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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개천' 자체를 없애려는 운동, 사회주의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1. 31.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근대'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지만, 매우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바로 '수직적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 열린 것입니다. 물론 전통 사회라고 해서 그런 이동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서방의 경우, 대대로 부를 모은 상인 가문은, 궁극에 가서 귀족 작호까지 하사 받는 것은 종종 있었던 일이죠. 조선의 경우에는, 조선 건국 초기 태종 치세만 해도 과거 (문과) 급제자 중에서는 절반 정도는 사족 신분임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 대부분의 경우 저들이 향리나 부유한 양민 출신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지요. 몇 대에 걸쳐서 이루어지긴 하지만, 특히 근세 사회는 '수직 이동'의 가능성들이 대폭 증가되어 실질적으로 꽤 있었습니다. 한데 거기에 비해 '근대'란 비약적으로 더 많은 수직적 이동의 기회를 부여한 것이죠.

그 이유는 '세습적 신분 철폐'만은 아니었습니다. 산업화와 국가 관료 기구의 팽창은, 특히 고등 교육을 받은 과거 '하층 신분' 출신들에게는 예전에 없었던 "고속 출세"의 기회를 부여하게 돼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정권의 정치적 성격마저도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극우 반동들이 주도하는 보수적인, 권위주의적인 근대화라 해도, 성장이 빠르기만 하면 일단 엄청난 수직적인 상향 이동이 일어나게 돼 있었죠.

박정희, 전두환, 이명박의 공통점이 무엇인가요? "극우적 성향의 정치 지도자"라는 점 이외에 세 사람 다 "찢어지게 가난한" 농민/막노동자 집안 출신들이었습니다. 이들 중에서는 면서기의 아들인 노태우는 어쩌면 "비교적 유복한 가정 출신'으로 통했을 것입니다. 한데 이들에게 사회적인 상향 이동의 가능성을 준 것은 바로 군이나 재벌, 그리고 군사 교육과 일반 고등교육의 대대적 팽창이라는 시대적 상황이었습니다.

사회적 귀족으로 성장한 피착취층의 출신들은, 신분 상승이 이루어지고 나서 바로 피착취층의 최악의 억압자가 된 것입니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절대 노조를 인정할 수 없더"는 말로 유명한 (?) 정주영 회장 역시 빈농 출신이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고 해서 그 용은 개천을 관대하게 다루지 않았습니다.

한국뿐만인가요? 20세기의 세계 전체를 봐도 여태까지 유례 없었던 계급적인 상향 이동은 거의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개천에서 용이 나는" 상황은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에는 "세계 보편"이었던 것이죠. 심지어 극우적 성격의 제정 러시아의 가장 보수적인 기관인 군부에서마저도, 1914년에 장교 중에서는 귀족 출신들은 53%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장군들 중에서도 조부가 농노인 경우들이 종종 있었던 것입니다. 일단 사관학교 등을 통해서 ''이 될 자가 '개천'에서 올라올 수 있는 대중 사회는, 사회주의 지향적인 1917년 혁명 이전에도 이미 형성돼가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의 과제란, 이보다 훨씬 급진적이었습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단순히 개천에서 누구나 다 용이 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려는 것도 아니었고 아예 그 '개천' 자체를 없애고자 했습니다.

, 노동자 출신이 관리자가 꼭 되지 않아도 노동자로서도 관리자와 평등할 수 있는, 그런 사회를 만들려고 한 것이죠. 혁명 초기의 노동자들의 "공장 관리 위원회"나 레닌이 중시했던 "노동자-농민 감찰원" (기층민들이 국가 관료를 감찰할 수 있는 기구), 노조들에게의 일부 행정적 권력의 이양 등등은 바로 이와 같은 "기층민 힘 키우기" (empowerment) 프로젝트의 일환이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1920년대말까지 어느 정도 가동됐다가 그다음에는 사실상 정지, 폐기되고 말았습니다. "공장 관리 위원회"들은 이미 1919년쯤에 그 명을 다했고, "노동자-농민 감찰원"1920년대중반부터 스탈린파에 의해 장악되어 1934년에 일반 감찰원으로 개편됩니다.

부하린 파에 속했던 톰스키의 지도를 받았던 소련 노조는 1920년대말까지 어느 정도의 자율성을 보유했다가, 톰스키가 노총 위원장에서 해임되고 스탈린파에 충성해온 스웨르니크가 노총 위원장직을 받은 1930년부터 노조는 그냥 당의 "하부 기관", 어용 노조로 전락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1920년대말 이후에는 소련에서 "개천""꼭대기"가 분명히 다른 서열적인 사회가 거의 완전하게 복원됩니다.

한데 평등화 프로젝트가 폐기되고 나서도, 혁명을 거친 사회는 여전히 거의 파격적인 신분 상승의 가능성들을 그 하부 구성원들에게 허용해주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만큼 말기까지 관료 기구와 교육 등이 계속 팽창해온 부분도 있었습니다. 지금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는 푸틴과 같은 기층 노동자 출신의 소련 말기 하급 관료 출신들은, "고속 출세"의 기회를 누린 "마지막 세대"인 셈입니다. 이미 사회 귀족으로 태어난 그들의 자녀들은, 더 이상 이런 "고속 이동"이 불가능한 신자유주의적인 현대판 세습 신분 사회 위에서 군림하게 돼 있습니다.

<기생충> 같은 명작들이 너무나 잘 보여준 사실상의 "현대판 양반""현대판 천민"의 유사 세습적 사회인 신자유주의는, 2008년 세계 공황 이후로는 만인들의 지탄의 대상이 되었죠. 구미권에서는 "신자유주의 비판"은 지금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비판은 대부분의 경우에는 수직적 이동이 가능했던 케인즈주의 사회를 "되찾자"는 취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러시아에서도 스탈린주의 좌파의 신자유주의 비판이란 대개 "재능이 있는 노동자 누구나가 대학 가서 교육 받고 관료 될 수 있었던" 스탈린 시대를 찬양하는 데에 그치고 맙니다. 케인즈주의나 스탈린주의가 보다 많은 수직적 신분 이동을 가능케 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이지만, "복원"이란 이미 비현실적일 뿐만 아니라 과연 바람직한가 라는 질문도 던질 만합니다.

케인즈주의도 스탈린주의도 "성장주의" 사회이었는데, 기후 정의 같은 과제를 해결하자면 우리는 "탈성장"을 마땅히 지향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는, 1917년 혁명의 본래의 이상, "개천" 그 자체를 없애려는 "평등 지향"이야말로 전 미래 지향적이라 봅니다. 탈성장과 진정한 의미의, 철저히 평등한 사회주의가 같이 가야 하는 것이죠.

(기사 등록 2023.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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