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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새로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을 향하여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6. 28.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교조적 해석을 거부하고 혁신적 시도에 앞장서는 것으로 주목받는 좌파 학자인 자이루스 바나지Jairus Banaji의 인터뷰이다. 자이루스 바나지는 인도 출신의 마르크스주의 학자이며 역사유물론, 이슬람의 역사, 자본주의와 농민, 인도의 노동운동 등에 대해 많은 연구와 저술을 남겨 왔다. 근래에는 <상업적 자본주의의 간략한 역사>를 출간했다.(번역: 두견)

출처https://www.historicalmaterialism.org/index.php/interviews/jairus-banaji-towards-new-marxist-historiography

* 당신이 출판한 작업들을 보면 가치 형태 이론(상품에서 자본으로: ​​마르크스 자본에서 헤겔의 변증법)에서 파시즘 비판 이론(파시즘: 유럽과 인도에 관한 에세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역사 이론(역사로서의 이론)까지 매우 다양한 관심 분야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다양한 관심을 이질적인 연구 분야 내에서 서로 다른 개입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당신의 작업에서 찾을 수 있는 연속성과 체계성이 있는가?

연속성은 단순히 마르크스주의 이론 자체에서 나온다. 마르크스가 이해한 역사적 유물론은 하나의 방법으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통합된 개념이나 연구 분야였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국가로부터의 추상해서 순수하게 경제적인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는 훈육된 많은 사람들이 권력과 그것이 전제하고 유지시키는 모든 가치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도록(사르트르Sartre'연속적 수용이라고 말하곤 했다) 유도하는 문화에서 추상적으로 분리된 국가를 생각하는 것이다.

히틀러가 가능했다면 히틀러가 등장하고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했기 때문이다.(민족주의, 군국주의 등에 대한 수십 년에 걸친 복종으로 형성된 '인민''화신'이 되는 것.) 본질적으로 통합된 방법으로서의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이러한 개념은 우리가 그것을 그렇게 부르고자 한다면, 사르트르가 <방법의 문제>에서 지도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 작업을 매우 다른 수준, 오히려 다른 분야에서 통합된 개입으로 본다.

인도 자본이 어디에 있는지 이해하고 감각을 얻기 위해, 현재 인도에서 독립 노조 연합을 운영하고 있는 내 동료와 나는 금융 및 산업 분야(펀드 매니저, 회계감사, 회사 임원, 투자분석가 등)에 걸쳐 거의 200명에 가까운 사람들과 인터뷰를 공동으로 수행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은 어떤 식으로든 틀이 잡혀야 했고 자본가들이 사업 운영 방식, 기업 지배 구조 시스템에 대해 논의해야 하는 독특한 상황에 의해 틀이 제공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중점적으로 다루었지만 연구 자체와 인터뷰는 그것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통제되는 방식(거대기업의 발기인 통제를 구축하는데 사용되는 메커니즘)과 외국 기업의 시장 유입으로 인도 자본이 얼마나 위협을 느끼는지 등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었다.

* <역사로서의 이론>의 도입부에서 당신은 "생산의 관계""착취의 형태"를 구별한다. 이 구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이러한 개념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이 왜 역사적 유물론을 형식주의로 몰아가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가?

생산관계는 마르크스가 미처 다루지 못한 주제인 (자본주의 하에서) 경쟁 영역에 속하는 관계를 포함하여 주어진 생산양식의 모든 관계이다. 마르크스는 처음에 생략된 결정을 포함하여 각각이 '실제'에 더 가깝게 근사치에 이르도록 여러 층위로 <자본>을 구성한다.

착취는 1권의 초점이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노동과 잉여노동의 물신화된 구체화, ‘살아있는 노동의 변형/객체화된 형태로서 자본 일반이 처음의 국면에 어떻게 발생하는지 보여주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이 논증을 수행하기 위해 마르크스는 가치에서 시작하여 화폐가 무엇인지 설명해야 했고, 그 다음 가치와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한 장소로서의 노동과정을 다루어야 했다.

'생산관계'에 속하는 해답의 풍부함을 이 추상화의 초기적 수준으로 축소하는 것은 마르크스가 <자본>의 나머지 부분을 쓸 필요가 없었고 1권에서 멈출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렇게 했다면, 우리는 그가 '자본주의'를 통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알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겠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와 그의 시대에 급속히 발전하고 있던 근대 자본주의를 (불가피하게)동일시했다.

그러나 전근대 자본주의는 남송 통치 아래의 중국에서부터 이슬람 세계의 많은 부분에 이르기까지 세계 여러 곳에 널리 퍼져 있었다. 발렌시Valensi18세기와 19세기 튀니스의 샤시야shashiya[중세 이슬람의 머리쓰개] 생산에 대한 뛰어난 사례 연구를 수행했는데, 이는 분산되고 순수하게 국내적 산업이지만 자본에 의해 엄격하게 조직되고 통제됐다. (근현대사 저널Revue d'histoire moderne et contemporaine 1969 참조) 중세와 고대에도 도시 경제들에서 번성했던 종류의 자본주의적 원형이 여기 있다.

우리가 이제 이것을 마르크스의 잘 정의된 의미의 현대 자본주의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는 한, 그런 종류의 경제 관계를 '자본주의적'이라고 특징 짓는다고 해서 특별한 혼란이 야기되지는 않는다. 또한 이러한 형태의 생산이 나머지 경제를 주도했다는 주장도 제기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노동자들이 우리가 보통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랜 역사 동안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해 왔다는 인식이다.

* <역사로서의 이론>5("자유 노동의 허구")에서 당신은 임금 노동이 노예제나 농노제와 비교할 때 어떤 "진보"도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 비판>에 의존한다. 사르트르가 임금 노동에 대한 신비화를 풀어주는 비판에서, 예를 들어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비판이나 루카치의 사물화 비판에서는 찾을 수 없는, 무엇을 가져오는가?

아니다. 나는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든지 간에 '진보'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나는 (당신이 언급한 장에서) 그것이 노동에 대한 이전 지배 형태보다 덜 강압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강제는 다르게 작동하고 물론 다르게 경험되지만, 논쟁되고 있는 것은 자유/비자유 노동이 정치적으로 이해되고 사용되는 얄팍한 방식이다.

인도와 같은 나라에서는, 특히 시골이나 달리트Dalit[불가촉 천민] 지역사회의 많은 수의 임시직과 계약직 노동자들이 사실 노예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것이 그들이 실제로 노예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최소한 마르크스의 약간 낙관적인 관점에서 임금 노동이 대표하는 진보는, 현대 산업 자본주의 하에서 노동이 대규모 생산 현장에 집중되어 있고 생산 자체가 노동자를 단련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이 투쟁적이 되도록 하고, 자본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전체에 대한 반대할 가능성이 있는 집단적 연대와 힘을 인식하게 한다는 것이다.

서지 말렛Serge Mallet은 노동계급에 대한 이러한 비전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했지만, 이미 이 단계(마르크스가 <자본>을 쓴 지 대략 100년 후)에서 그는 노동계급의 서로 다른 다양한 '유형'을 구분해야 했고 그런 부문(자동차와 같은 대량 생산 산업)을 거의 삭제했다. 여기서 탈숙련화된 업무의 성격은 회사와 그 회사가 사회에 어떻게 적응했는지에 대한 더 넓고 유기적인 이해에 대한 기초가 없기 때문에 쉽게 깨지는 일시적인 형태의 연대만을 허용했다.

이것은 이미 1860년대의 마르크스의 개념으로부터 주요한 후퇴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혁명적 잠재력을 매우 특정한 종류의 노동자 계급(자동화된 산업의 노동자들)으로 제한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동화에 대한 네빌Naville의 작업과 산업에 대한 투렌Touraine의 진화론적 관점에 부분적으로 영향을 받았지만, 물론 결국에는 특히 두 주요 노조 연맹이 그것의 단련에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685월로 이어진 프랑스의 새로운 국면들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 <역사로서의 이론>2("유물론적 역사 개념에서의 생산 양식")4("자본주의 이전의 노동자들")에서 당신은 당신이 "속류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르는 것과 상반되는 두 가지 강력한 주장을 한다. 당신은 소위 "노예제 생산 양식"의 일부 유물을 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미국의 노예 농장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적이어서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이 임금 노동에 의해 독점적으로 정의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4장에서 당신은 실제로 임금 노동이 고대 로마에서 널리 퍼진 노동 착취 형태였으며 특히 임금 노동자의 요구와 조직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자본주의는 노동이 지배되고 잉여노동이 추출되는 특정한 형태와 상관없이 자본을 축적하려는 충동이 특징이다. 개별 자본가에게 노동자가 자유롭든 자유롭지 않든, 집에서 일하든 공장에서 일하든 등등은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러한 결정은 순전히 경제적이고 기술적이다. 그것들은 생산의 비용, 노동력의 유용성, 특정 유형의 노동자(여성, 가정기반)가 특정 유형의 생산에 더 적합한지 여부와 같은 문제와 관련이 있다. 이 수준(개별 자본)에서 '기술'의 구성조차도 매우 주관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전체 사회적 자본의 관점에서 볼 때 자본가는 노동자를 놓고 경쟁하고 시장은 경쟁 과정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허용해야 하기 때문에 노동의 이동성은 분명히 중요하다.

근대 세계의 노예제(대서양 노예제)는 순전히 자본주의적 창조물이었지만, 관련된 자본주의의 종류는 주로 마르크스가 상인 자본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쿠바의 노예 농장이 하바나Havana 상인 집들과 그들이 묶인 미국 은행 및 중개인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처럼, 미국의 남부 농장주들은 어떤 경우에도 북부 금융기관들에 막대한 빚을 지고 있었다.

* 당신은 최근 자본주의의 금융화에 대한 분석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당신은 두 가지 구별되는 이론적 자원들을 살펴보았다. 첫째, 아편 전쟁에 관한 마르크스의 저작과 둘째, 사르트르의 순차성seriality 개념이다. 동시대의 현상을 분석하기 위한 이 두 가지 접근 방식의 장점과 참신함은 무엇인가?

최근의 금융 위기에 대한 강의는 근래의 마르크스주의 저작들에서 '생산적' 자본이 일종의 '순수'한 자본주의인양 불균형적이고 과장되게 강조하는 것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금융과 생산 사이의 균형을 재정립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이것은 부분적으로 가상 자본’fictitious capital을 분석의 중심 범주로 만드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3권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자본주의가 신용 없이는 기능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마르크스가 우리에게 말한 것처럼 신용은 그것의 전체적 기반이다. 일단 이것이 인정되면, 우리는 그것을 무시하지 말고 모든 추가적 분석에 통합할 수 있어야 한다!

신용이 현대 자본주의 경제의 근간이라면 금융시장은 축적의 중심이고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사르트르의 순차성개념은, 국가에 대한 더 풍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자본이 사회 전반에 대한 지배력을 어떻게 발휘하는지에 대한 측면에서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자본을 국가와, 국가를 언론과, 언론을 자본과 분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상호 의존성이 인정되는 즉시 전체 분석이 더 복잡해지고 이를 구조화하기 위해 새로운 범주들이 필요하다. 실제로, 우리는 현대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가지고 있는가?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두 자본주의 국가(중국과 미국)는 근본적으로 다른 역사를 통해 등장했다. 그렇다고 해서 둘 다 자본의 특정 구현체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내가 뜻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정치, 이데올로기, 문화 및 자본 간의 연결이 단일한 통합적 형판으로 반영돼지 않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가 행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 자본주의가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착취와 생산의 관계를 강조하고 생산양식(원시 공산제, 노예제, 봉건제, 자본주의, 사회주의)의 연쇄라는 고전적 모델에 대한 역사적 타당성을 부정하면서, 어떻게 역사에서 단절과 질적 도약을 이론화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어떠한 종류이든 역사주의를 포기했을 때 이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수 있는가? 그리고 역사적 유물론의 이러한 다중 선형화multilinearization에서 어떤 전략적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부정되는 것은 생산양식의 어떤 경직된 연쇄이다. 유럽 역사의 더 제한된 캔버스 내에서도 고대 세계와 중세 사이의 '전환'은 농노제에 의한 노예제의 단순한 승계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옛 로마제국의 서부 지역에서 수세기 동안 농촌 노동력은 노예나 농노로 특징지을 수 없는 노동자로 구성되었지만 상당한 강압을 유지하고 있는 새로운 형태의 지배에 종속되었다.

이것을 '과도적'이라고 기술하는 것은 우리의 역사 읽기에 목적론이라는 무거운 부담을 주입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미하일로프스키Mikhailovsky에 대한 그의 유명한 대답에서 이와 동일한 것을 말했다. 그리고 7세기 중엽에서 후반과 (스페인에서) 8세기 초에 걸쳐 이슬람 군대에게 넘어간 근동과 지중해 지역은 어떠한가?

여기에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을 위한 모델은 마누엘 아시엔 알만사Manuel Acien Almansa가 전통적인 특성화를 거부하고 부분적으로 기차르드Guichard의 작업에 영향을 받은 완전히 독창적인 방식으로 이슬람 사회의 구성을 재고찰하려고 했던 방식으로 제공된다. 이러한 재고찰에서 대부분의 주요 희생자는 거의 자본주의만큼이나 큰 보편성을 지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역사적 범주로서의 '봉건제'에 대한 단순한 생각이었다.

역사의 기본구조는 그렇게 하지 않고, 주로 사회적 및 경제적 역사를 다루는 엄격한 유물론적 관점에서 볼 때 훨씬 더 풍부해진다. 물론 '이행'이 있지만 반드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관해 분석한 종류의 법칙에 의해서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며 우리가 역사나 역사적 유물론을 이해하는 방식에 목적론적 틀을 가져와서는 안 된다.

분명한 사례를 들자면, 지난 수십 년 동안 소련과 중국 경제를 변화시킨 중대한 변화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이행'이 분석의 기본 범주라면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어떤 종류의 이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가?

* 만약 당신이 이행 경로의 다양성을 고려한다면, 당신의 접근 방식을 (당신이 거부하는 것처럼 보이는 개념인) "생산 양식의 절합articulation"이라는 알튀세르식 개념과 차별화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실제로 소련과 중국은 어떤 사회였을까? 국가자본주의의 개념은 그 경우에 적절한 것인가?

모든 역사적 총체화를 특징짓는 복수의 '이행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에서 서로 다른 형태를 취하는 자본주의의 출현)을 강조하면서 나는 어떤 단순히 '법칙들'의 묶음으로 단순화될 수 없는 궤적을 언급하고 있다. 나는 이것이 구조주의적 의미의 '절합'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확실히 생각한다. 알튀세르는 '생산 양식'보다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에 대해 훨씬 더 뛰어나다. 생산 양식에 대해서 그는 전후 스탈린주의 집단들에 널리 퍼져 있던 일종의 진부함('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통일성')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했다.

그가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부분은 그것이 '동시에' 자본주의적 착취 관계라는 점은 놀라운 일이다. 알튀세르는 이 표현('동시에')의 의미를 더 나아가며 파헤치지 않았다! 그는 자본의 '결정들'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것은 표현적인 총체성에 빠져 헤겔주의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내주는 것이라고 분명히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그것들이 '동시에' 착취의 관계라고 말할 때, 그는 자본의 세 권 모두를 관통하는 종류의 매우 복잡한 자본의 구성을 실질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알튀세르의 이론적 약점의 주요 증상은 축적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본주의를 (축적과 경쟁의 법칙이라는) 역동적인 방식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가 국가를 다룰 때 재생산을 중심 범주로 만들기 때문에 이것은 아이러니하다. 내가 말했듯이 그는 국가와 국가 기구에 대해 매우 훌륭하고 우리는 그의 작업의 이러한 부분에서 배울 것이 많다.

소련과 중국은 항상 '국가자본주의'로 봐왔지만 그것은 그냥 기본적인 의미였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그들이 명백히 어떤 종류의 탈자본주의 사회도 아니었고, 적어도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종류의 사회('연합한 생산자들'의 사회)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변명의 여지가 적은 설명으로 국가자본주의가 자리 잡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특성화는 매우 기초적인 의미에서는 사실일지라도 단순히 충분하지가 않다. 국가가 단일한 자본가이거나 결합된 자본가라면 자본가도 국가이다. 이른바 '실패한' 혁명에서 나온 자본주의에 대한 정치경제학을 발전시키도록 우리에게 촉구하는 것은 바로 이 두 번째 측면이다. 중국은 특히 복잡하지만 러시아와 중국 모두 오랜 국가 지배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농민을 제거(마을들은 세계의 대부분 지역에서 빠르게 붕괴되고 있다, 인도는 이것의 좋은 예이다)할 뿐만 아니라 농촌 자체를 자본의 역사에서 '순간'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농촌을 잠식하려는 자본의 최후의 파멸적 드라이브이다. 중국에서는 국가가 자본의 주요 기관이기 때문에 파졸리니Pasolini'반딧불이의 소멸'이라고 불렀던 공격에서 특히 두드러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지아장커Jia Zhangke의 영화(<스틸라이프>, <죄의 손길> )'원시적 축적'의 거대한 움직임에 대한 아주 놀라운 탐구이다. 특히 그가 세미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그것을 포착하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의 국가적 축적과 억압이 막바지에 이른 오늘날 중국의 자본주의가 어떤 것인지는 이론의 가장 기초적인 진부한 것들을 단순히 반복하는 어떤 글보다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단지 이 정도 거대규모의 자본주의에 맞서기 위한 범주가 없을 뿐이다!

* ‘서구 마르크스주의’(마르쿠제Marcuse, 라이히Reich, 사르트르)가 파시즘이라는 동시대적 도전에 기여한 것은 무엇인가?

지극히 기본적인 것이다. 좌파는 정치적으로 파시즘에 대항할 수 있는 방법은 말할 것도 없고 일관성 있고 강력한 파시즘 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라이히의 작업은 권위주의와 파시스트 운동에 대한 지지 사이의 시너지 효과에 주목했으며, 심리적 및 문화적 차원 모두에서 찾으면서 이 두 가지를 근본적으로 비활성적인 구조(사르트르가 '실천적 무기력practico-inert'이라고 부르는 것의 형태)로 보았다.

오늘날 인도에서는 좌파 정당에 의해 완전히 무시되고 언급되지 않는 다수의 뿌리를 잃어버린 젊은 남성들이 극우로 몰려드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들을 육성하는 문화는 가장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사상(카스트, 성차별, 종교적 공동체주의)과 행동 양식으로 가득 차 있으며 남성과 여성 청년 모두의 삶을 왜곡하는 엄청난 성적 억압으로 가득 차 있다.

사르트르의 작업은 파시즘의 부상과 '대중'에 대한 파시즘의 강력한 장악에서 작동하는 지배 방식을 분석하는 수단을 제공한다. 대중 지배는 모든 파시스트 체제의 기초이지만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이것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에 대한 검토를 겨우 시작한 것이다.

* 오늘날 (인도와 유럽 다른 지역의) 좌파에게 있어서 이론의 전략적 역할은 무엇인가?

이론은 기본적이고 필수 불가결하지만 진공 상태에서 자라지 않고 좌파에게 (학술주의, 학문적 계층화, 교조적 협소화 등에서의) 해방과 더 나은 발전을 위한 조건을 제공하는 새로운 정치 문화와 운동이 등장할 때만 등장하고 꽃을 피울 것이다.

그리고 사상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이론에 진지하지 않고 이론의 개념을 넓히지 않는 좌파는 이와 같은 문화와 혁명적 운동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매번의 순간이 서로에게 의존하고, 그 사이에 '전략'의 전체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말하면서도, 좌파는 혼자만의 힘으로 스스로를 일으킬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자. 좌파가 오늘날 세계에서 주요 정치세력으로서 자신의 성장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은 그들 자신의 집단적 주도권과 힘, 그리고 사회를 형성하기 위해 열망하는 계급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의식을 회복하는 새로운 노동계급 또는 노동계급의 새로운 계층의 출현에 있다.

자본은 이러한 조건의 출현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전후 시대(60년대 후반까지)의 도전으로부터 재빨리 배워서 사르트르가 프랑스의 경우에 대해서 비판한 맬서스주의로 나아갔다. 그것이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사회 계약을 거부하고, 규모의 경제가 포기되는 크기와 분산의 정도에 따라 생산을 원자화하는 것을 의미하더라도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실제로 최선의 선택이었다.

<자본>에서 마르크스가 상상했던 노동계급은 안타깝게도 오늘날 훨씬 덜 강력하고 덜 집중된 형태로 존재한다. <공산당 선언> 전체를 관통하는 낙관론은 이 자본의 힘이 개입하여 단일한 생산 장소에 집중된 노동자 대중과 더 이상 대면하지 않도록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생산을 형성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생산이 좌파적 전략의 핵심으로 남아있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노동조합주의는 어떤 형태를 취해야 하는가? 실업자들의 대중은 어떻게 조직화된 운동의 일부가 될 것인가? 그리고 임금을 받는 대중이 그토록 깊이 파편화돼 있고 분열되고 있는 상황에서 진정한 연대는 어떻게 구축될 수 있는가?

(기사 등록 2022.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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