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규(곰보금자리 프로젝트 활동가)
[<시사IN>에 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에게 감사드린다.]
화천의 곰들은 이따금 똥 속에 기생충을 같이 내어놓곤 했다. 자주는 아니고 몇 달에 한 번씩 보였다. 기생충은 개회충과 비슷하지만 조금 더 굵고 긴 모양의 곰회충이다. 곰회충은 공식적으로 한국에서 보고된 적이 없었다. 우리가 의뢰한 기생충은 충북대학교 기생충학 교실에서 최초로 동정하여 논문으로 발표할 예정이다. 곰 농장주들은 숱하게 보아온 곰회충은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곰을 많이 기르는 나라에서 곰회충은 관심 밖이었다.
기르는 동물에게 기생충이 있다는 사실을 대면한 우리의 즉각적 반응은 ‘구충(驅蟲)’이었다. 구충은 기생충을 쫓아낸다는 한자말이지만 우리가 약물로 하고자 하는 행위를 조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몸 속의 기생충을 죽이는 일이다. 현대 수의학은 몇 종의 가축화된 동물에서 몸 속의 기생충을 죽이는 약물을 꽤 충분히 개발해놨다.
개와 고양이에서 문제를 일으키는(그렇다고 판단하는) 기생충을 효과적으로 죽여서 몸 밖으로 배출하게 할 수 있다. 곰은 진화적으로 개와 가까운 몸을 가졌고, 개에게 사용하는 구충제로 곰 몸 속의 기생충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우리는 곰의 몸 속, 정확히는 장 내의 기생충을 죽여서 곰의 몸 밖으로 꺼내는 데에 성공했다. 구충제를 먹인 다음 날과 그 다음 날에 곰들은 똥과 함께 일제히 기생충을 내보냈다. 기생충이 나오지 않은 똥도 있었고 많게는 서너 마리의 기생충을 품은 똥도 있었다. 이제는 본능에 가까울 정도로 징그러움을 느낄 만한 선형동물이다. 동물단체에서 동물을 죽인 후 그 사체를 기껍게 마주한다는 것은 어쩌면 이상한 일이기도 하다.
곰회충에서 시작한 고민은 그들의 생활사(life cycle)라는 지식을 만나 쥐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진다. 화천의 곰 보호시설에서 곰 돌봄 수준이 높아지면서 다양한 먹이를 곰에게 풍족하기 준 결과로 쥐가 많아졌다.
기생충 연구에 의하면 아마도 곰회충은 쥐를 기회숙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 곰회충은 곰을 종숙주로 하여 다 자란 벌레는 곰의 소화관 안에 살지만 쥐에게도 감염이 되어 쥐가 곰에게 옮길 가능성도 생기는 것이다. 오히려 정상숙주가 아닌 쥐에게 곰회충은 더 큰 위협이 될 가능성도 연구된 바 있다.
우리는 쥐가 많아져서 곰에게도 회충이 늘었을 것으로 보고 쥐를 죽일지, 죽인다면 어떻게 죽일지를 고민했다. 이 쥐들은 대부분 시궁쥐다. 시궁쥐는 원래 살지 않던 곳에 인간이 옮겨 놓은 외래종으로 전 세계 인간이 사는 곳 어디든 살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사회는 외래종을 죽이는 데에 죄책감이 훨씬 덜하다. 마치 기생충은 죽여도 되거나 죽여야 하는 동물인 것처럼. 국가가 나서서 직접 죽이고 있기도 하다. 그래서 더 고민스러웠다.
곰회충과 시궁쥐와 사육곰 모두 동물이라는 점은 동물단체 활동가를 딜레마에 빠뜨린다. 우리는 누구를 죽이고 누구를 살리려는가? 이 고민을 일단락 지어준 것은 곰의 겨울잠 생리였다. 야생의 곰은 겨울잠을 자기 전에 몸 속의 기생충을 일제히 배출한다.
가을은 기생충과 충란이 가장 많이 배출되는 시기다. 그리고 겨울잠을 자고 난 봄에 곰의 장은 기생충 없이 깨끗해진다고 한다. 우리 곰들도 그랬다. 이번 봄 곰의 똥을 현미경과 기계로 헤집어보니 가을에 바글거렸던 충란이 싹 사라졌다. 봄, 가을로 곰에게 구충제를 먹이던 우리는 약간 허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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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등록 2024.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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