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고백 하나 하겠습니다. 금일 이준석의 지지자와 비슷한 생각을, 저도 한 때에 조금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교 시절이었습니다. 1989년 봄, 저는 레닌그라드 국립대의 동양학부 입학을 목적으로 했지만, 한 가지 두려운 게 있었습니다. 바로 그 학부의 우선권을, 노농 대중 출신들과 노동자, 농민, 군인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예비 학부'를 졸업한 자들, 그리고 소련의 구성 공화국 (카자흐스탄 등) 지역 당 등에서 추천한 소수자 출신들이 가졌다는 점입니다.
저 같이 고졸로서 고교 졸업하자마자 대입을 하는 지식인 가정 출신들은 마지막 순위이었습니다. 나중에 조선사 전공으로 들어가보니 저 같은 출신 성분 (인테리 고졸)은 약 절반, 노농 대중과 제대 군인 출신 등은 약 절반, 그렇게 된 셈이었습니다.
즉, 실제 정원보다 제가 들어갈 수 있는 할당이 비교적 적어, 저는 그 때에 이와 같이 노농 대중 출신이나 소수자 공화국 출신 등을 우대하는 소비에트식 역차별 정책에 적지 않은 불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냥 실력대로 하면 왜 안되나 싶었고, 이렇게 노농 대중들을 위한 역차별 정책을 내놓는 게 결국 공산당 지지 기반 확보 차원의 정치적 술수 아니냐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했습니다.
제가 이런 이기적인 실력주의를 어느 정도 반성할 수 있게 된 것은 동급생 '앙드레이'를 만난 뒤이었습니다. 나중에 주평양 러시아 영사 등 외교계 고위직을 거쳐 지금 모스크바의 외무성에서 직책을 갖고 있는 그는 우크라이나 농민 출신이었습니다. 대부분 인테리들이 가지 않는 군의 가장 열악한 부대인 건설 부대를 거쳐 결국 "예비 학부" 덕에 동양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농민 출신이었고 그의 어머니는 당근 등 스스로 수확한 채소를 팔기 위해 레닌그라드를 "방문"할 수 있었지만, "거주"할 수 없었습니다. 그녀의 호구 문서상 거주 등록이 시골로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앙드레이"의 입장에서 "예비 학부"와 같은 기층 계급 출신들을 위한 역차별 정책이 아니었다면 지식 분자가 되어 레닌그라드나 모스크바에 가서 거주할 수 있는 길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즉 그에게는 역차별 정책이란 "생명줄"이었다는 거죠.
그러면 그는 "실력"이 없었다는 것인가요? 전혀 아닙니다. "예비 학부"에서는 집중적 영어 교육을 받고 나서는 외국어 학습에 관심이 생겨 어렵기로 유명한 헝가리어까지 실험 삼아 배워 본 것입니다. 몇 년 전에 김정은 위원장과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성 장관 사이의 통역을 맡은 그를 외무성의 비디오에서 봤는데, 그의 조선어 실력은 상당히 출중한 것이죠. 만약 "예비 학부"가 없었다면 그런 실력들은 과연 발휘될 수 있었을까요?
"실력주의"와 "공정"은 엄연히 다릅니다. 나의 "실력"이란 내 "노력"만으로 된 것이 절대 아니기에 그 "실력"만 가지고 나와 남들을 평가해 사회적 신분을 부여한다면 결국 내 "실력"을 만들어준 그 "상황"을 영구화시키는 효과 밖에 없습니다. 아마도 "예비 학부"가 없었다면 동양 학부 입학 전형 때의 영어 데스트에서는 "앙드레이"는 저 같은 도시 인테리 출신들을 제대로 상대하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전문대 교수인 제 어머니가 제게는 미리 영어 개인 과외를 해줄 언어학부 교수를 소개해주었고 저는 이런 "집중 과외"를 1년 이상 받아 왔는데, "앙드레이"가 거주했던 시골에서는 대학 교수들이 애당초에 산 적이 없어서 그에게는 그런 혜택이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의 차이 차원에서는 저와 그의 단순한 "실력 경쟁"은 당연히 공정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비에트 국가는 이 과정에 개입해서 적절히 소외층이라고 할 수 있는 그에게는 그 소외를 상쇄시킬 수 있는 정책적 도움을 준 겁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오늘날 한국처럼, 강남 출신이 명문대 인기 학과의 70%의 학생 자리 이상을 차지하는 꼴이 됩니다. 그게 실력주의인진 모르지만 절대 "공정"은 아닙니다.
역차별 정책은 쉽지 않습니다. 각종의 약자층 출신, 그러니까 농민, 저소득층, 다문화 가정 출신 등에게 어떤 형태의 정책 지원을 줄 것인지, 어떻게 할당을 정하고 우선 순위를 정할 것인지 당연히 사회적 토론이 필요하고 사회적 합의 같은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안할 경우에는... 장기적으로 사회적 "자살"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책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약자들은 "세습적 약자"가 될 것이고 강남족 역시 조선말기의 경화벌족과 같은 완벽한 세습 독점 계급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다시 권문세가와 노비의, 사실상의 신분 세습의 국가로 돌아갈 것입니다. 지금 이준석에게 열광하는 일부 2-30대 남성들에게는, 이 단순한 진리를 사회가 제대로 설명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사 등록 202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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