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러시아 혁명 98주년 - 트로츠키의 삶과 투쟁

전지윤

 


[98년 전 11(러시아 구력으로는 10)에 러시아 10월 혁명이 일어났다. 그것을 기념하는 뜻에서 필자가 몇 년 전에 쓴 트로츠키에 대한 글을 다시 고쳐서 싣는다. 트로츠키는 10월 혁명에 참가한 주요한 혁명가 중 하나였다.]

 

1940820일 스탈린이 보낸 자객은 트로츠키의 머리를 피켈(등산용 도끼)로 내리쳤다. 숨을 거두며 트로츠키는 자신의 아내에게 나타샤, 당신을 사랑하오하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말도 남겼다. “동지들에게 전해 주시오. 나는 4차 인터내셔널[트로츠키가 이끌던 국제 혁명 조직]의 승리를 확신하니 전진해 나가기를



러시아 혁명의 주역중 하나였고, 러시아에서 추방된 후에도 포기하지 않고 인류의 해방을 꿈꾸며 활동하던 트로츠키는 이렇게 숨을 거뒀다.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를 느꼈던 트로츠키는 그해 초에 미리 유언장을 써두었다.

 

의식을 깨친 이래 나는 43년을 혁명가로 살아왔다. 그중 42년은 마르크스주의 기치 아래 투쟁해 왔다. 다시 시작해도 이런저런 오류는 피하겠지만 내 삶의 큰 줄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인류의 공산주의적 미래에 대한 나의 신념은 조금도 식지 않았다. 젊은 시절보다 더 확고해졌다. 나는 밝은 녹색의 풀들, 맑고 푸른 하늘, 반짝이는 햇빛을 본다. 인생은 아름답다. 미래 세대는 모든 악과 억압, 폭력을 씻어내고 아름다운 인생을 마음껏 향유하게 하자.”

 

1879년 러시아에서 유태인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트로츠키는 10대 후반에 일찌감치 행동이 없는 신념은 죽은 것이라며 고난에 찬 지하 활동가의 길을 택했다. 국가의 탄압을 피하며 원시적 방법으로 성명서를 만들어 배포하던 이 시기를 트로츠키는 나중에 자서전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초라한 젤라틴판[등사기]을 중심으로 이리저리 종종걸음을 치고 있는 이 젊은 그룹을 만약 누군가가 냉정한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면, 그들이 이런 방법으로 몇 세기나 계속된 강대한 국가를 타도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 얼마나 딱한 환상으로 보였을까! 그렇지만 이 딱한 환상이 한 세대가 지나가기도 전에 실현됐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러일전쟁이 낳은 참상과 분노 속에 1905년 혁명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오랜 활동과 탄압을 견뎌 온 트로츠키는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혁명에서 매우 중요한 구실을 맡게 된다. 혁명 과정에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에서 등장한 소비에트(노동자 자치 평의회)의 의장이 된 것이다. 1905년 혁명은 비록 패배했지만 트로츠키는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의 연속혁명이론을 발전시켰다.

 

러시아 혁명과 연속혁명

 

연속혁명론은 마르크스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혁신 시도였다. 트로츠키는 1905년 혁명의 경험과 투쟁하는 민중들 속에서 배우면서 이것을 발전시킬 수 있었다. 당시 유럽의 대다수 혁명가들은 단계혁명론에 빠져 있었다. 즉 사회주의 혁명은 자본주의가 충분히 발달한 유럽 선진국들에서만 일어날 수 있고 후진국에서는 일단 먼저 부르주아 혁명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RSDLP)의 한 분파였던 멘셰비키도 짜르(황제)가 지배하고 있는 정치·경제적으로 후진적인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조건은 무르익지 않았다고 봤다. 먼저 신흥 자본가들이 주도하는 부르주아 혁명이 필요하고 노동자들은 그것을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노동자들이 너무 투쟁에 앞서 나가서 신흥 자본가들을 놀라고 위축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멘셰비키는 1905년 혁명 때도 노동자들이 막판에 총을 든 것이 문제였다고 후회했다. 그래서 신흥 자본가들이 반혁명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게 됐다는 것이었다.


레닌을 주축으로 했던 RSDLP의 또 다른 분파인 볼셰비키의 관점은 멘셰비키와 다소 달랐다. 볼셰비키는 짜르의 품에서 자라난 소심하고 취약한신흥 자본가들을 신뢰하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앞으로 벌어질 혁명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수행될 혁명의 성격은 여전히 부르주아 혁명이라고 했다. 후진국 러시아에서 역사의 단계를 한 번에 뛰어넘을 수는 없다고 본 것이다.


트로츠키는 멘셰비키뿐만 아니라 볼셰비키와도 다른 입장을 제시했다. 그는 사회주의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었는가를 국제적 시야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세계적 차원에서는 조건이 무르익었고, 후진국 러시아는 오히려 약한 고리라고 했다.


자본주의의 불균등하면서도 결합적인 발전 때문에 러시아에는 봉건적인 짜르 정부, 취약하고 소심하며 짜르와 유착해 있는 신흥자본가들, 그리고 무엇보다 대공장을 중심으로 강력한 노동계급이 존재했다. 짜르 국가가 유럽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위로부터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한 결과였다.


혁명을 주도할 러시아 노동계급이 부르주아 혁명에서 멈출 리 없다는 게 트로츠키의 주장이었다. 왜 거리에서 투쟁하며 해방감을 맞본 노동자들이 정치·경제 권력을 신흥 자본가들에게 넘겨주며 순순히 공장으로 돌아가겠냐는 물음이었다. 그는 민주주의 혁명과 사회주의 혁명은 억지로 단계를 나눌 수 없고 연속적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경제적 후진성의 문제는 어떻게 하는가? “일국 혁명의 틀 안에서는 이 모순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따라서 유럽 노동계급의 지원이 없다면, 러시아 노동계급은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혁명은 국민적 무대에서 시작해 국제적 무대에서 전개되고 세계적 무대에서 완성된다는 게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이었다. 러시아 혁명은 국제적 혁명의 확산을 낳을 것이고, 그 속에서 완성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1905년 혁명의 패배 후 트로츠키는 상당 기간을 어떤 조직에도 속하지 않은 채 있었다. 유명한 트로츠키의 전기 3부작을 쓴 아이작 도이처는 이 기간을 정체 기간이라고 했다. 트로츠키도 자신이 이 기간에 혁명적 조직 건설에 기여하기보다 대부분 개인으로서 활동했던 것을 나중에 내 생애 최대의 잘못이라고 돌아봤다.


하지만 트로츠키는 1차대전의 막바지에 폭발한 1917년 러시아 혁명 때 다시 투쟁의 전면에 나서게 된다. 혁명적 투쟁에 나선 러시아 민중들은 고난을 견디며 투쟁하고 탄압받아 온 혁명가들의 주장에 귀를 기울였다. 19175월에 트로츠키는 이렇게 연설했다


부르주아 계급을 믿지말자! 우리 지도자들을 통제하자! 그리고 우리 자신의 혁명적 힘에 의존하자!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 이양하라! 세계 혁명의 서곡 러시아 혁명 만세!”


이것은 당시 볼셰비키 조직의 지도자였던 레닌과 같은 견해였다. 레닌과 볼셰비키는 기존의 낡은 도식을 뛰어 넘어 연속혁명의 입장에 섰다. 볼셰비키는 혁명에 나선 러시아 민중의 요구와 목소리를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대변하려고 하면서 크게 성장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볼셰비키에 합류했고 레닌과 함께 볼셰비키 조직의 주요한 리더로 떠올랐다.


러시아 혁명은 연속혁명론이 검증되는 과정이었다. 혁명 과정에서 신흥 자본가들에 기반한 임시정부가 수립됐는데, 이들은 혁명의 요구를 수행하려 하지 않았다. 전쟁을 지속하려 했고, 노동자·농민의 요구와 권리를 억눌렀다. 나아가 그러한 배신에 반발하는 노동자·민중들의 투쟁을 짓밟기 위해서 반동세력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혁명을 부르주아적 단계에서 멈추려고 한 멘셰비키 등은 이에 효과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어려웠다. 결국 볼셰비키는 멘셰비키와 분명하게 갈라서며 10월에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소비에트로 모든 권력을 집중하기 위한 무장봉기를 성공시킨다. 이후 트로츠키는 러시아 노동자 민중과 함께 모든 인간 관계가 협력에 바탕을 두고 인간이 인간의 적이 아니라 형제가 되는 새로운 사회를 위한 투쟁에 뛰어들게 된다.

 

혁명의 후퇴와 변질

 

그러나 희망의 나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트로츠키는 연속혁명론에서, 후진국 러시아의 혁명은 선진국으로의 혁명의 확산과 승리한 선진국 노동계급의 지원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다고 지적했었다.


실제로 러시아 혁명은 이어서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에서 혁명의 물결을 불러 왔다. 그러나 이들 나라에서 혁명은 쉽게 성공하지 못했고, 중단되거나 반혁명이 성공했다. 그런 나라들에서 자본주의와 지배계급, 자본주의 안에서 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세력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드러났다. 반면 혁명적 조직은 경험 부족 속에 좌충우돌을 거듭했다.


이제, 러시아 노동자 국가는 고립됐고 14개국 제국주의 국가의 침공과 반혁명 백군과의 내전이 벌어졌다. 어려운 조건 속에서 혁명의 활기와 소비에트의 민주주의는 사그라들고 제한되기 시작했다. 내전과 궁핍 속에 노동계급은 사기저하됐고 해체됐다.


그 자리를 새롭게 부상한 당과 국가 관료들이 메꾸었다. 볼셰비키의 새로운 지도자 스탈린의 정치적 입장은 이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스탈린의 일국사회주의는 국제적 혁명의 확산에 대한 기대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신들의 권력과 통제력을 사회주의의 승리와 동일시한 세력들의 입장을 대변했다.


처음에 주저하긴 했지만 트로츠키는 곧 앞으로 4050년 내에 유럽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을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이 어떻게 공산주의자인 나의 의무란 말이냐?”며 일국사회주의를 비판하고 나섰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을 혁명의 무덤을 파는 자라고 규정하며 스탈린과 그의 정책에 맞선 투쟁에 앞장섰다.


레닌 사망 이후 소비에트 정부의 권력을 장악해 나간 스탈린은 1929년에 트로츠키를 러시아에서 추방했다. 트로츠키는 터키, 프랑스, 멕시코 등을 떠돌아야 했다. 트로츠키는 장애물을 돌파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결코 혁명가일 수 없다며 박해와 고난을 견뎠다.


19251927년 중국 혁명 과정, 1933년 독일에서 히틀러가 권력을 잡는 과정, 1936년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노동자 혁명의 가능성이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트로츠키는 스탈린의 입장과 정책을 비판하며 독자적인 분석과 전략전술을 제시했다.


특히 독일에서 파시즘이 등장하는 과정에서 트로츠키는 경고를 거듭했다. “[파시즘이 승리하면] 자본주의 사회가 소화하지 못한 배설물이 목구멍으로 쏟아질 것이다. 세계의 운명이 앞으로 몇 달 간 독일에서 나치의 승패에 달려 있다.”


트로츠키는 공산당의 혁명가들이 사회민주당의 개혁주의자들과 함께 공동전선을 통해 파시즘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스탈린과 독일 공산당은 오히려 히틀러보다 사회민주당을 더 적대시하는 재앙적 정책을 취했다. 트로츠키는 공산당과 노동계급이 열쇠를 쥐고 있었는데 스탈린은 그 열쇠를 두고 혁명의 문을 잠그려 한다고 스탈린을 맹비난했다.


히틀러가 권력을 잡은 후 트로츠키는 파시즘의 테러가 시작되기도 전에 스탈린의 관료적 테러가 공산당의 의지를 마비시켰다고 규탄하며 이제 러시아에서 스탈린주의 관료를 타도할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 체제가 노동자 국가의 관료적 변질이라고 분석했다. 노동자들이 권력과 생산을 통제하지 못하고 민주주의도 존재하지 않는 사회가 노동자 국가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지만, 트로츠키의 분석은 스탈린주의 체제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의 디딤돌이 된 것은 분명하다.

 

미래를 위한 투쟁

 

파시즘 승리 이후의 세계의 역사적 상황은 지옥같이 컴컴한 밤이었다. 게다가 스탈린주의가 자유와 해방에 대한 사회주의적 이상을 관료적 통제와 억압으로 대체시키는 것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졌다.


개인적으로 트로츠키에게는 네 명의 아들딸 들의 암살, 자살, 병사라는 비극까지 겹쳤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역사가 비정상적이고 추악한 비행을 허용한다면 우리는 주먹을 쥐고 그 역사와 싸워야 한다며 쉽게 투지를 꺾지 않았다.


트로츠키의 사명감과 자의식은 대단했던 것 같다. 1935년의 일기에서 트로츠키는 이렇게 썼다. “현재의 나의 작업은 단어 그 자체의 의미대로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나를 제외한 그 누구도 혁명적 방법으로 새로운 세대를 무장시킬 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없다.”


실제로 트로츠키가 이 시기에 한 주장과 활동들이 없었다면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보존할만한 소중한 것들이 스탈린주의로 왜곡·변질되며 망각되는 일이 더 심각해졌을 것이다. 고난 속에 이 작업을 수행하다가 트로츠키는 결국 1940년 암살 당했다. 그러나 트로츠키는 역사의 복수는 가장 강력한 서기장[스탈린]의 복수보다 강력하다고 믿었다.


오늘날 스탈린주의 체제는 대부분 몰락했고 그 영향력은 힘을 잃었지만, 세계 곳곳에는 트로츠키의 정신을 이어서 세계 자본주의와 맞서 싸우는 수많은 투사들이 있다. 트로츠키의 유산에서 배우며 또 그의 오류, 한계를 벗어나 공백을 메우려고 노력하는 이 투사들은 외롭고 힘들 때 마다 트로츠키가 21살 때 한 말을 떠올릴 것이다.


내가 살아 숨쉬는 한 나는 희망을 간직하리라. 내가 살아 숨쉬는 나는 미래를 위해 투쟁하리라. 인간이 강물처럼 흐르는 저 역사의 주인이 되고 역사의 물줄기를 아름다움과 환희와 행복이 펼쳐진 땅으로 돌리게 될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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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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