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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모든 것이 평등해야 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5. 18.

아래 글은 낸시 린디스판Nancy Lindisfarne과 조나선 닐Jonathan Neale이 데이비드 그레이버David Graeber와 데이비드 뱅그로우David Wengrow가 쓴 <모든 것의 새벽: 인류의 새로운 역사>를 서평한 글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아나키스트적 인류학자이자 급진적 사회운동가로서 월 스트리트 '점거하라' 운동을 이끌었었고 얼마 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사망했다. 이 서평에서 두 사람은 이 책의 기여를 평가하면서도 상당히 논쟁적이고 비판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인류학과 고고학의 최신 성과들에 기반해 계급, 국가, 여성 억압, 계급투쟁의 역사적 기원과 발전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레이버와 뱅그로우가 좀 더 자유의지적 선택을 강조한다면 낸시와 닐은 주변환경과 물질적 기반이 그러한 선택에 가하는 제약을 강조한다.

이런 내용들이 상당히 흥미롭고 유익하다고 판단해, 비록 <모든 것의 새벽>이 한국에서 아직 출판된 것은 아니지만 이 서평을 번역해서 소개한다. 이 글의 필자인 독립적 사회주의자인 낸시 린디스판(Nancy Lindisfarne)과 조나선 닐(Jonathan Neale)은 미국과 영국에서 다양한 활동을 해 왔고, 제국주의, 기후정의, 젠더 억압과 젠더 정의 등에 대한 많은 글을 써왔다. 조나선 닐의 <미국의 베트남 전쟁>, <두 개의 미국>, <기후변화와 자본주의> 등은 국내에도 출판돼 있다. 분량이 상당해서 일부를 생략하고 핵심 부분을 중심으로 선택적으로 번역했다. (번역: 두견)

출처: https://annebonnypirate.org/2021/12/16/all-things-being-equ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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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진화 이론과 인간의 적응

그 이후로 인류학자와 고고학자들은 인간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완전히 유용한 설명을 만들어 왔다. 핵심 인물은 켄트 플래너리Kent Flannery, 조이스 마커스Joyce Marcus 및 제임스 C 스캇James C. Scott이다. 이들의 작업은 아래에서 논의한다. 불행하게도,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이러한 인간 진화에 관한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학문에 관여하지 못한다.

이러한 새로운 연구를 무시하면서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상대적인 영장류의 진화와 인간 적응에 대한 신중하고 현재 매우 잘 정리된 주장에 반대했다. 그들의 문제는 이 자료가 '원시의' 인간 사회가 없었다는 그들의 주장을 뒤집고 선택에 대한 그들의 주장이 다소 어리석은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인간이 한때 사냥과 채집을 통해 살았다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과 인간 존재의 물질적 기반에는 깊은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들은 이 사회가 필연적으로 평등하다는 것을 부인한다. 그들의 주장의 첫 단계는 인류의 진화는 모두 과거이고, 우리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추측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사실이 아니다.

지난 40년 동안 과학 혁명은 괄목할 만한 일이었고 인간 진화 분야의 연구는 엄청난 꽃을 피웠다. 이제 인간이 아닌 영장류와 영장류의 행동, 초기 인류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 근현대 수렵 채집인들의 새로운 민족지학에 대한 새롭고 놀라운 연구들이 많이 있다. 화학적 미시 분석, DNA 샘플링,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 및 협소한 조건에서의 끈질긴 고고학 덕분에 우리는 계급 이전 사회와 초기 계급 사회에 살았던 사람들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의 영웅들 중에는 쉽게 읽을 수 있는 크리스토퍼 보움Christopher Boehm,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R. 브라이언 퍼거슨R. Brian Ferguson, 사라 하디Sarah Hrdy, 마틴 존스Martin Jones, 로라 리발Laura Rival의 광범위한 출판물들이 있다. 이 연구는 인류 진화와 인류 역사에 대한 연구를 변화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놀라움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제 우리는 평등해짐으로써 인간이 된 것 같다. 이것은 놀랍고 소중한 통찰력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레이버와 뱅그로우의 설명의 토대를 공격하는 통찰력이다.

인간의 적응에 대한 간략한 개요

서로 다른 유인원과 원숭이를 대상으로 한 수십 개의 장기 현장 연구 프로젝트는 이제 각각의 종에 대해서 특정하고 복잡한 적응이 어떻게 그들이 특정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 적응은 그들의 주요 식단, 안 좋을 때 대체 식단, 그들의 뇌, , , , 치아, 생식기, 그르렁소리, 노래, 지배적 관계, 분배 관계, 아이 양육, 공격성, 사랑, 몸단장, 그리고 집단 구조가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한 세부 사항을 포함한다. 그것이 기준선이고, 인간의 진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우리의 방법이기도 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적응의 여러 부분이 합쳐져 현대인류가 탄생했다. 간단히 말해서 초기 인류는 하찮은 영장류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살아남기 위해 고기와 야채를 나누는 법, 육아를 분담하는 법, 성적인 기쁨을 나누는 법을 배워야 했다. 이를 위해 그들은 괴롭히려는 사람들을 규율하고 영장류 조상의 지배적 위계제를 초월해야 했다. 그리고 적어도 20만 년 동안 그들은 남성과 여성이 서로 평등한 평등주의적 사회에서 살았다.

일부 세부사항들

조금 더 자세히 보면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인간은 땅에 묻힌 덩이줄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땅 파는 막대기를 발명했을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속도, 지구력 및 무기에 따라 죽일 수 있는 큰 동물의 매복 사냥꾼이 되었다. 우리는 치아, , 다리의 변화뿐만 아니라 화석의 상처 패턴과 동굴에서 발견되는 식단과 뼈, 그리고 살아남은 현대 사냥꾼이 큰 사냥감을 어떻게 사냥했는지를 통해서도 이것을 알고 있다.

모든 경쟁 포식자로부터 인간 종을 구분한 돌파구는 결합된 식단과 불로 조리된 음식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소화를 위해 훨씬 적은 칼로리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리차드 랑햄Richard Wrangham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러한 추가 칼로리는 성장하는 두뇌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매복 사냥은 믿을 수 없었고, 사냥꾼은 한 달에 단 한 번의 큰 사냥만 할 수 있었다. 인간 종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그들의 사회 조직을 변화시켰다. 그 음식은 본거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다. 이 변화는 모든 사람들이 정기적으로 고기를 먹지만, 고기가 없는 날에는 사냥꾼들은 덩이줄기와 다른 과일과 야채에 의지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우리의 영장류 조상들과 초기 인류들은 두 가지 방법으로 이러한 변화를 관리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음식을 나눠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그들은 사냥꾼들 사이의 경쟁을 제한하고 타인을 괴롭힐 수 있는 사람들을 훈육하는 방법을 찾았다.

둘째, 그들은 새로운 스타일의 양육 방식을 발명했다. 페미니스트 영장류학자 사라 하디Sarah Hrdy는 영장류의 영아 살해 패턴과 젠더 관계의 주요 변화에서 어머니들이 어떻게 다른 여성과 남성을 신뢰하여 어린 자녀를 돌보게 되는지에 대해 폭넓게 저술했다.

또 다른 변화는 인류는 영장류 중에서도 유일하게 남녀 모두가 일반적으로 여성 폐경 연령을 넘어서 산다는 것이다. 진화적 이점은 부분적으로 노인의 전문 지식이 가치 있다는 것에 있지만, 또한 그들이 아이 돌봄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과 다양한 차이점들의 집합으로 인해 인간은 다른 유인원보다 빠르게 번식할 수 있었다. 그리고 특정 시기에는 그들은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질 수 있었다.

이 초기 역사는 인류학자들이 전 세계적으로 거의 동시대의 수렵채집인 집단으로부터 보고한 종류의 사회와 일치한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누구도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없다. 이것의 핵심은 재산이나 잉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규칙적으로 이동한다. 한 쪽 엉덩이에 붙어있는 아이와 함께 아무도 자신이 짊어질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는다. 무리들의 경계는 없다. 사람들은 항상 집단을 바꾸고, 모든 사람들은 각각의 다른 무리들에 실제 또는 가상의 친척이 있다.

음식, 섹스 또는 그 밖의 무엇이든 갈등이 쌓이면 누군가가 이동한다. 이것은 여성도 남성도 덫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러한 사회에는 젠더 불평등의 규칙적인 패턴이 없다. 그리고 괴롭히는 이들을 억제하는 능력은 최근의 수렵채집인들 사이에서 또 다른 중요한 패턴이다.

우리는 인류학자들의 설명에서 이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유인원 조상들의 해부학적 변화로부터 나온 증거도 있다. 다른 수컷과 싸우는 데 사용되는 수컷의 큰 송곳니가 사라졌고 크기도 크게 다르다. 인간 남성은 여성보다 약 15% 더 크다.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보면 이것이 약간의 남성 지배를 의미하지만 그다지 크지는 않음을 시사한다.

남성의 생식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변화했다. 영장류와 많은 다른 종들 사이에서 고환의 크기는 얼마나 배타적인 성적 동반자 관계인지를 나타낸다. 인간의 고환 크기는 중간 범위에 속하는데, 이는 불륜에 의해 변형된 관습적 형태의 일부일처제를 암시한다. 인간의 음경의 변화는 많고 놀랍다. 코미어Cormier와 존스Jones는 그들의 적절한 제목의 책 <길들여진Domesticated 음경>에서 이 모든 변화는 여성의 선정에 의한 배우자 선택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여성의 성적 변화는 더욱 두드러진다. 다른 영장류에서는 암컷이 배란할 때만 성관계를 갖는다. 인간 여성은 일년 내내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더 많은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성적인 활동을 하는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11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유인원과 영장류에서는 2:1에서 40:1까지 다양하다. 그것은 짝짓기와 젠더평등을 만드는 것이 더 쉬웠음을 시사한다.

영장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크리스토퍼 보움이 퍼즐의 마지막 조각을 주요 기사와 영향력 있는 두 권의 책으로 발표했다. 보움은 사냥하는 무리와 채집하는 무리 사이의 평등과 공유가 문화적으로 그리고 의식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가 복종하고 경쟁하고 지배하도록 부추기는 유인원의 유산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샘솟는 질투, 공격성, 이기심을 억누르는 데 의식적으로 동의해야 했고, 다른 사람의 이기심을 억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움의 아이디어는 이제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사람들이 천성적으로 평등주의적이거나 비폭력적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그 가능성과 반대되는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나눠 가지고 평등해야 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보움의 이론은 우리의 큰 두뇌에도 맞다. 과학자들은 오랫동안 손, 사냥, 무기 및 도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모든 영장류의 경우 뇌 크기를 가장 잘 예측하게 해주는 변수는 집단의 크기이다.

지배적 위계에 서 있는 대부분의 영장류는 복잡하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정치 세계에서 동맹을 구축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수컷이 번식할 수 있는 기회는 그 위계에서 그들의 위치에 달려 있다. 사회적 지능은 결정적이다. 10명으로 구성된 집단에서는 45개의 서로 다른 관계를 추적해야 한다. 20명의 집단에서는 1,090개의 서로 다른 관계가 있다. 200명의 마을에서는 여러분은 수학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마도 괴롭히는 이들을 억제하고 사람들과 함께 평등하게 살고 공유하는 능력이 우리의 사회적 지능의 결정적인 성과였을 것이다. 경쟁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두뇌는 협력하는 데도 사용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요컨대, 여러 분야의 학자들의 작업은 200만 년에 걸쳐 진화하고 약 20만 년 전에 인간의 출현으로 이어진 특정한 생태적 틈새에 대한 인간의 적응에 대해 일관된 그림을 제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사라 하디 및 크리스토퍼 보움과의 짧은 의견 불일치를 제외하더라도,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이 인상적인 범위의 새로운 자료들을 무시함으로써 다루고 있다.

실제로, 만약 그들이 그것을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이 적응의 평등주의적 성격과 그것이 특정한 환경의 물질적 조건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정도 모두를 받아들여야 했을 것이고, 이것은 인간이 자유를 선택하는 것에 대한 그들의 주장을 창밖으로 던져버릴 것이다. 자유로운 선택에 대한 그들의 약속을 고수하고 정치적 프로젝트를 그대로 유지하기 위해 그들의 주장은 요리조리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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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도래

평등에서 위계질서로, 젠더 평등에서 명백한 젠더 불평등으로의 전환은 일반적으로 농업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그레이버와 뱅그로우에게 상당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선택에 대한 관심 때문에 유물론적인 논의들을 피하거나 환경적 조건과 사람들의 선택 제한 방식을 고려하기로 결심한 것 같다.

농업은 약 12,000년 전에 시작하여 세계 여러 곳에서 독립적으로 창안되었다. 수렵 채집인들은 음식을 나누어 먹었고 아무도 가지고 다닐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소유할 수 없었다. 그러나 농부들은 정착하여 그들의 밭과 농작물에 투자하게 되었다. 이것은 일부 사람들이 음식에서 자신의 몫보다 더 많은 것을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폭력배들과 괴롭히는 무리들이 함께 모여 지배자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절도, 약탈, 임대, 소작, 고용 노동, 세금, 공납, 십일조를 포함한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것을 했다. 이것이 어떤 형태를 취하든, 그러한 계급 불평등은 항상 조직적인 폭력에 의존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최근까지 계급투쟁에 관한 것이었다. 누가 땅을 일구고 누가 식량을 얻었는가이다.

농부들은 사냥꾼이 아니었기 때문에 취약했다. 그들은 그들의 땅, 들판을 개간하고 관개하기 위해 투입한 노동, 곡물 저장고에 묶여 있었다. 수렵 채집인은 떠날 수 있으나 농부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이 - 잉여를 생산하고 저장할 수 있었고 그것은 계급 사회, 착취, 국가를 가능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그것이 일어나면서 젠더 불평등도 만들어졌다 - 서사에 반대했고, 그들은 주목할 만한 새로운 고고학과 다른 사료들에 직면하여서도 다시 그렇게 했다.

플래너리와 마커스

2012년 고고학자 켄트 플래너리(Kent Flannery)와 조이스 마커스(Joyce Marcus)<불평등의 창조>에 관한 훌륭한 책을 출판했다. 그들은 농업이 세계 여러 다른 지역에서 불평등을 초래한 방식을 추적한다.

그러나 그들은 연관이 자동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농업은 계급을 가능하게 했지만 많은 농부들은 평등주의적 사회에서 살았다. 어떤 곳에서는 농업의 발명과 계급의 발명 사이의 격차가 몇 세기에 걸쳐 측정되었고 어떤 곳에서는 수천 년에 걸쳐 측정되었다.

플래너리와 마커스는 또한 주의 깊은 사례를 통해 지역 폭력배나 우두머리가 권력을 장악했지만 나중에는 전복되었음을 보여준다. 많은 마을과 도시에서 엘리트들은 고고학 기록에 나타났다가 수십 년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사실상 계급투쟁은 멈추지 않는다.

제임스 C. 스콧

플래너리와 마커스의 장대한 비교 연구는 인류학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1954년 에드먼드 리치Edmund Leach의 저서 <산악지역 버마의 정치>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아나키스트 정치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제임스 C. 스콧James C. Scott의 작업에서 예견되었다. 2009년에 스콧은 <통치받지 않는 기술: 고지대 동남아시아의 무정부주의적 역사>를 출판했다. 그것은 전 지역과 수세기에 걸쳐 있었다.

스콧은 언덕으로 도망친 평원 왕국의 수많은 벼농사 농부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자신들을 '화전식' 이동 경작자의 새로운 종족 그룹으로 재창조했다. 그들 중 일부는 더 작은 계급 사회를 만들었고, 일부는 계급 없이 살았다. 그들 모두는 아래의 왕국들과 국가들로부터 계속된 노예화와 군사적인 침략에 저항해야 했다.

기술

어떤 면에서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리치, 스콧, 플래너리, 마커스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다. 결국 뱅그로우는 플래너리와 마커스가 요약하고 있는 고고학의 변화의 일부였다. 그리고 스콧의 영향력은 <모든 것의 새벽> 어디에나 있다. 그러나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다른 저자들이 기술과 환경, 그리고 경제적이고 정치적인 변화 사이를 연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플래너리, 마커스, 스콧은 기술과 환경이 변화를 결정짓지는 않는다고 매우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들은 변화를 가능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곡물 농업의 발명은 자동적으로 계급 불평등이나 국가로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그러한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

계급 관계들과 계급투쟁

기술과 환경의 변화는 계급투쟁의 발판을 마련했다. 그리고 그 계급투쟁의 결과가 평등이나 불평등의 승리 여부를 결정지었다.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이 중요한 점을 무시한다. 대신, 그들은 그러한 변화를 즉각적이고 불가피하게 만드는 조잡한 형태의 단계 이론에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한다. 생태학적 사고에 대한 이러한 과민반응은 아마도 그들이 인간 진화에 관한 새로운 문헌들을 다루기를 거부하는 배후의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모든 문헌들은 인간이 된 포유동물들이 어떻게 그들이 사는 환경, 그들이 가진 몸, 경쟁하는 포식자들, 그들이 발명할 수 있는 기술, 그리고 그들이 생계를 꾸리는 방법에 대한 사회적 적응을 이루었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서 그들은 그 생태계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평등주의적 사회를 건설했다. 그것은 불가피한 결과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적응이었다.

반면에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유물론자가 아니다. 그들에게 생태계와 기술에 대한 생각은 그들이 원하는 선택과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들 위협이 된다. 예를 들어 그들이 고대 메소포타미아에 관한 스콧의 책에 만족하지 않는 이유는 특히 곡물 농업이 불평등을 초래한 물질적 이유를 강조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지금 직면한 기후 위기는 인류가 새로운 기술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날카롭게 제기한다. 평등이나 인간의 생존을 위한 모든 정치는 이제 근본적으로 유물론적이어야 한다.

젠더의 실종

우리는 그레이버와 뱅그로우가 인간 존재의 환경과 물질적 기반에 거의 관심이 없다는 것을 봐왔다. 같은 방식으로 그들은 계급 개념, 계급 관계에 대한 논의, 계급 투쟁에 대한 거의 신앙적 회피를 보여 준다. 그레이버는 확실히, 그리고 뱅그로우는 아마도 계급 관계와 계급투쟁에 대해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계급이 무엇을 하고 실제로 자신들이 어느 계급 출신인지를 알고 있지만 계급 관계를 사회 변화의 동력으로 취급할 수 없거나 다루지 않으려고 한다.

그레이버와 뱅그로우가 젠더를 사회적으로 구성하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지나가면서 바흐오펜Bachofen(신화학자)과 가깝게 미노아 크레타 섬의 모권제를 재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성은 돌보고 남성은 괴롭히는 가부장적 고정 관념의 흩어진 모습을 보여 준다. 불평등이 항상 우리와 함께 해왔다고 주장하기 때문에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인간 사이의 젠더 불평등의 기원에 대해 말할 것도 없다.

젠더 관계의 진화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세 개의 학파가 있다. 첫째, 진화심리학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주장은 매우 보수적이다. 제러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나폴레옹 샤뇽Napoleon Chagnon,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불평등, 폭력, 경쟁이 인간 본성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남성이 다른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가장 강한 자가 여성을 지배하고 더 많은 아이를 아버지로서 지배할 수 있도록 진화에 의해 프로그램되었다고 말한다. 핑커는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라고 말하며, 운 좋게도 서구 문명은 부분적으로 그러한 원시적인 감정을 길들였다고 말한다.

위대한 생물학자이자 트랜스젠더 활동가인 조안 러프가든Joan Roughgarden은 이러한 생각들을 '희미하게 숨겨진 강간 이야기'라고 올바르게 묘사했다. 이 주장들은 정말로 불쾌하며, 이 이유만으로 그레이버와 뱅그로우에 의해 확실히 거부되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두번째 사상학파가 페미니스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 지배적이었다. 이것은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너무 본질적으로 만들었고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을 모든 사회에서 어떤 형태이든 주어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세 번째는 우리가 동의하는 옵션이다. 역사적, 인류학적, 고고학적 기록에는 놀라운 특징이 있다. 사람들이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평등한 사회에서 살았던 거의 모든 경우에, 여성과 남성도 평등했다. 그리고 경제적 불평등이 있는 계급 사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남성이 여성을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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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제물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인간을 제물로 바치는 잔인한 공개 축제가 전 세계의 초기 국가들에서 발견된다는 중요한 사실을 올바르게 강조한다. 수십 또는 수백 명이 희생되었고, 종종 전쟁 포로, 젊은 여성 또는 가난한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그들은 당연히 분노한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이러한 희생의 목적이 적, 즉 다른 국가의 사람들을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조적으로 우리는 그것의 주요 목적이 잔인한 지역 국가의 [통치] 대상인 참극의 실제 관객을 공포에 빠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이것이 아마도 그러한 잔인함이 각 국가의 초기 역사의 특징인 이유일 것이다. 국가의 정당성이 아직 약하고 공포가 가장 필요한 시기였다. 국가권력이 강화되면서 전쟁과 적은 계속되지만 극적인 공개적 희생제물이 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집회들

집회들 자체가 중요한 최종 사례이다.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국과 국가에서 도시 집회들의 힘을 아주 올바르게 지적한다. 그들은 이것이 왕들이 모두 강력하지는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것에서는 그들이 옳다. 그러나 계급투쟁이 그 왕국들에서 멈췄다고 믿으려면 당신은 아주 순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여기서 도약한다. 그들은 그 도시 집회들이 점거하라및 기타 사회정의 운동에서 집회들의 참여 민주주의와 유사하다고 주장한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어떤 형태의 참여 민주주의에 대한 조금의 증거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계급 사회들에서도 도시 전체와 전국적 집회에 대한 엄청난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 모두는 부유한 사람들과 힘있는 가족들이 지배했다. 고대 스파르타에서는 지주들이 지배했다. 로마 원로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존 왕과 남작들이 함께 지배하는 사회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최근까지 유럽의 모든 의회의 유권자는 부자로 제한되었다. 이 근시안은 중요하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왕국과 국가들을 불평등한 사회의 지배계급이 통치를 강화하고 집행하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새벽>에는 그 과정이 보이지 않는다.

결론

그레이버와 뱅그로우는 분노하고 있다. 이 분노 속에는 우리처럼 지구적 불평등에 절망하고, 세계 엘리트들의 정치를 싫어하며, 기후 혼돈을 두려워하는 독자들을 기쁘게 할 에너지가 담겨 있다. 여러 면에서 그들의 책은 신선한 공기의 울부짖는 바람과 같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기존 국가에 대한 적대감을 공유한다. 그러나 앞으로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는 계급과 주변환경의 중심적 중요성을 포함하는 인간의 조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기사 등록 202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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