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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현 시점에서 대규모 작업장이 저항의 중심이 될까?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5. 4. 3.

이상수


지난 정치혁신 세미나에서 한 동지의 제기로 열띤 토론이 있었다.


‘노동귀족’에 대한 비판이 있어 왔다. 그럼에도 지난 철도 파업처럼 대규모 작업장의 조직된 노동자들이 사회를 뒤흔든 투쟁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현 시점에서 대규모 작업장이 저항의 중심이 될 수 있을까?


노동귀족


‘노동귀족’론은 주로 우파 언론과 기업, 정부가 노동운동을 공격하려는 목적으로 유포해 온 해악적 이데올로기이다. 노동귀족론은 지배층과 평범한 사람들의 진정한 차이를 가리는 데 사용된다. 실업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열악한 처지는 모두 정규직 노동자가 너무 많이 가져가기 때문이라고 악랄하게 이간질한다. 


사실 이런 차이는 투쟁과 조직력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지킬 수 있었던 정규직과 그렇지 못했던 비정규직의 조건에서 주로 비롯된 것이다. 노동귀족론은 임금과 복지에서 주요 기준으로 작용해 온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공격함으로써 전체 노동계급의 조건을 하향평준화하는 효과를 낸다. 또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사측의 공격에 맞서 자신의 조건을 방어하려 투쟁할 때 번번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효과를 낳고 있다.


그러나 진정한 문제는 저들의 악랄한 ‘노동귀족’론이 우리 편에게도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설득력이 단지 오해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최근 사례로, 현대차 노조지도부는 사측의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는 ‘채용합의’를 해 준 바 있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금속노조 대의원대회의 결정이 있었는데, 이마저 금속노조 지도부에 의해 무력화되었다. 


노사협조주의적 지도부가 아닌 좌파지도부 시절에도 비정규직 투쟁에 대한 적극적인 연대는 보기 어려웠다. 현장의 노동자들도 지도부의 잘못을 지켜볼 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가 많지 않았다. 정규직을 세습하는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단체협약은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한 가닥 기대마저 저버리는 것이었다. 


이런 일들이 바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를 더 크게 느껴지게 하고, 정부와 사측의 이간질 효과를 높여왔다고 할 수 있겠다. 때때로 정규직 비정규직의 단결 투쟁이라는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도 있었지만, 단비는 잠깐이고 가뭄은 길었다.


대규모 작업장 투쟁


중국의 경기부양 조치에 힘입어 한국은 2008년 경제위기의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었다. 그리스처럼 엄청난 규모의 긴축이나 대규모 정리해고 같은 일에서 어느 정도 비켜갈 수 있었다. 덕분에 최근 몇 년간 철도파업을 제외하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이 사회를 뒤흔든 저항의 중심이 된 사례를 보기가 어렵다. 


오히려 열악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새롭게 투쟁에 나선 비정규직/하청 노동자들의 투쟁이 일진일퇴를 거듭하며 노동운동의 활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세월호 사태나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 등이 계급투쟁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대규모 작업장 투쟁이 저항의 중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을 특별히 높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한 편, 최근 유럽의 대규모 양적완화는 경제위기가 끝날 조짐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수익성 악화로 인한 생산 축소와 투기 거품으로 진퇴양난에 빠진 중국은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얼마나 위태로운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이익률 하락이 계속되며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이 나라 경제의 위기감도 높아지고 있다. 


조선/해운/건설/금융처럼 취약한 부문이나 만성적 공급과잉 상태인 자동차 산업 등에서 대규모 정리해고나 생산시설 축소/이전 등이 벌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위기가 깊어지는 정도에 따라 정부 재정위기를 떠넘길 공공부문에 대한 공격이 본격화할 수 있다. 


노동운동의 자신감이 높지 않더라도 주요 대규모 작업장의 조직력이 건재한 상황에서 일자리 자체를 위협하는 공격이 벌어진다면 큰 격돌이 벌어질 수 있을 것이다. 당장 가능성이 높지는 않지만 사회 전체를 뒤흔들 수 있는 대규모 작업장 투쟁의 가능성을 계속 주시할 필요가 있겠다.


무엇이 필요한가

 

<사진 : 민중의 소리>

 

대규모 작업장 투쟁이 폭발할 가능성을 따져보는 것은 물론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투쟁이 벌어졌을 때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일 것이다. 지난 철도파업은 노동귀족론으로 고립될 수 있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보여준 바 있다.


철도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고 파업 지속 여부가 불분명했던 첫 주에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불어 삽시간에 파업 지지 여론에 불을 붙였다. 이런 뜨거운 지지 열기가 철도노동자의 자신감을 한껏 높여주었고 파업은 예상을 뛰어넘어 22일간 지속되며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다. 수서발 KTX 법인 설립을 막지는 못했지만, 민영화 반대여론을 끌어올리고 박근혜 정부를 위기에 몰아넣으며 조직된 대기업 노동자들의 잠재력을 잘 보여주었다.


철도파업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사람이라면 “안녕들” 열풍이 노동자들의 자신감에 끼친 영향을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한 대학생의 대자보가 이런 큰 사회적 공감으로 빠르게 확산된 것은 철도파업이 단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의 문제가 아니라 ‘민영화’ 문제라는 점이 널리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 내내 철도노동자들은 규모 있는 집회와 일상의 선전전을 통해 철도 민영화를 꾸준히 알리고 연대를 호소해왔다. 국정원 선거개입에 항의하는 촛불집회에서도 철도노동자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넘어 더 넓은 노동계급의 이익과 자신의 투쟁을 연결시키고 실천할 때, 자신의 투쟁에 대한 지지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이기적인 투쟁이라는 비난에 당당하기 위해서도 다른 투쟁에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 비정규직 투쟁을 나몰라라 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투쟁하는 것은 결국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에도 걸림돌이 될 것이다.


최근 공무원 노동자들의 연금개악 저지 투쟁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자기 밥그릇에만 관심있다’는 비판 속에서 연대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공무원노조가 ‘공적연금강화’를 내세우고 있는 것은 사회적 지지를 모으기 위한 좋은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이것이 단지 국민대타협기구에 참여할 명분으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면 이를 알려나가기 위한 실제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연금 투쟁이 이 번 한 번에 결론이 날 것이 아니라 5년마다 재연될 가능성이 높은 장기전임을 감안한다면 이렇게 사회적 지지를 모으는 일이 더욱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선전전과 사회단체들에 대한 연대 호소를 강화해나가야 하고, 무엇보다 실천에서도 진정성을 보여야한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 중에도 공무원 노동자들을 흠뻑 지지하지 않는 듯한 분위기가 있는데, 가장 우호적인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부터 공무원 연금 투쟁이 모두를 위한 투쟁임을 알려나갈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총파업으로 노동자들이 모이는 날 공무원 노동자들이 참여하여 이런 호소를 한다면 가장 좋을 것이다. 세월호 1주기가 다가오는 이 시기에 사회적 투쟁에도 참여하며 적절한 방법으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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