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제보자>는 정말 강력 추천할만한 좋은 영화다. ‘역시 임순례 감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은 다르지만 나에게는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버금가는 영화였다. 너무 재미있고 감동도 컸다. 영화 내내 많은 생각이 들었다. 황우석 사건 당시가 떠오르고, 내가 겪었던 일들도 떠올랐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진실’에 대한 영화다. 초반부터 “진실과 국익 중에 무엇이 중요하냐”고 묻는다. 이 물음에서 ‘국익’말고 다른 가치들을 넣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고 리영희 선생님은 “내가 종교처럼 숭앙하고 목숨을 걸고 지키려 하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진실이다”고 말했었다.
진실을 위해 용기를 내는 제보자, 그 진실을 함께 파헤치려는 PD, 그를 돕는 선배와 동료들. 물론 중간에 PD는 흔들리고 주변 사람들도 ‘그만하라’고 한다.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은 무엇보다 당장 가까운 주변 사람들의 압력을 받기 마련이다.
‘국익’같은 먼 문제만이 아니다. 당장 우리가 힘들어진다고, 너가 힘들어진다고. 이미 지나간 문제라고, 중요하지 않은 문제라고. 분명한 증거도 없다고. 하지만 영화에서 주인공 PD는 ‘증거도 없는 데 뭐냐’고 제보자를 욕하기보단, 제보자와 함께 증거를 찾아나간다.
당시 ‘황풍’이 얼마나 엄청났는지 기억한다면, “전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싸움이라는 영화 카피가 와 닿을 것이다. 이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하며 중간에 손을 떼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진실을 밝히자고 고집하는 사람과 선을 긋고 싸늘한 시선을 보내기 쉽다. ‘대중의 정서를 모른다고’, ‘조직을 생각할 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 진실을 보자는 사람의 실수와 흠집들을 찾아내서, 자신들의 왕따를 정당화할 것이다.
실제 황우석 사건의 제보자인 류영준 씨는 당시 자신이 속했던 모든 곳에서 추방당했고 아내와 어린 딸과 함께 ‘매일 울면서’ 살았다고 한다. 최근까지도 ‘배신자’라고 비난받고 있었다고 한다. 영화를 보고 와서 이런 기사들을 찾아 읽으며 지난 연말이 떠올라서 가슴 한 켠이 쓰라렸다.
영화에서 아쉬운 점도 있다. 당시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프레시안’과 온갖 개미들의 연대도 부각됐다면. 당시 MBC 사장이었던 최문순의 결단이 아닌 이런 힘이 PD수첩 방영을 가능케했다.
또, 당시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 국정원, 여당, 야당, 유력 대권주자, 재벌, 보수-진보 언론의 ‘황빠 동맹’을 더 폭로해주었다면. 당시 박근혜는 황우석을 “나라의 보배 중 보배”라 했다. 물론 2시간 안에 이런 것을 다 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국정원은 황우석의 거짓이 폭로됐을 때 급하게 울리는 핸드폰 발신자중에 하나로 깜짝 출연한다. 그런데 이런 ‘황빠 권력 동맹’이 ‘국민적 광풍’을 일으킨 것이지, 거꾸로 된 것이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순서를 혼동한다.
그리고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이 권력동맹의 핵심이었던 대통령은 “PD수첩 보도가 짜증스럽다”고 한 노무현이었다. 그럼에도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민주당정부 때라서 저 정도였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종북몰이에 대해 저런 역전이 가능할까?
황풍은 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지난 몇년간 종북몰이 광풍은 끔찍했다. 이 광풍 속에서 진보를 사분오열로 몰아넣은 경선부정 사태와 내란음모 사건 등에 대한 전혀 다른 진실을 공중파에서 볼 수 있을까? ‘일단 방송을 내보내고 판단은 국민에 맡기자’란 식이 가능할까?
이 문제는 증거가 중요한 것 같지도 않다. 이미 경선부정 사태에 대해서는 ‘김인성 보고서’도 있었고, 내란음모에 대해서는 법원도 부분 무죄를 선고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은가. 단지 박근혜의 공포통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황우석 사건 당시 진보진영 다수는 황우석을 처음부터 의심하고 비판적으로 보고 있었다. 따라서 PD수첩 등을 응원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종북몰이 관련한 앞선 사건들은 PD수첩같은 시도가 나오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진보와 좌파의 다수도 선뜻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입장을 번복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부터도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비겁하게 입을 닫고 있었던가. 문제는 실타래처럼 꼬여있고 용기는 부족하며, 불신과 반감은 너무나 깊다.
그럼에도 오로지 진실만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요즘 내가 동료들과 같이 광화문 세월호 농성장에 갈때마다 보는 것이 그런 아름다운 분들이다. ‘제보자’의 주인공이 어린 딸에게 당당한 아빠이기 위해 그랬듯이, 이분들도 아직도 눈을 감지 못한 아이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있다.
작년 연말부터 나는 에밀 졸라의 말을 계속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게 된다. “나는 궁극적 승리에 대해 조금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더욱 강력한 신념으로 거듭 말합니다. 진실이 행군하고 있고 아무도 그 길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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