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샌더스가 아닌 민주당으로부터 독립적 대안이 필요하다

- 미국 대선과 노동계급 운동의 과제


남수경


[미국 대선과 샌더스 돌풍에 대해 좌파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전개돼 왔다. 미국 국제사회주의자조직(ISO)회원이자 법률서비스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UAW/NOLSW)의 조합원으로 활동해 온 남수경 동지가 미국에서 양당체제 극복과 독자적 정치세력화가 핵심적 과제라는 점을 강력하고 설득력있게 제기한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가장 주목을 끄는 것 중의 하나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샌더스 열풍과 그에 대한 소위 밀레니엄 세대의 열렬한 환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당연히 이를 환영한다. 바로 얼마전 까지도 사회주의가 오명이었던 미국에서 오바마케어를 공화당이 사회주의시험이라고 비난하던 걸 기억하나? -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후보에게 열광을 보내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 것이다.

 

변화에 대해 갈망하며 사회주의에 관심을 보이는 (그것이 아무리 왜곡된 형태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사회주의자로서 당연히 반가워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이 민주당 경선 후보로 나선 샌더스를 지지하며 그의 캠페인에 힘을 보태야 할까? 그를 지지하는 것이 미국 노동계급 운동의 전진에 도움이 될까?

 

샌더스 돌풍은 하루 아침에 혜성처럼 등장한 정치인에 대한 열광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계속된 경제 위기는 대다수의 삶을 절망의 나락에 빠뜨리고 빈부 격차와 양극화는 가속되어 왔다. 올해 들어 공식 실업률이 조금 호조되고 있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의 실질 임금은 여전히 낮다.

 

남성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1973년 보다 낮아졌고, 노동자 가정의 전체 임금은 2000년 보다 9퍼센트 떨어졌다. 저축액이 천 달러도 안 되는 가구가 전체의 절반 이상이고 사분의 일은 저축액이 백 달러도 안 된다. 은퇴자금 같은 장기적인 계획은커녕 당장 위급한 상황에 대비할 기본적인 비상금도 없다는 얘기다.

 

유례없이 치솟는 대학 등록금 탓에 보통 대학생들은 평생을 갚아도 갚기 힘든 엄청난 학자금 빚을 지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해도 변변한 직장을 찾기 힘든 젊은이들에게 그들 부모 세대들이 꿈이라도 꿀 수 있었던 아메리카 드림은 신기루일 뿐이다.

 

좌절한 대중의 분노는 2011년 이집트와 아랍의 봄에 고무 받은 위스콘신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투쟁을 시작으로 그 이후 미 전역에서 벌어진 월가 점령 운동, 2012년 시카고 교사들의 파업, 2014년 이후 계속되고 있는 흑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 (Black Lives Matter) 운동, 패스트푸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15달러 최저임금인상 캠페인 등으로 직장과 거리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투쟁들에서 급진화 되고 고무받은 사람들이 선거에서 자신들과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는 샌더스에게 열광을 보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심지어 샌더스는 ‘1%에 반대하는 99%’라는 월가 점령 운동의 구호를 자신의 캠페인에 쓰고 있다). 샌더스 돌풍 (역설적으로 트럼프 돌풍도 마찬가지로)은 경제적 불평등과 불안정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널리 퍼져 있고 그런 대중의 분노를 기존 주류 정치세력들이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한 증거이다.

 

2008년 당시 초선 연방 상원의원이던 오바마는 변화와 희망이라는 슬로건과 함께 기존 워싱턴의 파워 엘리트들과 거리를 둔 새로운정치인으로 변화를 바라는 이들의 마음을 휘어잡았다. 그가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주의와 부시 정권의 전쟁과 친기업 부자정책을 끝장낼 것이라는 기대는 오바마 열풍으로 나타났고 사회주의자들이 그를 지지해야 한다는 압력도 지금 샌더스를 지지해야 한다는 것 못지않게 컸다.

 

하지만 오바마는 집권 기간 내내 그가 선거 기간 중 약속했던 것들이 모두 공수표임을 보여 주었다. 이전 공화당 정권과 별반 다르지 않은 제국주의적 대외 정책의 지속, 월가에 대한 퍼주기식 구제금융과 규제 완화, 영리 보험회사의 이익을 더 확대해 준 절름발이 의료보험개혁, 역대 최대의 이민자 추방 등 그에게 희망을 건 모든 이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특히 여전히 계속 되는 흑인들의 대량 투옥 (mass incarceration)과 경찰에 의한 살인은 흑인 대통령이 백악관에 앉아 있어도 보통 흑인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는 쓰디쓴 진실을 보여준다.

 

2016년 대선에서 버니 샌더스는 또 다른 슬로건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오바마와 마찬가지로 샌더스의 실제 전력을 보면 언론에서 떠드는 것만큼 급진적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의원들의 의정활동 정보를 수집하는 <프로그레시브 펀치>에 따르면 샌더스는 가장 진보적인 미 상원의원순위에서 고작 18위에 오르는 데 그쳤다.

 

그가 지금은 오바마케어를 비판하며 싱글페이어 헬스케어[전국민의료보험]를 주창하지만 실제로 싱글페이어 옵션과 오바마케어가 논의될 당시인 2010년에 그는 현실적인오바마케어에 표를 던졌다. 지난 해 민주당에 가입하기 전까지 무소속으로 그의 정치 커리어 대부분을 보냈지만 그는 의회에서 실질적으로 민주당 당원처럼 활동해 왔다.

 

그는 1991년 이후 계속해서 민주당 의회 코커스[원내 민주당 의원들의 모임]의 일원이었고, 그의 의정 활동 표결을 보면 대부분의 경우 민주당 정책에 동조해 투표해 왔다. 그리고 90년대 빌 클린턴을 비롯하여 일관되게 독립후보가 아닌 민주당 후보들을 지지해 왔다.

 

특히 2000년 대선에서는 독립후보로 나선 녹색당의 랄프 네이더를 외면하고 민주당의 엘 고어를 지지했다 (독립후보 네이더는 민주당 표를 잠식하는 훼방꾼이라는 일부 좌파와 민주당 지지자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2.7%의 득표를 하며 선전을 했다). 이런 그의 그리 독립적이지 않은 정치적 행보 탓에 미국 주요 언론들은 샌더스를 아예 민주당 인사로 분류해 왔다.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 샌더스의 공약은 사실 별로 사회주의적이거나 혁명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가 주장하는 진보적인 국내 정책들 (그의 대외정책은 클린턴이나 심지어 공화당 후보들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1930년 대 대공황에서 미국이 벗어나도록 도운 루즈벨트의 뉴딜정책을 연상케 한다.

 

노엄 촘스키는 샌더스를 사회주의자가 아니라 정직한 뉴딜주의자라고 규정했다. 루즈벨트는 자신을 이윤과 기업의 자유의 수호자라고 했고, 그의 뉴딜정책은 미국 자본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라 그것을 구하기 위한 정책이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뉴딜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는 우리 정치 체제에 있을 자격도 없다고 했을만큼 샌더스 류의 급진적주장은 한때 너무나 당연시 되던 정치권 주류의 아이디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1세기 제2의 뉴딜을 주창하는 샌더스가 그 어떤 정치인보다 급진적으로 보이는 것은 민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의 수용과 계속된 우클릭의 결과이다. 지금의 정치적 상황에서 샌더스가 주장하는 개혁들을 실제로 쟁취할 수 있다면 그것은 노동계급에게는 일보 전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난 30여 년간 일관되게 신자유주의 정책를 펴온 민주당이 과연 샌더스의 바램대로 노동계급을 위한 개혁의 수단이 될 수 있을까?

 

민주당의 변화라는 헛된 희망

 

미국은 양당 체제의 지배 하에 있다. 1865년 남북전쟁이 끝난 후 민주, 공화 양당은 시기에 따라 적절하게 모습을 바꾸면서 미 자본과 제국주의의 이해에 충실한 체제를 공고히 해왔다. 민주당은 1950년대까지 남부 인종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던 당에서 1960년대 민권운동과 반전운동 그리고 70년대 여성운동의 시기를 거치며 여성과 마이너리티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의 이미지로 변신했다.

 

미국의 양당체제 안에서 소위 보통 사람들의 당을 자처한 민주당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면 선거에 대한 올바른 입장을 가지기 어렵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그 스스로의 정치적 표현으로 나타난 유럽의 사민주의 정당 (영국 노동당이나 독일의 사회민주당 같은)들과 민주당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예를 들면 영국의 노동당이 노동조합에 그 기반을 두고 있는 반면에 민주당은 철저히 자본가 정당이다.

 

민주당은 공화당과 함께 미국 유산계급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양 날개의 한 축을 담당해 오면서, 60년 대 이후 터져 나온 아래로부터의 대중 운동을 흡수하고 그 운동의 상대적으로 온건한 지도자들을 체제로 편입시켜 운동의 성과를 가로채는 역할을 해 왔다. 민주당을 사회진보 운동의 무덤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자본가 정당으로서 민주당은 공화당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 두 당의 겉모습은 사뭇 다르게 보인다. 예를 들면 공화당 정치인들이 반이민자, 반인종적 행태를 보이는 반면 민주당은 이민자와 소수 인종을 대변하는 양 처신한다. 하지만 그들의 실제 정책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예를 들면, 이민 개혁을 공약으로 내걸어 이민자들의 지지를 압도적으로 받았던 오바마는 이민개혁은커녕 지난 8년 동안 역사상 그 어느 정권보다도 더 많은 이민자들을 추방하고 있다. 그들 중 다수는 중남미에서 갱단의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여성과 아이들이다. 인종주의 우파와 트럼프가 반이민자 선동을 하고 있을때 폭력을 피해 국경을 넘은 아이들과 여성들을 사지로 다시 내몰고 있는 것은 바로 민주당 대통령 오바마이다.

 

또 하나의 예를 들자면, 1980년 대에 공화당 대통령 레이건은 복지 여왕이라는 인종주의적 편견을 조장하며 정부보조혜택을 받는 빈민들 (특히 흑인)을 공격했다. 흑인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민주당 클린턴은 레이건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연방 복지제도의 실질적 해체를 복지개혁의 이름으로 단행했다.

 

이처럼 민주당과 공화당은 서로 다른 정치적 수사를 쓰지만 결국엔 둘 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면서 노동계급을 공격하고 있다. 노동계급의 입장에서는 믿지 않는 놈에게 당하느냐아니면 믿었던 놈에게 배신 당하느냐의 차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을 안에서 부터 바꾸려는 시도는 여러차례 있어 왔다. 1980년 대의 제시 잭슨, 그리고 2000년 대의 데니스 쿠시니치 같은 소위 좌파또는 진보후보들이 민주당을 변화시키겠다며 민주당 대선 후보에 도전했다. 그 결과는 매번 실패였다. 그들은 금권정치가 판치는 경선 과정에서 패배하고 종국에는 민주당 지도부의 낙점을 받은 주류 후보들을 지지하는 것으로 돌아섰다.

 

그들의 캠페인이 노동계급의 독립적 정치세력화의 초석을 쌓는 걸로 이어지지도 않았다. 이는 민주당을 안에서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열정이나 능력이 부족해서 아니라 세계 제2위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의 태생적 한계, 즉 근본적으로 자본가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자본가 정당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개조해서 노동계급의 이해를 위해 사용한다는 것이 신기루일 뿐이듯이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을 노동계급의 이해에 복무하는 당으로 바꾼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민주당을 내부에서 변화 시키려는 시도는 아무리 그 의도가 순수하다 할지라도 진보적인 대안이 되기 힘들다.

 

샌더스의 정치혁명또한 그 레토릭과는 달리 한계가 여지없이 드러나고 있다. 클린턴을 월가와 긴밀히 연관된 정치인으로 비판하고 있지만, 사실 월가와 긴밀히 연관되어 그 이해를 대변하는 것은 클린턴이 특별한 예외가 아니라 민주당 주류 전체가 다 그렇다. 월가의 이해를 충실히 대변하는 당의 대선 주자로서 그가 월가를 공격했을 때 그리고 만에 하나 대통령이 된다 해도 과연 그가 월가의 이해에 반하는 정책을 실행하도록 민주당이 가만히 앉아서 보고만 있을까?

 

마찬가지로 싱글페이어 의료보험 개혁 또한 공화당과 똑같이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주당의 후보로서 과연 실행 가능할까? 만약 그가 보험회사와 제약회사의 이해에 반하는 개혁을 시도하려 한다면 그의 당인 민주당이 가장 먼저 그에게 비수를 겨눌 것이다.

 

실제로 1972년 자유주의자 조지 맥거번이 당 지도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전쟁반대 정책을 내걸고 민주당 대선 주자로 뽑히자 민주당은 그의 선거 운동을 거의 사보타지 했다. 그 결과 맥거번은 미 대선 사상 최악의 참패를 당했다. 민주당에게는 너무 왼쪽에 있는 자신의 후보보다 차라리 공화당의 닉슨이 더 안정적인 선택이었던 것이다.

 

민주당 경선후보로 나선 샌더스에 대한 지지의 진정한 문제는 현 체제의 모순에 분노하는 사람들의 열기를 공화당과 함께 그 책임을 물어야 할 민주당에 힘을 보태주는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는 것이다. 샌더스 열풍은 인기를 잃어가던 민주당에게 잠재적인 지지층을 당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미국의 양당체제를 지탱하는 핵심 중 하나인 선거제도 때문에 대부분의 주에서는 당원이 아니면 후보경선 투표에 참여할 수가 없다. 그래서 샌더스 캠페인이 주력해 온 일 중의 하나는 더 많은 지지자들을 민주당에 가입시켜 샌더스에게 투표 하도록 하는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샌더스 돌풍이 실추된 당의 인기를 회복시키고 선거 과정에 더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점에서 내심 환영한다. 물론 그 열기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침해하지 않는 한에서 말이다.

 

민주당은 샌더스가 결국 클린턴을 지지하고 당에 대한 충성심을 보여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샌더스 또한 처음부터 자신이 민주당 후보의 표를 뺏아가는 역할을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해왔다. 자신이 경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면 민주당 후보가 누가 되든지 지지를 하겠다는 것이 경선 참여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월가를 비판하고 월가와 깊숙한 이해관계를 나누고 있는 클린턴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그녀가 최종 후보가 되었을때 월가와 1%의 이해를 대변하는 클린턴을 지지하겠다는 그의 모순된 입장 하나만 봐도 그의 정치혁명의 종착역이 어디일지 미리 보여준다.

 

클린턴의 경선 승리가 거의 확정적인 지금 샌더스 캠페인에 참가하고 있는 일부 좌파들 사이에서는 샌더스가 지지자들의 열기를 몰아 독립후보로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독립후보 샌더스를 지지하는 걸 진지하게 고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샌더스의 행보는 다시 한 번 그가 민주당을 벗어날 생각이 없음을 보여 준다.

 

클린턴의 경선 승리가 거의 확정적인 지금도 그는 끝까지 계속 캠페인을 끌고 가겠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백 명의 캠페인 스텝들을 정리하면서 그의 캠페인이 방향 전환을 했음을 보여준다. 현재 그의 목표는 7월에 있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자신의 주장을 클린턴이 최대한 많이 수용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민주당과 딜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클린턴은 이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미 샌더스 열풍에 밀려 원래 계획보다 더 좌로 움직인 클린턴으로서는 예를 들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 원래 입장과는 달리 반대로 돌아선 것과 15달러 최저임금에 대해 우호적 제스쳐를 보내는 것 등 - 더이상의 좌클릭이 11월에 있을 본선에서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녀는 최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샌더스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했다. “[2008] 6월 말이 되자 나는 더 이상 조건을 걸지 않았다. 나는 오바마 상원의원이 이러저러한 일을 하겠다면 지지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저 이제 오바마를 지지하겠다고 했다.”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 차악이 아닌 최선의 선택을 위하여

 

샌더스를 지지하지 않으면 샌더스에 열광하는 지지자들과 교감을 하지 못하고 고립을 자초한다는 주장이 민주당에 비판적이라는 좌파들 사이에서도 흔하다. 과연 그럴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동계급에게 선거는 새로운 세상의 만드는 노력에 있어 극히 적은 부분을 차지한다. 투표장에 가서 표를 찍는 행위는 고작 몇 분에 불과하다. 한편으로 실제적인 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투표와는 달리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샌더스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나 민주당 추종자로 치부해 버리지 않고 그들의 분노에 공감하면서도 왜 민주당이 대안이 될 수 없고 민주당으로부터 독립된 정치적 대안을 건설해야 하는지 그리고 선거가 진정한 변화를 가져오는데 핵심이 아님을 차근차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샌더스에 열광하며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은 선거라는 제한적인 영역을 벗어나 더 많이 열려 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운동이 선거라는 협소한 공간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 어떠한 후보도 공식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것임을 선언한 것은 시사적이다.

 

실제로 샌더스를 지지하지 않는 급진좌파 중 하나인 미국 국제사회주의자조직’(ISO) 동지들의 경험을 들어보면 현재 선거 밖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과 캠페인에 참여해 샌더스 지지자들과 같이 투쟁하면서 왜 샌더스가 아닌 독자 후보에게 표를 던져야 하는지에 대해 토론할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주장에 적대적이지 않고 귀가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민주당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독자적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 미국 노동계급운동의 가장 중요한 과제 중의 하나이다. 샌더스와 그의 캠페인의 현실적 목표는 바로 민주당을 부활시키는 것이다. 그는 수 백 만 명의 젊은이들과 운동을 민주당 안으로 끌고 들어가 민주당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겠다고 여러차례 공언했다.

 

샌더스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어떠한 합리화를 하더라도 민주당에 표를 던지는 것이며 따라서 민주당의 노동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지속시키며 동시에 민주당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유포하는 것이다. 샌더스를 지지할 수 없는 이유다.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 않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순수성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주의자와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민주당으로부터 독립된 독자적인 제3당 건설에 우리의 노력과 힘을 쏟을 것인가 아니면 마찬가지로 힘든, 그러나 실현 불가능한 민주당의 변화에 힘을 쏟을 것인가 이다. 이것은 아주 현실적인 문제이다. 나는 똑같이 어렵지만 실현가능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일에 우리의 힘을 쏟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선거에서 기권하자는 말은 아니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 후보가 아닌 독립후보 그린파티[녹색당]의 질 스타인을 지지해야 한다. 그린파티 또한 혁명적 사회주의자 조직이 아니고 체제 내의 개량을 지향하는 당이라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립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현 시기 미국 계급투쟁에서 민주당과는 독립된 정치세력을 세우는 노력에 아무리 미미해 보이더라도 실제적 보탬에 된다.

 

11월에 있을 대선에서 클린턴과 트럼프가 양당의 후보로 될 가능성이 거의 확정적인 상황에서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압력이 클린턴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엄청나게 가해질 것이다. 아직은 샌더스 지지자들 중에 절대로 클린턴을 지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상당수다. 그러나 이들 중 다수는 선거가 다가오면서 점점 거세어지는 차악의 논리에 굴복해 결국 클린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특히 그들이 지지해 온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 클린턴을 지지하자고 호소한다면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는 누누이 그렇게 얘기해 왔고, 민주당 경선에서 지더라도 독립후보로 나가자는 주장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결국 그가 클린턴을 지지할 가능성은 불행히도 너무나 크다) 샌더스 지지자들 중 다수가 미워도 다시 한번’, ‘울며 겨자 먹기로 제국주의 전쟁광이자 1%의 이해를 대변하는 클린턴에게 표를 던질 것이다.

 

심지어 샌더스 캠페인에 올인해 온 좌파들 중에 지금까지의 주장과는 달리 클린턴의 선거운동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클린턴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면서 말이다. 일단 민주당 후보로 확정되면 클린턴은 트럼프에 맞서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 우클릭할 것이다.

 

그녀로서는 당연한 선택이다. 민주당 지지자들과 진보세력의 표가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여기는 한 나머지 선거 기간 동안 그녀는 우파로부터 표를 구하는데 힘을 쏟을 것이다. 차악논리의 가장 큰 해악은 독립적으로 자본가들의 정책을 비판하고 대안을 건설해야 할 좌파가 차악논리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다.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사람들은 매번 선거 때마다 똑같은 주장을 반복해 왔다. 민주당이 마음에 안 들어도 공화당보다는 낫다고. 이번 선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하기에 우리의 독립적인 정치적 목표를 일단 유보하고 전술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그런데 이들에게는 매번 당장의 선거가 가장 중요하지 않은 적이 없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 했듯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은 민주당과 공화당 그 누가 대통령이 되던 진행되어 왔다.

 

미국의 지배계급에게는 공화당이나 민주당 그 누가 백악관을 차지하고 앉아 있더라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왜냐면 그 두 당은 똑같이 자신들의 이해를 대변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보여주듯이 노동계급에게는 누가 백악관에 앉아 있는 것보다 거리와 직장에서 민주, 공화 양당에 맞서 스스로의 이해를 위해 싸우는 게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다주는 길이다.

 

차악을 선택해야 한다는 엄청난 압력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자본가 정당인 민주당이 아닌 독립후보 질 스타인에게 표를 던지는 의미있는 소수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비록 표는 민주당에 던졌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민주당에 대한 환상을 깨기 시작한 또다른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당 밖에서 독립적으로 활동하며 이들을 조직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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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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