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김학의와 검찰의 억울함을 풀어주자고?

전지윤

 

1980년대까지만 일단 정리돼 있는데도 이 정도다 - 검찰의 조작 사건과 흑역사들 

 

최근 검찰은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와 성착취라는 김학의 사건의 본질을 물타기하고 오히려 거꾸로 뒤집으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김학의 사건을 덮으려고 한 세력이 아니라, 밝혀내려고 한 사람들이 범죄자로 몰리고 있다. 상식적으로 기가 막힐 일이지만 검찰과 주류언론과 기득권 카르텔이 손잡고서 한 목소리를 내니까 서서히 여론과 프레임 바뀌어가는 ‘기적’이 또 일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김학의의 이름과 얼굴은 또다시 계속 소환되고 있다.

 

이 속에서 얼마 전에 ‘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도 연재됐다. 박준영 변호사가 제보한 엄청나게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했다는 이 기획연재를 전부 다 꼼꼼히 읽어봤다. <한국일보>보다 좀 더 그 가리키는 방향이 노골적인 SBS의 ‘[취재파일] 김학의 사건’ 연재도 이어서 다 보게 됐다. 거의 책 한권이나 되는 분량의 기사와 보도 연재들을 나름 많은 시간과 노력을 할애해 살펴 본 것이다.

 

그렇게 한 이유는 김학의 사건과 그것이 덮어지는 것을 보면서 워낙 분노했었고, 그나마 2016년 촛불 이후에 진실이 밝혀지고 피해자들의 억울함이 풀리는가 하는 기대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 과정에서 박준영 변호사가 ‘당신들은 잘 모르지만 나만 본 자료가 있고 내가 아는 뭔가가 있다’면서 계속 어긋나는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면서 갑갑함도 느꼈었기 때문이다.

 

박준영 변호사는 '약촌오거리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에서 권력기관의 범죄를 밝혀내고 억울한 누명을 쓴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섰던 분이다. 더구나 김학의 사건의 진상 재조사 과정에도 일부 참가했다. 그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하니 ‘진실의 일부는 가려져 있고 내가 너무 분위기에 휩쓸려 한쪽만 보고 있는 것인가’하는 찝찝함이 남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 좀 더 온전한 진실에 다가가고 찝찝함도 풀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갖고 상당한 분량의 기사와 보도 연재들을 인내심을 갖고 쫓아갔다. 그 결과는 허탈감과 실망이다. 아무리 큰 장점을 가지고 있고 많은 기여를 한 사람도 모든 문제에서 항상 옳을 수는 없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당신들이 모르는 뭔가가 있다’에서 그 ‘뭔가’의 실체는 너무 초라하고 허탈한 것이었다.

 

물론 그동안 이 사건에 관해 나왔던 많은 언론 보도들이 총체적이고 성찰적인 시각으로 이 사건의 실체를 분석하면서, 피해자의 관점과 인권적 감수성을 담았던 훌륭한 내용들이었냐고 묻는다면 부정적일 수 있다. 사실 박근혜 시절에 이 사건을 덮는데 동참했던 주류언론들은 촛불 이후 대중적 분노가 이 사건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자, 뒤늦게 올라타서 선정적 보도나 파편적 사실 취재 등에 머무는 문제를 보여 줬다.

 

검찰의 피의사실 유포와 언론플레이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검찰의 치부를 공격하는데 그런 방법을 일부 채택한 것은 분명 적절치 않았다. 경쟁자의 허물을 자신들에게 유리한 카드로 이용하려는 정파적 시도와 요소가 끼어든 것도 사실이다. 또, 구조적 접근보다 김학의나 윤중천을 악마화하는 데 매달렸다.

 

놀랄 것도 없이 이 사건의 실체는 타고난 악마들이 순결한 천사들을 괴롭힌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사건은 3류 영화에나 존재하는 법이다. 단순하고 극단적인 선악구도의 접근은 항상 별로다. 아무리 악한 범죄자라도 결국은 결함많고 나약한 또 하나의 인간일 수밖에 없고, 범죄자나 가해자 개인을 악마화하면서 그들의 존엄성과 인권을 파괴한다고 피해자가 치유되고 사회정의가 세워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번에 <한국일보>와 SBS의 기획보도와 연재들이 이런 문제와 함정들을 피하면서 온전한 진실을 재구성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데 성공하고 있는가? 별로 그렇지 않다. 이것은 오히려 4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면서, 그나마 밝혀진 사실들에 물타기를 하고 진실을 파헤치려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효과를 내고 있다.

 

여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것은 크게 4가지다. 첫째, 사건의 내용과 실체적 정당성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파헤치는 절차와 과정의 정당성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용과 실체적 정당성에 대한 문제의식은 희미해져 버린다. 둘째, 아무리 질 나쁜 범죄자도 인권이 있고 도를 넘는 비난과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피해자들이 입은 고통과 피해에 대한 관심은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셋째, 사건은 그 자체로 접근해야지,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서 검찰의 흑역사와 구조적 문제를 가장 잘 보여준 사건이 검찰개혁과 별개의 문제로 다루어진다. 넷째, 피해여성들의 믿기 힘든 진술에 의존해 사건의 실체가 왜곡됐다는 것이다.

 

이것이 가장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분이다. ‘성매매를 하던 여성들이고, 성관계 과정에서 강압과 폭행은 없었고, 돈도 받았고, 뒤늦게 문제제기를 했기 때문에 그 여성들의 진술 신빙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일방적인 성폭력 피해자’이기보다 ‘자발적인 성판매 행위자’라고도 주장한다.

 

여기에는 검찰과 주류언론이 공유하는 남성중심적 시각, 성노동자에 대한 편견, 성폭력에 대한 통념,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가 뒤범벅되어 있다. ‘성접대’라는 개념 자체가 폭력적이며, 성매매(성노동) 과정에서도 성폭력은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고, 제3자가 성관계를 지켜보면서 자신을 촬영하는 것은 누구에게든 폭력이며, 돈을 받았다고 피해가 사라질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이 논리들은 새롭지도 않다. 박근혜 시절에 검찰과 친검찰 주류언론이 김학의 사건을 덮어주며 자기 스스로를 정당화했던 논리들이다. 이렇게 자기 정당화를 하고 보면, 모든 것이 그렇게 해석되고 그 프레임에 끼워 맞춰지게 된다. 김학의와 검찰에게 불리한 증거들보다는 피해여성들에게 불리한 증거들이 더 커보이고, 김학의의 범죄와 검찰의 비호를 밝히는 수사와 취재보다 피해여성들의 진술신빙성을 흔들기 위한 수사와 취재를 더 진척시키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김학의의 범죄와 검찰의 흑역사를 밝히기 위한 ‘과거사 진상조사’는 ‘피해여성들이 얼마나 믿지 못할 사람들이고 자발적으로 성판매에 응했는가’에 대한 진상조사로 탈바꿈했다. 이것이 ‘검찰과 친검찰 언론의 시각으로 세상을 볼’ 때 생기는 결과이다. 박준영 변호사가 ‘인간의 존엄성이 중요하고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갑자기 비약하며 이것을 포장하기엔 그 결과가 너무 허탈하고 초라하다.

 

여성들의 수단화시켜서 성을 착취하며 비리와 유착을 저지른 자들을 제대로 단죄하고, 그것이 가능하게 만든 검찰 권력과 구조를 개혁하는 것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었다. 검찰 조직의 이익을 위해 이것을 거듭 가로막는 세력들이야말로 박준영 변호사가 그토록 강조하는 김학의라는 개인의 ‘잊혀질 권리’마저 가로막고 있는 장본인들인 것이다.

 

사실 <한국일보>와 SBS는 이런 기획을 준비하고 연재하기 전에 검찰 등의 악의적인 피의사실 유포에 협조했던 과거부터 돌아볼 필요가 있었다. <한국일보>는 2013년 ‘내란음모 조작 사건’ 때 수백 군데나 조작된 ‘이석기 녹취록’을 특종 보도해 종북몰이에 날개를 달아준 것부터 사과할 필요가 있고, SBS는 지난 2019년 검찰대란 과정에서 ‘정경심 컴퓨터에 대한 3일전 예언보도’의 진실을 밝히거나 반성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이 언론들(박준영 변호사도)은 윤지오 씨에 대한 낙인찍기도 지속하고 있다. ‘윤지오라는 사기꾼에 온국민이 속았던 것처럼, 김학의 사건도 성매매 여성들의 진술에 온 나라가 휘둘렸다’는 논리이다. 장자연 님의 억울한 죽음에 책임있는 가해자들은 대부분 면죄부를 받고, 오히려 아무 잘못도 없었던 것처럼 큰소리를 치고 있는데 용기있게 증언에 나섰던 윤지오 씨만 엄청난 마녀로 낙인찍힌 상황에 아무 문제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이 모든 이들이 엄청난 악의를 가지고 있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서 있는 곳에서 보이는 풍경만이 진실이고 전부라고 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 풍경에서 가려진 것을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 검찰 등 권력기관에 의해 인권침해를 당한 수많은 억울함과 고통은 잘 안보이고 잘 모르는 일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잘 모르는 게 아니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에 있다.

 

예컨대 정치철학자 조정환은 방대한 자료와 정보를 치밀하고 정교하게 종합하고 분석한 두 권의 책(<증언혐오>, <까판의 문법>)을 통해서 윤지오 마녀사냥의 진실을 재구성하고 억울한 누명들을 벗겨냈다. 윤지오가 사기꾼이라고 기정사실처럼 툭툭 던지는 언론과 지식인들 중에서 이런 내용을 제대로 인지하거나, 반박하기라도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그나마 <한겨레> 이재성 기자만이 이 책들을 읽고서 <한겨레>의 논조가 잘못이었음을 돌아본 바 있다.(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35713.html)

 

물론 모든 사람이 모든 것에 다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려고 노력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잘 모른다면 적어도 누군가에 고통 앞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여야 한다. 주류언론과 그들이 주도하는 프레임을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이고 거기에 휩쓸려서 무심코 툭툭 돌을 던지지는 말아야 한다.

 

김학의 사건을 ‘다시 쓰면’서 SBS는 ‘우리는 이 사건을 알아갈수록 불편한 진실에 직면했다. 진실은 대중의 지배적 시각과 충돌했다. 대중이 즉각적이고 감정적으로 반응할 때 전문가들은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도록 개입해야 했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노라고 하는 전문가들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김학의 사건은 지배권력에 의한 여론재판이었는데, 뒤늦게 용기있는 전문가들이 나서서 진실을 밝히고 김학의와 검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있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검언 카르텔 권력의 전문가들이 덮어왔던 진실이 대중적 분노에 밀려 밝혀질뻔 하다가 다시 덮여지고 있는 것인가? 2016년 촛불이 뒤흔들고 바꾸었던 사회가 다시 이렇게 그 전으로 돌아가기 시작하고 있다.

 

(기사 등록 202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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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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