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
얼마전 미국은 쿠바를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했다. 미국-쿠바 국교정상화는 더 진전될 것 같다. 50년이나 계속된 미국의 제국주의적 봉쇄와 압박이 중단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쿠바의 끈질긴 저항이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는 반응도 있다.
그런데 이것을 쿠바의 승리로만 보기는 어렵다. 쿠바 정권이 중국식 시장개혁을 추진하며 ‘테러, 마약과의 전쟁에서 미국과 협력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볼 때 말이다.
미국은 이란과도 타협했듯이, ‘뒷마당’에서 쿠바와도 타협하면서 더욱 더 ‘아시아 회귀’와 중국 포위에 힘을 집중하려는 것 같다. 최근 남중국해 인공섬을 둘러싼 분위기는 험악하다.
그래서 아버지에서 아들로 권력을 넘겨 준 북한은 ‘악마’이지만, 형에서 동생으로 권력을 넘겨 준 쿠바는 다르다는 태도를 보인다.
북한과 쿠바의 권력세습, 민주주의 탄압, 성소수자 억압은 분명 잘못이고 ‘사회주의’와도 관련없는 일이지만 미국이 이것을 문제삼는 게 완전히 핑계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자기들은 수백만 명을 죽일 수 있는 탄저균을 몰래 운반하고 실험하면서, 자기들 멋대로 다른 나라에 ‘테러지원국’ 딱지를 붙였다 뗐다하는 자들. 수만 개의 핵무기를 갖고서 곳곳에서 전쟁을 해 왔으며 새로운 살상무기를 개발하는 나라가 ‘테러국가’이고, 그 나라에 찍소리도 않고 빌붙어오기만 한 나라가 ‘테러지원국’ 아닌가?
● 높아지는 한반도 긴장
얼마전 북한의 잠수함탄도미사일(SLBM) 실험은 4차 핵실험의 예고편일지 모른다는 말이 나온다.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직전에 대포동 미사일,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직전에 은하2호, 2013년 3차 핵실험 전에 은하3호 실험처럼 말이다.
물론 진위 여부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이 SLBM은 한반도의 진정한 위협이 아니다. 앞으로 매년 거의 3~400억 달러씩 국방비를 증액하겠다는 미국과 중국의 경쟁적 군비증강과 충돌을 유발하는 군사훈련이 진짜 문제다. 그러면서 미국은 북한을 더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다.
군사평론가인 김종대는 이처럼 미중 갈등이 고조될 때 꼭 한반도에서 분쟁이 일어났다고 지적한다. 2010년 연평도 사태도 미항공모함 조지 워싱턴의 서해 진입 시도가 낳은 반작용이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최대한 중국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압박하려 하고, 중국은 최대한 떨어진 곳에서부터 미국을 차단하려 하면서 한반도가 이들의 힘 자랑 무대가 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우파의 이런 호전적 과대망상은 섬뜩하기만 하다.
“공포의 균형을 찾기 위해선 유사시 김을 포함한 북 지휘부를 '최우선'으로 '반드시' 제거한다는 참수(斬首) 작전을 대북 억지 전략의 제1축(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제2축은 핵무장 선택권을 보유하는 것이다...월성 중수로를 이용하면 핵무장에 2년도 걸리지 않으며 기술적 제약도 없다. 우리 기술 정도면 핵실험도 필요 없다.”(<조선일보> 논설주간 양상훈)
● 공무원 연금 개악 저지 투쟁을 돌아보며
지난 몇 주간 ‘사회적 합의로 이룬 공무원연금 개혁의 불씨를 살려야 한다’고 했던 사람들은 크게 착각한 것이다. 공무원연금은 개혁된 게 아니라 ‘더 내고 덜 받도록’ 개악됐다.
그래도 국민연금 개혁의 토대가 마련되지 않았냐고? 공무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아니다. 국민연금 개악의 토대가 마련된 것이고, 공무원들의 희생이 국민들의 희생으로 연결될 수 있게 됐다.
2007년 국민연금 1/3 삭감 -> 2009년 공무원연금 삭감 -> 2013년 기초연금 개악 -> 2015년 공무원연금 삭감으로 이어져 온 개악의 연쇄작용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개악을 주도한 한국연금학회 회장 김용하는 “기초연금, 국민연금도 문제고,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이 의료보장과 관련된 부분이다. 다 줄여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이미 ‘연금 보험료율을 올리자’, ‘기초연금 지급연령 5년 늦추자’는 방안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엔 공무원연금 수급자와 국민연금 수급자를 이간질했다면, 이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 이간질이 시작됐다. ‘국민연금 가입자와 미가입자’, ‘장기가입자와 단기가입자’ 등 이간질은 무궁무진할 것 같다.
‘공무원이 양보해서라도 국민연금을 개선하자’는 논리는 이번 개악에 무기력했다. 이에 대한 반발로 ‘공무원 밥그릇부터 지켰어야 한다’는 반응이 나온다. 마치 ‘국민과 함께 하는 노동운동’의 실패의 반작용으로 ‘각자 현장에서 싸우는 게 중요하다’는 반응이 나오듯.
그런데 현장에서 잘 싸우기 위해서도 대안과 방향이 분명해야 하고 우호적 여론과 연대가 필요하다. 노후 걱정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공무원연금 개악의 응원군이 아니라 개악 저지 투쟁의 응원군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철도노조가 국정원 촛불 등에 결합하며 ‘철도노동자의 권리와 국민의 발을 같이 지키자’고 했을 때처럼 말이다.
OECD 평균의 1/5밖에 안 되는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과 사회임금 비중을 대폭 늘리기 위한 투쟁이 건설되면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그 투쟁의 일부가 됐다면.
정말 ‘지속 불가능’한 것은 이 나라의 ‘재정안정성’이 아니라 OECD 1위 수준의 노인 빈곤률과 자살률이다. ‘너 나중에 마트 시식 다니며 허기채울래’라는 뭔가 뜨끔하던 웃픈 농담이 기억난다.
● 진보 통합을 위한 4자 공동 선언에 대해
최근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대표가 모여서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99315)
진보의 사분오열이 문제인 상황에서 진보통합 추진은 기본적으론 좋은 일이다. 새누리뿐 아니라 새민련도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당장 메르스만 봐도 무상의료와 의료공공성을 주장하고 싸우는 힘있는 진보정당의 부재가 안타깝다.
그러나 저들이 그어놓은 선 안에서 머무는 듯한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4자 선언에선 별다른 기대가 생기지 않는다. 사회주의는 커녕 “사회민주주의의 이상과 원칙” 정도의 공동선언 문구마저 빠졌고, 탄저균 사태를 보면서도 반제국주의보다 북한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말이다.
게다가 “모든 분들이 이 길에 함께 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하고, “모두에게 문호를 개방하겠다”면서도 여전히 ‘진보당 왕따’를 유지하고 있다. ‘진보결집을 거부하는 것은 최종 목적지가 다르다며 부산에서 서울까지 각자 가자는 꼴’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진보당 사람들은 ‘헌법 밖의 종북 진보’라서 ‘부산에서 서울도 같이 못 간다’는 뜻인가?
기간을 정해놓고 해치우듯 추진되는 통합도 그렇다. 그런 식으로 서로를 도구삼아 총선만 바라보며 만들던 통합진보당의 결말을 봤기에 우려가 되는 것이다. 결국 이런 방향이 통합은커녕 더한 사분오열로 이어질까 걱정이다.
정의당, 노동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가 각각 내부에서 갈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각각의 내부에서 불협화음이 커지고 있다. 노동자연대 등 일부 좌파는 노동정치연대에서 나오고 있다. 나는 이미 2년 전에 방향이 우려스러운 노동정치연대에서 나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당시에는 노동자연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로 정치적, 조직적 차이를 인정하며 솔직하게 응어리를 풀면서 연대하는 것부터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당장 황교안부터 진보당 해산의 죄를 물어 힘을 합쳐 끌어내리는 모습이라도 봤으면 좋겠다.
다른 진보정당 들이 황교안의 이 용서못할 핵심죄목을 청문회 이슈로 만드는 데 큰 열의를 안보이는 것은 안타깝다. 그래야 사람들 속에서 ‘역시 진보진영은 민주주의를 소중하게 여기고 동지애가 살아있구나’하는 신뢰가 생기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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