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그 배경과 목적, 역사적 뿌리 등을 분석하고 설명하는 박노자의 최신 글 2개를 묶어서 소개한다. 러시아와 동아시아 지역의 역사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준 필자의 이 글들은 우리가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 러시아: 침략과 후진성
'침략'의 의도들은 시대마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장 단순하고, 분석하기 쉬운 것은 '자원 확보'나 '전략적 요충지' 확보형 침략들입니다. 예컨대 미국의 2003년 이라크 침략은 전자, 2001-21년 동안의아프간 점령 시도는 후자에 각각 속합니다. 바로 보면 의도가 뻔히 보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컨대 일제의 1931년 만주 침략은 그것보다 훨씬 복잡한 그림을 보여주는 것이죠.
침략을 군부가 단행한 거고, 상당수 관벌이나 민간 정치인 등은 이 침략에 다소 회의적이었지만, 군부를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군부나 침략에 적극적인 "혁신 관료"들은 만주를 이용해서 일본 중심의 자급자족형 경제 블록을 만들려고 했으며, 그 자원을 이용해서 일본의 (군사용) 중화학 공업의 발전을 촉진시키려 했습니다. 만주부터 시작해서 군부 중심의, 자본주의형 계획경제를 실험하려 했으며, 나중에 이 경제 모델을 이용해서 세계 전체의 "나누어먹기" 과정에서 일제의 몫을 최대화하려 했습니다.
하필이면 일제의 만주 침략이 지금, 이 순간 기억 속에서 뜨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가장 단순하게는, 그 침략에 동원된 군사력은 현 러시아 군사력과 비교가 가능한 규모이었기 때문이죠. 1931년 9월에 침략에 이용된 일제의 군사력 규모는 약 16만 명의 병사 정도인데, 이는 대체로 현재 우크라이나에서의 "작전"에 참여하는 러시아군의 규모와 엇비슷합니다.
현재 작전의 무대가 된 동부 및 중부 우크라이나의 영토 면적도 대체로 중국 동북 삼성과 비교가 가능합니다. 우크라이나군의 저항은 1931-2년 당시 마점산 (马占山) 흑룡성 장군의 저항보다 훨씬 고도화돼 있지만, 지금대로 계속 가고 있다면 그 저항을 제압하는 데에 1931-2년 만주와 엇비슷한 기간 (약 4-5개월 정도) 소요될 것 같습니다. 만주 침략은 1933년 일본의 국제연맹 탈퇴로 이어진 것처럼 지금도 러시아는 기존의 국제 질서로부터 본질적으로 '이탈'하는 것입니다. 표피적인 '유사함'은 이런 부분들부터 시작됩니다.
한데 그것보다 더 깊이 파고들면 더 많은 구조적 흡사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만주는 석탄 채광, 그리고 요녕성 안산 (鞍山)의 그 유명한 제철소로 대표되는 철강 산업의 지대이었습니다. 일제는 만주의 석탄, 철석, 비철 등 자원을 손에 넣어 자급자족형 일-선-만 경제 블럭을 만들려 했던 것이죠. 우크라이나도 중화학 공업에 필요한 '자원'들의 보고이며, 사실 이미 고도로 발달된 중공업을 보유하는 나라입니다.
우크라이나 강철 (pig iron) 생산은 세계의 10위 정도고, 러시아의 생산량의 약 40% 정도 됩니다. 그 산업에 종사하는 전문 인력 (숙련공 등등)만 해도 40만 명 정도 되는 것이죠. 이외에는 우크라이나는 망가니즈, 알류미늄, 심지어 우라늄 등을 생산하는 거고, 그 생산을 러시아의 군수 공업을 포함한 중공업은 상당히 필요로 합니다. 실은 우크라이나 자국 내에서도 예컨대 드니프로시의 유즈마쉬 공장 같은, 미사일 생산까지 가능한 첨단 중공업 시설들이 있습니다.
그 공장들은 거의 다 러시아군의 작전 무대인 동부 및 중부 우크라이나에 위치해 있으며, 그 숙련 인력들은 대부분 구소련(식) 교육을 받아 러어를 (거의) 모어로 구사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푸틴의 속셈이라면, 그 자원과 그 시설, 그 인력을 손에 넣어, 숙련공과 엔지니어들을 다시 러시아인으로 "국민화", 즉 (강압적) "재교육"을 시킨 뒤에 우크라이나까지 포함한 소련식 중공업 복합체를 복원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데 '침략'을 사실 '이윤' 차원에서만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아무리 우크라이나 자원, 공업, 인력 등을 다 손에 넣는다 해도, 러시아 외환 보유고 상당 부분의 구미권 중앙 은행에서의 동결, 외자 기업 철수, 구미권 투자 중단, 그리고 전쟁의 직접적 비용 등을 상쇄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비즈니스 플랜' 차원에서는 침략은 일단 도박에 가깝기도 하고, 부대 비용이 많아 제 정신이 있는 '사업가'라면 피하는 편은 좋습니다.
즉, 여기에는 단순한 단기적 '비즈니스' 이상의 부분들이 있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저는, 이번 침략을 - 1931년 일제의 만주 침략과 마찬가지로 - '발전 궤도' 선택의 차원에서 연구해봐야 한다고 봅니다. 대공황 시절의 일본처럼, 오늘날 러시아도 '열강'의 축에 들지만, 상대적으로 '후진적' 열강이죠. 러시아는 미국이나 중국과 달리 예컨데 애플이나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니면 华为나 小米같은 최첨단 아이티 기업 하나 키우지 못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 최대 은행의 랭킹에서는 러시아의 최대 국유 은행인 스베르방크는 60위밖에 되지 못합니다. 스칸디나비아의 노르데아보다 더 작은 규모인 거죠. 글로벌 경제 속에서는 러시아는 아무리 시도해 봐도 미국이나 중국 내지 EU를 상대 못합니다. 그래서 지금 일단 군사력을 이용해 완결된 영토적 제국을 건설한 뒤에 서방과의 경쟁으로부터 차단된, 즉 보호 받는 경제 영토 안에서 은행 자본과 IT 자본 등을 키우려는 게 러시아쪽의 장기적 계획이 아닌가, 싶습니다.
"완전한 국유" 대신에 "국가 주도의 시장 경제"긴 하지만, 이 "블럭 경제" 건설 계획은 스탈린의 "1국 사회주의"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눈치 챌 수 있습니다. 총동원 전쟁 시절의 일본도 그랬고 스탈린 시대의 러시아도 그랬지만, 이런 "지급자족형 블럭 경제" 건설은 보통 엄청난 대민 탄압, 국가적 폭압을 수반했습니다. 과연 푸틴의 새로운 "완결된 제국" 안에서는 힘 없는 피착취 대중과 재야 인사, 정권의 반대자, 비판적 지식인들의 운명이 어떻게 될는지, 정말 걱정됩니다....
● 살육을 보조해주는 역사 교육?
저는 우크라이나 침략의 참상을 보면서, 가면 갈수록 저 같이 역사로 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피부로 느낍니다. 푸틴의 무모하고 잔인한, 범죄적 침략에 동원된 어린 병사들이나, 그 침략을 지지한다는 65-70%의 러시아 사람들은, 단순히 보위부 (FSB)가 무서워서 이렇게 침략의 공범, 종범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침략에 대한 상당수 기층민들의 지지는 외형적으로는 거의 '자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이 '자발'도, 따지고 보면 국가적인 역사 교육, 그리고 국가가 관리, 감독하는 미디어에 의해서 오랫동안 형성된 '의식' 내지 '정체성'에 의한 것이지요. 특히 역사 교육을 통해 국가가 각 개인의 통시대적인 준거틀 (reference frame)을 규정하고, 각 개인은 그 준거틀 안에서는 그 정치적인 의사 결정을 하는 것입니다.
사실 만약 한 개인이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주관하는 역사 교육만 받고 이외에는 개인적으로 역사에 천착해 다른 생각을 갖지 않을 경우에는, 현재의 침략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극히 힘들 것입니다. 이 역사 교육의 근저에는 어용적 민족주의, 그리고 무한한 '제국' 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는 근본적으로 인민, 민중, 민초의 역사는 아닙니다. 소비에트 시대와 달리 계급투쟁이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역사도 아닙니다. 이제는 그 역사는 오로지 '국사', 즉 '국가의 역사'입니다. 그 역사의 기점은 862년, 즉 (바이킹 계열의) 류릭 공의 무장 집단이 루시 (러시아)를 '건국'한 연도입니다.
그 다음에 그 역사의 주인공들은 류릭 왕조의 대공들 (올레그, 이고르, 블라디미르, 야로슬라브 등등)이나 그 주변의 '국가적 지식인', 교회의 주교 등등이지, 그들이 잉여를 갈취한 일반 평민들이 결코 아니고 그들의 '원정' (침략 전쟁)의 대상이 되는 주변 부족이나 국가 (불가의 불가리아 등등)들도 아닙니다.
'국사'의 주체가 되는 '우리 국가'에 대한 객관적인, 비교사적인 평가도 그 교육 과정에 없습니다. 사실 10-13세기 러시아 공국 (duchery)들의 관료 통치 구조는 동시대의 동아시아 국가나 중동 국가에 비해 매우 초보적이었고, 도시 발전이나 물산의 수준도 구 로마제국의 지역 (이태리, 불란서, 비잔틴 등)에 비해 보잘 것 없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수업 때 선생이 하면 큰일 납니다. 아마도 교단을 떠나야 하겠죠.
러시아 역사 교육은 철저히, 절대적으로 '모스크바 중심주의"적입니다. 14-17세기의 중세사는, 러시아의 교실에서는 오로지 '모스코비아', 즉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한 러시아 국가/제국의 '발전사'일 뿐이지요. 거기에 비해 오늘날 우크라이나나 벨로루시의 상당 부분을 통치했던 리투아니아 대공국, 그 후신인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 왕국 등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습니다.
반대로, 모스크바 대공국/왕국/제국에 대한 서술은 거의 무비판적입니다. 이반 외제 (Ivan the Terrible)의 카잔 침략/정복, 아스트라한 침략/정복, 그 시대의 시베리아 정복의 시작 등은 그저 "아국 영토 확장", "우리나라의 발전"이라고 매우 긍정적으로 서술됩니다. "우리 나라 발전"에 희생되는 타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습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잘 아는 시베리아의 도시 명칭은 '하바롭스크'인데, 그 명칭 속의 에로페이 하바로프이라는 17세기의 러시아의 세비리아 정복가는 사실 1650년, 흑룡강 유역 정복의 과정에서는 다우르족 (達斡爾)에 대한 학살과 약탈을 대량으로 저지르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학교 교실에서만 역사를 배운 러시아 아이들은 들었을 리도 없죠.
그들은, 러시아의 광활한 영토의 대부분은 '우리 나라 사람들의 개척'과 '현지만들의 자발적인 복속'의 결과라고 믿고 있을 것입니다. 정복이 있었다 해도 그 정복은 '결과론적으로 현지민들의 문화 수준 향상에 도움이 됐다'는 식의 식민주의적 논리를 지금도 습득하는 것이죠.
그 통치 기간 내내 스웨덴 등과의 영토 정복 전쟁을 계속 수행했던 '전쟁의 황제' 피터 대제나 교과서에서 이제 '효율성이 높은 기업 지배인' (effective manager) 같은 행위자로 묘사된 스탈린에 대해 국가주의적 긍정 위주의 서술만 교실에서 접한 아이들은, 커서 푸틴의 '우크라이나 원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 확률은, 과연 얼마나 될까요?
학교에서의 역사 교육이야말로, 지금 푸틴의 침략을 위한 총알받이들을 준비해주고 제공해주는 것입니다. '국가'에의 주박을 풀지 못하는 역사 교육은, 바로 전쟁의 공범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러시아에서의 역사 교육의 문제점과는 단순 비교하기가 어렵겠지만, 과연 대한민국의 자국사 교육은 어느 정도 객관적인지 우리가 한 번 짚어 볼 필요도 아마 있을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가 "찬란한 고대" 속에서의 광개토왕의 정복 사업이나 문무왕/김유신의 "통일", 금관과 반가사유상을 학교에서 충분히 알게 되지만, 과연 고대 평민들의 음식이나 의복이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라든가, 그 주거 형태가 어땠는지 많이 배우는가요? 불교 문화를 이야기할 때에 사찰이 얼마나 많은 노비들을 부려먹고 사찰의 보 (금융 자원)가 어떻게 고리대에 이용되었는지를 과연 배웁니까?
조선왕조 초기의 여진에 대한 정복이나 조선 왕조와 여진 사이의 복속 관계를 이야기할 때에 과연 정복 행위의 대상이었던 여진족의 입장에 서서 서술을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과연 근대사 서술에 있어서는 좌파적 (사회주의적) 독립 운동에 대한 서술은, 그 독립 운동의 실질적인 비중에 비해 너무 소략하지 않는가요? 참, 김일성과 함께 운동했다고 해서 박달이나 박금철 같은 독립 운동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 교과서에서 빼는 게 과연 객관적인 입장인가요?
저는 러시아의 국가화된 역사 교육에 종사하는 제 동료들은, 결과적으로 세계 평화에 대한 범죄에 공범이 됐다고 봅니다. 그런데 과연 저희 한국의 자국사 교육은, 밑으로부터의, 탈국가화된 시각에 익숙해진, 객관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평화와 한반도 통일을 지향하는 열린 시민들을 제대로 키우는 것인지 우리도 한 번 비판적으로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타인의 오류를, 무엇보다 우리들의 맹성을 위한 '교육 자료'로 삼는 것이 공자께서 말씀하신 "一日三省"의 자세가 아닐까요?
(기사 등록 202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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