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박근혜와 유승민의 치킨게임
최근 박근혜가 국회법 거부권을 행사하고, 이어서 유승민이 납작 엎드리는 걸 보면서 ‘유신으로 돌아갔다’는 한탄이 많이 나왔다. 물론 기가막힐 일이지만,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모순이 커지고 입지가 좁아지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박근혜로서는 벌써 ‘비박’이 당대표와 원내대표를 차지하고 툭하면 자신에게 대드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래서 승부수를 던졌는데, 새누리당 의원총회는 거부권을 수용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면서도 유승민 제거 요구는 거부했다. 물론 계속 압박하겠지만 새누리에서 ‘친박’의 비중이 1/7 정도로 줄어든 상황에서 쉽지 않거나 상처뿐인 승리가 될 수 있다.
정말 ‘유신체제’에서라면 대통령의 의지가 여당에 먹히지 않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당장 여당 지도부가 남산지하실로 끌려갔을지도 모른다. 반면 박근혜는 지금 지지층에 호소하며 자신의 신임을 묻고 여론의 압박을 만들려 한다.
이는 권력기반이 취약한 소수파 대통령(예컨대 노무현)이 집권 하반기에 주로 택한 방법이다. (메르스에서 경제살리기로) 쟁점을 돌리고, (경제살리려는 쪽과 방해하는 쪽으로) 전선을 치고, 지지층을 결집하며 정국 주도권 되찾는 방법으로 말이다.
문제는 박근혜는 아직 집권 절반 밖에 안됐다는 것인데, 벌써 최후의 카드라는 대통령의 탈당까지 들먹여지고 있다. 더구나 여론에 호소해 정치권을 압박하려면 지지율이 받쳐줘야 하는 데, 박근혜의 지지율은 메르스를 거치며 분명한 하향 추세였다.
물론 박근혜는 최근 황교안이라는 무기를 쥐고 반대세력의 치부를 들춰내고 찌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성완종 사태’를 겪고나서 부메랑 효과 걱정이 커졌다. 불똥이 이상하게 튀면서 김무성-유승민 체제에 더 주도권이 넘어간 게 그 결과였다. 따라서 정부의 권한 강화냐 국회의 권한 강화냐, 내년 총선에서 무엇을 내걸 것인가, 공천권은 누가 가질 것인가를 두고 다툼은 커질 수 있다.
이처럼 세상을 말아먹으려는 자들 사이에서 갈등이 커지는 것은, 그것을 막으려는 쪽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공무원연금도 우리가 노조의 양보를 받아낸 것이며, 경제살리기엔 초당적으로 협력할 것’이라는 새민련의 지리멸렬과 콩가루 양상은 박근혜와 여당에게 별 위협거리가 안 되고 있다.
결국 진보의 단결과 투쟁이 중요하고, 종북몰이꾼 황교안이 곳곳에서 일으키는 검은 구름을 막기 위해서도 그렇다. 하지만 방향을 잘못 잡은 ‘진보통합’ 추진이 되려 또다시 서로 상처를 주고 갈등의 골만 키우다가 실패로 돌아가는 듯해 안타깝다.
최저임금 인상을 위해서, 민주노총의 7월 투쟁 지지를 위해서, 무엇보다 세월호의 진실을 위해서 더욱 힘을 모으고 투쟁을 서로 연결시켜야 한다. 박근혜가 이번에 거부권 행사라는 승부수를 건 것이 바로 세월호 시행령 문제였다는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
● 세월호의 진실에 대한 커지는 의구심
김지영 다큐멘타리 감독이 <파파이스>에서 주장해 온 ‘세월호는 마치 일부러 침몰하려는 것처럼 지그재그 운항을 하다가 갑자기 한바퀴 대회전을 했다’는 주장이 더욱 더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ydgc5gkdjNw&feature=youtu.be
세월호 가족들이 재판기록과 수사기록을 입수하면서 다시 확인된 것이다. 이를 보면 초기수사에서 검찰은 이미 ‘지그재그 운항과 한바퀴 대회전’에 대해서 선원들을 추궁하고 있다. 심지어 초기 공소장에도 그렇게 써 있었다.
이것은 김지영 감독이 <파파이스>에서 지난 1년간 힘겹게 재구성해 온 여러 기록과 자료들을 검찰이 이미 사건 첫날부터 가지고 있었고 알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한 검찰 수사관은 이 사실을 부인하는 항해사에게 “당신은 사고원인을 숨기려고 계속 거짓진술을 하고 있다”며 몰아붙인다. 하지만 항해사는 진술거부에 들어가고 곧 그 수사관은 교체됐다.
도대체 이 정권은 얼마나 엄청난 것을 덮고있는 것인가. 그래서 박근혜는 세월호 시행령 문제에서 불거진 국회법에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며 여당지도부와 치킨게임까지 불사하고 있는것일까.
● 메르스와 의료시장화, 민주당
이번에 박근혜 정권은 메르스보다는 박원순 시장을 박멸하고 싶어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새누리당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흑색선전하며 계급갈등을 조장한다’는 비난까지 나왔고, 우익 단체의 고발을 받아 검찰은 박원순 시장의 ‘허위사실 유포’를 조사한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삼성병원 사무장같았던 사람들이야말로 허위사실 유포범들이다. 삼성병원장 송재훈은 새누리당의 메르스 대책위원이었고, 6월 4일에도 새누리당 초청간담회에서 ‘큰 문제가 아니다’는 ‘전문가 의견’을 내놓았었다.
같은 날 <조선일보>에 “방역당국에 대한 비난”이 “메르스 추가 확산 방지에 결정적인 장애”라는 특별기고까지 했다. 당시 송재훈은 삼성병원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지 뻔히 알았을텐데 말이다.
의사 1인당 매출액까지 비교하면서 ‘빅5’에서 1등을 차지하기 위한 이윤경쟁에 매달려 온 삼성병원은 정보공개와 영업중단을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부도 이 시장논리를 거스를 수 없었을 것이다. 고리원전을 폐쇄하면서도, 추가로 원전 2개를 더 짓고 ‘원전 폐로 산업도 새로운 돈벌이 기회’라는 정부이니 말이다.
그런데 2003년 민주당 정부의 사스 대응을 지금과 비교하며 칭찬하는 것은 일부 타당하지만, 빼놓는 게 있다. 초동대처 실패와 컨트롤타워 부재는 이번에 이 나라 의료시스템의 문제점을 극대화시킨 계기였지 전부가 아니라는 점이다.
90%가 넘는 민간병원 비중, 공공병원과 인력장비의 절대 부족, ‘비핵심’ 업무의 외주하청화, 장마당같은 응급실, 가족에게 떠넘기는 간병 등이 진정한 문제였다. 2003년에 민간병원들이 ‘사스 지정 병원’을 거부했던 일을 겪고도 이런 문제는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자유구역 내 영리병원 허용, 지방병원 민간위탁, 의료교육 시장화를 위한 한미FTA 등이 추진됐다. 2003년에 이런 점들을 지적했던 진보정당 등은 지금은 잘 보이지도 않지만, 과연 민주당과 소속 정치인들이 지난 계급적, 정책노선적 한계를 넘어서서 앞으로는 달라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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