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동지의 아쉬움을 어떻게 토론하고 함께 발전할 것인가

김지수

 

 

지난 화요일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의 이름으로 민중가수 백자 동지의 '나이스 쥴리'라는 노래에 대한 입장문을 냈었다. 그 뒤로 여러 사람들은 백자 동지의 노랫말이 여성혐오를 드러내고 성노동자들을 조롱하는 내용이라며 백자에게 분노와 실망감을 드러냈다. 반면 다른 일부 사람들은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입장문이 동지에게 하는 비판이라기 보다는 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하는 언어와 유사한 점을 지적하며 민주노총 여성위원회에 대해 비판했었다.

 

나는 윤석열 일가의 돈과 권력 지향적인 행적, 그와 엮인 권력 남용과 비리를 비판하는 데 있어 쥴리라는 표현을 쓰는 게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윤석열 등의 정치검사들이 관련 사건들에 개입한 흔적들과 검사와 피의자의 부적절한 관계가 불거지니(2012년 윤석열이 결혼할 당시에 김건희 씨와 최은순은 피의자 신분이었음) 급히 결혼한 행적 등은 윤석열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분석과 고발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쥴리’에 집중하는 순간 그 대신 김건희 씨의 사생활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윤삭열의 권력형 비리 고발은 더욱 어렵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쥴리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언동은 성노동자들에게 큰 상처를 주는 행위이다. 그 누가 사회적 편견에 기반한 혐오 발언에 예민하지 않겠냐만은 차별과 혐오에 노출된 당사자들은 비당사자들보다 혐오 발언에 훨씬 예민하다. 마치 장애인이 장애인 혐오 발언에 비장애인보다 수십 배 민감하듯 성노동자들은 ‘순결’ 프레임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차별 혐오 발언에 다른 사람들보다 수십 배 민감하다. 이 사회에서 제일 심한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곁에서 마땅히 그들과 함께 비를 맞고 세상 사람들이 뒤집어씌우는 오물을 함께 뒤집어쓰는 것이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우리의 덕목일진데 ‘쥴리’라는 표현을 쓰면 세상 사람들과 함께 성노동자들에게 오물을 뒤집어씌우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된다.

 

요약하자면 ‘쥴리’에 집중하는 방식은 프레임을 윤석열 일가의 권력형 비리에서 배우자의 과거와 사생활로 바꾸고 성노동자들에게 세간에서 뒤집어씌우는 편견을 강화하는 표현이며 활동가로서 해서는 안 될 언동이라 생각한다. 물론, 일부에서 떠돌던 쥴리라는 표현을 공론장으로 꺼낸 이가 김건희 씨이기는 하다. 6월 30일 인터넷 매체 뉴스버스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이 직접 "석사학위 두 개나 받고, 박사학위까지 받고, 대학 강의 나가고 사업하느라 정말 쥴리를 하고 싶어도 제가 시간이 없다"고 말한 뒤로 너도나도 쥴리를 언급하기 시작했다. 이 인터뷰는 전형적인 코끼리를 생각하지 말라면 코끼리만 생각하는 효과를 내었다. 안철수의 소위 'MB 아바타' 발언과 비슷한 효과를 내어서 사람들이 김건희 쥴리를 연상하게 하는 데 있어서 넘어야 할 양심의 산의 높이를 많이 낮추는 효과를 내었다. 그러나 이것이 ‘쥴리’에 집중하는 태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당시 나는 이 표현을 세간 사람들이 쓰더라도 우리 활동하는 사람들은 절대 쓰지 않도록 충분한 경계와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빨리 성노동자 등에게 상처 주는 이 프레임에서 윤석열의 반동적 본질과 권력형 비리로 프레임을 전환하도록 우리가 신경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수 백자 동지가 ‘나이스 쥴리’라는 노래를 냈다. 내가 참 좋아하던(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가 노동하다 힘들 때 ‘우리나라’ 노래를 들으면 마음에 위로가 되는 걸 숨길 수 없다) 우리나라 백자가 세간의 잘못된 행동에 함께 한 것이다.

 

너무 마음이 아팠고 난 백자의 그 행동을 정면에서 비판할 용기와 말빨도 나오지 않았고 그렇다고 그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기도 어려웠다. 백자 동지가 쥴리 한 번 언급할 때마다 그와의 친밀감이 뚝뚝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단은 그냥 넘어가는 태도를 취했다. 윤석열의 대권 행보에서 본인의 발언 리스크가 더 커졌고 급기야 주 120시간 발언, 후쿠시마 발언 등의 망언이 뻥뻥 터져서 그가 대권 행보를 더 이어가기 어려워 보였다. 윤석열의 대권 행보가 완전히 좌절되면 백자 동지가 더 이상 이런 노래를 부를 일도 없을 거고 그렇게 지금의 열기가 식은 후에 차근차근 비판해도 늦지 않다고 판단했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너무 안일한 판단을 하였다. 조선일보가 백자의 노래를 전면에 띄우고 백자의 노래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나는 우리나라 백자가 대단히 성인지감수성이 타고난 것도 아니고 따로 교육과 지도를 받지도 않았다면 통상적인 50대 한국인 표준처럼 쥴리라는 그 표현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고로 즉 백자가 그 표현을 쓴 게 너무 절망적이라기 보단 '백자의 눈높이에 맞춰' 토론과 교육을 하지 않은 우리의 무능력함을 탓할 일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민주노총과 진보정당과 여성단체들이 문화예술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만나고 교류하며 그들의 눈높이에서 설득하교 교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 없이 문화예술 인사의 평소 행동에 무관심하다 지금처럼 문제가 될 때 배제하고 퇴출하기로만 일관할 수는 없는 일이니 말이다.

 

내 페이스북 친구 중에도 반여성주의 성향을 드러내는 이들이 꽤 있다. 웬만해서는 내가 먼저 친구를 끊지는 않기 때문이다. 내 페북에 댓글로 한숨 나오는 잘못된 표현들을 혹자들이 할 때 나는 스트레스 받고 짜증이 나면서도 그 댓글에 공격적으로 반응하거나 그이를 차단하는 대신 ‘이 표현보다는 저게 더 낫습니다' 정도로 이야기를 하려고 해 왔다. 거기서 더 떠들어 봐야 상대의 마음만 완고해지게 되니 그거라도 막으면서 대화할 여지라도 남겨 놓고자 함이었다.

 

그런 면에서 민주노총 여성위의 이번 입장문은 그 내용은 옳지만 나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남겼다. 오히려 이런 태도가 백자의 마음을 닫아 버려서 더 사과와 반성을 설득하기 어렵게 만들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쉬운 정도로 끝났지만 윤민석 동지는 아쉬움을 넘은 서운함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문화예술 활동 당사자에게 무대에서 퇴출하기에 집중한 듯한 그 성명은 거부감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말로 다가가지 못한 것이다.

 

나는 윤민석 동지의 그 글에 똑똑하고 많이 배운 남성분들이 나서서 자신의 선명성을 나타내면서 공격적으로 댓글 달던 상황을 보며 더 안타까웠다. 자기가 얼마나 여성 문제에 깨어 있는지 과시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상대를 완고하게 만들고 자기만 깨인 사람으로 남는 것이 적절한가, 맞는 말을 맞기만 한 말로 만드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다른 동지와 대화를 통해 민주노총 여성위의 상황을 듣고도 너무 마음이 아팠다. 현재 상황은 민주노총에서 여성주의 의제 계도와 성폭력 문제 해결 전체를 여성위에 외주 주고 그걸 유포하는 걸로 할 일 다 했다는 식으로 손 놓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여성위에 있는 동지들도 몸도 마음도 피곤한 번아웃 상태가 되기 쉽다. 게다가 그 동지들이 성폭력 문제 해결을 과정에서 만나는 가해자가 천 명 정도 되면 그 중 구백구십팔명이 자기 잘못에 대한 문제의식도 반성도 거의 없다면 여성위 동지들은 상대방에게 어차피 설득이고 반성이고 사과고 뭐고 이런 것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상대 천명 중에 구백구십팔명이 문제의식이고 반성이고 뭐고 안 보이는 상황은 상대를 누가 만나서 어떤 방식으로 설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상대에게 들리게 말해 줄 수 있는 동지를 잘 선택해서 그 동지가 모나지 않는 표현으로 꾸준히, 천천히 설득할 수 있다면 천명 중 육백 명 이상이 자신의 행동에 문제의식을 갖고 반성하도록 이끌어 낼 수도 있다. 그걸 위해선 조합원들을 계도하고 성 관련 사건이 발생했을 때 해결하는 일(특히 가해자를 만나서 자기 잘못을 인식하고 반성하게 만드는 일)을 여성위에 외주 주듯 하는 지금의 상황은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

 

더 많은 남성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배우고 경험하고 바뀌고 주변을 바꾸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민되거나 모르는 것을 여성들에게 물어 본다면 여성들도 지금과는 다른 답을 해 줄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먄 새로운 세상을 앞장서 여는 여성들의 행동에 함께 할 수 있다. 그걸 이루기 위해서도 우선은 여성위에 더 많은 자원(특히 시간을 온전히 여성위 일에 쓸 수 있는 상근자들)을 투입하여 민주노총의 각 세포 조직마다 여성 문제를 스스로 인지하고 토론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차근차근 여성위가 외주 받아 전담하는 지금의 구조에서 단위 세포에서 스스로 해결해 나가는 구조로 바꿔야 한다. 그걸 통해 많은 남성들이 스스로 배우고 결정할 역량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이 사건에 발단이 된 노래패 우리나라의 백자 동지의 노래 사건은 지금이라도 백자 동지와 서로 신뢰하는 사람들이 서로 토론하며 그 결과로 백자 동지가 자신의 노래 가사가 성노동자들에게 상처 주는 행동이라는 사실을 마음으로 인지한 후 지금의 노래 가사를 철회하고 쥴리 표현 없이 윤석열 일가의 권력형 비리를 풍자하는 노래를 만들도록 약속하는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오늘 여성에 대한 차별 발언을 10번 했다면 한 달 뒤에는 5번만 하고 백일 뒤에는 안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발언의 빈도와 강도를 줄여 나가도록, 안 쓰는 훈련을 하도록 함께 동지적 신뢰에 기반해 노력했으면 한다. 

 

이 사건을 두고 나와 친한 동지와 이야기하던 중 이런 이야기가 나왔다. 그 동지는 이런저런 행사의 사회나 진행 경험이 많은 동지인데 그 동지가 말하길 시대가 달라져서 예전에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를 곁들인 유머가 별 문제의식 없이 용인 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불쾌감을 느끼는 청중이 많다고 했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가 들어가지 않은 유머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창작하는 사람의 의무가 되었는데 시대가 바뀌었으니 받아들이고 그렇게 일을 해 나간다고 한다. 적응하고 나니 아주 어렵지도 않은 일이라고 한다. 우리 운동에서 더없이 소중한 문예 일꾼 동지들이 사회적 약자가 불쾌하지 않은 유머와 노래와 문학작품을 만들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ps1. 친애하는 백자 동지께. 사랑하는 동지께서 조선일보와 보수 권력에 맞서 투지를 붙태우시고 풍랑에 전선을 의연하게 지키는 모습을 보며 저도 감동하고 있습니다. 제가 감히 짐작컨데 동지께서는 동지의 노래에 대한 뭇 사람들의 문제제기를 보며 동지가 동지에게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지가 부정되고 오독된다고 느껴서 상심이 크실 꺼라 생각합니다. 저 또한 여성위의 논평이 아쉽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위에 말씀 드렸다시피 이 땅에서 진보와 자주통일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이 사회에서 제일 많이 편견과 낙인의 시달리는 사람들인 성노동자들에게 편견과 낙인을 더하는 말을 노래에 적는다면 그것은 덕이 되지 않는 언동이라 생각합니다. 동지의 노래 가사를 보고 성노동 하는 분들 중에 많은 분들은 자신들이 노래패 우리나라 백자에게도 손가락질 받는 존재라고 느끼며 크게 상처받을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은 조선일보와 한창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지만 이 싸움이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된 뒤에는 지금의 상황에 실망해서 동지의 노래를 더 듣지 못하고 동지의 곁을 떠난 사람들의 빈자리가 보일 소위 '현자 타임'이 올 거고 그 때 우리가 느낄 상실감은 지금 우리가 느끼는 상실감보다 더 클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상황은 우리가 신뢰에 기반해 우리가 쓰는 언동과 노래 가사를 돌이켜보고 앞으로 사회적 약자를 비하하는 노래를 만들기로 마음 먹는다면 언제든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 감히 생각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마음을 열고 저처럼 동지의 곁에서 마음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이야기 하길 다시 한 번 부탁 드립니다.

 

ps2. 지금 상황에 대해 '캔슬 컬쳐'를 운운하며 여성위를 비판하며 자신들의 복권을 은글슬쩍 끼워 넣는 어떤 조직은 먼저 자신들이 피해자들과 주변 사람들을 특집 기사로 다루며 인신공격하던 과거와, 그것을 더는 두고볼 수 없었던 민주노총의 결단 이후에 피해자의 조력자에게 5천만원 손해배상을 걸어서 법정 공방을 벌이는 지금의 자신들 모습부터 반성했으면 좋겠다. ‘너흰 아니야. 너흰 손잡고 나가 있어.’

 

(기사 등록 202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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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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