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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청산하지 못한 유산이 ‘독재 교과서’로 돌아 왔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10. 17.

임광순(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

  


[편집자: 교과서 국정화 추진을 비판하며 원래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던 이 글을 여기 다시 실을 수 있도록 해 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미칠듯한 미쳐버린 국정 교과서이름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다. 정부는 단일교과서’, ‘통합교과서이름을 거쳐 올바른 교과서로 이름을 안착시키려 한다. 반대 측에서는 친일독재교과서라고 많이 불린다.


또 반대측 일부에서는 친일-독재프레임만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심지어 작곡가 김형석까지도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이 교과서를 비판했다. 대체 이놈의 국정교과서는 뭐라 불러야 할까? 널 부르는 호칭이 다른 건, 널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독재교과서

 

나는 국정교과서를 '독재교과서'라 부르련다. 이승만, 박정희 따위의 과거를 미화하기 때문이 아니다. 실제 국정교과서가 2008년 출판된 뉴라이트 대안교과서만큼 대놓고 이승만, 박정희를 빨아줄지 의문이다.(사실 그럴까봐 걱정이긴 합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니)


아직 국정교과서의 찌그러진 얼굴이 세상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나는 그 내용에 상관없이 그것을 독재교과서라 불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용상의 독재미화는 우려지만, 추진과정에서 이미 독재적 요소가 곳곳에서 발견되기 때문이다. 그것을 어떤 독재라 부르든지.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논리는 뻔하다. 다들 알고 있다. “엄연히 북한이 있는데 종북주의자들이 설친다.” 이 명제는 단순하지만 파괴력이 크다. “북한이 있으니까”, “여전히 휴전중이니까.” 이런 말은 대중적으로 강력하게 작동한다.


심지어 국정화를 반대하더라도 이 명제에는 크게 이견을 제시하지 않는다. 새누리당이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습니다라는 역겨운 현수막을 걸 수 있는 까닭은, 이런 명제가 연결고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반북은 왜 독재인가?

 

모든 반북은 독재가 아니다. 그러나 반북은 손쉽게 독재로 진화한다. 나는 미아리 점쟁이가 아니다. 예언은 개뿔, 당장 내일 식당메뉴도 모른다. 그럼에도 역사는 강력한 반북, 여기에 기초한 위기의식의 고조가 독재로 진화한 과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19727월 국회 대정부 질의에서 김종필 국무총리는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비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우리의 단결되고 강력한 힘과 정신무장을 더욱 튼튼히 함으로써만이 이 대화[7.4 남북공동성명을 전후한 남북대화]의 이 어려운 여러 경우들을 이겨 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대화의 시작은 북한이 내포하는 허다한 위험성의 해소를 뜻하지도 않습니다.


더욱이 북한의 공산집단이 무력남침을 완전히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고 따라서 현재로서는 이 비상사태 선언은 해제할 단계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 


나치독일이나 일본에서 제정된 그따위의 법과 이 법과는 근본적으로 그 목적이 그리고 그 성격이 판이한 것이 확실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국민의 권리를 박탈한다거나 또 억압한다거나 이럴 수도 없고 또 그렇지도 않습니다.


- 김종필 국무총리, 1972721일 국회본회의

 

근현대사를 공부하는 사람들, 그 시대를 살아본 어른들은 알 것이다. 국가보위법이 어떤 법이었는지. 1971년부터 1981년까지 10년을 말그대로 국가비상사태라는 이름 아래 국민의 기본권이 무시되었다. 우리가 독재의 대명사로 이야기하는 유신체제도 이 법안 위에서만 존재할 수 있었다.


심지어 박정희는 그렇게 세상을 떠났지만 전두환 신군부는 이 법안을 쉽사리 놓아주지 않았다. 국가보위법 아래에서 집회는커녕 출판과 언론의 자유마저 사라졌다. 노동조합? ‘개나 줘라였다. 노동3권 중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은 아예 유신헌법에 의해 유보되었다. 우리가 기억하는 독재의 이미지, 멀쩡한 사람들이 사라져버리는, 마치 패닉 <UFO> 노래가사 같은 일들이 벌어진 시기이다.


다시 김종필의 구라를 읽어본다. 김종필은 국가보위법이 국민의 권리를 박탈한다거나 또 억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종필의 구라는 이제 삼척동자도 안다. 진짜 문제는 구라가 아니라, ‘북한이 존재하는 이상 국가비상사태를 유지하겠다는 발상이다.


어수룩한 사람들은 박정희가 유신체제를 연착륙시키려고 했다고 말한다.(정권이양도 고려했다나? 소리인가!) 나는 그 말이야말로 허구라 생각한다. 국가보위법과 유신체제는 북한이 존재하는 이상사라질 수 없도록 세팅되었다. 적어도 그들의 논리에서 말이다. 그리고 김종필의 발언이 있고 3개월이 채 되지 않아, 박정희는 유신체제를 선포한다. 국회가 해산되었다. “유신독재의 본판 시작이다.

 

히틀러와 일제 군부, 그리고 박정희 - 정말 달랐을까?

 

1971~72년 신민당(야당) 의원들은 박정희의 국가보위법이 히틀러의 수권법’, ‘일제의 국가총동원법과 유사하다고 비판했다. 김종필은 그 따위의 법과 다르다고 일갈한다. 그런데 정말 달랐을까? 생뚱맞지만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의 일부를 옮긴다.

 

1960년대에 한 하버드 법대생은 부모님들과 졸업생들 앞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나라의 거리들은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대학들은 폭동과 소요를 일삼는 학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우리나라를 호시탐탐 파괴하려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완력을 동원해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으로부터의 위험, 또 외부로부터의 위험. 우리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법과 질서 없이 우리나라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긴 박수소리가 이어졌다. 박수소리가 잦아들자, 그 학생은 청중들에게 조용히 말해 주었다.

"지금 말한 것들은 1932년 아돌프 히틀러가 연설한 것입니다."


- 하워드 진, <오만한 제국>, 197.

 

기시감이 든다. 하버드 대학생의 연설에서 러시아북한으로 바꿔주면 완벽하게 1970년대, 그리고 현재의 한국이 오버랩된다. 고영주가 너 공산주의자!”라고 붉은 칠을 해대는 건 그가 미치광이라서가 아니다. 이처럼 유서깊은 역사적 범죄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외부로부터의 끊임없는 위협을 강조하고, 이를 위한 내부통제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것. 독재는 사실 폭압이 아니라, 이런 논리에서 출발한다. 북한이 미제국주의를 어떤 방식으로 악마화했는지 아는 사람들은 더 잘 이해될 일이다.


그럼 김종필이 자신만만하게 다르다고 했던 일본은 달랐을까? 일본제국주의가 전쟁의 광풍 속에서 식민지조선에서 '영미귀축 타도'를 부르짖으며 엄청난 수탈을 해갔던 건 이제 상식이다.(물론 그걸 수출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일본제국주의의 의도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 건 만주였다. 관동군은 만주국을 건설하고, 대소련전(위기!!)을 강조하면서 내부에서는 치안숙정계획을 이어나갔다. ‘치안숙정계획의외로 단순했다.


관동군은 무력만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단 것을 깨달았다. ‘비민분리원칙 아래 소위 도비인민을 분리시키고자 했다. 여기에는 강력한 군사력 외에도 미시적이고 촘촘한 행정력, 그리고 조선인, 중국인의 자기통제 장치들이 고안되었다. 제거의 대상은 외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우린 이걸 일제파시즘이라고도 부른다.

 

청산이냐, 답습이냐

 

박근혜에게 발견되는 1970년대 유신독재의 망령은 단순히 교과서 구절의 수정에 그치지 않는다. 박근혜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자 국가개조를 당당히 외쳤다. 현재의 교과서 국정화, 노동개악 시도는 각각 정신개조’, ‘생산개조를 담당하는 듯 보인다.


박근혜가 최근 동북아정세를 이야기하면서 위기를 강조하는 건 우연이 아니다. 고영주 같은 작자들이 너 종북! 빨갱이!’하면서 빨갱이 사냥을 하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한국사 교과서와 역사학연구자들을 빨갱이, 종북으로 몰아가는 것도 역사학자들이 마음에 안 들고, 박근혜가 효녀이기 때문이 아니다.


설사 시작은 효심이었을지라도 그 끝은 창대한 독재이다. 19876월 항쟁은 힘겹게 군사독재를 걷어냈지만, 12월 직선제는 신군부 출신 노태우를 선택했다. 6월 항쟁으로부터 1년이 지나고, 한완상 서울대 교수는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만일 우리가 분단의 악조건 밑에서 살고 있지만 냉전정치구조와 문화를 근본적으로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 구조와 문화에서 비롯된 모든 부끄러운 유산을 척결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민주화도 끝까지 가식적 민주화에 그치고 말 것이며 그만큼 국민과 세계를 속이는 결과에 이르고 말 것이다. (19886)


- 한완상, <냉전문화의 극복을 위하여 - 청산이냐, 답습이냐>, 262.

 

뼈아프다. 솔직하게 말하면 87년 체제가 실패한 것이. 87년을 만든 사람들은 전두환을 몰아내고 직선제를 쟁취했지만, 냉전정치구조와 냉전문화를 극복하지 못했다. '부끄러운 유산'을 척결하지 못하여, 87년 체제는 가식적 민주화에 그쳤다.


박근혜만 미친 것인가? 아니다. (구라로 가득찼었지만) 대선에서 51.6%가 박근혜를 지지했다. 패퇴시키지 못했던 냉전정치/문화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2007년 대통령선거는 "한나라당에서 개가 나와도 당선된다는" 선거였고, 2012년 대통령선거는 박정희의 정치적 부활을 승인했다.


박근혜의 팻션쇼는 업신여기거나 비웃을 대상이 아니다. 청산되지 못한 '독재의 빨간구두'가 춤추는 듯 보인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참 열받는 일이다. 결자해지다. 87년을 미완으로 남긴 사람들의 탓이고, 90년대 신자유주의 광풍을 막아내지 못한 사람들의 탓이고, 2000년대 개혁정부 아래에서도 이것을 극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탓이다


그 위에 박근혜는 강림하시어 오늘도 '국가개조'를 되뇌이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와 노동개악을 밀어 붙인다. “청산이냐, 답습이냐부메랑처럼 돌아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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