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며 민주적으로 토론하기
[이 글은 다함께 돌아보기의 내용, 그것을 바탕으로 앞으로 수행해야 할 정치적 혁신의 내용과 방법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속에서 나온 글이다. 처음에는 이 글의 구체적 논쟁 맥락 등을 생략하고 축약한 글을 올렸었는데, 다시 원본을 그대로 올린다. 논쟁의 구체적 맥락을 알 수 있게 해서 독자들이 보다 정확히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데 도움을 주려고 한다. 이 글에 원래 달려있었던 각주들을 여기서는 모두 생략했다. 필요하면 오프라인 글을 참고하라.]
전지윤
내가 ‘다함께 돌아보기를 통한 우리의 과제 내다보기’글을 내고 나서, 서범진, 이재빈, 시우 세 동지가 이에 관한 반론을 보내 왔다. 내 글에 대한 관심과 치열한 토론 제기는 정말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변혁조직에서 동지들 간의 이견과 반론은 항상 고무돼야하고, 이를 둘러싼 토론은 더 나은 답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법이다. 반면 우리 모두가 문제로 느꼈듯이 ‘다함께’에서는 이견을 자유롭게 꺼내고 토론하기 어려운 분위기였다.
특히 지도부 내에서의 의견 불일치는 뭔가 좋지 않은, 해소돼야 할 상태로 간주되곤 했다. 집단 선출되는 지도부는 단일한 의견을 가져야 한다고 여겨졌고, 내부 이견은 회원들에게 잘 공개되지도 않고 내부에서 곪다가 터져 나오곤 했다.
이어지는 토론은 동지적이기보다는 파괴적으로 진행됐고, 인신공격과 감정적 대립, 딱지 붙이기로 나아갔다. 이 속에서는 차분하게 공통점과 차이점을 확인하며 더 나은 길을 찾아나가기는 어려웠다.
우리는 다함께에서 이탈해 나오면서 이런 분위기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른 동지들의 글에 대해 항상 사소한 이견과 반론이라도 가리지 않고 제기해 왔다. 또 내 글에 대한 반론도 환영하고 그것에 진지하게 답변하려 노력해 왔다.
이것은 이재빈 동지가 지적하듯이 내가 우호적이고 동지적인 토론을 “목적”으로 여기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토론이 옳은 답을 찾아나가는 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 모임 내에서 여러 동지들과 함께 진행해 온 활발한 토론과 논쟁은 나에게 많은 것을 배우게 해주었다. 이번에도 세 동지의 반론은 고맙게도 내가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배우도록 해주었다.
세 동지의 글을 보면서 나는 내가 앞서 쓴 글에서 어떤 부분이 부족했고, 더 보완될 필요가 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내 글의 최종본은 더욱 가다듬어질 수 있을 것 같다. 또 우리에게 아직 더 많은 상호 토론이 필요하다는 것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아가 우리가 수행할 과제를 위해 어떤 관점을 더 분명히해야 하는지도 알게 됐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서범진 동지의 초보적 가설은 공감도 간다.
하지만 세 동지의 반론을 보고서 서운한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것은 솔직한 말이 아닐 것이다. 세 동지가 나를 비판했기에 서운한 것은 아니다. 마르크스의 뒤를 따라서 나도 “과학적 근거에 입각한 비판이라면 언제든 환영”하려 해 왔다. 세 동지가 함께 반론을 내고 함께 준비위원에서 사퇴했기 때문만도 아니다. 새조직 건설을 추동한다는 힘든 과제를 함께 나눠질 동지들이 줄어든 것은 안타깝지만 말이다.
무엇보다 내가 서운한 이유는 세 동지의 글이 너무나 자주 부정확한 방식으로 내 의견을 소개하고, 따라서 부적절한 대립점을 계속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동지들의 글을 읽다보면 나는 ‘민주주의로만 모든 문제를 환원하고, 이론적 혁신에 큰 열의가 없으며, 다함께 시즌2를 만들려는 사람’으로 보여지기 쉽다.
이것은 이 동지들이 글을 쓰는 방식하고도 관련있다. 나는 내 글에서 ‘다함께 돌아보기’를 위해서 지난 12년 동안의 다함께 협의회 자료집들을 다시 읽어봤다. 이 기간 동안 나온 다함께의 기관지들도 뒤져 보았다. 이런 작업에, 내가 직접 글을 쓰는 데보다 더 많은 시간과 수고가 들었다. 이를 바탕으로 나는 최대한 구체적 문장과 수치, 사실, 사례들을 직접 인용하고 근거로 삼으며 분석을 진행하려 했다.
반면 세 동지가 내 글에 대해 쓴 반론에는 내가 쓴 글과 주장에 대한 직접 인용과 근거 제시가 별로 없다. 가끔은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 ”까지 쳐서 ‘인용’한 다음 비판하는 방법도 쓰고 있다.
정치적 이견과 민주주의 문제를 연결시키지 않았다?
이렇게 세 동지는 내 주장을 ‘앞뒤가 안 맞거나 납득하기 어려운 말’인 것처럼 요약한 다음 그것을 비판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많은 사례가 있지만 핵심적인 것들만 다뤄보겠다. 먼저 이 동지들이 내 주장을 일종의 ‘민주주의 환원론’으로 치부하는 문제다. 서범진 동지는 이렇게 쓰고 있다.
“우리가 어떤 조직의 위기를 민주주의 문제로만 파악한다면, 그것은 형식적이고 표피적인 접근에 그칠 수 있다.”
“‘다함께’의 위기를 ‘민주주의’ 문제로만 설명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무리”
“우리가 ‘다함께’와 우리의 분열 이유를 그저 민주주의 문제로 꼽는다면 … [다른 좌파들이] 가십거리로 삼지나 않으면 다행”
“‘민주주의만 있었으면 다 잘됐을 거야’, ‘민주적 토론 문화만 있었다면 조직의 오류를 바로 잡을 누군가가 나타났을 거야’같은 주장”
이런 비판 끝에 서범진 동지는 “정치의 위기와 민주주의 문제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은 정말이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나는 정치적 오류와 조직내 민주주의 문제를 연결시키지 않으며 민주주의만 일면적으로 강조했는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내 글은 첫 부분에서 “나는 어느 순간부터 우리[다함께]가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지 회의하기 시작했다”며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진보당 사태와 성추문 사건에서 지도부의 정치적 입장이 틀렸다고 지적하고 있다. 뿐만 아니다.
왜 우리는 2003∼2004년에 다함께로 쏟아져 들어왔던 젊은 활동가들 중 많은 수를 잡아두고 간부로 성장시키지 못했는가. 왜 신입 회원만이 아니라 조직의 핵심 활동가들이 회전문처럼 빠져나가는 일이 반복되는가. 민주노동당 엔트리 10년에 대한 평가는 왜 되지 않고 있는가.
왜 우리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에 대한 개입에서 거듭 좌충우돌을 겪고 있는가. ‘신문을 통한 당 건설’은 왜 어려움을 겪고 있는가. 민주집중제에 대한 우리의 해석과 적용이 진정한 레닌주의에 부합하는가. 2009년부터 말해 온 ‘노동계급의 귀환’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나뿐 아니라 많은 동지들 속에서 이런 의구심이 자라나고 있었다. 지난 분파 투쟁의 진정한 배경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강조는 인용자)
이것이 정치적 이견과 차이를 빼놓고 민주주의로만 문제를 파악하는 태도인가?
둘째, 서범진 동지는 내가 ‘다함께’가 “조직 내 민주주의를 통해 어떤 ‘정답’을 가져야 했는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가설적 형태로조차 거의 서술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주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결정했어야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내가 “‘다함께’의 정치적․이론적․전략적 오류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드러”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럼 이런 내용은 무엇인가?
2005년은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한 해였다. … 혁명가들은 이런 정세 변화를 민감하게 포착하며 전술적 변화를 추구했어야 했다. … 이제 공동전선 구축과 운동 개입, 켐페인을 계속 같은 수준으로 강조할 수는 없었다. 개입의 수준과 속도를 조절해 여유를 확보하며, 2003∼2004년에 들어온 사람들을 교육, 훈련시키며 단단한 간부층으로 끌어올리는 게 필요했다.
지난 개입 활동에 대한 분명한 정치적 평가와 일반화에 더욱 인력과 자원을 집중해야 했다. 개입은 이를 바탕으로 해서 필요한 곳에 집중적으로 이뤄져야 했다.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개혁 정부의 배신 속에서 제기되고 있던 노동운동, 학생운동 위기론 등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토론도 필요했다.
결국 참여당과의 통합을 막아내지 못한 시점에서 다함께의 엔트리는 종료될 필요가 있었다. 엔트리 전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 효과가 의문시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난 분파 투쟁 때 내가 제기한 비판과 대안적 방향 자체가 ‘민주적으로 우리는 무엇을 결정했어야 했는지를 밝히는’ 것들이었다. 나는 당시 내란음모를 조작으로 규정하자고, ‘노동정치연대’ 참가를 재고하자고, 2012년 경선부정에 대한 잘못된 입장을 자기비판하자고 주장했다. 이것은 ‘민주적 토론으로 무엇을 결정하고 어떤 입장을 취할지’ 제시한 것이다.
결국, 누구는 ‘민주주의만’ 보고 있고 누구는 ‘정치와 민주주의를 연결’시키고 있는 게 아니다. 또 누구는 위기와 해결책에 대한 가설을 제시하지 않고, 누구는 제시하고 있는 게 아니다. 정치적 이견들이 왜 쌓이게 됐고, 그것이 민주적 토론으로 해결되지 못하면서 어떻게 분열로 치닫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로 강조점이 다른 가설과 해결책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론적 혁신에 노력과 열의가 부족했다?
셋째, 세 동지는 자신들이 그토록 강조하는 ‘이론적 혁신’에 대해 내가 별 의지가 없거나 “보수적” 태도를 취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다함께’와 IST가 채택해 온 이론에 대해 본격적 재검토 작업을 하는 데까지는 흔쾌히 나아가고 있지 않은 듯하다.”(서범진)
“그에게 ‘이론의 혁신’이란 그렇게까지 대대적으로 수행할만한 과제가 아니라고 여겨지거나 … 아주 장기적으로 봐야하는 일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서범진)
“전지윤 동지는 평소 이론 문제에서 이런 대담하지 않은 태도를 취하는 반면...”(서범진)
“전지윤 동지 자신이 정말 IST의 노동운동 이론과 전략에 관해 ‘아쉬운’ 것이 거의 없어서 나오게 된 결과물”(시우)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준비위원회 내에서 처음에 우리가 수행할 이론적 혁신을 토니 클리프가 2차 대전 후에 수행했던 작업과 비교하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바로 나였다.
토니 클리프가 1940년대 말에 정통트로츠키주의 조직과 분리해 나왔을 때의 과정과 문제의식도 비슷했을 것이다. … 우리에게 필요한 과제도 비슷하다. 우리는 다함께가 해내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올바른 설명과 그에 따른 적절한 전략·전술적 혁신을 해내야 한다. 이에 필요한 이론적 혁신을 시도하고 … 그래서 우리는 왜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이고, 같은 트로츠키주의이고, 같은 국제사회주의 경향이면서도 굳이 독립적인 정치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 지에 대해 답해야 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이것을 처음부터 우리의 “핵심과제”라고 명명했다.
나는 이 작업이 “변혁조직을 건설하고 근본적 변혁을 추구하는 데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또 우리가 재검토해야 할 기존 IST의 이론들이 무엇인지도 나름 제시했다.
나는 SWP 일부의 ‘특별한 종류의 공동전선 이론’은 리스펙트 성공에 별 도움이 되지 못했다고 본다. ‘하강기-상승기’로 정세를 단순하게 구분지은 것은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계급투쟁에 대한 과도한 기대를 부추긴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낳은 변화와 노동계급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일부 과소평가도 존재한다. ‘혁명적 신문’ 이론에서 SWP는 오늘날 생산력 발전과 기술 변화에 뒤처지고 있다. 이집트 혁명에서 무슬림형제단에 대한 태도도 혼란스럽다. SWP는 당내 성추문 사건에서 여성 억압 이론을 실천으로 적용하는 데 실패했다. 레닌주의 조직 모델에 대한 SWP의 관점은 매우 불완전하며 경직돼 있다.
이런 재검토와 혁신을 통해서 “신자유주의가 자본주의와 노동계급의 조건·의식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왜 계급의 귀환은 지체되고 있는지, 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연대가 성공적이지 못한지, 왜 진보정당들이 사분오열하고 있는지를 설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나는 레닌주의 조직과 민주집중제에 대한 IST의 기존 이론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잘못된 해석·적용”이라며 그 뿌리를 토니 클리프에서, 심지어 레닌주의 조직 이론의 불완전함에서 찾아 왔다. 이것은 왜 ‘대담한’ 접근이 아니라는 것인가? 설마 신자유주의만 ‘이론’이고 레닌주의 조직과 민주집중제는 ‘이론’이 아니라는 것인가?
나는 단지 주장만이 아니라, 실제로도 이론적 혁신을 위한 탐구에 애써왔다. 내가 활동하면서 지금처럼 많은 책을 사서 보고, 기존의 입장을 의심해 보고, 현실에 적용해 보고, 동지들과 토론하면서 글을 쓴 시기는 없었다.
또 내가 거의 매일 1~2시간 씩 영어 공부를 하고, 형편없는 실력이나마 영어 자료를 읽고, 영어 강독에 참가해 온 것도 이 시기다. 이 부족한 능력으로도 RS21홈페이지를 뒤지며, 우리가 번역해야 할 영어 논문 리스트를 뽑아서 담당자에게 제시했던 것도 나였다.
물론 나는 세 동지처럼 신자유주의가 우리가 해야 할 이론적 혁신의 거의 독보적 핵심 쟁점이라고 보지는 않는다. 또 세 동지처럼 이론적 혁신의 방법으로 ‘개인적 탐구와 번역’ 등을 배타적으로 강조하고 있지 않다.
결국 다시 진정한 논점은 누구는 이론적 혁신에 관심이 있고 누구는 관심이 없다가 아니다. 이론적 혁신의 쟁점을 신자유주의로 집중할 것이냐, 또 이론적 혁신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진정한 차이인 것이다.
내가 ‘공통점과 차이점을 분명히 하는 동지적 토론’을 강조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공통점을 차이점으로 곡해하며 부당한 차이점을 만드는 것도, 차이점을 공통점이라고 눙치며 진정한 차이를 흐리는 것도 토론을 뒤틀리게 한다. 나는 지난 번 ‘거리와 작업장’ 논쟁 때도 이를 지적했었는데, 아쉽게도 세 동지는 이번에도 같은 접근을 반복했다.
민주주의는 부차적이지 않고, 중요한 이론적 쟁점이다
그렇다면 이제 진정한 쟁점과 차이점들을 하나씩 다뤄보자. 먼저 과연 레닌주의 조직 이론과 민주집중제 문제가 그렇게 부차적인 문제인지부터 살펴보자.
서범진 동지는 우리가 이론적 혁신을 위해서 “‘회의’할 필요가 없는 주제가 무엇인지, 가장 철저히 ‘회의’해야 할 필요가 있는 쟁점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히 가려야[하는 데] … 전자는 바로 ‘민주집중제’이고, 후자는 ‘신자유주의와 노동계급의 상태’”라고 단정한다.
서범진 동지는 닐 데이비슨을 인용하며 ‘영국 SWP의 분열에서도 핵심 문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견이었다’는 식으로 주장한다. 시우 동지도 “IST가 ‘신자유주의 시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점에서 대부분의 문제가 파생되었다”고 말하며, 민주주의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과연 핵심이 아니었을까? 천만의 말이다. 2009년에 위기를 겪는 와중 SWP는 당내에 “민주주의 위원회”를 만들어야 했다. 지난해 영국에서 만들어진 분파 두 개는 이름부터가 “민주주의 반대파”와 “민주집중주의 반대파”였다!
서범진 동지의 닐 데이비슨 인용도 온당치가 않다. 막상 그 논문에서 닐 데이비슨은 당내 민주주의의 문제를 폭로․분석하는 내용에 커다란 분량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지 분량이 문제가 아니다. 닐의 주요 주장과 결론은 이렇다.
더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이다. … 문제는 비민주적 구조가 옳은 관점을 만들어낼 수도 있고 민주적 구조가 틀린 관점을 낳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구조만이 ‘최상의 경험들을 일반화’하면서 …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 현재 우리의 어려움들이 우리의 내부적 문화와 구조가 아니라 단지 잘못된 관점들에 의해 발생했다고 생각하는 동지들은, 옳은 관점들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회피하게 된다. … 민주적이고 공개적인 논쟁을 하는 것만이 … 결론으로 나아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다. 현재의 체제에서는 이것이 거의 이루어질 수 없다.
… 만약 우리가 당을 지키고 민주화할 수 있다면, 위기에 처한 당의 분열, 축출, 붕괴를 막은 좌파 역사상 아주 적은 사례들 중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닐 데이비슨은 분명히 민주주의에 강조점을 두고 SWP 위기와 분열을 설명하고 있다. 심지어 닐은 ‘민주적 토론만이 올바른 정치적 방향을 찾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하며, 그것이 가능하면 SWP의 분열도 피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서범진 동지의 주장과는 매우 결이 다르다.
사실 SWP는 그나마 토론과 논쟁이 어느 정도 가능한 조직이었다. 이론지에 탈당한 당원의 글을 실어주고, 심지어 맑시즘 연사로 초청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이런 SWP 분열에서조차 닐 데이비슨은 민주주의를 핵심 쟁점으로 꼽고 있는 것이다.
이와 비교하면 ‘다함께’의 위기와 분열에서는 더더욱 민주주의가 덜 중요했다고 보기 힘들다. 내가 이견을 제기하자 바로 입을 틀어막았을 뿐 아니라, 속전속결로 징계한 게 다함께 지도부였다. 이 때문에 ‘전지윤의 주장에 대한 동의여부와 무관하게 이런 의견을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조직이어야 한다’는 기치 아래 다함께 최초의 분파가 결성됐다. 분파의 이름부터 “민주집중과 단결”분파였다.
당시 분파로 모인 사람들은 ‘우리 조직의 민주집중제가 뭔가 잘못돼 있다’는 그동안의 의심을 이제 확신으로 굳히게 됐고, “민주집중제를 바로 잡겠다”는 목표로 뭉쳤다. 어찌됐던 정해진 기간을 넘어서까지 분파 활동을 허용한 SWP 지도부와 달리 다함께 지도부는 분파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분파 활동을 사사건건 가로막는 태도를 취했다.
지도부는 우리의 이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우리를 ‘상처받은 자존심에 원한을 품고 복수하려는 사람들’ 취급했다. 우리가 아무리 ‘상처받은 자존심이나 원한 때문이 아니며, 정치적 이견에 대한 민주적 토론을 원한다’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지도부는 형식 절차와 다수결을 이용해, 우리의 입을 막았다. 나아가 우리는 “29:1 전지윤 규탄대회”를 겪었고, 그것이 우리가 다함께 내부 혁신이 아니라 조직 분리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였다.
이 모든 과정과 사실을 잊어버리지 않고서야, 지난해 연말에 있었던 다함께의 위기와 분열에서 민주주의는 본질이 아니었다는 평가는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서범진 동지는 바로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누구도 외부 세계의 목소리를 들리는 대로 수용하는 사람은 없다. 자기 생각에 비추어 선별적으로 수용한다. ‘다함께’ 지도부도 당연히 그렇게 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또 많은 의사결정 상황에서 지도부의 견해가 압도 다수의 찬성으로 통과됐다. … 이런 공식적 의사결정과정에서 큰 비민주성이 존재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분파는 … 안타깝게도 조직 전체 차원에서 보면 현역 활동가들의 지지를 많이 얻지는 못했다.”
“진리를 사랑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역사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때로 ‘원한’을 잊을 줄 알아야 한다.”
“상처는 정말 작지 않은 문제다. 그런데 변혁 조직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이견의 내용이다.”
“지도부에 대한 이견이 원시적인 수준으로 제기는 됐을지언정, 제대로 정리된 테제로 제시된 적은 거의 없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지, 자신의 기존 관점에 부합하는 입장만 선별적으로 수용하는 게 옳은가? 형식적으로 항상 다수의 지지를 받은 것은 지도부였으니 “비민주성”을 제기할 수 없었던 것인가? 내가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것은 ‘원한’과 ‘상처’ 때문인가?
특히 나는 위의 마지막 문장을 보고 놀랐다. ‘이견을 완벽하게 정리된 형태로 제기하지 않았다고 그것을 무시하고, 이 때문에 사기가 떨어진 사람이 활동에 미온적이라고 타박하는 지도부’를 누구보다 신랄하게 비판했던 게 서범진 동지였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당시 서범진 동지는 옳게도 ‘누가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정리된 이견을 제시할 수 있겠으며, 지도부의 방향이 동의가 안 되는 데 어떻게 활동에 열의를 보일 수 있겠냐’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견 때문에 분리했는가?
서범진 동지의 입장이 변화한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먼저, 서범진 동지는 우리가 다함께에서 분리한 이유를 뭔가 한가지로 간단하게 답해야 한다고 보는 것 같다. 예컨대 서범진 동지는 영국 SWP에서 분열한 ISN 그룹은 “자신들과 SWP의 차이가 페미니즘에 대한 동의 여부라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반면 “만일 주변 사람에게 왜 조직에서 분리해 나와 새 조직을 만들려 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과연 우리 모임 구성원 중 어느 누구가 명쾌하고 간단한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한다.
이 상황에서 “진지한 사람들은 우리 같이 작은 모임의 ‘중핵’이 되려하기보다 ‘다함께’로” 갈 것인데 “[다함께가] 규모도 크고 실천 활동에 대한 영향력도 훨씬 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반면 민주주의에 대한 복잡한 “설명을 통해 우리 주변 사람들이 우리에게 어떤 정치적 매력을 느끼게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이 든다는 것이다.
나는 이에 대해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첫째, ‘다함께와 우리는 민주집중제에 대한 입장이 다르다’는 왜 “복잡”한 반면, ‘다함께와 우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이 다르다’는 왜 “간단”한 것인가? 둘 다 똑같이 간단하게 답할 수도, 더 복잡하고 설명할 수도 있는 데?
둘째, 중요한 것은 간단한 답변이냐 복잡한 답변이냐가 아니라 사실에 부합하는 정확한 설명이다. 그랬을 때,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이 달라서 분리했다’는 설명이 과연 사실에 부합하는가?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분리할 당시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는데?
이 답변이 설득력이 없다는 문제도 있다. 예컨대 ‘다함께 지도부는 왜 진보당 탄압을 조작이라고 규정하지 않았나?, ‘다함께 지도부는 왜 성추문 문제에 그런 식으로 대처했나?, ‘다함께 지도부는 왜 전지윤을 징계하려 했나?’ 등의 질문에 모두 ‘신자유주의에 대한 분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고 답할 수 있나? 각각 다 구체적인 분석과 설명이 필요한 문제이지 단순히 신자유주의로 풀어낼 수가 없는 데 말이다.
나는 ‘다함께에서는 민주적 토론을 통해 현실 변화에 따른 정치적 혁신을 이룰 수 없기에 분리했다’가 간단하면서 정확한 설명이라고 본다. 이것은 지난 분파 투쟁과 조직 분리 과정의 문제의식에 대한 사실에 입각한 설명이다. 더 자세히 풀어도 마찬가지다.
다함께는 2000년대 중반부터 낡은 관점에 매달려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지 못했고 정체·쇠퇴해 갔다. [신자유주의만이 아니라] 많은 문제들에서 의문과 이견은 커졌지만 지도부는 민주집중제에 대한 잘못된 해석·적용을 통해 이를 억누르기만 했다. 결국 지난해 이견에 대한 징계와 분파 투쟁은 다함께 내부에서 토론을 통해 정치적 혁신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우리는 이제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민주적 토론을 통해 변화된 현실에 맞는 정치적 혁신을 해낼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고자 한다.
셋째, ‘진지한’ 사람들이 과연 무엇을 기준으로 판단하려 할까? 비슷한 혁명적 원칙과 강령, 전략을 공유하는 세 조직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여기서 ‘민주적 토론을 통한 혁신이 가능하지 않더라도 규모와 영향력이 큰 조직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민주적 구조 등 다른 모든 것을 떠나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명확한 분석을 제시하는 조직으로 가겠다’는 사람들도 있다. 마지막으로 ‘비록 작더라도 민주적 토론을 통해서 변화하는 현실에 맞는 답을 함께 찾겠다는 조직으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누가 과연 “진지한” 사람들일까?
민주주의는 사회주의의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서범진 동지의 입장 변화에는 ‘민주집중제’에 대한 나와는 다른 해석도 자리잡고 있다. 서범진 동지는 “레닌주의 고유의 ‘민주주의’관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그것을 “민주주의에 대한 ‘도구주의적 관점’”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특정 “시기의 정치적 필요(이론의 오류로 인한 보다 많은 토론과 이론적 재조정의 필요성)”에 부합할 때만 민주주의가 의미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 이런저런 민주주의 원칙 운용을 잠시 제한할 필요가 있다면, 그러한 제한을 삼가는 것은 죄악일 것”이라는 토니 클리프 ≪레닌≫의 한 문구를 인용한다.
이재빈 동지도 “당내 민주주의는 당이 민주주의를 필요로 할 정도로 성장하지 않는다면 현실에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현재 우리 조직에게는 민주주의가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먼저 서범진 동지는 또다시 부적절한 인용을 했다. 서범진 동지의 인용은 스스로 밝혔듯 레닌이 아닌 플레하노프의 인용일뿐 아니라, 노동자 국가가 부르주아지의 자유를 제한할 필요를 말하면서 나온 말이다.
서범진 동지가 인용하면서 빠뜨린 문구는 다음과 같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트는 상층 계급의 정치적 권리를 제한 할 수도 있다.” 노동자 국가가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제한’하는 게 아니라 진정한 노동자 민주주의 강화의 방법이다.
사실, 혁명적 사회주의 전통에서 민주주의를 ‘도구주의적’으로 보자는 주장은 낯선 것이다. 반대로 마르크스 자신은 혁명적 민주주의자에서 출발해서 사회주의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엥겔스도 “오늘날 민주주의란 바로 공산주의”라고 주장했다.
레닌도 마찬가지다. 이언 버철은 스탈린주의적으로 왜곡된 레닌을 방어하며 이 점을 강조했다. 버철은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그의 가장 중요한 저작이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레닌이 얼마나 철저하게 진정한 자유와 민주주의를 옹호했는지 “아나키즘”이라는 매도까지 받았다는 것이다.
“사회주의 하에서는 많은 ‘원시적’ 민주주의가 부활될 것이다. … 모든 사람이 돌아가면서 통치하게 될 것이고, 따라서 곧 아무도 통치하지 않는 데에 익숙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고전적 마르크스주의 전통에서 민주주의는 필요하면 채택하는 부차적 도구긴커녕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항상 진정한 자유, 평등, 민주주의, 정의가 실현되는 이상향을 꿈꾸어 왔다.
나는 민주주의가 필수불가결한 이유를 두 가지 차원에서 더 강조하고 싶다. 하나는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한 투쟁이 “소수의 이익을 위한 운동”이 아니라 “압도적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적 다수의 자의식적인 운동”이기 때문이다.
다수 대중이 자신들의 집단적 이익을 깨닫고,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투쟁하려면 집단적인 논의와 성찰 과정이 필수적이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조차 이 점을 지적한다.
노동자들이 힘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자발적인 조직을 결성하는 것이다. 이렇게 결성한 조직이 효과적이려면 민주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노동계급 운동에는 뿌리깊은 민주적 본능이 내재해 있다. … 혁명정당은 노동자 투쟁에 능동적으로 개입하고 있는지 언제나 스스로 시험해 봐야 한다. 또한 이 시험을 얼마나 잘 통과하고 있는지 반드시 끊임없이 자문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조직이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허심탄회하고 충분하게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계급 운동의 일부인 혁명조직에서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노동계급의 일부인 혁명조직은 계급과 계급의 경험에서 배우고, 그것을 일반화해서 되돌려주어야 한다. 이런 소통과 상호작용을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필수적이다.
민주주의가 필수적인 이유는 당이 노동계급의 전지전능한 지도자가 아니라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와 자유로운 토론없이는 당이 실제로 노동계급의 요구에 부응하고 구체적 상황에 적합한 정책을 수립할 방법이 없다.
나는 이런 관점 때문에 우리가 다함께의 ‘협의회 기간 3개월만의 민주주의와 나머지 9개월간 운영위의 강력한 지도를 따르는 집중중의’라는 뒤틀린 방식을 거부하고 조직 분리를 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가 왜 ‘민주주의는 이론적 혁신이 필요할 때만 의미있다’거나 ‘조직이 커져야지만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제한을 다시 받아들여야 하는가. 레닌주의 조직 이론으로서 민주집중제에 대한 재정립은 우리의 핵심적인 이론적 혁신 과제중 하나다.
전통의 계승, 정치적 혁신, 현실에의 적용과 검증
3동지와 나 사이의 또 다른 진정한 차이점은 어떤 방법을 통해 이론적 혁신을 이룰 것인가의 문제에 있다. 나는 지난 글에서 우리가 해야 할 과제를 이렇게 요약한 바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사회주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그것을 변화한 현실에 맞게 창조적으로 혁신해야 한다. 또 그것을 구체적 현실에 적용하여 행동의 지침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이것을 더 간단히 3가지로 요약하면 ‘전통의 계승, 정치적 혁신, 현실에의 적용과 검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난 4개월 동안 우리가 세미나, 정기모임, 준비위회의, 뉴스레터, 블로그 등을 통해서 수행했던 작업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런데 3동지가 제시하는 과제에는 위 3가지 중에서 2가지를 볼 수 없다.
일단 ‘고전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계승’이라는 문제의식을 찾을 수 없다. 이 동지들은 내 주장중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국제사회주의 전통을 계승한 부분은 대부분 평가절하하고 있다. 그 주장이 오늘날 현실을 설명해주는가, 아니면 변화된 현실에 맞지 않는가가 판단 기준이 돼야 하는 데 말이다.
예컨대 서범진 동지는 “‘다함께’와의 공통점이 훨씬 더 중요한 … ‘우크라이나’, ‘세월호’, ‘의료 민영화 반대 운동의 상황과 과제’” 등은 굳이 토론할 의미가 없었다고 평가한다. 또 서범진 동지는 내가 “‘학생은 전 계급적 존재”라는 1960년대 하먼의 주장의 유효성을 옹호”한 것을 문제삼는다.
이재빈 동지는 내가 ‘자본가들이 비정규직의 무한정 확대를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하먼의 주장을 받아들인 것을 비판하며, 이래서는 “이론적 혁신이 무망하다”고 비판한다. 시우 동지는 내가 노동운동 세미나에서 한 주장이 “다함께를 답습”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나는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와 IST 전통에서 나온 주장 중에 현실을 제대로 분석하고 변혁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것도 ‘답습’할 것이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 전통은 끊임없이 현실에 적용하고 검증하면서 계승되는 것이지, ‘이론적 혁신’을 이루고 난 후에 창고에서 꺼내서 그것과 합치면 되는 무엇이 아니다.
다함께의 진정한 문제는 변화된 현실에 맞지 않는데도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정신이 아니라 문구에 매달리며, 그 전통의 속류화와 부정으로 나간 점에 있다. 예컨대 다함께가 초기에 세월호 문제에 굼뜨게 대응하며 노동자 투쟁만 강조했던 것은 “노동계급 중심성” 전통을 따른 것이긴커녕 그 전통의 속류화이자 부정이었다.
둘째, 세 동지에게서는 기존 이론을 현실에 적용․검증하면서 변화한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을 혁신한다는 관점이 희박하다. 이런 맥락에서 ‘세상읽기’와 같은 현실의 계급세력 분석과 과제 제시 시도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서범진 동지는 이것을 “사회적 이슈를 추적하는 일”이라며, 이재빈 동지는 “<이슈 털어주는 남자>나 <김어준의 파파이스>”와 비교하며 폄하한다. 나로서는 허탈하지만 이 동지들에게 이것은 기껏 ‘시사상식 점검’에 불과했던 듯하다. 서범진 동지는 이것을 “이론적 혁신 작업과는 크게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고도 말한다.
그러나, 세월호와 규제완화, 의료민영화를 분석하며 투쟁의 과제를 제시하는 것과 ‘크게 상관이 없는’ 신자유주의 이론의 혁신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우크라이나, 이라크, 팔레스타인에서 벌어지는 충돌을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것과 ‘크게 상관이 없는’ 제국주의 이론의 혁신이란 무엇일까?
이에 따라 이 동지들은 지난 4개월 동안 우리가 함께 이뤄낸 공과 과를 공정하게 평가하지 않고있다. 서범진 동지는 “상반기 동안 우리가 만들어낸 내용은 무척 작고 작은 것들이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회원모임에서 한 토론에 대해서도 “‘다함께’에 대한 모종의 뒷담화”이거나 “잡담회처럼 진행”되면서 “토론의 수준은 충분히 높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시우 동지는 노동운동 세미나가 “이론과 전략의 혁신과는 거리가 있”었고 “성과를 거의 거두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일단 솔직한 평가는 중요하다. 나도 “다함께의 문제점 중에 하나로 ‘활동에 대한 제대로 된 돌아보기가 안 된다’는 것을 지적”하며 “우리의 과제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지 보고하고 함께 돌아보며, 평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평가는 공정해야 한다. 이 동지들의 평가가 공정하지 못한 이유는 첫째, 사실상 자기 자신은 평가의 대상에서 빼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서범진 동지는 초기에 ‘공동전선 정치’의 문제를 핵심으로 IST의 위기를 분석해 나와 논쟁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석 실패를 핵심으로 주장하고 있다.
또 초기에는 ‘선전과 탐구’에 강조점을 둔 나와 달리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시립대 등에서 학내 운동에 개입해야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또 자신이 묶어두고 있는 대학생들을 조직하려는 의욕도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선전(그것도 나와 달리 구체적 선전이 아니라 추상적 선전)에 강조를 두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정립하기 전에는 누군가를 조직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변화했다. 나는 변화를 문제삼는 게 아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 대해 함께 평가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둘째, 평가의 근거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예컨대 서범진 동지는 별 근거없이 우리가 진행한 회원모임이 ‘수준도 낮고 성과도 없었다’고 평가하면서 대표적으로 “IST 정치의 위기와 분열 돌아보기” 모임을 예로 들고 있다. 그 모임에서 자신과 이재빈 동지가 공들여 준비한 논문을 발표한 것은 의미가 있었지만 토론은 내실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 모임에서 나온 다양한 문제제기와 주장들은 의미가 없었던 것일까? 나는 그 토론이 유익했고 거기서 영감도 얻었다. 그래서 그 모임에서 내가 했던 주장과 그런 영감을 발전시켜서 글로도 제출했다. 이것도 ‘수준이 낮고 내용이 없어서’ 두 동지는 두 달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변도 안하고 있는 것인가?
더구나 서범진, 시우 동지는 자신들이 진행한 학생운동 등의 세미나에 대해서는 지난 4개월 동안 거의 제대로 보고한 적이 없다. 또 세 동지는 노동운동 세미나에는 거의 참가한 적이 없다. 이런 상태에서 제대로 된 공정한 평가가 가능한가?
진정한 마르크스주의 방법론은 무엇인가
이처럼 세 동지가 평가의 근거 마련과 제시에는 무관심하면서 그동안 진행돼 온 회원모임, 세미나, 정세분석과 과제 제시 노력 등을 깎아내리는 이유는, 이런 작업이 ‘이론적 혁신’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이것은 “일상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귀납적으로 종합하는 과정을 통해 이론을 혁신”(이재빈)하려는 것이고 틀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범진 동지는 “회의도 더 줄이고, 뉴스레터 발간 간격이나 회원모임 주기도 더 조정”, “블로그에 올리는 작업도 중단”, “<세상읽기> 연재를 중단” 등을 주장한다.
이재빈 동지는 아예 “고유의 정치와 이론을 정립한 이후에야 현실에 적용하고 조직 확대에까지 나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먼저 “이론가들 사이의 논쟁을 확인하고 이를 취사하는 판단력을 발휘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틀을 재구성”하자는 것이다. 시우 동지도 “<세상읽기> 등”은 “우리의 이론 정립이 체계로서 기틀로 잡힌 이후에야 가능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이 동지들은 자신들의 이런 “연역적” 방법론을 마르크스의 “방법”, “정통성”이라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것이 마르크스주의 방법론과 거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먼저 세 동지가 강조하는 출발점이 ‘이론’과 그에 대한 검토라는 점부터 그렇다. 마르크스는, 사상에서 출발하는 헤겔과 현실에서 출발하는 자신을 칼같이 구분했다.
“나의 변증법적 방법은 헤겔의 그것과 근본적으로 다를 뿐만 아니라, 그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여기에서는 가장 엄연한 사실에서 출발해야 했다. … 언제인가 실제로 일어난 또는 아직도 일어나고 있는 현실적 과정을 고찰[해야 했다.] … 그것은 역사적인 예증, 현실과의 지속적인 접촉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출발점으로 삼은 전제는 … 생활의 물질적 조건들이다. 따라서 이러한 전제들은 오직 경험적인 방식으로만 확인될 수 있다.”
이 때문에 트로츠키는 “마르크스주의는 문헌 분석이 아니라 사회 관계 분석의 방법”이라고 했다. 마르크스에게 이론이란 노동계급의 경험을 일반화한 것에 불과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내린 이론적 결론 … 들은 오직 현실의 계급투쟁, 즉 지금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는 역사 운동의 산물인 실제 관계들을 일반 용어들로 표현할 따름이다.”
그러면 현실과 노동계급의 경험을 어떻게 ‘일반화’할 것인가? 먼저 마르크스는 그 자신이 “추상력”이라고 부른 것을 이용해서 현실의 가장 핵심적인 측면을 포착하고, 부차적인 것을 제거해서 본질을 잡아냈다. 이것은 “구체에서 추상으로의 하향”이다.
그런데 이것은 보통 겉으로 보이는 현실과 모순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이제는 사태의 본질이 어떤 수많은 중간 매개를 통해서 이렇게 겉으로 보여지게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이것을 마르크스는 “추상에서 구체로의 상향”이라고 불렀다.
이 과정에서 현실의 다양한 요소와 측면들을 분석하고, 그것을 하나의 구체적 총체로 종합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변화․발전하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정치경제학 연구에서 “인구”의 예를 든다.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점점 더 희박해지는 추상적인 것으로 나아가 최후에는 가장 단순한 규정들에 도달할 것이며, 거기서부터 이번에는 오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하여 … 전체에 대한 혼돈스러운 표상으로서의 인구가 아니라 많은 규정들과 관계들을 포함한 풍부한 총체로서의 인구에 도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유물론적이고, ‘하향’과 ‘상향’ 속에 분석․종합한다는 점에서 변증법적이며, 변화․발전을 놓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마르크스주의의 방법이다. 그리고 이런 분석이 올바른지 아닌지를 검증하는 유일한 잣대는 실천이다.
진리가 인간 사유로 귀착될 수 있는가의 문제는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의 문제이다. … 실천으로부터 유리된 사유가 현실적인가 비현실적인가를 논하는 것은 순수히 스콜라적인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론과 사상을 정립하기 전에는 현실과 실천에 적용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수영할 수 있을 때까지는 물 속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 스콜라 철학자들”이라고 비웃었다. 엥겔스는 마르크스주의를 “행동지침”이라고 했고, 그람시는 “실천 철학”이라고 했다. 현실․실천과 괴리된 마르크스주의는 생명력을 잃을 수밖에 없다.
2차 대전 이후 서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론적 실천”을 운운하며 강단․학계로 후퇴한 결과가 그것을 보여 줬다. “프롤레타리아와 직접적 혹은 활동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생기게 되는 긴장이 결여[되면서] … 전반적 퇴보”가 일어난 것이다. 크리스 하먼도 이렇게 말한다.
사상은 세계를 변혁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로 검증할 수밖에 없다. ‘이론적 진실’의 ‘보편성’을 ‘증명’하는 것은 ‘구체적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돕는 자극제가 되고 더 나아가 현실 그 자체와 결합될 수 있는지’에 달렸다. 어떤 이론도 실제 현실에 뿌리내리지 못하면 이런 구실을 할 수 없다.
결국 우리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은 “언제나 이론과 실천을 통일하려고 하고 그래서 물려받은 지혜나 고정된 교의에 만족하지 않고 마르크스주의를 변화하는 세계에 적용하려고 노력해 온 전통”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때문에 나는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해서 구체적 계급세력을 분석하고 과제를 제시하려는 노력을 중단하자거나, 이것과 떨어진 이론적 혁신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 아직 선전그룹으로서 우리는 당장 개입․선동을 하기는 쉽지 않지만, 구체적 현실에 대한 분석과 선전, 토론은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또 우리는 구체적 현실․실천과 긴밀히 연계된 회원들의 경험과 고민을 통해 배울 수 있고, 회원모임과 세미나 등에서 진행되는 활발한 토론이 바로 그것을 제공해 왔다. 이 점이 내가 이 글에서 마지막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바다.
세 동지에게 내가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다른 동지들과의 대화와 토론에서 배우고 함께 이론적 혁신을 하겠다는 자세다. 그러려면 회원모임이나 세미나를 “잡담회” 등으로 표현하며 이것을 축소하자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시우 동지는 노동운동 세미나의 “인적 구성”을 언급하며 “지나치게 개방”한 것을 문제 삼는다. 이재빈 동지는, 어려운 논문 등을 “다수의 사람들이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므로 “세미나[보다] … 차라리 전지윤 동지가 지금까지 읽은 자료들을 바탕으로 특정 주제에 대한 논문을 쓰는 편이 시간 대비 효율은 더 나았을” 것이라고도 말한다.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정치를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극복하는 … 작업은 기본적으로 모두가 집단적으로 할 수 있는 일도, 그렇다고 당위로서 모두가 같이 해야 할 일도 아니”라며 말이다.
이론적 혁신은 능력을 갖춘 소수가 해야 하는 작업이라는 인식을 거듭 드러내며 이것을 “위로부터의 당 건설”과도 연결시킨다. 서범진 동지의 태도도 별 다르지 않다.
그는 우리 각자가 “답답한 공간에 틀어박혀 어려운 책을 읽으면서 얼마간 ‘엘리트주의’적이고 ‘아카데믹’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어 글을 번역하고, 자료를 뒤적이고, 논문을 읽고, 긴 글을 쓰면서, 서로 날카로운 논평을 주고 받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런 ‘거대한’ 지적 작업 … 을 수행할 수 있게끔 우리 모임 구성원 대다수가 훈련받아본 적도 없다”며 ‘다함께’에서도 “김하영 동지 정도”가 이런 훈련을 해봤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적어도 내 기억에는 김하영 동지 자신은 이렇게 보지 않았었다.
≪국제주의 시각에서 본 한반도≫를 처음 출간했을 때 김하영 동지가 한 말이 기억난다. 그녀는 ‘사실 이 책은 어디까지가 내 생각․표현이고 어디부터가 다른 동지들의 기여인지 구분하기 어려울만큼 집단적 노력과 토론의 결과다. 이게 바로 지식인의 글쓰기와 혁명조직의 차이인 것 같다’고 말했었다.
계급운동과 동지들 상호간에 배우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이것은 혁명적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에서는 당연한 태도다. 마르크스 자신이 무엇보다 1843년 파리에서 처음으로 노동자 운동과 접촉하면서 배우기 시작했고, ≪공산당선언≫은 바로 1848년 혁명의 불길 속에서 씌여졌다.
마르크스의 사상은 ‘공산주의자 동맹’, ‘국제노동자협회’를 거치며 그가 경험한 투쟁과 뗄 수가 없다. 그래서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장례식에서 마르크스가 단지 이론가가 아니라 “무엇보다 혁명가”였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레닌은 더더욱 그랬다. 레닌의 모든 이론적 혁신은 계급투쟁의 한복판에서의 집단적 토론과 실천적 필요 속에 이뤄진 것이다. 레닌의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발전≫, ≪제국주의론≫, ≪철학노트≫, ≪국가와 혁명≫ 등은 사실 이론적 엄밀함에서는 높이 평가하기 힘들다.
심지어 러시아 혁명의 성격에 대한 레닌의 입장은 틀린 것이었다. 그러나 실천 속에서 배우며 오류를 수정할 줄 알았던 태도가 이런 약점을 보완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의 저작은 당대의 신문, 잡지, 심지어 노동감독관 보고서 등에서 나온 온갖 사례와 수치, 사실을 근거로 대며 분석을 수행하고 있다.
혁명정당에 대한 레닌의 이론도 ‘엘리트주의’가 아니다. 보통 레닌의 ‘위로부터 당 건설’ 사상은 ‘소수의 전위가 노동계급을 지도한다’는 식으로 오해돼 왔다. 하지만 레닌은 ‘노동계급은 투쟁 속에서 변화하며 본능적으로 사회주의자’라고 했다.
다만 투쟁 속에서 변화하는 폭과 속도가 불균등하므로 그중의 일부가 독자적으로 조직돼야 한다는 것이 레닌의 주장이었다. 동시에 레닌은 그 일부가 나머지에게 배워야 한다는 점, 당이 계급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존 몰리뉴는 이렇게 정리한다.
당은 전위이지만, 여기서 말하는 전위란 노동계급이라는 본체와 분리되어 존재하는 소수의 엘리트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전위란 공장, 광산, 사무실, 지역사회, 거리의 일상 투쟁에서 노동계급을 실제로 지도하는 수십만 명의 노동자를 가르킨다. 당은 노동자들을 가르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한테서 배울 줄도 알아야 한다. 당은 노동계급의 집단적 기억이자 두뇌이지만, 끊임없는 쇄신과 업데이트가 필요한 두뇌다.
던컨 핼러스 또한 “전위 개념이 엘리트주의적 주장이라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동료 노동자들을 가르칠 뿐 아니라 그들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으며 “겸손과 유연성, 자기 한계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레닌주의에서 ‘지도’는 일방적인 것이 아니며 상호작용하는 변증법적인 것이다. 우리는 겸손하게 계급에게뿐 아니라 서로에게도 가르칠 뿐 아니라 배우려는 자세를 가져야 하고, 지도부가 평회원보다 뒤쳐질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이론적 지식이 더 많은 사람, 영어를 더 잘하는 사람, 노동 현장의 상황과 정서를 더 잘 아는 사람, 평범한 대중들 속에서 잘 섞이는 사람, 타고난 직관과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 문화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은 사람...이들 모두가 서로에게 배우려고 해야지, “당적 활동”이 가능한 소수가 나머지 회원들에게 일방으로 ‘이론적 혁신’을 제공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혁명조직에서도 ‘선진’과 ‘후진’은 고정돼 있지 않다. 크리스 하먼은 “필요한 사상을 가장 잘 이해시키는 것이 항상 고참 당원들인 것은 아니다. … 오히려 신입 청년 당원들의 활력과 열정만이 고참들을 계속 움직이게 할 때가 많다.”며 이 점을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당과 계급의 변증법, 당 내에서 활발한 상호 토론과 배우기를 위해 우리는 다시 민주집중제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던컨 핼러스는 이렇게 말했다.
혁명정당은 철저하게 민주적인 기초 위에서만 건설될 수 있다. … 당내 민주주의는 추가 선택사항이 아니다. 당내 민주주의는 당원들과 그들의 활동기반인 계급 사이의 관계에서 필수적이다.
다함께는 이 필수적인 기제가 망가져 있었다. 서범진 동지는 우리가 “익숙했던 것과 결별”하자고 했는데 정말 그렇다. 다함께에서 우리가 익숙했던 분위기는 무엇이었나? 바로 지도부에 대한 이견을 남김없이 꺼내서 토론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기층 회원들의 [정제되지 않았더라도] 경험․목소리에서 배우려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당적 활동’에 전념하는 전업 활동가가 아니면 무시하는 분위기였다. 회원들에게 조직의 실상에 대해 투명하게 보고하며, 진정한 평가를 하려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따라서 나는 설사 다함께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론적 혁신을 해내더라도 그 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다른 대다수 동지들의 생각도 마찬가지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지난 분파 투쟁의 ‘원한과 상처’가 너무 깊기 때문일까? 전혀 그렇지가 않다.
다함께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없는 이유는, 현실과 계급투쟁의 변화무쌍함은 계속해서 새로운 혁신을 요구할텐데, 다함께에서는 민주적 토론을 통해서 이런 혁신을 이루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래서는 계급투쟁을 발전시키고 궁극적으로 사회변혁을 승리로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 모여 있는 우리는 그 엄청난 압력과 왜곡 속에서도 이런 진실을 보려고 했고, 결국 앞길이 불투명하고 험난한 새로운 변혁조직 건설이라는 길을 택한 사람들이다. 여러 가지 어려움과 경험, 자원, 능력의 부족 속에서도 함께 토론하고 배우며 이 길을 찾아가겠다고 애쓰고 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동안 속해 있었던 다함께 운영위원회나 편집부와 비교하면 당연히 우리는 여러 가지 점에서 부족하다. 최신의 이론적 동향에 대한 정보나 영어 자료를 볼 줄 아는 능력 등에서 많이 뒤쳐질 것이다. 우리 대부분은 ‘당적 활동’에 모든 시간을 투여하기도 힘들다.
하지만 나는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이론적 혁신을 이룰 수 있는 더 큰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우리 쪽이라고 생각한다. 또 다함께 운영위나 편집부의 여러 동지들보다 지금 나와 함께 있는 동지들이 더 커다란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론에 변화하는 현실을 꿰어맞추려 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글과 입을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9개월의 집중주의와 3개월만의 제한적인 민주주의’라는 틀을 거부하기 때문이다. ‘시도 때도 없이’ 토론하고 논쟁하며 가장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찾아가기 위해서 과감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기 때문이다. 세 동지들이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이 과정에서 계속 적극적인 일부가 되길 기대한다.
* ‘변혁재장전’과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해 봅시다. http://rreload.tistory.com/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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