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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10.29 참사/ 화물연대/ 언론장악/백지혁명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12. 18.

전지윤

이제는 분노와 비판을 넘어서 절규하고 싶다

이태원 참사에 관한 소식을 보고 생각을 하면서 슬픔과 분노에 빠지는 시간이 이어지고 있다. 유가족과 이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진상규명과 책임있는 사람들의 책임지는 모습과 대통령의 진정성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 정반대로 가고 있다.

포털과 거대언론의 관련 기사들에는 읽기만 해도 살 떨리는 악성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고, 극우 유튜버들이 나서서 유가족을 매도하고 조롱하는 방송을 계속 올리고 있다. 대통령을 지지하는 극우단체는 이태원 분향소 근처에 윤석열 잘한다라는 현수막을 걸었고, 길 건너에서 계속 유가족과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주장들을 하고 있다.

이런 것을 차단하고 막아야 할 정부와 집권여당은 거꾸로 그 주요 책임자와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막말과 2차가해성 발언들을 쏟아내고 있다. 급기야 이런 악성 댓글과 2차가해들 때문에 생존자 중에 한 어린 학생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비극적 선택을 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바뀔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49재 하루 전에 열린 국정과제점검회의에서는 마치 이태원 참사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철저하게 삭제됐다. 어제 49재 시민추모제가 진행되는 시간에 윤석열 대통령은 시장에 가서 술잔을 사고, 아크로비스타 이웃들에게 떡을 돌리고, 종로행사장에 가서 웃으면서 성탄절 트리에 점등을 했다.

정말 이럴 수는 없는 법이다. 솔직히 49재 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유가족을 만나거나 뭔가 메시지를 내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이 엄청난 비극과 희생자와 유가족을 이 정도까지 무시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도 어리석고 가능하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박근혜도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하고 유가족을 청와대로 초청한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윤석열 정부와 여당의 태도는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어 조금의 틈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참사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의 상처와 슬픔은 더욱 깊어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보기가 너무나 고통스럽다. 이제는 분노와 비판을 넘어서 제발 그만하라고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다.

악성 댓글들을 차단하고, 패륜적 내용의 유튜브 방송들을 삭제하고, 대통령 지지단체들의 만행을 저지하고, 여당 정치인들의 2차가해 발언들을 중지시켜야 한다. 이것은 권력을 가진 대통령과 정부와 여당과 포털과 거대언론 사주들이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대통령이 자신을 지지하는 단체와 유튜버와 정치적 동료들에게 강력한 신호와 지시만 내려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은 하루빨리 유가족을 찾아가서 사과하고 위로해야 마땅하다. 정말 이것은 이념과 노선을 떠나서 생명과 인간적 고통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다.

김훈 소설가는 몇 년 전 끝나지 않는 산업재해와 노동자들의 죽음을 한탄하면서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나는 대통령님, 총리님, 장관님, 국회의장님, 대법원장님, 검찰총장님의 소맷자락을 잡고 운다. 나는 재벌 회장님, 전무님, 상무님, 추기경님, 종정님, 진보논객님, 보수논객님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운다. 땅을 치며 울고, 뒹굴면서 운다. 아이고아이고.”

이태원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들의 고통을 보면서 지금 우리도 같은 심정일 것이다. ‘대통령님, 총리님, 행안부 장관님, 법무부 장관님, 서울시장님의 소맷자락을 잡고 운다. 포털운영자님, 거대언론사 사주님, 보수논객님들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운다. 땅을 치며 울고, 뒹굴면서 운다. 아이고아이고.’ 제발 좀 괴롭힘과 2차가해를 중단하라고. 제발 사과하고 유가족의 눈물을 닦아달라고. 더 이상 저 슬픔과 흐느낌을 듣고 견딜 수 없다고.

이태원 참사 49재 시민추모제 https://www.youtube.com/watch?v=CqUxNFXVs0E

추모제에서 유가족들이 낭독한 편지 https://www.youtube.com/watch?v=369Ozv9bThA

희생자의 언니: ‘검사가 처음에는 부검없이는 시신을 가져갈 수 없다고 했다. 우리 집은 서울인데 강원도 경찰이 담당이라면서 찾아왔다. 권력과 명예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이들에게 손바닥으로 하늘을 절대 가릴 수 없고 진실은 결국 발혀지게 돼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내가 고2때 수학여행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는데 이번이 제발 마지막이어야하고, 대한민국이 안전한 나라가 되기까지 이런 희생이 있었다고 기록되길 바란다. 월드컵 중에도 잊지 않아주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MSiMIs6g90E&list=PLqCB8pKLc7sx_B0heeke76EmCCoCCIntW&index=1
고 최유진님의 아버지 ‘최초 명단 공개한 정의구현사제단의 미사에 소식을 듣고 참석했었고 내 딸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을 듣고 큰 위안이 됐다. 그때 모인 8백명이 다같이 흐느꼈다. 방송에 출연한 유가족을 보고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 겨우 다른 유가족과 연락할 수 있었다. 20년이 넘게 불려지 이름과 사진과 흔적이 있다. 그게 158이라는 숫자로 묻혀서 잊혀지는 것은 싫다.’ https://www.youtube.com/watch?v=nQGtOZ0dJFE
고 송채림님의 아버지 ‘심리치료 담당이라는 경찰이 연락와서 ‘아버님 트라우마에 도움이 안되니까 더 이상 방송 인터뷰하고 그러지 마세요’ 이러더라.‘https://www.youtube.com/watch?v=uWWybtQTc_M&list=PLqCB8pKLc7sx_B0heeke76EmCCoCCIntW&index=4
고 박가영님의 어머니 ‘명단 공개가 패륜이라고요? 명단 비공개는 은폐입니다... 이 땅의 부모들은 세월호를 잊지 않았고 이번 참사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번 참사로 부모들은 우리 아이는 살아남았다는 안도와 상처가 생겼습니다. 우리 유가족뿐만 아니라 이 나라에서 자식을 둔 부모들은 위로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외로워서 죽는 게 아니라 위로받지 못해서 죽는다고 합니다... 주어가 정확히 들어간 사과를 하십시오. 피지도 못하고 꺾인 우리 아이들과 유족들에게 지켜주지 못해서 잘못했다고, 용서해달라고 진심으로 사과하십시오. 새끼 잃은 어미는 절규합니다... 이 땅의 우리 아들딸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책임하고 후안무치한 정부로부터 여러 고비를 거치며 살아남은 사람들입니다. 간곡히 부탁합니다. 어떤 어렵고 위험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으십시오... 이 나라에는 책임지는 정부는 없습니다. 힘이 되는 정부도 없습니다. 다음 세대를 세워줄 정부도 물론 없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QsfwlreP9nY

화물연대는 백기를 들었고 법과 원칙이 이겼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팬데믹 동안에 물류와 운송 부문 노동자들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 구실을 해 왔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더구나 이 부문의 노동자들은 지금 세계적 고물가, 고유가, 고금리 상황에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따라서 화물연대 파업은 불가피했을 뿐 아니라 안전운임제요구로도 중요했다. 안전운임제는 단지 노동자들의 적정 임금만이 아니라 누구든 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생명과 안전을 위한 사회적 제도의 문제였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안전운임제 찬성 응답은 언제나 반대보다 훨씬 더 많았다.

그렇지만, 화물 노동자들은 눈물을 삼키며 파업을 중단했다. 5개월 전에 집권초 윤석열 정권에 맞서 단기간에 승리를 거두었던 화물노동자들에게 이 결과는 더 쓰라릴 것이다. 윤석열 정권은 안전운임제 제도화와 품목 확대라는 5개월 전의 약속을 어겼을 뿐 아니라, 이제는 3년 연장조차 거부하며 말을 바꾸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안전운임제는 도입된 적이 없다. 45만 명의 화물 노동자 중에서 겨우 6%에게만 3년간 시범 실시됐을 뿐이다. 그리고 이것마저 이제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사회구성원들의 생명과 안전위에 재벌 대기업들의 이윤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을 지켜주기 위해 윤석열 정권은 어떠한 주저함과 부끄러움도 없이 모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윤석열은 화물연대 파업을 북핵 위협에 비유했고, 행안부 장관 이상민은 이태원 참사와 같은 사회적 재난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을 조선노동당 2중대라고 매도했다.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고 면허취소와 형사고발, 체포와 구속을 압박했다. 국토교통부는 파업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 나서는 기업을 정부가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파업 노동자에 대한 유가보조금 지급을 중단했고, 심지어 정부는 파업 대책으로 일시적으로 과적을 허용하겠다는 지침을 내렸다. ‘과적은 안전을 위협하는 명백한 불법인데도 말이다.

윤석열을 도와서 노조 혐오를 부추긴 가장 적극적인 파업 파괴자는 족벌언론들과 경제신문들이었다. 이런 언론들은 화물연대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조건에서 위험하게 일해 왔는지, 왜 파업에 나서게 됐는지, 안전운임제는 무엇이고 왜 필요한 것인지 전혀 이야기하지 않았다.

대신에 볼 수 있는 것은 파업 불참한 동료의 차에 쇠구슬을 쏜 조합원’, ‘파업하면서 같이 도박을 한 조합원’, ‘번호판을 대여해 수백만 원의 부수입을 올린 노조 간부에 대한 특종’, ‘단독보도들이었다. 2만 명이 넘는 조합원들 속에서 어디서나 있을 수 있는 일부 일탈 행위들을 샅샅이 찾아내, 마치 화물연대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엮어냈다.

화물연대를 특권적 노동귀족이자 부도덕하고 파렴치한 불법폭력 집단인 것처럼 낙인을 찍어서 사회적으로 고립시키고 파업을 파괴했다. 결국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과 결과는 몇 가지를 분명하게 보여 줬다.

첫째, 윤석열 정권과 지금의 국가가 과연 누구의 편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확인시켰다. 이들의 행태는 마치 국가는 소수의 지배계급 편에서 다수의 피지배 대중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배타적 폭력기구라는 고전적 좌파 국가이론을 입증하려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둘째, 민주당의 무능과 한계가 드러났다. 2003년에 업무개시명령제를 만든 원죄가 있는 민주당은 이번 파업 과정에서 정권과 여당의 강공책에 끌려다니며 중재를 시도하다가 안전운임제가 일몰의 기로에 서자, 뒤늦게 대폭 물러서며 무기력한 타협안을 던졌다.

셋째, 민주노총과 노동운동도 문재인 정권 때와는 달라진 쓰디쓴 현실을 직시할 순간이다. ‘검찰공화국의 치밀한 공안탄압 기획과 족벌언론들의 긴밀한 협공을 결코 만만히 봐서는 안 된다는 게 드러났다. 화물연대가 앞장서면 철도와 지하철의 파업이 전선을 형성할 것이라던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산별과 업종에 따라서 투쟁의 시기와 요구가 다르고, 직접적인 자신의 현안과 요구가 어느 정도 해결된 상황에서 다른 부문의 요구를 위해서 손해와 탄압을 무릅쓰고 파업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권력과 자본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더 실질적이고 치밀한 전략과 연대 구축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물론 지난 16일간의 파업이 보여 준 화물 노동자들의 힘은 무시할 수 없다. 물류의 심장과 동맥을 움켜쥐는 파업의 효과는 수출입과 전국의 건설 현장에 전면적 타격을 가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떼우고, 운전석에서 쪽잠을 자고, 온갖 골병이 들면서 일해 온 이들이 한국 사회와 경제가 유지되고 발전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주역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당장 며칠만 일을 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할부금과 카드값에 적자가 쌓여서 빚만 늘어나는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다.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가진 지배자들은 겪을 리가 없는 고충이다. 이것을 잘 아는 윤석열은 수출입의 막대한 타격에도 불구하고 버티기만 하면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봤다.

이제 강경하고 단호한 노동자 탄압과 파업 파괴를 통해서 기득권 지배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우파 지지자들도 다시 결집시킨 윤석열 정권은 다음 표적으로 이동하고 있다. 벌써 국민연금을 보험료를 더 많이 내고 연금은 더 늦게 받도록개악하겠다는 계획이 나왔고, 전장연의 투쟁을 무력화하기 위한 방안(지하철 무정차 통과)도 발표됐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이번에 잠시 멀어졌던 우파 지지층의 일부를 다시 돌아오게 했을뿐, 지지기반을 확대한 게 전혀 아니다. 윤석열 정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과 문제의식은 이번 파업을 거치면서 더 심화했다. 그런 사람들은 이번 파업으로 화물 노동자들의 현실이 어떤지, 안전운임제가 왜 절실한지 알게 됐다.

화물연대는 백기를 들었고 법과 원칙이 이겼다? 과속과 과적을 강요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고 업무개시명령제는 국제노동규약, 헌법, 노동법의 위반이다. 결국, 노동자를 짓밟는 것은 합법이고, 불평등과 부정의에 저항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말밖에 안 된다.

저항을 억압과 폭력으로 짓밟은 지배자들은 언제나 이렇게 승리와 질서 회복을 선언해 왔다. 그러나 그들의 질서는 모래 위의 성일뿐이다. 화물연대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이 사라졌는가? 안전운임제에 대한 절실한 요구가 사라졌는가? 윤석열 정권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줄어들었는가?

이 모든 것은 화물연대 파업 전보다 더욱 더 강력해졌을 뿐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어디서든 다시 저항과 연대로 나설 것이다. 당장은 노조법 2·3조를 개정해서 더 많은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보장하고 손배가압류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을 구제하려는 투쟁과 입법이 중요할 것이다. 진정한 대결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월드컵과 정치: 모로코, 이란, 한국의 경우

월드컵을 주관하는 FIFA는 곧잘 정치와 스포츠는 분리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사실 이것은 말이 안 되고 현실과도 맞지 않다. 우리의 삶 전체가 정치와 분리될 수 없고, 툭하면 자신의 입맛대로 특정한 주장과 행동만 정쟁으로 낙인찍는 정치인들의 의도가 불순하듯이 스포츠도 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문제는 스포츠와 정치가 어떻게 연관 맺느냐일 것이다.

FIFA 자체가 항상 정치적 행보를 보이며 여러 강대국이나 독재정권들과 거래를 해왔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지난번 FIFA가 러시아를 퇴출한 것도 정치적 결정이었다고 봐야 한다. 물론 그것은 반대하기 어려운 결정이라고 보인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퇴출시켰냐고 묻는다면 FIFA는 할 말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리고 지난 며칠간 우리는 월드컵과 정치가 얼마나 긴밀히 연관돼 있는지 다시 목격했다. 오랜 식민강국인 벨기에, 자신을 식민지배했던 포르투갈, 스페인을 마치 도장깨기하듯이 차례로 꺾은 모로코가 프랑스와 4강에서 대결하게 됐기 때문이었다. 프랑스는 모로코를 식민지배한 종주국이었고 모든 제국주의가 그렇듯이 그것은 억압, 폭력, 학살, 피의 역사였다.

따라서 그 역사를 몸과 머리로 기억하는 모든 모로코인들과 프랑스에 있는 모로코 이주민 150만 명과 심지어 비슷한 식민지배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중동, 아랍, 아프리카 국가의 민중들이 모로코의 승리를 기대하고 응원한 것은 자연스러웠다. 모로코 축구팀원들 대부분이 가난한 이주민 출신들이었다. 부임 3개월밖에 안된 모로코팀 감독도 이주민 2세였다.

경기장에서 반제국주의 저항의 상징인 팔레스타인 깃발을 흔드는 모로코팀은 아랍인, 무슬림, 아프리카인, 이민자 등 수백만 명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월드컵이나 축구를 좋아하지도 본 적도 거의 없는 나조차 그저께 밤은 혹시나 모로코가 이긴다면 얼마나 통쾌한 역사의 복수일까 생각하고 기도하면서 잠이 들었고 아침에 결과를 보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에서 일종에 약간 반대의 경우를 보여준 것은 이란과 미국의 16강전이었다. 알다시피 이란 축구팀은 첫 경기에서 자국의 국가를 따라 부르지 않으며 민주화 시위대를 학살하는 정권에 항의했고 저항하는 민중에 연대를 나타냈다. 그 후 이란의 군경은 축구팀에게 계속 그렇게 하면 가족이 안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협박을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란과 미국의 16강전이 벌어지자, 이란 민중들 다수의 분위기는 차라리 져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과거 이란의 독재왕정을 후원했고 지금도 경제제재 등으로 괴롭히는 강대국이라는 점을 볼 때 의외일 수 있지만, 이란 민중들은 학살을 자행하고 있는 독재정권이 월드컵 우승으로 자신들의 범죄를 덮으며 국민적 단합을 추진할 것을 더 걱정했던 것이다.

실제로 이란이 미국과의 경기에서 패배하자 이란에서는 환호를 지르고 폭죽을 터트리며 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국 축구팀의 패배를 너무나 기뻐하던 한 시위 참가자 중에 하나를 이란 군경은 조준사격을 통해서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어서 이란 독재정권은 사형 집행 등을 통해서 계속 민주화 저항을 짓밟고 있다.

한국의 경우는 분명 위의 두 경우와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월드컵 축구팀이 좋은 경기로 성과를 얻은 것은 반가운 일이고, 대통령실에 초대받은 것도 대통령 부부와 기념촬영을 한 것도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선수들이 무슨 진보정당 정치인도 아니고, 현직 대통령의 초대와 마련한 자리였으니 말이다. 그것에 악플을 달고 이런 것은 과했다고 본다.

다만 대회기간에 적어도 축구팀과 선수들의 입에서 뭔가 이태원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말이 나와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것은 없었던 것 같고, 월드컵의 열기는 이태원 참사와 화물연대 파업 등을 가리는 효과를 낸 것이 사실이다. 윤석열은 한국이 경기에 이긴 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하고 대표팀에 전화해 감사했다고 한다.

반면, 이태원 참사에 대해서 윤석열이 눈물을 흘리고 유가족에게 전화해 사과했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참사 희생자 이남훈님의 어머니는 내 아들도 축구를 참 좋아했지만 모든 것을 덮어버린 월드컵을 볼 수 없었다고 말했었다. 부디 대표팀을 비롯해 축구에 열중했던 모든 분들이 이태원 참사와 그 희생자와 가족들을 계속 기억해주길 기대한다.

*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서명운동도 진행중이다http://bit.ly/3VfiwnT

김건희 주가조작과 수사팀의 이상기류

지난주에 나온 가장 중요한 언론 보도 중에 하나는 김건희 주가조작 관여에 대한 <한겨레>의 보도였다. 이 기사에서 손원제 기자는 최근 재판에서 드러난 사실을 바탕으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에 김건희 가 어떻게 관여했는지 설명한다.

선수김씨가 ‘12시에 3300원에 8만주 때려달라’, ‘매도하라 하셈문자를 약간 시차를 두고 또 다른 선수민씨에게 보내고, 7초 뒤에 김건희의 계좌에서 정확히 8만주가 매도됐다는 것이다. 손원제 기자는 주가조작 스모킹건 나왔나라면서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은 <뉴스타파>의 용기있고 외롭고 끈질긴 보도가 낳은 메아리라고 할 수 있다. <뉴스타파>살아있는 (선출) 권력이면서 동시에 살아있는 (미선출) 권력의 융합체라고 할 수 있는 윤석열과 그 가족에 대한 감시와 검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찾잔 속의 태풍에 머물렀다. 250:0 때문이다. 검찰은 이재명과 주변 사람들에 대한 250여번의 압수수색을 하는 동안 김건희는 단 한번도 압수수색, 소환조사하지 않았다. 이러한 검찰의 250:1은 주류언론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서해공무원, 대장동 등에 대한 언론 보도, 기사들이 250이라면 김건희 주가조작에 대한 것은 많아야 5~10이었다.

결국 윤석열 정권의 집권 이후에 김학의가 무죄를 받고, 윤석열의 장모가 불기소 무혐의 무죄를 줄줄이 받았듯이, 곧 김건희도 그렇게 될 가능성은 갈수록 높아진다. 반면 김건희에 대한 여러 의혹을 취재하고 보도하던 언론과 언론인들은 지금 계속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뉴스타파>나 최근 <한겨레>의 보도는 도이치 모터스 주가조작 수사팀의 한 검사가 재판정에서 공개하거나 질문한 사실들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수사의 책임자와 수사팀 전체는 절대 김건희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지만, 그 중에 한 검사가 계속해서 김건희의 범죄 혐의를 보여주는 증거들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지 판단하고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몇 가지 가설을 세워볼 수 있다. 첫째, 김건희의 주가조작 범죄 관여의 증거가 너무나 크고 명백해서 도저히 숨기고 가릴 수 없어서 일부가 드러난 상황일 수 있다.

둘째, 이 수사는 대선 전부터 진행된 것이니 수사팀이 대선 결과를 미처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양쪽 모두의 눈치를 보면서 수사해 두었던 것을 이제 와서 되돌리기 어려운 것일 수 있다. 셋째, 윤석열 정권 집권 이후에 검찰 내부에서 박근혜를 들이받으며 몸집을 키운 윤석열 처럼 해보고 싶다는 반대파가 형성되기 시작하는 것일 수 있다.

넷째,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공정하고 더 철저한 수사라는 검사 윤석열의 가짜 슬로건을 그대로 믿은 정말로 양심과 소신있는 검사가 수사팀에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 넷째 가설이 사실이라면 하고 기대한다. 이런 검사가 존재하고, 검찰과 언론개혁을 염원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행동과 연결될 수 있다면 진실은 침몰하지 않을 것이다.

MBC, TBS, 더탐사, 그 다음은?

윤석열 정권의 주요 공격 대상 중에 하나는 언론의 공적기능과 비판의 자유이다. 윤석열 정권은 먼저 MBC에 대한 전방위적 집중포격을 가해 왔다. 윤석열 정권이 MBC를 공격하는 논리들은 그 수위와 강경함이 전시상태에 적국에게 보내는 선전포고를 떠올릴 정도였다.

‘MBC가 악의적인 가짜뉴스로 한미동맹을 이간질하며 국가안보와 헌정질서를 위반하며 국익을 해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에 따라서 MBC에 대한 장기간에 걸친 모든 것을 탈탈 터는 감사, 세무조사, 근로감독이 진행됐고, 삼성 등에 대한 광고 중단 촉구와 돈줄 끊기 압박이 이뤄졌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 배제는 그 과정에서 불거진 에피소드였다. MBC가 아무리 오래된 규모있는 방송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총체적 공격은 견디기 힘들 것 같다. 심지어 윤석열의 극렬 지지자와 김건희 팬클럽 회장이 공개적으로 MBC 기자에 대한 폭력적 위해를 협박하고 선동해서 경찰이 그 기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MBC만큼이나 집중적 표적이 되고 있는 것은 TBS이다. ‘뉴스공장 등 주요 시사방송들을 없앨 것이냐 아니면 TBS 구성원 모두가 다 같이 죽을 것이냐는 협박 끝에 이강택 사장의 자진사퇴와 함께 얼마 전 서울시의회가 ‘TBS 설립 및 운영에 관한 폐지 조례안을 통과시켰고, 이제 커지는 김어준 하차설과 함께 TBS는 존폐 위기의 고비로 들어서고 있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YTN 민영화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이다. YTN을 재벌이나 <한국경제신문>같은 대표적인 친기업 우파언론이 인수해서 윤석열 정권의 국정 방향과 정책을 편들어주면 낮은 지지율 문제 해소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들이다. 그 밖에 <더탐사>에 대한 한동훈의 고발과 검찰의 압수수색, 보수단체의 폭행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전형적으로 보수우파 정권이 권력을 잡으면 언론시장의 판 자체를 바꾸면서 언론 장악과 통제를 시도한다는 경험적 분석과 예측에 들어맞게 진행되고 있다. 민영방송사를 탄생시켰거나, 종편TV들을 만들면서 전채 판을 흔들고 재구성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언론을 통제하고 자유를 짓밟았던 과거 우파 정권들의 특징이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윤석열 정권이 이런 식의 언론 장악과 통제를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나왔다. 그때 이미 윤석열 후보는 민주노총 언론노조가 언론을 장악해 허위보도를 일삼고 국민을 속이고 있다며 악선동을 했기 때문이다. 당선 직후 인수위 시절에도 윤석열 그룹은 자기들의 마음에 안드는 <뉴스타파><미디어오늘>의 출입과 취재를 가로막았다.

또 중요한 특징은 이러한 언론 장악과 통제 시도는 언론인 출신이면서 윤석열 정권에 유입된 사람들에 의해서 주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검피아-모피아-족벌언론연합정권의 성격에서 비롯한 특징이다. 족벌언론들에서 전임 정부 때 이들이 그토록 목 놓아 부르짖던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찾아볼 수 없어진지 오래다.

이것을 단지 윤석열에게 체리따봉 받는 게 그렇게 좋은가라는 식으로 봐서는 안 된다. 더 근본에는 이들이 이익공동체라는 사실에 있다. 거대 족벌언론들은 기득권 권력 카르텔의 핵심적 일부인 것이다. 예컨대 대장동 일당과 50억 클럽에 전직 검찰총장, 우파 정치인만이 아니라 언론사주와 고참 법조기자들의 이름이 계속 나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더구나 윤석열 정권은 한 놈만 팬다는 정신으로 MBC를 두들길 뿐 아니라, 나머지 언론사들도 위계적 서열에 따라서 충성 경쟁을 시키고 통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다. 최근 해외순방에서 그것은 대통령 전용기에서 쫓겨난 언론사, 전용기에 탈 수 있었던 언론사, 전용기 안에서도 따로 대통령과 독대한 언론사라는 3등급 위계서열로 나뉘어졌다.

이것은 등급 밖으로 밀려난 언론에는 공포와 고립감을, 등급 안으로 들어간 언론에는 위축과 자기 검열을, 최상위 등급에 올라가 있는 언론에는 더 강력한 충성 경쟁을 요구하는 방법이다. 이 효과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사실 이미 많은 방송과 언론에서 대장동 수사에 대한 검찰발 받아쓰기는 넘치지만 김건희 주가조작에 대한 보도는 찾기 힘들어진지 오래다. MBC 기자가 대통령 전용기에서 쫓겨났을 때 그나마 같이 탑승을 거부한 것은 <한겨레><경향신문> 밖에 없었다.

덕분에 자신감을 얻은 윤석열 정권은 MBC 기자의 예의를 문제삼으며 도어스태핑을 중단하고 기자단에게 자체 징계를 요구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방송과 언론들이 모두 한목소리도 정권의 언론 통제와 장악 시도에 맞서며 언론의 자유를 지키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움직임과 목소리는 아직 별로 커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MBC는 방어하는 목소리가 들리지만, TBS<더탐사>에 대한 연대는 더욱 잘 보이지 않는다.

보수세력과 족벌언론들의 주도로 ‘<뉴스공장>이나 <더탐사>는 정치적으로 편향적이고 과도한 음모론 등으로 정상적인 언론이 아니다라는 낙인이 찍혀있고, 이것이 반민주적 탄압에 맞서 손을 잡는 게 아니라 선을 긋고 외면하게 하는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호불호를 떠나서 그가 누구든 권력을 비판하고 의문과 의혹을 제기할 자유를 방어하는 것이어야 한다.

중국 백지혁명의 불씨가 꺼지지 않기를

2019년 홍콩민중항쟁이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후에 중국의 지배 영역에서 더 이상 저항은 불가능할 것처럼 보였다. 1989년 천안문 항쟁도 실패했고, 천안문을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던 홍콩의 숨쉴 틈마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시진핑의 집권이 장기화하면서 공산당 내부의 권력 분점과 다른 목소리조차 사라졌다. 시진핑은 반부패를 내세워 경쟁자들을 제거하고 국가주석의 임기제한도 없애고 시황제로 등극했다. 주요 도시에는 안면인식 CCTV가 곳곳에 설치됐고, 공안은 영장없이 휴대전화와 SNS에 감시했다.

그럼에도 중국 본토의 애국주의 청년세대들은 중국몽에 열광하며 시진핑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였다. 많은 언론은 이 청년세대를 시진핑 키즈’, ‘21세기 홍위병이라고 부르며 비관을 부추겼다. 그러나 홍콩에서 짓밟히며 사라진 것처럼 보이던 불씨는 이번에 중국 본토에서 다시 불길로 살아났다. 근래 중국의 주요 도시들을 휩쓸었던 백지혁명의 물결이 그것이다.

이 투쟁이 시진핑이 중요한 업적으로 강조했던 제로 코로나에서 비롯했다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팬데믹 초기만 해도 중국은 엄격한 봉쇄 정책으로 코로나 사망자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제로 코로나의 모순과 부작용은 커졌다.

주요 도시에서 수천만 명의 주민들이 감금과 격리 속에서 고통받으면서 제로 코로나는 준군사적 통치와 디지털 감시의 계엄상태를 유지하면서 시진핑 3연임으로 가려는 명분이라는 불신과 의심이 커졌다.

저항의 신호탄은 시진핑 3연임을 위한 대관식인 공산당 20차 당대회를 사흘 앞두고 터졌다. 한 남자가 베이징의 고가도로 위에 현수막을 걸고 1인시위에 나선 것이다. 현수막에는 ‘PCR 검사가 아니고, 밥을 먹길 원한다. 봉쇄와 통제가 아니고, 자유를 원한다. 거짓이 아닌 존엄을 원한다. 문혁이 아닌 개혁을 원한다. 영수가 아닌 선거를 원한다. 노예가 아닌 공민이 되자. 수업 거부, 파업, 독재자 매국노 시진핑 파면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브릿지맨으로 불린 이 남자는 곧 끌려갔지만, 이어서 공중 화장실 곳곳에 같은 구호를 적어놓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났다. 이것은 화장실 혁명으로 불렸다. 시진핑의 3연임이 확정된 당대회 이후에도 불길은 꺼지지 않았다. 특히 중요한 것은 허난성의 폭스콘 공장에서 벌어진 대규모의 시위와 충돌이었다.

마침내 찾아온 결정적 방아쇠는 우루무치 화재 사고로 숨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집회가 됐다. 사람들은 코로나 봉쇄를 위한 설치물들이 화재 진압을 가로막아 억울한 죽음이 발생한 것에 분노했고, 상하이에서 벌어진 추모 시위에서는 공산당 물러나라, 시진핑 물러나라, 우루무치를 해방하라는 구호가 타져 나왔다.

월드컵 중계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다른 나라를 보면서 분노는 더욱 커졌다. 시위는 중국 전역의 주요 도시로 번졌고, 대학생들이 백지시위가 이어졌다. 그동안에도 지역적이고 부문적인 저항은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은 연결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이것은 89년 천안문 이후 최초로 벌어진 같은 불만과 요구를 중심으로 연결된 전국적 저항이었다.

결국, 시진핑과 공산당은 제로 코로나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며 뒤로 물러서고 있다. 물론, 동시에 시위 주동자에 대한 색출과 대규모 경찰력 배치 등을 통해서 신속히 통제력을 회복하고 있다. 그러나 저항의 불씨가 완전히 꺼질 수 있을지, 언제 다시 터져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공산당 지배집단이 걱정해야 할 몇 가지 요소들이 존재한다.

첫째, 중국 방역 정책의 문제점 때문에 제로 코로나의 폐기가 만약 고령층에서 대규모 감염과 사망으로 이어진다면 지배집단은 진퇴양난의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다. 둘째, 중국 경제의 성장속도는 여전히 미국이나 유럽보다 몇 배나 빠르지만 그 속에서 빈부격차는 커졌고, 최근에는 부동산 거품 붕괴 위기와 청년실업률도 심각한 상황이다. 셋째, 시진핑 1인체제가 권력의 폐쇄성과 경직성을 높여서 유연한 대처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은 미국이나 서방 자본주의 진영의 지배집단들에게 반가운 소식만은 아닐 것이다. 사실 중국 공산당이 천안문 항쟁의 짓밟고 본격적인 시장개혁으로 나아갈 때 가장 긴밀한 협력 파트너가 된 것은 시장 자본주의 국가들과 다국적 기업들이었다.

중국의 노동력과 시장은 세계 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적 팽창과 축적으로 나아가는 데 결정적 구실을 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민중의 노동권과 인권을 억누르는 것에 서방 국가들과 초국적 기업들은 겉으로만 비판하면서 속으로 공모했다.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겠다는 것은 영국이나 한국에서 저항하는 노동자들에게 자본가들이 하던 가장 흔한 협박이었다.

시장개혁이 낳은 빈부격차와 실업, 환경 파괴는 중국만의 특징이기는커녕 시장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해결하지 못해온 고질병이었다. 이러한 적대적 공생관계는 이번에 폭스콘 공장에서 아이폰 생산의 중단을 중국 정부와 애플이 함께 걱정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중국에서 벌어지는 저항의 중요성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전세계 인류의 약 20%와 전세계 산업 노동자의 약 40%가 살고 있는 지역이다. 이들의 저항이 발전하고 성공하는 것은 나머지 세계의 노동자와 민중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번에 베이징에서 등장한 브릿지맨을 보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억압에 맞서는 그 엄청난 용기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89년 천안문 광장에서 맨 몸으로 장갑차를 멈춰 세우던 탱크맨이 보여 준 용기의 놀라운 부활이었다. 아무리 억누르고 짓밟아도 자유와 해방을 위한 인간의 용기와 저항은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은 다시 입증됐다.

(기사 등록 2022.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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