능하지 않다면 상상력의 부족을 탓할 수밖에 없다. 다수가 문제없다며 재밌어한다는 것도 변명이 되긴 힘들다. 원래 차별은 소수자의 문제아닌가. ‘여혐 딱지가 무서워 말도 함부로 못한다는 것도 과장이다. 진실은 까칠하다는 말을 들을까봐 눈치보며 불편함을 삼키는 여성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박근혜 혐오이지 여혐이 아니라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 그런 식이면 지배자를 공격할 때 어떤 소수자 차별, 혐오 표현도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지금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은 그런 표현으로 박근혜가 아니라 피억압자들이 받을 마음의 상처라는 게 분명하다.

 

이것은 강자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검열하려는 것이 아니라, 약자에 대한 조롱을 제한하려는 것이다. 더구나 박근혜 공격에도 부족한 시기에 뭣이 중한지 모르고 운동을 분열시키는게 아니다. 누구도 상처받지 않는 운동을 건설해 진정으로 운동을 강화, 단결시키려는 것이다.

 

따라서 문제제기는 정당했고, 공연이 임박하고 광고도 대대적으로 된 상황에서도 주최측이 그것을 수용한 것도 잘한 것이다.[다만 취소 과정과 이유를 설명해줬다면 이후 논란이 덜 커지지 않았을까 아쉬움은 있다.] 문제는 그후 문제제기한 쪽을 겨냥해 친박페미등 수많은 비난, 매도, 욕설, 막말이 쏟아졌다는 것이다. 지난 티셔츠 논란 때의 메갈몰이가 일부 떠오를 정도였다.

 

이에 반발하는 과정에서 일부 다소 과하고 감정적인 태도가 나타난 것도 사실로 보인다. 나름의 이견을 제기했다가 여혐이 뭔지도 모르는 한심한 멍청이취급받은 사람들은 서운했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비명이 너무 크고 날카롭다고 하기보단 왜 비명을 지르는지 봐야 한다. 먼저 예민하게 나서는 사람들 덕에 우리는 배울 수 있었고 기준은 높아져 왔다.

 

예컨대 민중의례를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라는 일률적 요구가 장애인에게 상처일 수 있다는 것을 누구 덕에 배울 수 있었던가. 토론을 할수록 다양한 모순, 억압이 교차해 있고 어느 하나만 강조하거나 어느 하나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분명해진다.

 

미국 경찰의 총기살해를 강력 규탄한 흑인가수의 뮤비에서 성차별적 코드를 보고 실망한 기억도 난다. 우리는 투쟁 속에서 서로 토론하며 함께 배워나갈 수 있다. DOC도 여성주의를 배워 자신들의 잘못을 진정성있게 성찰하고 거듭나서 더 강력해진 풍자로 촛불을 돕겠다고 온다면 누가 내치려고 하겠는가.

 

(기사 등록 2016.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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