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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사형 집행 대신 흉악범죄 보도준칙을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10. 18.

김지수

사형제도에 대해 내가 처음으로 생각을 정한 것이 10살 때쯤인데 그 때부터 한 번도 사형제도를 진심으로 찬성해 본 적이 없다. 모태신앙인 나는 기억으로는 잊어버리고 무의식 속에 남았을 어릴 때부터 기독교 신앙인으로 컸다.

그런 나에게 부족하고 죄인일 뿐인, 생명과 죽음에 대해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비와 은혜만 쳐다봐야 하는 인간이 다른 인간의 잘못을 벌하기 위해 그를 죽인다는 사형제도는 생명에 대해 침범할 권한이 없는 인간이 그에 도전하는 교만한 제도였다.

굳이 종교적인 교리를 빌지 않더라도 인간이 인간을 죽음으로 벌하기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너무 부족하고 잘못 판단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그런 나에게 지금의 사람들의 생각들은 너무 괴로운 현실이다. 현실에서 사형제를 둘러싼 대중의 반응과 생각, 속된 말로 여론 지형이 살면서 제일 안 좋은 시기 같고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거라는 생각이 드니 문득 우울해졌다.

사형이라는 게 한 명 사형 시키면 열 명 사형 시키는 건 심리적 저항감이 훨씬 낮게 할 수 있고 그렇게 열 명 백 명 사형 시키다 보면 억울하게 사형당하는 이(속칭 엔자이 사형수)도 나오게 되어 있다.

얼마 전 이춘재에 의해 일어난 살인 사건으로 억울하게 누명쓰고 감옥갔다 출소한 윤성여 씨의 사연이 수십 년 후에야 알려지고 재심 끝에 무죄를 선고 받았다. 만약 윤성여 씨가 그 당시 수많은 살인범들처럼 사형 선고를 받아 사형 집행 당해 죽었다면 그 무죄가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그나마 살아 있었기에 무고한 수십년의 감옥 생활에 대한 조그만한 보상이라도 고민이 가능한 것이 아닌가? 어쩌다가 이렇게 여론이 원사이드하게 기울어는지 생각해 보니 흉악 범죄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언론에서 흉악범죄와 흉악범에 대한 보도를 마치 예전에 자살사건 보도하듯 매우 자극적으로, 말초적인 클릭질 장사에 써먹고 있다. 구체적인 범행 방법, 도구, 장소, 동기를 보도한다. 반면 한 사람이 흉악범으로 변하게 만든 조건들(중 상당수는 사회 구조와 분위기를 바꿔서 개선 가능한 것들임)에 대한 고민에는 소홀하다.

제일 대표적으로 선정적인 보도가 난무했던 것이 유영철 강호순 정남규 김길태 등의 흉악범들에 대한 보도였다. 최근에는 고유정 이은해 이춘재 조선 최원종 최윤종 등의 범죄에 대해 그런 자극적 보도들이 판을 친다.

처벌이 약하고(물론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특정 흉악 범죄는 처벌 강화가 필요) 사형을 시키지 않고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서 그런 것처럼 여론을 만들었다. 나는 지금이라도 흉악범죄 보도준칙을 자살사건 보도준칙처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살사건 보도준칙이 생기고 언론들이 어느 정도 그에 의거해 자살사건을 보도하기 시작하면서 한국의 자살률이 예전의 3분에 2 정도로 떨어졌다. 자살의 원인인 경제적인 소외가 별로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그랬다(물론 제3금융권을 대상으로 한 이자율 제한 조치도 한 몫 했다고 생각).

마찬가지로 흉악범죄도 보도준칙을 만들어서 모방범죄를 예방하고 대중이 흉악범을 악마화하고 사형을 부르짖지 않도록 여론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동훈이 사형을 다시 집행하겠다고 인기에 영합하는 짓을 하며 사형수들을 사형 집행 시설이 있는 서울구치소로 이감한다는 말을 듣고 너무 씁쓸한 마음이 든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사형 집행이 아닌 범죄의 구조적 원인 제거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정 교화, 흉악범죄 보도준칙이다

(기사 등록 2023.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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