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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과 논쟁

"그쪽 때문에!"가 논의의 핵심이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3. 4. 1.

- 박권일의 "'그쪽이야말로주의'를 넘어서"에 대한 반론

윤미래

[지난 3월 중순에 서방언론과 인터뷰에서 ‘케이팝이 훈련생을 과도하게 혹사시키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BTS의 RM은 문제점을 인정하면서도 ‘침략당하고 황폐화되고 두 동강났던 한국의 역사에 대한 서구인의 이해’를 촉구하는 답변을 했다. 진보적 지식인인 박권일 씨는 이런 RM의 답변을 비판하는 칼럼을 다시 한겨레신문과 팀블로그 파벨라에 게재했한 바 있다.]

"①서구가 쌓은 번영의 이면에는 식민지 착취가 있다. ②케이팝 영광의 이면에는 과도한 훈련, 갑질, 청소년 억압 등이 있다. ... ②에 대한 지적을 ①에 대한 지적으로 대응하면 일종의 동문서답이 되고 만다."

한겨레신문과 팀블로그 파벨라에 게재된 박권일 씨의 이 칼럼이 한국 사회에 대해 뭔가를 폭로한다면, 12를 연결짓지 못하는 수준의 세계 인식을 가진 사람이 식민주의의 대안에 대해 사회를 훈계할 수 있다고 믿고 언론에서는 거기에 지면을 줄 만큼 한국 지식인들의 기득권과 자의식이 여전히 비대하고 공고하다는 것이다.

이 연결을 분석하고 서술하며 대안을 제시하는 말과 글의 대부분을 케케묵은 NL 민족주의따위로 무성의하게 치워 버리는 것이 이 계급을 존립하게 하는 핵심적인 교조이자 아비투스라는 걸 싫을 정도로 잘 알고 있고, 케케묵은 NL 민족주의가 수십 년 전에 이미 해놓은 것보다 더 정연하고 상세한 설명을 새삼 시도하는 대신 아주 단순한 선다형 문제를 드리고 답은 적어놓지 않겠다. 세계는 우리가 믿는 모습대로 만들어져 나갈 테니 뭐든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르시길.

1) 한국이 왜 이렇게 초과노동 자기혹사 착취와 억압이 횡행하는 과로 지옥이 되어있을까요?

A. 한국인들이 유럽의 선진 시민성을 본받지 못하고 노예근성에 쩔어 있어서

B. 한국이 서구 중심의 위계화된 국제분업구조에서 저가숙련노동력수출로 연명하는 위치이기 때문에

2) 다음의 두 가지는 논리적으로 상호 배척하는 진술일까요, 아닐까요?

A. 한국인들은 이 구조 속에서 착취당하고 고통받아왔다

B. 한국인들은 이 구조 속에서 열심히 일해서 삶을 개선해왔다

3) 서구인이 한국의 초과착취산업을 보고 해야 할 말로 적절한 것은?

A. 어우 아시아는 왜 저래? 문제가 많네. 역시 값비싸고 질이 떨어지더라도 인권 지키며 생산된 유럽산이나 미국산 상품을 사야겠어.

B. 우리는 사람들을 저렇게 일 시켜서 질 좋은 상품을 싸게 쓰고 있구나! 유럽이나 미국에 본산이 있는 다국적기업들이 해외에서 사업을 할 때 노동 기준을 지키도록 압박하고 규제해야겠어.

4) 아무도 식민지가 되지 않으려면 우리는 앞으로 뭘 해야 할까요?

A. 이 구조가 부정의함을 지적하고 보다 평등한 지구 질서를 이야기하기 (Ex. 전지구적 노동입법과 임금 규제)

B. '아 우리는 아직 미개하구나 지혜로운 문명인들의 지적과 조언을 새겨듣고 반성해야겠어' 하며 아직도 초과노동 같은 걸 한다고 서로를 경멸하고 갈구기

RM의 대답은 물론 학술논문도 정치성명서도 아니고 아쉬운 부분도 굉장히 많다. 그에 대한 대중적 반응이 죄다 적절하지만도 않을 테고. 나부터도 당장 그 답변을 읽었을 때 통쾌함과 자부심의 한켠에서 하지만 피식민 국가들 중에는 한국과 달리 지금도 빈궁과 불안정에 시달리고 원조를 필요로 하는 나라들이 훨씬 더 많고, 한국이 그 중 하나가 아닌 것은 사람들이 더 노력했기 때문이 아닌데’ ‘초과노동을 좀 덜 하고 살아보자는 사람들도 한국에 분명히 적지 않게 있었고 한국의 역사는 그 사람들을 군홧발로 밟아죽이고 일으킨 역사라는 걸 빼놓으면 곤란하지 않을까?’ ‘피해와 착취를 한 줄로 넘어가고 열의와 근성을 이렇게 강조하면 결과적으로 식민주의 초과착취가 전화위복이 된 것처럼 읽힐 수도 있지 않나?’ 같은 불편함이 가슴을 찔렀다. 사람들이 이 답변에 환호하면서도 그에 담긴 불만과 분노를 현재진행중인 후기식민적 부정의들에 대한 비판이나 행동 의지로 이어가려는 움직임은 잘 보이지 않는 것도 무척이나 답답하다.

하지만 지금 무엇이 논의 주제에 올랐는지도 파악하지 못할 만큼 지적으로 뒤처졌으면서 고작 개념어 몇 개로 지적 우월성을 점하려 드는 말글들보다야 그 두루뭉술하고 미진한 불만 쪽이 세계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인다고 나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RM의 답변에는 한국 사회에 그토록이나 오랫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자의식이 있다. 우리가 유럽이 아닌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고, 우리가 유럽 앞에서 부끄러워할 이유도 없다고. 이것은 탈식민주의 정치가 그토록이나 쟁취하려고 애쓰는 바로 그 자기 긍정이다. 그리고 정확히 이 자기 긍정이 한국 평균보다는 그래도 유럽인에 가깝다는 것으로 위로를 삼고 자존을 얻는 한국 지식인들의 심기를 뒤틀어 이런 칼럼을 쓰게 만든 것이다.

나는 이 위로와 자존이 조금도 세계시민주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상화하고, 규준으로 삼고, 모방하고 가까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피교육자, 피보호자, 피지배자의 자세이지 동료 시민을 대하는 자세가 아니다. 동료 시민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는 우월과 열등을 상정하려는 모든 시도를 단호하게 배척하고, 불평등과 부정의를 정면으로 지적하고, 가해자일 때에나 피해자일 때에나 그 시정에 힘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다져지는 평등의 기반 위에서 그의 삶의 고유성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경험을 이해하려 시도하면서 그 속에서 그가 세우고 지켜온 자긍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나는 한국이 유럽도, 다른 비서구 국가도, 그리고 자기 자신의 과거와 현재도 동일한 태도로 마주할 수 있길 바란다.

(기사 등록 202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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