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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노자] 누가 어떻게 푸틴을 막을 것인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2. 4. 5.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서 시작된 전쟁에 대해서 러시아 국내의 전쟁 지지 여론이 어떻게 형성된 것이고 어떻게 푸틴의 권력에 맞선 저항이 가능할 것인지를 분석하고 전망하는 박노자의 최신 글 2개를 묶어서 소개한다. 러시아의 역사와 현실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통찰력을 보여 준 필자의 이 글들은 우리가 지금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들은 왜 서방을 증오하는가?

세계인 다수가 규탄하는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여론 조사마다 대부분의 러시아 응답자들이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침략의 원흉인 푸틴의 지지율은 최근 아예 83-84%나 돼 국내외의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러시아인의 3분의 1 정도 친척이나 친지를 가지고 있는 이웃 나라에 대한 침략을, 저들이 도대체 왜 이렇게도 많이 지지하지요?

우크라이나인들이 벨로루시인 다음으로 러시아인과 가장 가까운 외부자라는 사실을 기억하면 이해 불가의 현상으로도 보이지만, 한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러시아의 국가 프로파간다는, 이 침략을 이웃이나 친척인 우크라이나인이 아닌, 서방과의 '대리전'이라고 서술한다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의 과거 나토 내지 유럽 연합 가입 의지를, 러시아 국가 프로파간다는 "서방의 꼭두각시가 됐다는 증거"로 이용합니다. "서방"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 합병 직후 같아서는, 미국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러시아 응답자들은 아예 80%나 됐는데, 그 후로는 45-60% 정도의 부정적인 미국관은 고착된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정 유럽 국가, 예컨대 러시아와 정교회 신앙을 공유하는 그리스 등을 예외로 인정하곤 하지만, "서방" 전체에 대한 부정적 의견 역시 그 정도입니다. "미국/서방과의 대리전"을 선포하면 다수의 러시아인들이 이를 환호할 것을, 평상시의 여론 조사 결과들만 봐도 대체로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들은 도대체 서방을 왜 이토록 혐오하죠?

"반서방"까진 몰라도 "반미"는 한국에서도 그리 상상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 완전하게 없어진 것 같지만, 2008년 광우병 항쟁까지만 해도 "반미"는 한국 여론의 하나의 "흐름"을 형성했다고는 볼 수 있습니다. 분류하자면 한국의 반미는 "진보적 반미" 쪽에 속했습니다. 미국에 반대한 이유는 미국의 (전두환 등을 포함한) 외국의 친미 독재 지원, 파괴적인 "자유 무역" 강요, 신자유주의적 질서 강요, 인종주의, 미군 주둔과 미군의 치외법권에 따르는 범죄 등등이었습니다.

이는 중남미나 유럽의 좌익, 나아가서 소련 시대의 국가적인 반미관과 일맥상통했습니다. 촘스키와 하워드 진을 애독해온 한국 좌파처럼, 소련 공민들도 시어도어 드라이저 등 진보적인 미국 문호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세계적 자본의 제국 구축이나 인종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져야 했던 것입니다. 적어도 공식 이념의 차원에서요.

그 공식 이념이 붕괴돼 가던 1980년대에, 이와 같은 소련의 미국관 내지 서방관은 돌연히 "전도"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국가의 질서가 붕괴돼가고 소련 경제가 치명적인 위기를 맞자 수많은 소련인들의 서방관이 전도돼 서방은 이제 "낙원"이나 "구원자"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했던 "서방"이란 아직도 복지 국가가 제대로 작동했던, 즉 신자유주의화 이전의 서방, 즉 육체 노동자도 중산층이 될 수 있었던 서방이었던 것이죠.

방향을 잃어 표류했던, 무너져가는 소련의 주민들에게는 미국은 다시 ""이 됐습니다. 그 때에 소련 초기부터 폐기됐던 러시아 제국 시절의 일부 용어들이 놀랍게도 다시 귀환하기도 했죠. 예컨대 미국과 유럽 국가들을, 1989년 이후류 러시아에서 종종 "문명국"이라고 지칭하기도 했습니다. "문명국" 따위의 어휘들은, 공산당 시절에 비서구에 대한 차별적인 언어라서 금기시됐지만, 이렇게 공산당의 위기와 함께 돌아온 겁니다.

한데 미국과의 "밀월"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시장화된 1990년대의 러시아는 미국 내지 서구 국가와의 "동급"이 되지 못하고 제3세계의 원자재 공급자 내지 완제품 시장으로 전락되고 말았죠. 러시아 안에서 거주하는 서방인들이 "부자 행세'를 얼마든지 할 수 있어 현지인들의 원성을 사고, 나라 밖에서는 러시아와 같은 정교회 국가인 세르비아에 대한 나토의 1999년 공습을 많은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에 대한 "무시""도전"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러시아는 무장해제하여 서방세계에의 "편입 신청"을 했지만, 문전 박대를 당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니 혐오까지는 아니지만, 서방에 대한 배신감 내지 "자존심의 상처"1990년대말 러시아의 보편적인 분위기이었습니다. 본인들이 1980년대말부터 키워온 "문명 세계"에 대한 꿈 - 내지 환상 - 이 깨진 셈이었죠.

국민의 상한 자존심을, 2000년 이후 푸틴의 정권이 적극 이용했습니다. 그 정권도 초기에는 나토 가입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등 대서방 "편입"의 방법을 강구해봤지만, 머지 않아 국력이 어느 정도 신장된 시점에서 서방 세력과의 제국주의적 '경쟁'의 노선으로 선회했습니다. 그 경쟁의 대상은 사실 우크라이나와 같이 위치가 전략적이고 자원이 풍부한 동유럽이나 중앙아시아 등의 완충지들이 된 것입니다.

제국주의적 '경쟁'의 차원에서는 러시아 국민들을 반서방 이데올로기로 무장시켜야 하는데, 푸틴 국가의 프로파간다는 이 일을 약 2004, 즉 우크라이나에서의 첫 "마이단" (친서방 대 친러 세력의 힘 다툼) 이후부터 계속해서 해온 것입니다. 그러니 선전선동의 차원에서는 금일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거의 18년 동안이나 준비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러나 푸틴의 국가 관료 자본주의가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듯이, 푸틴의 반미 역시 - 예컨대 한국의 반미나 소련 시대의 반미와 달리 - 그다지 진보적 색채를 띠지 않습니다. 물론 러시아 프로파간다는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겹치는 중앙 아시아나 중동에서의 미국 침략 (이라크, 아프간 등)을 비판의 계기로 삼긴 하죠.

그러나 그것보다 일차적인 대미, 대서방 비판의 어조는 매우 보수적입니다. 성소수자 등에 대한 관용은 "자연적 인간 사회 질서의 파괴"처럼 서술되고, 복지 국가나 재분배는 "세계 주변부 약탈의 일부 산물들을 기생충이 된 자국민에게 나누어주는 일"처럼 묘사됩니다.

러시아의 국가 프로파간다는 신자유주의에 비판적이지만, 그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은 바로 개명 관료들이 치밀히 관리하는, 즉 국가화된 시장 경제입니다. 중국 모델이 "서방 자본주의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셈이죠. 그 모델 속에서 복지는 매우 제한돼 있고 민주성이 태부족하다는 것은, 러시아 국가 선전원들에게는 전혀 문제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러시아에서는 자국 중심의, 폐쇄적이고 자기 완결적 세계관의 전통은 아주 길죠. 지금 푸틴 정권은, 이런 전통에 적극 편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방 혐오와 자기 완결적, 자급자족 국가의 이상을 '국시'로 삼는 것은, 예컨대 러시아 과학 연구자들에게는 사형 선고나 마찬가지입니다.

"국경" 안에 갇혀서 최첨단 과학 연구를 하는 거나, 예컨대 세계적 수준의 한국학 연구를 이루는 것은 사실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죠. 과연 첨단 과학을 키우지 못할 정권은, 서방 열강과는 얼마나 오랫동안 경쟁을 할 수 있을까요? 그러니 푸틴주의가 영구적이지 않으며 조만간에 다른 모델로 교체된다고 보는 편은 맞을 것입니다.

21세기 러시아 혁명의 주체는 누구일까?

이 세상에서 가장 철저한 권위주의 정권이라고 할 러시아의 긴 역사를 보면, 참 재미있는 부분 하나 확인됩니다. 가장 핍박 받고 가장 어렵게 사람들도 종종 '반란'에 나서곤 했지만, 러시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 반란들을 대개.... 중간 계층들이 일으켜 온 것입니다. 1917년 혁명을 포함해서 말씀입니다.

러시아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민중의 반란인 푸가쵸브 농민 전쟁 (1773-5)의 주체는 사실 '농민'이라기보다는 카자크(kazak)들이었습니다. 카자크들은 일종의 둔전병으로서 그 신분은 농민들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대부분은 그 경작지를 소유했으며, 상당수는 푸가쵸브 본인처럼 군 하급 장교로 약간의 '출세'도 하고 전시에 외국에 나가 그 당시로서는 매우 드문 '외국 체험'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무기를 다루는 데에 익숙한 카자크들에 비해서는 농노들로서는 '반란'을 일으키는 것은 훨씬 더 힘들었죠.

19세기말의 인민주의자들이 이념적으로 '농민 혁명'을 지향했지만, 실제 지식인인 그들에게 가담한 민중 출신들은 거의 전부 다 숙련공들이었습니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한 가지를 바로 파악해야 합니다. 오늘날 한국에서 같으면 대기업 정규직이 아닌 이상 고졸 출신의 공장 숙련공은 아마도 '중산층'보다 '중하층'에 더 가깝겠지만, 말기의 러시아 제국은 아직도 공업화가 초보 단계인 빈농들의 나라이었습니다. 그 나라에서는 다수 빈농들의 입장에서는 대도시 숙련공은 대단히 출세에 성공한 인간이었죠.

소련 공산당의 총비서가 된 노동자 출신의 흐루쵸브의 회고록을 한 번 봅시다. 그는 1917년 이전에 도네츠크 지역 (우크라이나 동부)의 젊은 선반공으로서 한 달에 40-45루불의 임금을 받았다고 합니다. 대체로 제정 러시아 군의 대위급 장교의 월급과 같은 수준이죠. 아파트 한 채를 월세로 빌릴 수 있는 수준의 '고임금'이었습니다. 흐루쵸브 본인의 말로는, 본인이 1932년에 모스크바 시당 책임비서가 되고 나서도 경제적으로 제정 러시아 말기의 노동자 시절만큼 잘 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요즘 한국에서 같았으면 '노동 귀족' 소리를 들었을 것 같은 사람들인데, 이들이 볼셰비키당과 혁명에 가담한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이들이 보다 근대적이고 평등한 '새 사회'에서 옛 귀족이나 고학력 관료층을 대신해서 새로운 기간 요원층이 되어서 '모두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선사하고 싶었던 것이죠.

사실 관료층이나 부유층 출신의 유명 지식인 (레닌이나 트로츠키 등)이 이끄는 숙련공들의 정당인 볼셰비키들의 권력 장악은, 전형적으로 귀족, 관료 엘리트층을 타도하여 준엘리트층이 그 위치를 빼앗은 경우이었습니다. 물론 귀족들의 농지를 나누어 가질 농민들의 반란, 그리고 전쟁을 멈추고자 했던 병사들의 반란이라는 '상황' 속에서만 가능했던 권력 장악이었죠. , 준엘리트 (지식인과 숙련공)와 사회의 하층 (농민, 병사)이 일시적으로 '동맹'을 맺어 혁명에 성공한 것이지요.

이제 눈을 오늘날로 돌립니다. 오늘날 러시아의 사회는, 제정 시기의 말기보다 차라리 동시대 한국 사회와 더 비슷하지요. 차이가 있다면 저임금 국가인 러시아에서는 대기업 정규직의 숙련공도 결코 '중산층'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안정적이지만, 전형적인 중하층일 겁니다. 이 계층에서는 푸틴 정권에 대한 지지의 수준은 사실 가장 높죠. 푸틴을 지지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 침략을 지지한 연방 공산당을 지지할 확률이 높을 겁니다.

푸틴 정권과 그 전쟁에 비판적일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계층은, 러시아에서는 바로 대도시 고학력 20-30대 피고용자 정도입니다. 예컨대 모스크바의 20IT 기술자라면 전쟁 반대와 정권 퇴출을 염원할 가능성도, 나아가서 예컨대 기후 정의나 사회 정의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품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러시아군의 하급 장교들과 거의 엇비슷한 수준의 보수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한 달 100-150만원)를 받는 이들은, 1917년 이전의 러시아에서 흐루쵸브 같은 숙련공들이 차지했던, 바로 그 사회적 위치를 지금 차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만약 대도시의 진보적인 청장년 고학력층을 중핵으로 한 당파가, 과거의 빈농들에 해당되는 불안 노동자층 (구소련 지역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등)의 불만까지 함께 수용하여 이 다수의 불안, 영세 노동자층을 정권 타도, 보다 평등한 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의 길로 인도할 수 있게 되면 어쩌면 우리가 새로운 러시아 혁명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러시아 좌파는 먼저 환골탈태를 해야 할 겁니다. 지금은 스탈린주의적 연방 공산당은 물론이고, 비스탈린주의적 좌파 조직들마저도 (조건부긴 하지만) '전쟁 지지' 입장을 표명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일단 서방과의 총동원 대결 속에서 정치 탄압과 대중의 빈곤화가 본격화되면 정권을 보는 좌파의 태도도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들이 지금과 같은 의회 활동 노선에서 대중적 '거리 동원'을 통한 정권 퇴출, 나아가서 사회의 전반적 혁명으로 그 활동 기조를 바꾸고 대중들의 조직에 들어가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러려면 몇 년에서 10-15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 봅니다.

(기사 등록 20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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