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 교수와 정신장애
- 정신장애인은 범죄의 온상? 치료 불가능? 정신장애인 혐오 선동 그리고 낙인 찍기를 중단하라
박철균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생생하고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 '위캔두댓'
1.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유명해진 사람 중에 이수정 교수가 있다. 끔직한 미해결 살인 사건이 이야기되면 으례 이 교수가 나와서 범인에 대한 분석을 하는 형식으로 등장했고, 뭔가 범인을 찾아내는 과정들이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묘사되곤 했다.
그리고 이수정은 여성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접근하고 문제제기 하는 방식으로 주목을 끌었다. 그런 여러가지 활동 속에서 여성의당 자문위원을 하더니, 박원순 서울시장 사건에서 피해자를 향한 박원순 지지자들의 온갖 2차가해를 보더니 국민의힘 성폭력특별위원회 위원까지 하고 있다.
2.
그런데, 이런 이수정 교수에겐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다. 이교수는 여성의 문제에 있어선 진취적일 수는 있어도 정신장애인 문제에 있어선 최악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뭔가 범죄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이 교수는 너무나도 쉽게 범인을 정신 이상(장애)가 있고 그 특성을 과장하는 측면이 있었다. 여성혐오의 대표적인 비극인 강남역 살인 사건 때도 가해자가 조현병 증상이 있다면서 그 증상에만 집착하듯이 발화하기도 했다.
3.
그랬던 이수정 교수가 최근 자신이 출연하는 팟케스트에 정신장애에 대한 자신의 편견과 혐오를 가득 퍼부었다. 팟캐스트 프로 자체는 범죄영화를 보고 그 영화에 대한 분석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수정은 아예 "성격장애특집"이라는 제목으로 무슨무슨 영화를 얘기하면서 그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정신장애인"의 특성이랍시고, 온갖 혐오와 차별 발언을 퍼부었다.
당장 이 편만 하더라도 이수정은 정신장애인을 "자기 중심적"이고 "사람을 도구로 썼다가 더 이상 필요가 없으면 쉽게 버리는" 사람들로,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하며" "바깥에선 멀쩡한데 집에선 폭군" 이며, "멀리하는 게 좋고, 같이 있으면 주변까지 삶이 황폐해진다."고 이야기를 하더니, "사람을 고립시키고 심리를 조종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해서 위험하다" 로 무슨 존재 자체가 흉기인 사람처럼 묘사했다. 급기야 마지막엔 "치료가 안 된다"는 말로 아예 정신장애인을 구제불능인 걸로 딱 잘라 말했다.
4.
우선 "범죄영화"에 어떤 특성을 들이대면서 정신장애인이 이렇니 저렇니 담화를 만드는 것부터 잘못 됐다. 이수정 교수는 으레 자신의 범죄 프로파일링 경력을 얘기하면서 "정신장애인=반드시 범죄를 일으키고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란 공식을 만들고 싶었겠지만, 현실의 통계(2017년 대검찰청 분석자료)는 비장애인의 범죄율(1.4%)이 정신장애인의 범죄율(0.1%)보다 훨씬 높다. 그런데, 통계적으론 더 위험한 다양한 비장애인을 낙인찍기 보단 더 소수에 있는 장애인을 낙인찍는 것은 뭔가 부당한 것이 아닌가?
5.
나는 이 범죄 전문가라는 이수정 교수가 과연 그렇게 쉽게 낙인찍는 정신장애인에 대해선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기나 한지 되묻고 싶다. 당장 경계성 성격장애라 불리는 정신장애도 어떤 사람은 화를 내를 방식으로, 어떤 사람은 위축이 되는 방식으로, 어떤 사람은 충동적인 방식으로... 등등 다양한 방식으로 발현될 수 있다. 비장애인이 모두 같은 캐릭터가 아니라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인 거라면 정신장애인 역시 다양한 캐릭터들이 모였다.
그런데, 왜 정신장애인은 정신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낙인과 편견만 한가지 특성인양 단정되어야 하는가? 이런 악마화 하는 낙인들이 오히려 정신장애인이 의료적 지원을 받고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데 얼마나 치명적인 방해가 되는지 이수정 교수에게 되묻고 싶다. 치료가 안 되는 이유는 정신장애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교수를 비롯한 사회의 편견과 낙인, 혐오가 더 큰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6.
과연 정신장애인은 구제불능이고 치료가 안 되고 남과 같이 살아가기 힘든 존재일까? 그것이 답이 아니라는 것은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다. 이탈리아는 1978년에 바살리아법으로 정신장애인의 정신장애인 시설(정신병원) 신규 입소를 금지하면서 병원에서 사회로 나오는 정신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고민들이 커져 갔다. 그 고민들 속에서 논첼로 협동조합(영화 위캔두댓의 실제 모델)은 정신장애인이 함께 일하고 생활하는 목공, 가구조립 협동조합으로 탄생했다. 100명의 조직이 600여명의 조직으로 성장했고, 그 구성원 중 30%인 정신장애인도 함께 일하는 조직이 되었고, 이탈리아 전체적으로는 3만여명의 정신장애인이 이탈리아 전국의 여러 협동조합을 통해서 함께 일하게 되었다.
7.
이수정 교수가 단정하듯이 "치료가 안 된다" "멀리하는 게 좋다"던 정신장애인은 어느 곳에서는 "함께" "사회에서" "일하는" 존재 중 하나인 것이다. 나는 한국에선 이런 것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장애인 때문에 못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장애인을 쉽게 얘기하면서 쉽게 배제하고 낙인찍고 같이 함께 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 안 하고, 정신장애인을 동등한 사람으로 취급조차 하지 않는 이 사회의 이수정 교수같은 풍토가 정신장애인을 함께 살지 못하게 만든다.
오히려 한국에선 정신장애인 시설 폐지 같은 것은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여전히 정신장애인의 강제 입원이 서슬퍼렇게 존재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정신장애인 당사자를 비롯한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요구로 정신보건법이 개정되어서 가족 중 1촌 관계에 있는 사람의 요구로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동의하지 않았는데 강제입원을 진행하는 조항이 폐지되었다. 그런데, 그 대신 경찰 등의 행정권력이 요청하면 정신장애인의 동의 여부와는 상관 없이 강제입원하는 행정입원이 여전히 서슬퍼렇게 살아 있다. 이 행정입원은 강남역 살인사건 때 이 문제를 여성혐오와 같은 거시적 문제로 접근해서 해결하는 것을 포기하고, 조현병 당사자에게 혐의를 뒤집어 씌우는 방식을 추구했던 사람들 때문에 강화되다시피 했다.
8.
아이러니하게 강남역 살인사건 당시 이수정 교수 역시 언론이 성범죄에 대해 자극적인 보도를 하지 말라면서, 자신은 마치 조현병이 이 사건의 원흉인 것처럼 분석을 했다. 아예 '프리한 19'에서 이 사건을 얘기하면서 "조현병은 자신을 해치려는 생각 때문에 인명피해를 입힌다."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조현병에 대하여 편견이 생긴 것 같다."고 정신장애인에 대해 아주 자극적으로 발언한 바 있다. 여성에 대한 낙인은 그렇게도 두려워 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쉽게 정신장애인을 쉽게 낙인하는가?
또한 그 문제의 팟케스트에서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은 "남성 감독의 삐뚤어진 에로티시즘이 문제라며 나와서는 안 될 영화라고 비판했고, "번지점프를 하다"는 그루밍 성폭력이라고 비판했다. 그렇게 영화에서 나올 수 있는 반인권적이고 반여성적인 모습엔 철퇴를 가하면서, 왜 반대로 정신장애인의 낙인엔 함께 합세하며 정신장애인에게 철퇴를 넘어 칼날을 휘두르는가?
9.
정신장애인도 사람이고, 함께 살아가고 지원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런 모든 권리를 앗아가는 이수정 교수의 계속되는 정신장애인 혐오 선동은 중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오랜 세월동안 정신장애인을 낙인찍어 온 것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되어 있지 않는 이상 정신장애인을 끊임없이 고립시키는 이수정 교수를 인권적인 측면에선 최악의 교수라 생각할 것이다.
"같이 있으면 주변까지 황폐해 지는"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고,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사람", 인권의 "바이러스"로 생각할 것이고, 정신장애인을 "고립시키고", 이교수에겐 최대한 "멀리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여기서 " "은 이수정 교수가 팟케스트에서 경계성 성격장애로 분한 정신장애를 가리키며 한 말이다. 그 " "의 말을 그대로 이수정 교수에게 역으로 돌려 준 것이다. 그것이 이수정 교수가 기분이 나쁘다면 이수정 교수 역시 정신장애인에게 그런 말을 퍼부어선 안 된다.
이게 현실인지 꿈인지 알 수 없는 영화로 정신장애인을 혐오하고 낙인찍을 시간에 차라리 실화를 바탕으로 한 "위캔두댓" 이나 수백번 볼 것을 이 교수에게 권한다.
10.
우리의 일상에 너무나 낙인과 혐오가 많다. 정신장애인도 그렇고, 성소수자도 그렇고... 그 밖에 다른 사회적 소수자도 얼마든지 그런 낙인과 혐오의 수레바퀴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것에 참지 말고 이야기하자. 그것이 인권적이지 못한 차별의 언어라는 것을 참지 말고 이야기하자. 그 속에서 조금이나마 인권의 씨앗이 싹튼다고 생각한다.
(기사 등록 202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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