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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전체주의적 집단"들의 전성기, 신자유주의 시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7. 2.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며칠 전에 아시아학을 공부하고 연구하는 북유럽 동료들이 모인 자리에 가게 됐습니다. 거기에서 한의학과 도교 등을 공부하는 한 박사과정생 분을 만났습니다. 그 분은 한국과 관련된 한 가지 재미있는 (?) 이야기를 해주었죠. 그 이야기인즉, 몇개월 전에 도교를 다루는 한 국제 학회에 갔는데, 거기에서 증산도 계열의 한 한국 신흥 종교가 운영하는 고등 교육 기관에서 파견된 몇 명의 행정가형 학자 (?)들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그 종교 단체나 그 대학의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인데, 일단 민감한 이야기이기에 여기에서 익명 처리하도록 합시다. 그 박사과정생이 놀랜 것은 그 교육 기관 소속의 학자 (?)들의 패권적인 태도이었답니다. 다음 학회를 그들이 운영하는 교육 기관에서, 그들의 돈으로 주최하기로 합의돼 있었기에, 그들의 태도는 한 마디로 오만불손의 극치이었다는 이야기이었습니다.

본인들의 교리가 진리인양 이야기하고, 의견을 피력하는 것보다는 설교하거나 가르치는 투이었고, 참석자들의 동의도 없이 학회 분과들을 촬영해 나중에 그 교육 기관의 홍보 등의 목적으로 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박사과정생이 제게 물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이런 종교 단체들에 대한 견제라든지 법적 감시 등이 느슨해서, 이 정도로 기고만장하여 "돈 자랑"하면서 외국에 나서 주인 행세하는 것이냐고요.

이런 질문에 제가 과연 무어라 답할 수 있었겠습니까? , 굳이 그렇게 이야기하면, 한국은 강성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대형/초대형 종교 단체에 대한 한 아주 "부드러운" 태도를 견지해온 부분은 분명 있습니다. 그 정도로 그들의 "영향력"을 정치인이나 관료들이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윤 정권은 노조에다 "회계 불투명성" 등을 거론하지만, 사실 종교 단체의 경우 종교 활동비를 비과세 항목으로 처리하는 거고, 그 투명성 역시 매우 낮은 것입니다. , 이 비과세 특전을 이용해 비자금 조성 등을 하는 게 쉽단 이야기죠. 종교 단체들이 외부 회계 감사 등을 잘 안받습니다.

, 별로 감시 받지 않는 큰 돈을 만들기가 쉬운 건 종교 단체 쪽인데, 당연 그걸 무기 삼아 어딜 가도 "주인 행세"를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국은 자본주의 세계체제 핵심부에 편입돼 가면서, 종교 인구 자체가 좀차 감소돼 지금 종교 없는 사람들은 거의 3분의 2 정도 된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위에서 언급한 증산도 계열의 종교 단체뿐 만 아니라 특히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중심으로 뭉치는, 결속력이 강한 종교 집단들의 장사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한국에서 성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구조적인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요?

신자유주의란 이윤율 저하의 시대며, 동시에 초대형 기업들이 주요 행위자로 부상된 "대기업 시대"입니다. 이외에는 신자유주의는 불확실성과 불안, 외로움, 사회의 파편화와 개인의 무력화 시대, 가족 등이 옛말이 돼 가는, 그런 시대입니다. 혼밥, 혼술, 고독사의 시대, 만성적인 불안과 공포의 시대죠. 이런 시대에, 강력한 리더를 중심으로 해서 일사불난하게 움직이고, 큰 돈을 갖고 비생산 고소득 부문에 투자하고, 무력해진 개인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단결력이나 "강한 후견인"의 이미지로 무장된 집단들은 사실 그 황금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카리스마성과 집단 결속이 강한 종교 단체부터 그 장사에 순풍이 부는 것입니다. 신도들이 얼마 안되어도 착취율 (신도의 총소득에 비해 신도가 종교 단체에 바치는 금액)이 높아 소득이 비교적 좋은데, 신도들이 많아지면 아예 "대기업"격이 됩니다. 원자화의 시대에 그런 단체가 제공하는 (의사) 연대감 체감 서비스 ("가족 같은 느낌"), 인맥을 만들 기회, 심적 안정, 초자연적인 힘을 호출함으로써 생기는 주관적 자신감 등의 서비스는 늘 수요가 있습니다.

, 종교 인구가 감소해도 단골 고객층은 어느 정도 보장돼 있는 거죠. 그렇게 해서 생긴 잉여를, 해당 종교 단체 리더가 고소득 업종 (부동산 임대업, 고리대 격의 대출업 등)과 정치인 영입/포섭, 즉 정치적 영향력 구입에 적절히 투자한다면... , 그런 경우 그런 단체는 "주인 행세"를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겁니다. 부자나라 한국의 종교업 부문의 대기업이니까 밖에 가서도 얼마든지 거드름을 피울 수 있죠.

그런데 나라 밖을 봐도, 사실 신자유주의 시대는 철저하게 비민주적인 '국가' 규모의 집단들에게는 그야말로 전성기 격이 된 것 같습니다. 대개 그런 집단들에게는 어떤 "자원"에 대한 독점권이 있는 것입니다. 러시아 같은 경우 소련이 물려준 핵을 포함한 무기고들과 석유나 천연가스, 그리고 중앙아시아 출신의 가난한 이민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이 있는가 하면, 중국 같은 경우에는 수억 명 민공 (농촌 출신 저임금 노동자)의 값싼 노동과 엄청난 시장, 희토류 등의 자원이 있는 거고, 걸프 지역의 절대 왕국들에게는 지하 에너지 자원과 함께 역시 수백만 명의 이민 노동자들의 저임금 노동이 있습니다.

그런 자원을 독점적으로 소유, 관리하면서 그들은 구미권에서 이미 상상하기 어려운 초대형 투자를 비교적 쉽게 결정, 집행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상 가장 규모가 크고 비용 많이 드는, 적어도 미화 5천억 이상 어치의 사우디 NEOM 프로젝트는, 신자유주의 시대의 절대 왕권이 손댈 수 있는 그런 프로젝트의 대표격입니다. 그런 과감한 투자들은 낭비성도 심하지만, 중국의 IT, 반도체, AI 투자처럼 관리만 철저히 하면 "추격 효과"를 상당히 발휘할 수도 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그 관할 인구에게는 "불안과 불확실성, 타락한 서양 등"으로부터 "지켜주는 후견인"의 이미지를 각인시켜 공포와 함께 나름대로의 자발적 복종도 이끌어내 대민 통치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국가 자본체의 내부 구조는 통일교나 신천지, 아니면 사랑제일교회 만큼이나 상명하달적이며 자유주의, 민주주의적 요소들이 별로 없지만, 그 국제적 위상은 신자유주의 시대 후기에는 대단히 높아진 것입니다.

사실 많은 면에서 이들 신흥 국가 자본체 집단들은 - "전체주의적 집단"이라는 평가를 들으면서 - 이미 구미권 세력을 상당히 압박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구미권발 신자유주의는, 결국 이렇게 부메랑처럼 돌아와서 오히려 구미권 위상의 상대적 약화로 이어진 겁니다.

구미권에서는 "계급 투쟁"이란 이미 어느 정도 제도화된 것이지만, 중국이나 러시아, 아니면 사우디에서는 그야말로 "목숨을 버릴 각오"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서방식 민주주의를 당연시한 적도 없고, 그런 민주주의 하에서 살면서 발전을 이룬 적도 없는 사회들인 러시아나 중국, 사우디에서는, 밑으로부터의 반체제 투쟁이란 단순한 제도적 민주화 이상의 급진적 목표를 향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목숨을 버릴 각오"로 벌일 투쟁이라면 이는 결국 "정의로운 사회"라는 미래 비전을 위한 투쟁이어야 할 셈입니다. 지금과 본질적으로 다르고 지금보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여러 약자들에게 훨씬 나은 "정의로운 사회"의 비전이 제시돼야 할 터인데, 이 비전은 예컨대 기후 문제 등에 중점을 두는 서구 좌파의 미래관과 또 여러 모로 다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결국 중국과 러시아 등의 역사적 경험이나 민중들의 기대치 등에 맞는 그런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것부터 저들 나라들의 좌파의 당면 과제일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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