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제가 소련 학교에 다니면서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을 들어본 바 없지만, 나중에 한국 친구들에게 들은 바로는, 한국에서는 이런 '대중적 심리학'의 기초를 이미 중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것입니다. 지금 고3인 제 아들의 고교 심리학 교과서로 봐서는, 노르웨이에서도 매슬로의 욕구 단계설은 다수가 학교에서 익혀야 하는 필수 교양인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욕구들의 위계를 보다 보면 몇 가지 의아한 점이 생기긴 합니다. 예컨대 매슬로는 성 (섹스)를 1차적인 생리적 욕구, 즉 가장 기초적인 욕구라고 주장했지 않았습니까? 한데 요즘 뉴스를 보면 일본인 독신 20-30대 남성 중의 38%나 '여인을 사귄 적이 없다'고 응답하더랍니다. 물론, 특히 일본처럼 상업적 섹스 시장이 광대한 사회에서는 '연언 사귀는 것'과 섹스의 횟수는 꼭 직접적 연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한데 일본인 기혼자들조차도 절반 정도 결혼 관계에서 성관계를 하지 않는다는 최근 조사 결과들을 보면...죽도록 바쁘고 파김치처럼 피곤해지는 데다가 각종의 소비의 낙이 많은 초현대적 삶에서는 성이 정말 1차적 욕구의 자리에서 물러날 수도 있단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음식 섭취나 분비, 주거 등등은 당연히 그럴 수는 없겠지만요.
한데 매슬로 위계에서는 자존감 확보는 제4단계, 즉 "자기 실현" 이전의 거의 마지막 단계로 설정돼 있는데, 저는 이 점에 대해서도 좀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개인적인 내지 집단적인 자존감은 우리 삶에서는 이토록 비중이 낮은 것인가요? 예컨대 오늘날 우크라이나 전장의 상황을 보시지요.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이 인정한 것은, 매일매일 우크라이나 군은 전장에서 전몰자와 중부상자로 약 1천 명 가까운 인명을 손실합니다.
누가 봐도 대단히 높은 수준의 인명 손실율이지요. 참고로, 우크라이나보다 인구가 거의 8배나 많은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약 4,430명의 사망자와 3만 명 부상자라는 손실을 보고 결국 그 전쟁을 중단하고 철수를 한 것입니다.
한데 지금 러시아 침공을 당하고 있는 남부 내지 동부 우크라이나와 먼 서부 우크라이나를 포함해서 우크라이나인의 90%는 러시아군이 이미 실질 점령한 영토를 포기하는 조건으로 한 '굴욕적 평화'를 반대하고 '항전 지속'을 요구합니다. 항전 지속이란 징병된 남성들의 대량적 살상을 함의하는 것인데 말입니다...이와 같은 민심을 옛 식민 모국의 침략이 보다 더 강화시킨 탈식민적인 집단 자존감의 모색 이외에는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은 있을까요?
한데 이 집단 자존감을 구축하는 '방식'은 분명히 자연발생적이지 않습니다. 집단 자존감에 대한 욕구는 아마도 인간의 1차적 욕구 중의 하나지만, 그 집단 자존감을 만들어내는 '방식'을 일차적으로 발언권이 강한 해당 집단의 상층 구성원들이 매체나 학교 교육 등을 통해서 정하곤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가 '(집단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 무엇인가 라는 걸 많은 경우에는 학교나 매체를 통해 배웁니다.
예컨대 저는 가끔 가다가 중국인 친구들에게 "한국에서의 미군 주둔이 한국인들의 집단적 자존감을 자극하지 않냐"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럴 때에는 과연 어떻게 답해야 할까요? 최근 여론 조사 (통일연구원) 결과를 보면 현제 주한 미국 주둔의 지지율은 90%, 설령 통일이 되더라도 미군 두둔이 필요하다는 것은 52%의 의견인데.... 아무래도 이 분들에게 외국군이 주둔한다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권위 있는 그 어떤 기관이나 개인도 가르치지 않은 모양입니다.
즉, 외국군 주둔과 집단적 자존감의 연관 관계를 한국인들이 더 이상 사회적으로 학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죠. 그런 학습이 사회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한국 민간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이 불가능한 미군들의 통제 구역들이 한국의 국토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그다지 큰 '자존감의 상처'가 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 만큼 그 자존감을 구축하는 '방식'은 사회적인 학습의 결과죠.
이 학습은 과연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 이루어지는가요? 일면으로는 최근에 활동 정지를 발표한 BTS 등 K-팝 음악의 세계적 대성공은 이제 한국인의 집단 자존감의 중요한 일부분이 된 것 같습니다. 한국인들은 '한류 민족'으로서의 자아 의식 같은 걸 점차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또 일면으로는... "위안부 사기청산연대"와 같은 한국 뉴라이트의 괴단체 구성원들이 일본 극우들을 도와 독일 베를린 소녀상의 철거를 독일 당국에 같이 노골적으로 요구한다는 보도가 나오더라도, 이를 중시하는 여론은 그다지 형성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즉, 가난하고 사회의 주변에 밀려 있는 과거 식민지 시대 국가 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이런 노골적인 2차 가해는 더 이상 집단 자존감을 자극할 수 있는 요인으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국 사회의 점차적인 우경화가 여러 가지 차원에서 몇년간 감지되지만, 아마도 그 집단 자존감 구축의 방식이야말로 그 우경화를 가장 정확하게 반영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근의 극우 정권의 출현도 궁극적으로 이 전사회적 우경화 경향과는 결코 무관하지 않지요...
(기사 등록 202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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