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세월호의 길’과 ‘이태원의 길’
10.29 이태원 참사 3차 시민추모제에 참석하면서 여러 감정이 들고 생각을 하게됐다. 먼저 가장 큰 것은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분노였다. 이 정부는 끝내 사과하지도 어떤 책임자들도 사퇴시키지 않았다. 이상민 사퇴와 해임을 요구하던 사람들이 어제 듣게 된 것은 자기들끼리 권력 다툼하다가 나경원이 사퇴하고 해임됐다는 소식 뿐이었다. 따라서 우리는 이태원 참사를 끝까지 기억하면서 그 책임자와 가해자들도 끝까지 기억해야 한다.
또 어제 유가족들의 절규를 들으면서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결국 왜 우리가 유가족들의 절규와 호소에 응답하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이룰 수 있을만큼 큰 힘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 이태원 참사에 분노하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운동은 아직 충분히 강력해지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가장 앞장서 가로막은 것은 물론 정부와 여당이다. 권성동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태원(참사)이 세월호 같은 길을 가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시민단체들이 유가족을 앞세워 정쟁에 이용했고 혈세가 낭비됐다’는 프레임을 설정했다.
그러나 세월호는 시민단체가 유가족들을 선동한 경우가 아니라, 거꾸로 유가족들의 분노와 행동이 다른 이들을 따라 나서게 만든 경우이다. 박근혜 정부가 아무리 유가족들을 사찰하고 압박해도 그것을 막을 수 없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정부는 유가족이 연결되고 모이지 못하게 막는 것을 참사 대응책의 첫 번째 과제로 삼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어떤 압박도 사랑하는 이의 억울한 죽음을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억누르지 못했다. 유가족들은 온갖 방해를 뚫고서 서로를 연결했고 모여서 목소리를 냈다.
엄청난 비극의 피해자들이 또다른 비극을 막기 위해 어떤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는 것, 그것이 더 많은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슬프면서도 숭고한 광경이었다. 이것이 ‘세월호의 길’이고, 그것은 세상을 바꾼 의미있는 길이었다. 그것은 생명과 안전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 인식, 규범,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물론 세월호의 진실은 아직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고 그 책임자들은 진정으로 처벌받았지 않았다. 생명과 안전에 대한 여러 법과 제도들은 윤석열 정부의 등장 이후 후퇴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이 이런 한계를 낳았는지 평가하고 과제를 세워야 한다.
그것은 세월호 가족들의 용기와 행동을 왜 우리가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평가가 돼야 한다. 또 이것은 또 우리의 저항과 연대가 더 폭넓고 강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민사회단체들은 과연 분열과 갈등을 뛰어넘어서 충분히 강력하고 폭넓은 연대를 건설하며 세월호 가족들에게 힘이 되어 주었는가?
노동운동은 과연 부문의 울타리를 넘어서 세월호를 자신들의 문제처럼 싸울 수 있었는가? 우리는 과연 세월호 때의 이런 한계와 부족함을 넘어서서, 지금 이태원 유가족들에게 정말로 큰 힘과 연대를 보여주고 있는가? 그래서 실망과 좌절이 아니라 용기와 희망을 주고 있는가? 안타깝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돌아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가 직면한 것은 ‘세월호의 길은 절대 다시 없다’며 유가족들을 괴롭히고 있는 더 강경하고 더 잔인한 권력이다. 그리고 이태원 유가족들은 이미 세월호 유가족들과 서로의 경험에서 배우고 있고, ‘세월호의 길’을 넘어서 나갈 길을 고민하고 있다. 우리는 이 분들의 뒤를 따라야 하고 듣고 배워야 한다.
“권성동 씨가 세월호를 답습하지 말라고 그 얘기를 딱 들었을 때... 그때부터 저를 포함해서 다른 유가족들이... 세월호 학습을 했고... 그러다 보니까 너무 상황이 똑같아요... 아 이걸 계속 공부해야겠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까지 저들이 시나리오를 써 온 대로 흘러갔구나... 세월호 가족분들이 많은 말씀들을 해 주셨어요.... 저희들 생각을 알고 있더라고요. 그분들은 경험을 했으니까”(이종철 이태원 참사 유가족협의회 대표) https://bit.ly/3CGPHtU
● ‘공안탄압’과 종북몰이에 대한 반대가 흔들리지 않기를
최근 국가정보원과 <조선일보> 등 족벌언론들이 한몸처럼 움직이며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실시간 중계를 하면서 민주노총 등을 압수수색한 것에 대해 많은 이들이 윤석열 정부가 기획한 한바탕 쇼라고 비판하고 의심하고 있다.
국정원과 족벌언론들의 호들갑은 어처구니없는 것이 한 두개가 아니었다. 북한 간첩과 접촉해 지하조직을 결성한 사람들이 ‘서로 연락을 안했던 것이 더 의심스럽다’? 서로 연락을 했으면 이거야말로 지하조직의 증거라고 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들이 친북 지하조직의 특징인 진술거부권을 행사했다’? 진술거부권은 수많은 피의자들이 사용하는 기본적 권리이고 과거에 전두환조차도 검찰 수사받을 때 행사했던 것이다. ‘외국계 메일과 클라우드를 사용해서 교신하는 신종 첨단 수법을 보여줬다’? 요즘 지메일과 클라우드 등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더구나 국정원은 그렇게 난리를 치고도 아직 무엇도 입증하지도 못해 관련자 중에 한명도 구속기소하지 못했다. 물론 이렇게 난리쳐서 결국 몇명을 구속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년전에 ‘충북동지회(청주간첩단)’ 사건을 돌아보자. 그때도 ‘간첩과 접촉했다’며 사람들을 구속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입증돼지 않아서 지금은 모두 석방된 상황이다.
더구나 이번에 국정원이 지하조직의 수괴로 지목한 사람은 현재 사회운동에서 멀어진 말기암 환자이다. 결국, 이번에도 ‘공안정국’ 조성을 위해 과장과 조작이 분명해 보인다. 이를 통해 윤석열 정부는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고, 지지층을 결집하고, 반대파들을 분열시키려 한다.
돌아보면, 노무현 정부 때는 이런 공안탄압이 상대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다시 종북몰이 광풍이 일어났다. 그 절정은 ‘내란음모' 조작 사건과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이었다.
2016년 촛불 이후 문재인 정부 때는 다시 공안탄압이 약화했다. 이 기간 동안 국가보안법으로 기소, 구속된 사람의 수는 이명박근혜 때에 비해서 1/5 정도였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다시 종북몰이와 공안탄압이 급증하고 있다. 심지어 문재인과 이재명까지 ’종북‘으로 엮어넣으려는 시도까지 보인다.
이 과정을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자유주의 개혁정부가 들어서서 남북 화해와 교류를 추진하면, 공안 탄압과 사건 조작 등도 어느 정도 약화한다. 그런데 권위주의적 보수우파가 다시 집권해 남북간 대결을 추구하면서 다시 공안 탄압이 강화된다.
그리고 기존의 자유주의 정부에서 진행하던 남북간 대화나 민간 교류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간첩과 이적행위‘로 재해석하며 종북으로 몰아간다.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로 보인다. 이런 일이 벌어질 때 초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비판한다.
2012년에 박근혜 정부가 국정원 댓글 조작을 덮기 위해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터트렸을 때 많은 이들의 초기 반응도 그랬다. 초기에는 민주당까지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난데없이 무슨 내란음모라는 것이냐‘라며 박근혜 정부의 의도와 조작을 의심했다.
하지만, 국정원과 검찰과 언론들이 구체적인 피의사실들을 흘리며 ’종북몰이‘를 더욱 본격화하자 ’뭔가 있는 거 아닌가‘하며 하나둘씩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민주당뿐 아니라 진보정당까지도 ’종북‘으로 낙인찍힌 사람들과 손절하기 시작했다. ’간첩은 잡아야 한다‘며 진중권같은 이들은 앞장서 종북몰이에 동참했다.
결국 통합진보당의 강제해산이라는 국제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초유의 사태로 발전해 갔다. 박근혜 정부는 정권 초기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 만들어진 불신과 갈등의 골은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는 그 경험에서 배운 것이 있을 것인가. 이번에는 결코 다시 그와 같은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을 기대한다.
● 윤석열 이란 발언의 뒷부분은 왜 주목받지 못할까?
윤석열의 "UAE는 우리의 형제 국가다. 형제국의 적은 우리의 적이다. UAE의 적이 이란이고, 우리의 적은 북한이다" 발언이 ‘외교참사’라는 인식은 국민의힘이나 족벌언론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치된 견해가 되는 것 같다. 충분히 동의할만한 지적과 비판들이다.
그런데 이 발언이 ‘이란과의 외교관계를 망쳤고, 이란은 무시할 수 없는 나라이며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인식에는 사실 썩 동의하기 어렵다. 물론 지정학적이거나 외교적인 ‘현실주의’에 입각하면 맞는 말이다.
그런데 그 논리이면 ‘일본은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나라이고 우리의 국익을 위해서도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말도 성립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개혁언론과 지식인들마저도 ‘위안부 합의에 대한 지나친 반응이 한일관계를 망쳤다’는 주장으로 나가게 했다.
즉, 아무리 이란이 무시할 수 없는 나라이고 외교와 ‘국익’이 중요해도 틀린 것은 지적하고 비판해야 한다. 그래서 만약 이번에 윤석열이 이란 정부가 민주화 시위를 유혈진압하고 대량 사형 집행을 하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면 개인적으로 그것을 비판하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물론 윤석열이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의 문제가 남지만 말이다.
따라서 윤석열 발언의 진정한 문제는 ‘외교관계와 국익’의 문제이기 보다는 그 발언이 너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무지와 무식에 기초했을뿐 아니라 호전적이며 평화를 해치는 관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리고 바로 그 점에서 윤석열 발언에서 더 큰 문제는 뒷 문장(“우리의 적은 북한이다”)이었다고 생각한다.
윤석열의 이러한 ‘북한 주적’ 발언은 이미 대선 후보 때부터 시작됐고, 지난 1년 내내 계속돼 왔고, 심지어 국방 안보 정책과 현실, 정부의 방향과 기조에도 그대로 반영돼 왔다. 군사적 대응의 강화와 한미일 군사훈련의 반복이 있었다. 그것은 북한의 반작용을 낳았고, 한반도의 긴장은 지금 두려울 정도로 높아져 있다.
올해는 역사상 최대 최다 규모의 한미 군사훈련이 예정돼 있고, 북한도 여기에 가만히 구경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우발적 요인도 군사적 충돌로 연결될 수 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국지전이 벌어질 가능성은 매우 높고, 그것이 전면전으로 발전할 작은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서재정 교수(개인적으로 한반도 안보와 평화 문제에서 가장 신뢰하는 학자 중 하나이다)는 일본의 최근 ‘반격능력 강화’를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일본이 ‘반격’을 위해 토마호크 미사일을 발사한다면 이들(중국과 북한)은 당연히 선제공격이 시작됐다고 판단할 것이다. 서둘러 반격할 것이다... 확전은 필연적 귀결이다... 2023년 독자 여러분의 평안을 기원한다.”
결국, 윤석열의 ‘북한 주적’ 발언과 그것에 이어진 행동이야말로 지난 1년 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순식간에 망가뜨린 ‘대참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차이점은 이란 발언에 흥분하고 비판하는 많은 이들이 ‘북한 주적’ 발언에는 큰 관심과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윤석열이나 국민의힘이 아무리 문제가 많다도 상대방을 악마화하거나 무조건 반대하는 진영논리는 틀렸다’는 지극히 맞는 지적을 하는 수많은 지식인들도 북한을 악마화하고 무조건 반대하는 진영논리에는 크게 반발하지 않는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와 국정원이 ‘민주노총 간부가 북한 간첩과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는 카드를 들고나온 것이다. ‘이재명도 쌍방울이 북한에 보낸 돈과 관련이 있다’는 말을 흘리는 것이다. 그러면 ‘공안 정국은 안돼지만 간첩은 잡아야 한다’고 반응할 것을 아니까.
미국과 론스타같은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로비를 하고 돈을 받은 사람들은 용서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까지 될 수 있지만, 외국 여행가서 북한 사람과 만나기만 해도 처벌될 수 있는게 이 나라이니까.
● 프랑스 연금개혁 반대 총파업과 한국 사회운동
어제 프랑스에서 각기 다른 정치적 성향을 가진 거의 모든 노조 연합체 8개(CGT, CFDT, FO, FSU, Solidaires, UNSA, CFTC...)가 모두 힘을 합친 총파업 집회가 벌어졌다. 전국에서 거의 80만 명이 참가한 거대한 시위와 행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이번 파업과 집회의 핵심 이슈는 ‘연금 개혁’이다. 지금 마크롱 정부는 프랑스의 국민연금을 더 많이 내고 더 늦게(62세->64세) 받는 방향으로 개악하려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프랑스와 한국의 공통점을 볼 수 있다. 두 나라 국민들 모두 지금 전세계적인 인플레, 에너지 가격 인상, 고금리, 공공요금 인상, 임금 정체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에 시장에 가보거나, 전기와 가스요금 고지서를 받아본 사람은 헉 소리가 났을 것이다. 대출받아서 전세 들어간 사람들은 요즘 죽을 맛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버스와 지하철 요금 등도 올라간다고 하고, 더구나 연금도 개악한다고 한다. 아무런 노후 대책없이 그나마 국민연금 하나만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것은 결코 좋은 소식이 아니다. 지금 내는 보험료도 부담인데 더 올리고, 65세부터 받는다는 것도 까마득해 보이는데 몇 년 더 늦게 준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러면서 부자과 대기업들은 세금을 깍아준다니 기가 막힐 것이다.
이런 상황과 요소들은 프랑스와 한국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그런데 프랑스와 한국의 차이점들이 있다. 먼저 프랑스는 한국보다 훨씬 사회복지가 발달해 있는 복지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한국처럼 모든 게 시장에 맡겨져 있는 그런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도 연금개혁에 대한 반발은 강력하다.
또 프랑스의 지금 집권 정부는 중도우파이다. 반면 한국의 윤석열 정부는 프랑스로 따지면 마크롱보다는 르펜의 국민전선과 비슷하다. 혐오와 차별을 선동하며 시민들을 갈라치는 강성 우파이다. 지금 윤석열 정부는 종북혐오, 노조혐오, 여성혐오, 장애인혐오 등을 이용하며 시민들을 갈라치는데 여념이 없다.
그런데 프랑스와 한국의 이상한 차이점은 한국에서는 연금개혁에 대한 반대보다는 지지 여론이 더 높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TV 토론을 돌아보면 윤석열 후보가 주도해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모든 후보들의 초당적 합의 장면이 기억날 것이다. 이 문제는 ‘40년 후면 기금이 고갈된다’는 부풀린 예언 속에 청년세대와 노년세대 갈라치기가 먹히고 있다.
그래서 ‘기성세대의 청년세대에 대한 착취를 막고 재정의 안정성을 이루기 위해 개혁은 불가피하다’는 프레임이 아주 강력하고 보험료를 올리고 지급금액을 낮추고 지급연령을 늦추는 방안들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민주당은 물론 진보정당에서도 반대 목소리를 찾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서는 정치적 노선이 다른 8개 노조 연합체가 다같이 손잡고 총파업을 하는 이런 모양을 보기도 어려워 보인다.
서로에 대해 불신과 갈등이 여전하다. 검찰과 언론이 누군가를 ‘부패 비리범’으로 몰아가면 다른 쪽은 ‘뭔가 있으니 그런 것이고 떳떳하면 조사 받아라’라고 외면한다. 검찰과 언론이 또 누군가를 ‘불법 폭력을 저지르는 귀족노조 집단’으로 몰아가면 ‘윤석열도 싫지만 노조도 싫다’며 외면한다. 검찰과 언론이 또 누군가를 ‘북한 간첩과 접선한 종북’으로 몰아가면 ‘공안 정국은 문제지만 간첩도 잡아야 한다’면서 외면한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정치, 경제, 사회, 의료, 복지, 교육, 외교, 안보, 인권, 소수자... 모든 분야에서 전방위적 공격과 후퇴를 추진하고, 심지어 이태원 유가족들까지 잔인하게 짓밟으면서도 이 모든 분야에서 모든 사람이 다같이 손을 잡고서 힘을 모아 싸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것 같다. 물론 프랑스의 이러한 단결이 반드시 지속되고 승리할 것이라는 보장도, 한국의 이러한 분열이 계속될 것이라는 보장도 없다.
●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 지지 집중행동’을 다녀와서
어제 ‘대구 이슬람사원 건립 지지 집중행동’을 다녀왔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 등이 공동주최하는 행사였고 혐오, 차별,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과 연대하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벌써 2년이 넘게 무슬림유학생들과 일부 주민들 사이의 갈등과 대립으로 몰아가면서 대구 북구는 심각한 이슬람포비아, 혐오, 차별의 난무하고 있는 현장이 돼버렸다.
먼저 대구 북구청 앞에 가서 이 문제를 해결하키는커녕 갈등과 대립을 앞장서 부추겨 온 북구청과 일부 정치종교 세력을 규탄했고 이어서 직접 이슬람사원 건립 현장에 가서 현재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서 보니 정말 사태는 심각했다. 이슬람사원이 건럽되고 있는 현장 바로 앞에 잘린 돼지머리를 전시해 놓고 있었다. 이슬람의 종교적 전통에서 볼 때 이것은 너무나 폭력적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비건 지향을 선택한 이후부터 생고기가 나오는 사진이나 영상에 거부감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 점에서도 용납하기 어려웠다. 최근에 본 영화 <해방>에서 탈주노예들의 잘린 목을 나무에 매달아 놓고 노예들을 겁주는 장면이 떠올랐다.
현장에서 특히 욕설과 고성을 지르며 우리를 위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 사람은 ‘우리가 언제 혐오와 폭력을 저질렀다는 것이냐. 거짓말 말라’고 소리치고 있었는데, 그러면서 험한 욕설을 내뱉고 있었고, 내가 옆에 가서 소심하게 ‘욕설만은 하지 말아달라’고 하자 ‘맞고 싶냐’고 위협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얼마나 모순인지도 모르는 것 같았다.
또 그 사람들은 ‘주택가에 이렇게 가까이 종교 시설이 들어오는 곳이 세상에 어디있냐’고 주장하고 있었는데, 당장 우리 동네에도 바로 집 앞에 기독교, 불교 시설과 심지어 무속 점집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실에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런 혐오, 차별, 폭력 속에서도 2년간 의연하고 꿋꿋하게 싸우고 있는 무슬림 유학생들을 직접 볼 수 있었고, 그들과 연대하는 다양한 종교인들과 경북대 교수님들과 학생들, 전국에서 달려온 사람들을 볼 수 있어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간담회에서는 그런 분들의 다양한 목소리와 제안들을 들을 수 있었다. 마침, 어제 북구청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이 나온 것도 이런 지지와 연대의 힘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보수우파의 아성이라는 대구에 갔다오면서 한국에서 혐오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극우개신교나 보수우파세력의 변화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반공주의나 지역주의를 기반으로 ‘빨갱이’ 혐오 전라도 혐오를 부추겨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여성, 성소수자, 무슬림에 대한 혐오도 여기에 결합되기 시작했다.
지난해 국민의힘은 ‘차별금지법이 만들어지면 동성애자와 무슬림들이 특권층이 된다’는 논리를 폈다. 전통적 보수우파의 본거지인 대구에서 이슬람 사원 반대가 시작된 것도 상징적이다. 그리고 이런 ‘신혐오’를 주도한 것은 원래 이준석, 하태경, 이언주같은 새로운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캠프는 이들 모두를 포괄하는 최대연합이었다.
하지만 대선 이후 이들 사이에는 갈등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고, 이제 이들은 윤핵관에서 멀어지고 배척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지금 윤석열 정부는 다시 전통적인 반공주의적 ‘종북몰이’를 주된 무기로 삼고 있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와 보수우파들이 ‘신혐오’를 배제하거나 버린 카드로 보는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여성가족부 폐지를 추진되고 있고, 차별금지법은 논의조차 불가하고, 이슬람포비아도 이제는 극우개신교의 핵심 의제로 굳어진 상황이다. 즉, 보수우파들 내부에서 갈등과 균열이 있더라도 구혐오와 신혐오를 융합시키면서 정치적 의제와 기반을 확대하고 강화하려는 시도는 앞으로 계속될 것이고, 우리도 의제와 저항과 연대를 융합시켜 나가야 한다.
● 윤석열의 핵무장 발언 – 무시할 수 없는 다가오는 재앙
최근 윤석열이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는 발언을 한 것은 매우 중대한 모멘텀으로 보인다. 한국의 독자 핵무장에 대한 이야기들이 여기저기서 더 많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사실이지만,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직접 이런 발언을 한 것은 경우가 다르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해서 핵무장이나 군사 대결적 대외정책을 반대하는 많은 이들이 강력하게 비판할뿐 아니라 ‘한미 동맹이나 국제 관계 속에서 볼 때 실현 불가능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일단 나는 이런 분들과 마찬가지로 핵무장이나 군사 대결적 대외정책을 결사 반대하는 입장에서 전적으로 그 마음을 공감한다.
그러나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는 평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하게 된다. 그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하고 점점 커지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첫째, 한국에서 핵(원자력)을 둘러싸고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집단의 무시할 수 없는 힘이 있다. 보통 ‘핵마피아’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정치권과 공공기관, 학계, 언론계 등을 걸쳐서 강력한 카르텔을 구성하고 있다.
둘째, 이들은 이미 ‘탈원전’ 흐름을 중단시키고 다시 핵발전의 확대 강화로 뒤집어버리는 힘을 과시하고 있다. 그리고 핵발전은 핵무장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은 핵발전의 역사가 입증하고 있다. 가장 성공적으로 핵발전을 이룬 나라들은 거의 모조리 핵무장으로 나아갔다.
셋째, 한국은 이미 세계 경제 10위권의 국가로 성장했고, 군사적으로는 그보다 더 상위일 정도인데, 세계 경제 10위권의 국가들은 거의 대부분 핵무장 국가들이다. 경제적 경쟁은 군사적 경쟁과 상호작용하고, 거기서 가장 앞선 나라들은 결국 핵무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넷째, 이제 한국에서 냉전적이고 군사적 대결을 선호하는 보수우파들은 갈수록 노골적으로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다. 국민의힘의 주요 정치인들이 그렇고, <조선일보>가 그렇다. 여기에 윤석열까지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낸 셈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들이 가진 힘과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다섯째, 상대적으로 진보적이고 화해와 평화를 지향하는 것으로 평가받던 진영과 지식인들 속에서도 핵무장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이런 사람들의 반핵과 평화에 대한 원칙이 얼마나 취약했는지를 드러내는 것이지만, 국제적 지정학과 동맹관계의 변화 등이 이것을 추동하고 있다.(이들의 이름을 굳이 거명하지는 않겠다)
여섯째, 핵무장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여론도 바뀌고 있다. 핵무장을 찬성하는 여론이 반대하는 여론보다 높아지기 시작했을 뿐 아니라 ‘진보층’에서도 찬성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핵마피아’와 보수언론들의 영향으로만 폄하할 수 없는 두려운 변화의 흐름이다.
일곱째, 미국의 지배층 내에서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봐야 한다. 비록 아직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고 장담할 수는 없다. 핵무기를 독점한 강대국들의 위선적인 ‘확확산 방지 체제’는 핵무장 확대를 낳은 실패의 역사이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의 독자 핵무장이 ‘절대 실현 불가능한 말도 안되는 주장’이라고 무시할 수는 없다는 말이 된다. 물론 지금의 한미 동맹이나 국제 관계 속에서 볼 때 수많은 결코 쉽지 않은 난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점점 커지는 재앙을 반드시 막아내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직시해야 한다. 윤석열이 불러오는 재앙들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 영국 해리 왕자의 솔직한 말을 보고 느낀 것
최근 영국 해리 왕자의 자서전의 몇몇 적나라한 내용들이 논란이 되고 비판을 받고 있다. 먼저 해리 왕자의 어머니인 다이애나가 과거에 영국 왕실과 언론에게 당한 것은 부당한 폭력과 괴롭힘이었다는 것을 지적해야 겠다. 다이애나는 왕실의 권위와 보수적 질서에 거슬려서 공격을 당했고 특히 언론의 집요한 괴롭힘은 오늘날 상업적 언론의 모든 폐해를 집약해서 보여준 전형적 사례로 두고두고 남아있다. 해리도 그 아픈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어서 지난해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부부가 영국 왕실과 갈등하다가 결국 쫓겨난 것에서도 영국 왕실의 편을 들고 싶지는 않다. 이번에도 영국 왕실은 메건 마클이 이혼녀이고, 백인이 아니고, 페미니스트를 자처한다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고 인종주의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 분명해 보였다. 또 왕실을 편든 언론들은 매건에 대해 마녀사냥식 보도를 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왕실을 나온 해리와 메건 부부는 넷플릭스에 출연하고 자서전을 내는 등 쌓인 앙금들을 표출하면서 돈도 벌려는 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에 대해서도 무조건 부정적일 이유는 없다. 이런 다툼 속에서 이 전근대적인 세습 왕실이 얼마나 무의미하고 낭비적이고 사라져야 하는 기구인지에 대한 생생한 사실들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해리와 메건 부부가 평범한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왕실 출신의 또다른 특권층이고, 무슨 대단한 진보적 인사들은 아니라는 점을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다. 특히 이번에 불거진 자서전의 아프가니스탄 참전 경험 부분은 해리가 영국 제국주의의 최상층부의 일부였고 그것에 충성했다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 주고 있다.
여기서 해리는 상당히 솔직했다. 그는 아프간 전쟁에 파병가서 아파치 헬기를 몰면서 25명을 사살해 죽였다고 했다. “25명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체스판에서 말을 없애는 것 같았다”, “나쁜 사람들이 착한 사람들을 죽이기 전에 먼저 제거한 것이다” 즉 ‘아프간 사람들=텔레반=이슬람 테러리스트’라는 것이고, 그들을 죽이는 것은 살인이 아니라 ‘체스판에서 말을 제거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을 죽이는 것은 그들이 저지를 테러나 범죄를 미리 앞서서 막아내는 좋은 일이 된다. 이것은 전쟁, 학살, 선제공격이 어떤 메커니즘 속에서 벌어지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상대방을 악마화하고 비인간화해서 생명을 빼앗으면서도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나 주저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는 '반테러 전쟁'을 말하며 만들어낸 논리이고, 지금 푸틴이 우크라이나에서 전쟁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논리이다. ‘우크라이나는 신나치들이기에 전쟁으로 그들을 제거하는 것은 미래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해리의 자서전에 있는 그런 내용들을 비판하는 영국군 고위 관계자나 주류언론들의 태도는 사실 좀 모순적이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하면서 그런 논리를 내세웠던 것이 바로 자기들인데, 해리는 너무 솔직해서 문제였던 것일까.
한편, 해리 못지않게 솔직하고, 툭하면 선제공격을 말하면서 전쟁을 장난처럼 생각하는 대통령이 있는 나라에 살면서 바다 건너 해리를 비판하는 마음도 편치가 않다. “자체 핵을 보유할 수도 있다... 더 빠른 시일 내에 우리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격을 당하면 100배, 1000배로 때릴 수 있는 대량응징보복 능력을 확고하게 구축하는 게 공격을 막는 가장 중요한 방법”(윤석열) 우리가 올해를 무사히 넘길 수 있을까.
● 지난 서너 달 동안 본 재미와 감동의 영화들 소개
서너달전 쯤에는 가끔씩 영화평도 써서 올리고 했는데 요즘은 그런 마음의 여유도 시간적 여유도 없다. 그렇다고 영화를 안보는 것은 아니고 여전히 영화는 중요한 취미와 문화 생활 중 하나이다. 그래서 오늘은 연휴를 맞이해 오랜만에 지난 몇 달 동안에 틈틈이 본 영화들에 대한 아주 간략한 주관적 감상과 소감을 정리해 보겠다. 그 중에서도 더 인상적이고 기억에 남는 영화들을 중심으로 하고, 최근에 본 영화들을 우선으로 해서 더 이전에 본 영화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식으로 하겠다. 아무래도 영화볼 주통로가 넷플릭스인 것도 반영될 것이다.
먼저 바로 이번 연휴에 넷플릭스에서 본 <정이>다. 우선 기술적 완성도와 특수효과는 놀라울 정도였다. 단순하지 않은 예상을 뛰어넘는 스토리 전개도 좋았다.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를 포착해서 반영하고 비판하는 연상호 감독 특유의 장기가 잘 발휘됐다고 본다. 계급과 위계로 나누어지고 성차별적이고 이윤이 우선인 디스토피아적 세상에서 주어진 사회적 역할과 규범에서 벗어나 자신의 삶을 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개인적으로 연상호 작품 중에서 부산행에 버금가는 재미와 감동을 받았다.
그 다음으로 최근에 본 가장 재미있고 좋았던 영화는 넷플릭스에서 본 뮤지컬 <마틸다>이다.(아주 과거에 나온 그냥 영화 <마틸다>와 헷갈리면 안된다) 단점부터 말하자면 주인공이 천재이고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설정이 거슬리는 점은 있다. 하지만 장점이 훨씬 더 많다. 먼저 너무나 귀엽고 사랑스럽고 연기도 잘하는 아역 배우들이 정말 많이 나온다. 그들이 하는 노래와 춤도 귀에 착착 들어오고 아주 신난다. 그러면서도 권위와 억압과 폭력에 맞서는 투쟁이라는 주제를 다루며 결국 그것을 이겨내는 해방감을 맛보게 해줬다. 실제로 거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춤과 노래에서 아이들은 ‘혁명’이라고 적힌 깃발을 흔들고 있다. 그 부분에서 그려지는 모습은 자유롭고 해방된 세상을 떠올리게 한다.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더 스위머스>도 너무 좋았다. 이 영화는 난민에 대한 모든 것을 다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약간 별다른 느낌을 못받을 수 있지만, 곧 영화는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그리고 난민들이 고향에서 어떤 고통과 폭력을 겪게 되는지, 왜 고향을 떠나서 멀리 낯선 땅으로 갈 결심을 하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상상하기 어려운 고통과 공포와 죽을 고비들을 겪게 되는지, 낯선 땅에서도 또 어떤 어려움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지 등을 너무 생생하게 보여준다. 특히 매년 난민 수만 명을 집어삼키는 죽음의 바다 ‘지중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여 준다. 이 모든 게 실화라는 게 중요하다.
극장에서 본 <아바타>는 3시간 동안 아쿠아룸 속에서 헤엄치는 듯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해줬다. 신기하고 아름다운 바다 속 광경들에 취해 있다고 보면, 왜 사람들이 여행과 관광을 가서 스노클링을 하는지 이해하게 된다.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도 크게 나쁘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다만 솔직히 뭔가 툭툭 걸리고 잘 납득이 안가는 설정들이 몰입을 방해하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 다음으로 윌 스미스가 주연한 <해방>도 나쁘지 않았다. 노예제 시대의 미국에서 지독한 폭력에 시달리던 한 흑인 노예가 탈주하면서 온갖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다가 결국 링컨의 군대에 합류해서 노예해방 전쟁에 앞장서는 과정을 다루는데, 단순할 수밖에 없는 이 과정은 그 상황과 역사 자체만으로도 벅찬 느낌과 감동을 주는 점이 있다. 이 역시 실화에 바탕한 영화이고 끔찍한 억압과 착취 그리고 자유와 해방을 향한 열망을 담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본 <에놀라 홈즈2>는 1편보다 더 좋았다. 1편이 여성 참정권에 대한 영화였다면, 2편은 직업병에 맞선 여성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영화다. 초반에 얼마간은 좀 진득하게 보기 어려웠는데 그걸 넘어가면서 먼저 주인공을 탈출시켜주는 페미니스트 투사들의 웃기면서도 통쾌한 장면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추리가 풀리면서 본격적인 내용들이 이해가 되고 삼성 반도체 직업병에 맞서 여성 노동자들과 반올림의 투쟁이 떠올랐다.
넷플릭스에서 본 프랑스 영화 <아테나>도 좋았다. 이 영화는 프랑스 변두리 지역에서 폭력적 경찰과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청년들의 격렬한 대립과 투쟁을 보여주는데, 저 장면을 어떻게 찍었지 싶을 정도로 생생하고 역동적인 장면들이 놀라웠다. 일직선으로 숨가쁘게 달려가는 듯한 영화라서 좀 단순한 점은 있지만 강렬한 감정과 인상을 남겼다. 마지막 부분에 폐허같은 현장에서 TV에 자막으로 떠 있는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이라는 문구가 기억에 남는다.
넷플릭스에서 본 <재즈맨 블루스>도 인종차별 문제를 다루는데 배경은 20세기 중반 미국 남부이다. 40년에 걸친 두 사람의 성장 영화이면서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에 인종차별이 너무나 심각했던 미국의 역사를 담아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가 주는 가장 큰 매력은 계속되는 멋진 재즈, 블루스 노래와 공연 장면들이었다.
넷플릭스에서 본 <벨파스트>도 재미와 감동을 준 참 좋은 영화였다. 감독 케네스 브레너의 자전적 이야기이면서 영국 제국주의의 억압과 분열지배가 낳은 아일랜드 분쟁이 그 지역 사람들에게 어떤 고통과 상처, 기억을 남겼는지 보여줬다. 사람들은 서로 미워하고 싸우면서도 인간적 존엄을 지키려 했다. 아역배우가 연기한 주인공이 너무 귀여우면서도 연기를 참 잘했고 여러 감정으로 마음을 흔드는 장면들이 많은 영화였다.
넷플릭스에서 본 영화 <걸>도 기억에 남는다. 소년으로 지정받아 태어나고 자랐지만 자신을 소녀로 생각하는 트랜스젠더 발레리나 라라의 성장영화 형식인데, 특히 내면적 고뇌와 고통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연기가 참 대단하지만 시스젠더가 트랜스젠더를 연기한 점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고 한다. 라라의 주변 환경은 대체로 성전환을 인정하고 지지해주는 데도, 라라는 끝없이 흔들리고 고통받는데, 결국 우리를 가로막는 것은 특정한 젠더를 지정하고 그 역할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성별이분법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싶다.
개봉한지는 몇 년 더 됐지만 최근에야 봤던 아주 인상적인 영화로 <작가미상>도 있었다. 이 영화에 흥미를 느끼게 된 것은 역시나 아주 인상적이고 좋았던 영화인 <타인의 삶>을 만든 감독이 만든 새로운 영화라는 정보 때문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영화는 3시간이 넘으면서도 짜임새있는 스토리와 아름다운 장면들만이 아니라 나치의 범죄, 전후 동독과 서독 사회, 예술, 삶, 사랑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지난 반년 동안 본 영화 중에서 뭔가 기발하면서도 괴상하고 병맛스러운 느낌을 준 영화들이 2개가 있었는데 <티탄>은 충격적인 정체성과 비주얼의 주인공이 나와서 견디기 힘든 폭력들을 보여주며 깊은 인상을 남기지만, 그래서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반면 <크라임 오브 퓨쳐>는 역시나 충격적인 발상과 비주얼, 견디기 힘든 잔인한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적어도 환경 파괴가 낳은 멸종 위기에 대한 경고라는 맥락은 느껴졌다.
(기사 등록 202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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