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토론과 논쟁

‘양키’가 아니라 ‘고 홈’이 문제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5. 13.

-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에 대한 단상

윤미래

2016년 퀴어퍼레이드에서 '양키 고 홈'이라는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던 활동가가 구호가 혐오적이다라는 이유로 집회에서 쫓겨나는 사건이 있었지요.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은 아쉽게도 그 복잡성과 중요성에 비해 지나치게 단순하게 정리되어 버린 부분이 있습니다. 전혀 진지한 논쟁조차 되지 않았던 것을 정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지만요. 오랫동안 혼자 고민을 해오다 최근에 들어서야 어느 정도 명확한 언어화를 할 수 있었기에 많이 늦었지만 조심스럽게 공유해봅니다.

이 문제가 복잡한 이유는 혐오라고 딱지붙이기에는 한국인에 비해 양키”(미국 백인)들은 명백히 인종적 지구적 위계에서 보다 강자의 위치에 있고, 그런 종류의 사회적 권력 관계를 허무는 운동에서 약자들이 처음부터 잘 다듬어진 공존의 대안을 제출할 때에만 조건부로 지지하겠다는 입장이 아니고서야 이런 종류의 조야한 역차별은 다소간 용인될 수밖에 없는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들이 한국 남자를 줄여 부르기 시작한 것을 두고 혐오의 정치를 그만둬야 한다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은 열에 아홉은 사실은 그냥 남성에게 유리한 기성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불편하고 두려워하는 치들이지요. “양키 고 홈이라는 구호에 대한 뜨악한 반응에 비슷한 동학이 작용하고 있다는 의혹은 타당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군사적·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공유하고 특히 소수자 친화적 이미지를 만들어서 그것을 인권 수호처럼 세탁하는 프라이드 워싱을 강도 높게 비판해온 퀴어 활동가들 사이에서조차 이 구호가 전혀 지지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이 구호에 대한 비판을 인종적, 지구적 권력 관계에 대한 인식의 미비로만 간주할 수 없음을 명확히 드러냅니다. 이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영토를 민족에게라는 요구가 여전히 민족해방 운동의 강력한 기반이자 추동력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구호 한 마디가 유발하는 감정의 문제를 훨씬 넘어서는 함의를 가집니다. 제 생각에, '한반도에는 한국인만 있어야 하고 외국인들은 집에 가야 한다'는 요구는 그것이 타깃하고 있는 백인들보다는 그 구호가 전제하고 있는 이분법에서는 누락되어 버리는 유색인 이주자들을 배제하기 때문에 문제적입니다.

한국의 민족해방 운동가들이 양키 고 홈을 외친다고 해서 한반도에 거주하는 미국 백인들이 갑자기 대대적인 강제 추방을 당하거나 인종주의적 혐오 범죄의 타깃이 될 가능성은, 전혀 없는 게 아니라면 최소한 아주 희박합니다. 그 구호를 애초에 나오게 만든 인종적 지구적 위계 질서가 그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자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지지하지 않는 미국인들이 보았을 때 마음이 좀 상할 수는 있으나, 저는 솔직히 말해서 그만한 역사적 죄과와 기득권을 분점하고 있는 입장에서 그 정도 마음 상함은 좀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게 시민적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몽골이나 파키스탄, 베트남, 캄보디아, 기니나 예멘에서 온 결혼이주민이나 이주노동자들, 난민들의 처지에 한국은 한국인의 단일민족 국가이며 그렇게 남아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끼치는 영향은 그런 기분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정치적/문화적 제국주의에 대한 저항을 그 인식에 결합시켜 진보 진영 내에서조차도 그 인식을 승인하고 재생산하지 않아도, 한국은 이미 그 부분에서 아주 끔찍하게 배외주의적이고 거기에 대한 자성과 인지조차 거의 부재한 사회입니다. 다른 국가·민족·족류·인종 출신의 이주노동자들이 이미 농촌이나 공단에서 초과착취를 당하며 한국 경제의 기저를 지탱하는 농민, 노동자의 최하층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인데도 이들을 한국 사회의 동등한 성원으로 포함하도록 사회를 재구성해야 한다는 숱한 비판을 요지부동으로 거부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는 한국인들만 있는 것이 자연스럽고 타당한 상태"라는 관념이 이미 한국에 존재하는 외국인들이나 이민족들의 존재를 비가시화하고, 그들을 포함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상상력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이 관념을 수정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들에게 온갖 까다로운 조건을 붙여 한시적으로만 체류를 허용하고 조금이라도 이탈하면 강제로 추방하는 역대 정부들의 정책 기조가 왜 잘못되었는지, 대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설득력 있는 일관된 입장을 갖추기조차도 어려울 것입니다.

더구나 지금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이 반제국주의 운동의 슬로건이라면, 우리는 이들이 대부분 우리보다 제국주의에 훨씬 많은 피를 본 사람들이고 그들이 한국에 오게 된 사유 자체가 제국주의 협력자로서 한국이 쌓아올린 기득권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이 저가노동력 수출국에서 수입국으로, 반주변부에서 반중심부로, 빈국에서 부국으로 상승한 역사는 곧 미서구 제국주의 질서에 부역하고 공조해온 역사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양키들과 손을 잡고서 침략 전쟁으로 세계를 어지럽히고 핵심 산업은 중심부가 독점하면서 주변부에는 저숙련 노동만을 할당하는 불평등한 국제 분업을 확대재생산해 수많은 다른 나라들을 초과 착취와 빈곤, 예속에 빠뜨리고서 한국인들이 기피하게 된 저임금 노동을 충당하는 데 그들의 그 조건을 이용해왔기 때문에 그들이 에 있을 수 없고 한국으로 오게 된 것입니다. 한국에 한국인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을 조성하고, 그로부터 (착취와 차별에 기한) 수혜를 입어 생활하고 있으면서 여전히 여긴 우리 땅이니까 우리만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백인들과 다르지 않은 기득권에 대한 무지이고 몰염치일 것입니다.

설령 이 모든 상황이 우리의 잘못이 아니라 하더라도,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겠다는 운동이 이미 이 땅에 들어와 살고 있는 이웃들의 존재를 비가시화하는 데 공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한반도의 해방과 자주 독립은 세계 피억압 민족 전체의 해방과 독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한반도 바깥이 온통 지구적 분할과 지배의 대상이 되어 있는데 한국인들만은 외세 강점도 침략도 당하지 않고 평화롭게 잘 살자는 것은 옳지 않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이지도 않습니다. 한국이 단독으로 미국과 중국, 러시아 같은 패권 국가들과 맞설 수 있는 강대국이 되지 않는 한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투철한 민족의식으로 뭉쳐 아무리 똑똑하게 외교를 펼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강대국이 마음만 먹으면 장기판의 말로 전락할 수 있는 위태로운 신세를 면할 수 없습니다. 인류 전체가 하나의 세계로 이어진 지금, 어떤 운동이든지 그 세계 전체의 해방과 번영을 이상으로 삼을 때에만 정당성과 확장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대와 함께 낡은 것이 되어 쇠락하는 운명을 피하고자 한다면 지구적 부정의와 종속에 맞서는 민족해방 운동 역시도 더 주변화되고 억압받는 다른 민족/종족/지역들의 처지와 입장을 중심으로 끌어올린다는 흐름 속에 자신을 위치짓고 발화와 행동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인 한 절대로 그렇게 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을 더 이상 민족주의라고 부를 수도 없는 다른 무언가일 거라고 생각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저로서는 사실 그런 명칭이나 범주 같은 것은 어떻게 되어도 좋은 문제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마도 트랜스젠더나 퀴어를 포함해 모든 피해당사자를 포괄하면서 차별과 억압에 저항하려는 운동을 여전히 '여성'주의라고 부르는 것이 가당하다면 이것을 계속 민족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큰 무리는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가 아는 바대로의 젠더가 차별적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산물이라고 해도 여성 자매들에 대한 호명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지구적 구획과 지배가 부여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사람들을 호명하고 결집하는 것이 그렇게 억지스러운 일은 아니겠지요, 하물며 성별 문제에서 생물학이 끈질기게 자기 주장을 하는 것처럼 민족 문제에서 역사가 또한 그러하므로... 우리가 주어진 물리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 일면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사회적 개념과 정체성, 세계관과 유대의 양식을 창조적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것은 (다소 부적 방식으로 표현된) 해체주의의 핵심적 통찰입니다. 저는 우리가 지금보다 더 좋은 것을 분명히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그러려면 어쨌든 "한남"을 팬다면서 비만과 빈곤, "미형" 아닌 외모에 대한 혐오를 열성으로 재생산하는 어떤 여성주의자들과 같은 오류에 빠져서는 안 될 테고, 그러니 피부색과 나라와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누군가들을 통으로 멸시하는 일은 분명하게 지양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종류의 멸시와 혐오감은 더 약한 이를 피해가지 않으며, 오히려 정작 더 약한 이에게 더 가혹하고 더 잔인하기가 일쑤니까요. 제국주의, 식민주의라는 지구적 부정의에서 우리는 일면적 약자이자 피해자가 아니라 또한 강자이자 가해자이기도 하게 되었고, 이 부정의에 맞서는 세계적인 연대에 포함되고자 한다면 이 부분에서 우리의 인지는 혹독하게 갱신될 필요가 있습니다

(기사 등록 2022.5.13)

*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