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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노동의 배제, 한국의 최대 문제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1. 5. 26.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의 블로그에 실렸던 글(bit.ly/3jpYwgJ)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1990년대 중후반, 한국이 민주화되어 가는 그 과정에서는 해외 정치, 사회학 전공자들 사이에서는 한 가지 이야기는 지속적인 대화 주제이었습니다. 한국이 주요 제조업 대국이 되고 제도적 민주주의도 어느 정도 성숙되어 가는데, 언제까지 '노동'이 주류 정치에서 배제될 것이냐는 것이었죠.

 

기억하시는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1990년대는 '3김'의 지역 감정 정치의 전성기이었습니다. 지역 감정, 지역 예산 배정을 둘러싼 '토건 예산 정치' 속에서는 노동 이슈도 밀리고 노동은 정치세력화된 것도 없었습니다. 어느 정도 민주화된 나라 치고는, 조직 노동의 정치력이 없는 사회는 아주 드물죠. 미국 같이 '정치 후진국'이라 해도 민주당은 상당수 노조의 제도적 지지, 지원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 한국의 상황은 좀 특이하고 우려스럽게 보였죠.

 

이제 20여년이 지났습니다. 한 때에 인천 같은 주요 공업 도시에서 20% 가까이 지지율을 확보한 민노당도 80년대 이후의 '정파' 싸움에 결국 희생되고, 그 후속 정당들은 대체로 영세화, 약체화되면서 일부는 상당히 우경화됐습니다. 정의당만 해도, 이제 '노동'보다는 차라리 전반적으로 진보적인 젊은 고학력자들의 표심 얻기에 더 중점을 두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동의 배제는, 크게 봐선 여전합니다. 현재 국회에서는 노동계 출신들은 13명에 불과한데, 그 중에서도 주체성이 있는 조직이라고 할 수 있는 민노총 출신은 불과 4명입니다.

 

반대로는 행정고시 출신의 국회의원은 27명이나 되고, 변호사 출신은 20명, 언론인 출신은 20명입니다. 한국의 입법부를 주도하는 것은 주로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는 극우 내지 리버럴 성향의 보수적인 직업 정치인들과 법조계, 관료계, 언론계 인사들입니다. 한국은 약 2천만 명 이상의 일반 임금 근로자와 약 9만 명의 대학 교수를 가진 나라지만, 노동계 출신의 의원은 13명인 반면, 교수 출신은 10명이나 됩니다. 이 정도로 사회적 부 창출에 중심적 역할을 하는 노동자들이 정치판에서는 매우 약하게 대표되는 것이죠. ​

 

한국 노동자들이 사회, 정치적으로 고립되고 대표성이 약하고 배제되어 있는 만큼, 그 사회-경제적 위치 역시 산업화된 세계에서는 '최악'입니다. 한국의 전체 기업 근로자 중에서는 12%는 대기업, 88%는 중소 기업 종사자들인데, 10명 중의 1명에 불과한 '대기업 정규직'이라 해도 실질적 노동 시간은 세계의 최장에 가깝고 80% 이상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릴 정도입니다.

 

그런데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해도 적어도 '임금'은 제1세계처럼 받는다는 대기업 정규직은 10명 중의 1명일 뿐이고 가장 흔한 노동의 종류는 '중소 하도급 기업' 내지 '중소 서비스 업체' 근로자입니다. 정규직이라 해도 그 기업이 언제 망할는지 알 수 없고 해서 노동 불안은 비정규직과 큰 차이 없습니다. 일주일에 52-55시간동안 일하고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하는 게 일반입니다. 하루에 평균 7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는 곳은 '선진국' 한국이죠.

 

저는 그래서 노동 정치, 특히 비정규직, 영세 기업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기반을 둔 급진적 노동 정치라는 의제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급진적 좌파 정치'에 미래가 있다면 그 미래는 바로 불안 노동의 조직화와 서비스 노동의 조직화, 그리고 청년 노동 예비군의 조직화일 겁니다. 한국이 다수에게 그나마 조금이라도 덜 '헬'과 같은 사회가 되자면 노동자들이야말로 여전히 그 중심에 서야 할 것이죠

 

(기사 등록 202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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