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얼마 전 <매일노동뉴스>에 “‘현장’엔 답이 없다 … ‘자발성’으론 안 된다”는 글이 실렸다. 나도 뒤늦게 이 글을 봤는데, 언뜻 꽤나 일리있어 보였다. 필자가 말하듯이 “자발성에 기대고 안주하려는 편향”은 문제고, “자발성과 의식성이 서로 밀고 당기면서 같이 가야 한다.” 레닌도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자발성에 굴종하지 않는 사회주의자의 의식성’을 강조했다. 그런데 이 글은 맥락이 상당히 다른 것 같다.
이 글에서 ‘자발성’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직선제와 거기서 나타난 결과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조합원의 상대적 다수가 ‘쌍용차 77일 파업’의 상징인 한상균 후보와 그의 ‘강력한 총파업’ 주장에 손을 들어 준 것을 문제삼는 것이다.
이런 직선제가 “노조민주주의 강화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오히려 “직선제가 현장 조합원의 의식성을 거세하고 지도부가 현장 조합원의 자발성에 굴종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글쎄다. 그러면 그동안의 2중 간선제(대의원들이나 집행부가 민주노총 파견 대의원을 뽑고 그들이 지도부를 뽑는)가 노조 민주주의에 기여하고 의식성을 높였나? 선거 결과에 나타난 더 강력한 투쟁 염원에 “굴종”하면 왜 안 되는가? 금속노조 좌파 지도부가 보여주듯이 그렇게 뽑힌 지도부가 기대에 “굴종” 아닌 ‘거역’하는 게 문제 아닌가?
물론 일부에서처럼 ‘현장 동력은 충분하다는 게 드러났다’거나, ‘단 한번의 승리를 위한 지도부 의지만 있으면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떻게’ 총파업과 투쟁을 건설할지는 여전히 답이 필요한 문제이다. 박근혜는 강경하며 상황은 쉽지 않다.
그런데 “현장 조합원에겐 답이 없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현장 조합원은 단일하지 않으니까. 현대차 이경훈의 8.18 합의를 지지하는 조합원들이 있고, 지지하진 않지만 대안이 없다고 보는 조합원들이 있고, 그 합의를 거부하며 싸우겠다는 조합원들이 있다.
트로츠키도 어느 노동자 집단에든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투쟁에 반대하는 보수적 노동자들, 투쟁에 적극적인 노동자들, 중간에서 동요하며 어느 쪽으로든 이끌릴 수 있는 노동자들. 트로츠키는 투쟁적인 노동자들이 정치적으로 무장하고 잘 단결해서 중간에서 동요하는 노동자들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개봉한 프랑스 영화 <내일을 위한 시간>도 이것을 보여 준다. 거기에는 보너스를 위해 산드라의 복직을 반대하고 심지어 그녀를 욕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보너스에 투표했지만 산드라를 생각하며 괴로워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산드라의 복직을 위해 보너스를 포기하자는 노동자들이 있다.
빚을 갚아야 하고 주말에 자동차정비나 식당 서빙으로 돈을 더 벌어야하는 열악한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런 분열을 만들어 냈다. 그래서 처음에는 14:2로 산드라가 졌다. 산드라가 포기하지 않고 주말 이틀 동안 동료들을 만나서 설득하러 다니고, 주변 동료들이 그의 손을 잡으면서 나중엔 팽팽하게 바뀐다.
그 과정에 온갖 질문이 제기된다. ‘중국과 경쟁하기 위해서는 비용을 줄여야 한다’, ‘16명으로도 일이 돌아가는 데 왜 산드라를 복직시켜야 하는가’, ‘산드라가 없으면 3시간씩 더 일해야 하지만 그만큼 임금이 올라간다’, ‘왜 산드라를 위해 내 보너스를 포기해야 하는가’
만약 산드라와 그녀를 지지하는 동료들이 좀 더 일찍 단단하게 뭉쳐 이런 논리를 분쇄했다면, 역전도 가능하고 나아가 보너스와 복직 둘 다를 얻지 않았을까?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까지 시도했던 산드라, 남자친구에 휘둘리던 산드라의 동료가 경험과 행동 속에 이틀 동안 변화하는 것을 보면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산드라와 남편과 이 동료가 달리는 차 안에서 함께 노래를 부르며 연대의 눈빛을 주고받는 게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장면이다.
보너스를 위해 산드라를 외면하는 정서를 추수하는 게 바로 레닌이 ‘자발성에의 굴종’이라고 비판했던 것이다. 반면 강력한 파업을 주장하는 한상균 후보에게 투표한 일부 노동자들의 ‘자발성’은 깎아내릴 게 아니다.
여기에 연대와 투쟁을 위한 효과적 정치와 전술이라는 ‘의식성’을 결합시키고, 서로 밀고 당기면서 한상균 후보에 투표하지 않은 노동자들, 투표는 했지만 투쟁할 자신감은 부족한 노동자들까지 지지하고 함께하게 만들어야 한다.
* ‘변혁 재장전’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변혁 재장전’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드 맥스 - 희망없는 세상에 대한 분노 (2) | 2015.05.28 |
---|---|
영화 ‘위플래쉬’ - 잠재력을 해방시킨 무자비한 채찍질? (0) | 2015.04.12 |
마녀사냥의 기억과 상처, '5일의 마중' (0) | 2015.01.06 |
영화 <카트>와 함께 돌아보는 이랜드 투쟁과 오늘 (0) | 2014.11.23 |
영화) <제보자> ㅡ 진실을 위한 용기 (1) | 201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