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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미국에서 민주당 왼쪽 대안에 대한 또 다른 고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6. 5. 12.

전지윤





남수경 동지의 글(샌더스가 아닌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 대안이 필요하다)은 매우 강력하고 설득력있게 샌더스 지지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지적했다. 분명히 샌더스의 주장과 운동은 큰 모순을 안고 있다. ‘1%에 맞서서 99%를 대변하겠다면서 ‘1% 대변정당’(민주당)의 후보가 되려고 하는 게 가장 핵심 모순이다. 특히 공화-민주 양당체제가 독립적인 노동자의 목소리와 정치세력화를 차단해 왔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인 미국의 정치 상황에서 말이다.

 

샌더스의 패색이 짙어가며 선택의 기로에 선 상황에서 남수경 동지의 글은 더욱 시의적절하다. 샌더스는 현재, 자신의 정책을 힐러리 캠프가 반영해 줄 것을 요구하면서 본선에서 힐러리 지지 선언을 하려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샌더스 지지자들이 결국 힐러리 지지 방향으로 옮겨가게 될 위험성을 경고하고 차단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필요한 글이었다.

 

분명, 현 시점에서 샌더스 지지가 아니라 민주당 밖의 제3 대안 필요성을 강조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적으로 올바르다. 미국 민주당은 또 다른 제국주의, 자본주의 대변정당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남수경 동지 글의 다음과 같은 결론적 주장에도 큰 공감이 간다.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이 아닌 독립후보 질 스타인에게 표를 던지는 의미있는 소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표는 민주당에 던졌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한 환상을 깨기 시작한 또 다른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 밖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이들을 조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분명 샌더스 지지 선거 운동은 양날의 칼이었다. 그 운동은 기존 민주당 주류에 대한 반감과 새로운 대안에 대한 열망을 반영했지만, 다른 한편 그런 사람들을 다시 민주당의 틀 안으로 가둬두려는 시도에 도움이 될 여지가 많았다. 심지어 민주당 밖에서 급진화된 청년들을 민주당으로 대거 가입시키며 민주당의 기반을 강화할 수도 있었다.(다만, ‘오픈 프라이머리방식의 경선을 치룬 주에서는 민주당원이 아니어도 샌더스에 표를 던질 수 있었다.)

 

하지만 샌더스 선거 운동이 가진 그런 모순과 양면성 중에서 어느 한가지만을 강조하는 게 타당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 샌더스를 (비판적으로라도) 지지하거나 선거 운동에 결합하는 것은, 양당체제 극복과 제3의 대안 건설이라는 과제를 방기하는 결과를 가져 올 위험이 있다. 또 민주당 안팎에서 벌어지고 있는 급진화를 다시 민주당 지도부의 통제 아래 갖다 바치는 결과로 귀결될 수도 있다.

 

하지만 동전의 또 다른 면은, 남수경 동지도 지적했지만 샌더스 돌풍이 2008년 경제위기 이후 미국에서 전개돼 온 다양한 투쟁들의 정치적 반영이라는 점이다. 그런 투쟁 속에서 급진화된 노동자와 청년 세대가 샌더스 돌풍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샌더스 캠페인의 활동가와 지지자 상당수가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한편,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이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은 것은 그 운동 참가자들의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추진하고 1%를 대변해 온 기존 민주당 주류(와 힐러리)에 대한 기대와 지지가 아니라 불만과 반감 속에서 샌더스를 지지하고 있었다. 사회주의자들의 과제는 먼저 이들과 함께하면서 서로 배우고 정치적 전진을 이루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 분명해 보였고, 남수경 동지도 이에 대해서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과 함께 하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는 그들이 지지하는 민주적 사회주의 후보를 지지하면서 선거 운동에도 함께 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 가장 긴밀하고 효과적으로 그들과 함께 경험하고 행동하면서 다양한 토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것이다.

 

투표는 비록 몇 분이면 끝나는 문제이지만, 선거 운동은 다르다. 샌더스 선본을 구성하고, 주장을 알리고, 사람들과 자금을 모으고, 곳곳을 돌아다니며 조직을 건설하는 일은 지난 반년 넘게 진행돼 온 일이다. 이 과정을 함께하는 사회주의자들은 급진화된 청년들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가 유기적 관계를 맺고 주장을 알릴 수 있는 정치적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물론 그 결과로, 샌더스 선거운동의 활동가와 지지자들이 차츰 민주당 당원이 되고, 샌더스가 내부 경선에서 패배한 후, 그들이 다시 힐러리 지지자가 되고, 사회주의자들은 닭 쫓던 뭐 신세가 되거나 심지어 그들의 뒤를 따라 민주당으로 용해될지 모른다.

 

사회주의자들이 샌더스 선거 운동에 결합하면서, 조직적 독립성을 해체해버리고, 민주당과 샌더스에 대한 비판을 숨기거나 침묵하면서 환상만 유포했다면, 경선 패배 후에도 민주당 안에 머무르며 힐러리에 대한 비판과 제 3대안 건설을 회피한다면, 차악론에 사로잡혀 민주당을 내부에서 변화시키려고 한다면 더욱 더 그렇게 될 가능성이 커질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정과 결과가 과연 필연적이고 정해진 것이었다고 볼 수 있을까하는 게 내 의문이다. 만약,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적 독립성을 잃지 않고, 민주당과 샌더스에 대한 비판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샌더스 선거운동에 적극 개입해서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조직하려 했다면? 경선 패배가 분명해지는 지금, 그런 사회주의자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샌더스는 힐러리가 월가와 1%를 대변한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면 이제 힐러리를 지지할 게 아니라 민주당 밖으로 나가서 다른 좌파들과 손 잡고 99%의 정치혁명을 지속해야 한다.’ 이런 주장은 샌더스 지지자 중에서 샌더스가 낙마해도 힐러리를 지지할 수는 없다는 상당수의 사람들에게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예컨대 유명 영화배우인 수잔 서랜든은 샌더스가 패배하면, 본선에서 차라리 트럼프를 찍을지언정 힐러리는 찍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 반 년간 샌더스 선거 운동에 함께하며 긴밀한 연관을 만들어 온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사람들을 더 왼쪽으로 이끄는 데도, 그래서 의미있는 규모의 이탈을 만들어내는 데도 더 유리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샌더스 캠프 내의 친민주당 세력이나 심지어 샌더스 자신이 이 운동과 참가자들을 결국 민주당으로 흡수시키려는 시도를 비판하고 저항하는 데도 더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런 가능성을 타진해 보는 이유는 정치적 발전이란 누구도 예기치 못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도 미국에서 양당체제 극복과 독립적인 노동자 정당의 출현을 간절히 기대한다. 그런데 그 과정과 경로는 정해져 있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많은 좌파들은 영국에서 보수당-노동당 양당체제의 극복도 노동당 밖의 제3의 대안 건설을 통해 돼야 한다고 믿었고 계속 그것을 시도해 왔다. 하지만 예기치 않게 지난해 제레미 코빈 돌풍이 불었고, 현재 그것은 코빈과 노동당 주류의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나는 이것이 노동당 분당으로 나갈 가능성이 있고 그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의 조직적 표현 문제와도 연결돼 있다. 개혁주의의 정치적 표현이며 노동조합과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 기반한 사회민주주의 정치는 대체로 어느 나라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독립적 정당으로 나타나거나 기성정당에 흡수되거나, 조직적 표현을 찾지 못하고 무정형의 형태로 존재하느냐는 정해져 있지 않다.

 

미국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치는 정당 형태로 존재하지 못하고 민주당에 흡수된 상태로 드러나 왔다. 흑인·여성·노동조합 등의 운동과 조직이 민주당의 일부 기반이 돼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뉴딜 시대와 매카시즘이 남긴 역사적 결과일 것이다. 양당독식을 보장하고 강화하는 선거 제도도 제 3정당의 출현을 가로막아 왔다. 이 상황에서 샌더스 돌풍은 양당체제 극복 시도의 왜곡된 반영으로 볼 수 있다.

 

내 고민은 이런 운동이 제 3정당 건설로 발전해 나갈 가능성을 닫아 둘 필요가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보며 더 적극 개입할 필요가 있지 않았냐는 것이다. 처음부터 민주당 밖에서 왜곡되지 않은 형태로 제 3정당이 등장한다면 가장 좋은 그림이겠지만, 투쟁의 조건과 환경은 좌파가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것이니 말이다.

 

따라서 샌더스 돌풍이 일어나면서 급진화하는 청년들을 불러 모으고, 공화당, 주류언론과 민주당 지도부, 자유주의자들까지 모두 한 목소리로 샌더스를 정신나간 이상주의자로 몰아붙이던 지난 몇 개월 동안에는 샌더스 지지와 선거운동 결합이 더 나은 전술이 아니었을까 싶은 게 내 의문이다. 1%의 집중공격을 받았던 샌더스의 뒤에는 바로 노동자, 청년학생, 실업자, 빈민들, 그들의 열망과 요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열망과 대중적 정서에 공감하고, 거기에 뛰어들어서 배우면서 더 나은 발전을 이루려는 게 전술의 핵심 아닐까. 전술은 사회주의적 원칙에서 곧바로 나오는 게 아니므로 정해진 답이란 있을 수 없고,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다.

 

따라서 샌더스가 진정한 대안이라고 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전술적으로 지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샌더스에 대한 환상이 없이도, 민주당의 내부 개혁 가능성을 지지하지 않으면서도 그런 전술을 택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

 

이런 전술을 정하는 데서 샌더스의 정치가 사회주의적이지도 혁명적이지도 않다거나 집권하더라도 결국 배신할 것이라는 것도 핵심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좌파가 주류 자본가정당들에 맞서 비판적으로 지지해 온 노동당이나 사민당도 마찬가지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 정당들도 진정한 대안은 아니다. 또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 사민당만이 아니라 브라질 노동자당과 남아공 공산당과 심지어 그리스 시리자도 집권 이후 배신을 했다.

 

하지만, 이것이 그 정당들이 초기에 대중의 급진화와 변화의 열망을 반영하며 성장해 나갈 때 전술적 지지를 보내며 개입한 것이 잘못이었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이유는 없을 것이다. 녹색당의 질 스타인도 집권하면 한계를 드러낼 것이 분명하지만 지지할 수 있듯이 말이다. 사회주의자들의 궁극적 목적은 제3당 건설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그들과 손잡고 함께 투쟁하며 서로 배우고 근본적 변혁을 향한 운동과 조직 건설로 나가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스에서 기존 사회당에 대한 실망 속에 시리자가 급성장할 때, 일부 극좌파는 시리자 밖에서 시리자도 결국 배신할 것이므로 사회주의 혁명과 혁명정당 건설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극좌파는 정치적·조직적 독립을 유지하면서도 시리자 건설에 함께 했고, 함께 투쟁하면서 배우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시리자 집권 후 실망한 사람들에게 더 좌파적인 대안을 제시하면서 함께 이탈해 나왔다. 시리자의 한계를 분석하면서 굴복을 예측한 점은 같았지만 선택은 달랐는데, 내가 보기엔 후자가 더 나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미국 현지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고 토론하며 문제의식을 발전시켜 온 남수경 동지의 판단에 기본적인 지지와 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남수경 동지의 이번 글을 보면서 큰 도움과 배움을 얻었다. 이 문제제기가 그 속에서도 남아있는 나의 설익은 의문을 드러내서 더 많은 고민과 토론에 작은 보탬이 되길 바란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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