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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당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12. 22.

'운동권 막 그런 건 아니지만'에서 말하는 '운동권 막 그런 거'가 하는 이야기

 

윤미래

 

[‘시스터 후어사이더실렸던 글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시스터 후어사이더는 성노동자에 대한 낙인과 혐오, 배제의 논리 속에 진행돼 온 집단적 괴롭힘과 사이버불링을 고발하며 그 생존자(밀사)를 방어하는 내용의 글들을 계속 올려왔다. 좀 더 자세한 것은 이 글을 참고할 수 있다.]

 



나는 2009년에 대학에 들어갔다. ‘이명박근혜정권의 2년 차였다. 내 기억이 맞다면 아마도 그즈음부터 죽음이 흔해졌다.

 

입학 첫해에 처음 배운 83학번 김세진, 이재호는 전방입소 거부시위 중에 반전반핵 양키고홈을 외치며 분신했다. 김세진 선배가 칸트를 그렇게 좋아했다지. 하늘 높이 뜬 별처럼 빛나는 그들의 일기며 서간문들을 뜨겁게 고양된 목소리로 선배들과 함께 읽었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 조합원 최종범은 평범하고 성실한 남편이자 아빠였다. 그는 2013년에 단체 카카오톡방에 삼성 다니면서 너무 배고프고 힘들었다, 그래서 전태일 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선택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다. 우리는 그의 동료 조합원에게 일터에서, 가정에서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해고자와 가족들 대다수가 우울증과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던 쌍용자동차에서는 2009년 대량 해고부터 2018년 복직 타결까지 30명이 죽었다. 유서조차 남기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분향소 앞에는 죽은 사람의 숫자만큼 신발이 줄줄이 걸려 있었다.

 

열사라는 말을 두고 논쟁이 있었다. 싸우던 중에 사람이 죽으면 다 열사인가, 열사는 본받아야만 할 무엇인가, 그 호칭이 현재에 와서 싸우는 노동자에게 정말로 보탬이 되고 있기는 한가, 쟁점은 다양했지만, 그 질문들이 그 시기에 쏟아지기 시작한 이유는 분명 싸우다가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라고 생각했다. 너무 많고, 너무 가까워졌다. 모두가 모두와 연결된 인터넷 시대에는 더더욱 그랬다.

 

나는 그래도 아는 사람이 하루아침에 열사가 되는 일은 겪지 않았다. 함께 먹고 함께 자던 동지를 잃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으면 그게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게 된다. 매일을 함께 하는 것은 아니어도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고 농담따먹기 할 만치는 서로 낯익고 친근한 사람들이 철탑이니 종탑이니 기어 올라가서 바람 불 때마다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으면 더 그렇다.

 

내가 겪은 마지막 열사는 나도 나갔던 집회에서 물대포에 맞아서 죽었다. 나는 그 집회로 재판이 걸렸다. 경찰과 밀치락달치락하다 푸르게 멍이 든 다리를 변호사에게 사진 찍어 보내면서 정말 기묘한 기분을 느꼈다. 내가 있던 곳은 손에 꼽게 과격한 단체의 손에 꼽게 급진적인 분회여서 우리는 기회만 있으면 튀어나가 경찰이 쳐놓은 차벽을 밀다가 최루액 탄 물대포 세례를 맞았다. 그게 너무 일상이 된 나머지 어느 시점 이후로 나는 집회에는 무조건 방수복을 입고 나갔다. 당시 사귀던 애인에게 처음 사준 선물도 방수 잠바였다. 나는 손에 꼽을 만큼 자기 안전, 자기 안위에 정성스러운 편이었으니까. 대개는 그 정도 신경조차 안 썼다. 날아오면 맞고 아프면 참았다.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당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대자보에는 매일매일 잘도 쓰는 내용을 조금도 실감하지 않던 나날들.

 

그래도 더 이상 열사가 내 영감(靈感)이고 모범이라서가 아니라, 동료이고 친구라서, 어쩌면 나라서 싸우게 되는, 그런 전환에 휩쓸리지 않을 정도로 둔감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래서 머리로만 알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많았을 테다. 그렇지 않고서야 다들 그렇게나 많은 사람을 떠나보내고도 자살 고위험군으로 득실거리는 주변을 매일 아무렇지 않게 마주할 수 있었을 리 없다.

 

우리가 누군가를 잃는다면 그건 더 이상 칸트 때문이 아니었다. ‘열사 정신 계승하자는 구호는 언제부터인가 열사의 한을 풀자로 대체되었다. ‘아아 죽어서가 아니라 시퍼렇게 살아 싸워 이기리라하는 가사의 신곡이 작은 판에서 큰 히트를 쳤다. ‘더 이상 죽이지 마라라는 구호가 현수막이고 포스터고 어디나 내걸렸다. 죽지 말자, 제발.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서로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죽음은 산 자들이 숨 쉬는 공기처럼 우리 가운데를 떠돌았다.

 

이 시간들을 잊지 않을 거라고, 한국을 떠나면서 생각했다. 청산하고 떠나가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내게 힘에 부치는 것이다. 계속 지기만 했고 정말로 죽을 뻔했어. 그러니까 잠시만 도망치는 것이다. 이기고 싶으니까, 나를 지금보다 강하게 해줄 무엇이든 찾아 나서는 것이다. 그것도 뜻대로만 되지는 않아서,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날아온 첫 부고에 당장 그 공기 속으로 도로 끌려들어가고 말았다. 마음을 피하는 것은 몸을 피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시간이 걸리는 일이어서, 한국에서 정권이 뒤집히고 주위의 인간관계를 갈아엎고 생활 양식과 패턴을 다시 짜고 스스로와의 관계를 완전히 바꾸는 일련의 내적 외적 대격변을 거쳐서야 비로소 좀 숨통이 트이고 하루하루가 평온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사람이 싸우던 중에 죽어버렸다.

 

그때 이미 밀사 님과는 꽤 친숙한 사이였음에도 나는 그의 죽음에 대해 만 일 년 넘게 입을 열지 않았다. 나도 아직 나대로의 수라장에서 다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했고, 당시에 흔했던 어떤 종류의 성노동 담론들에 찬성하지 않기도 했고, 무엇보다 앞으로 좀 더 친해질 수 있겠다 싶은 느낌은 있었음에도 일단은 그냥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내 바운더리 내의 일도 아니고, 내 쪽에서 다가가고 싶은 일도 아니었다. 그저 잠깐 안타깝고 신산한 기분으로 있었을 뿐, 일상은 바쁘고 전력을 다해 생각해야 할 일은 잔뜩 있었다.

 

그 일이라는 게 그러니까 가령 담론적 식민화에 대한 수업을 들으며 모한티니 스피박을 비롯한 탈식민주의 여성학자들의 글을 읽는다거나, ‘스스로 해방될 능력이 없는 나라는 전쟁으로라도 민주화해야 한다며 전쟁을 선동하는 사민당 학생 대표를 고발한다거나, 각자의 이유에서 히잡을 쓰거나 쓰지 않기로 한 이슬람 문화권 출신의 여학생들과 함께 몰려가서 무슬림 여성들을 히잡으로부터 구하자고 핏대를 세우는 극우 인사들과 대거리하는 따위의 일들이었으니 아마 시간이 지나면 결국에는 이렇게 되고 말았겠지만.

 

죽은 이를 가장 맹렬하게 공격하던 사람들이 이번에는 죽은 이의 동료들을 비난하고 집요하게 괴롭히고 있는 것이 그 시점을 엄청나게 앞당기고 말았다. ‘성노동론에 세뇌된 여성들을 구출해야 한다’ ‘성노동론은 성착취를 옹호하는 부역이다’ ‘말을 듣지 않으면 패서라도 정신 차리게 하자따위의, 주어와 목적어를 바꾸면 너무나 똑같은 말들을 들고서.

 

그러니까, 그런 얘기다. 싸우다 죽는 건 어느 시점부터 너무 흔한 일이 되어버렸고, 너무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고, 나는 너무 쉽게 그 자리에 나를 넣어볼 수 있는데... 내가 언젠가 날마다 치르는 충동과의 싸움에서 져 버렸을 때 사람들이 내 동지들을 비난하는 것은 내가 죽은 뒤에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끔찍하고 상상하기 싫은 일이라는 이야기. 비단 나의 일이 아니더라도, 노동자가 싸우다 죽었을 때 노동조합이, 농민이 싸우다 죽었을 때 농민회가, 시위하다 사람이 죽었을 때 시위대가 죽음에 대한 책임을 떠안고 사회적으로 돌팔매를 맞는 세상에서 나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다. 그렇게 안 해도 모두들 이미 너무 힘들었다.

 

그리고 너는 힘없고 몽매해서 네게 좋은 게 무엇인지 잘못 알고 있으니 더 잘 아는 내가 (폭력으로) 교정해주겠다는 논리와 동학이 오늘날, 트위터에서만이 아니라, 현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역사적으로 너무 많은 정말이지 입이 딱 벌어지도록 많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사람을 끊임없이 죽여 왔고, 지금도 죽이고 있다는 이야기. 그것과 싸우는 것이 나의 일, 나의 일상이고... 나를 많은 사람들과 연결하여 외롭지 않게, 강하게 만드는 힘이다. 지구의 곳곳에서 같은 싸움을 치르는 이들이, 그 대신 사랑과 존중으로 서로 마주 대하고 서로의 이야기를 듣자고 말한다. 그보다 나은 대안을 나는 알지 못한다.

 

밀사 님에 관해 말하자면, 밀사 님은 곁에 있으면 안전해진 기분이 되는,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무섭지 않은, 내게는 세상에 정말 몇 안 되는 사람이다. 말과 글을 팔아먹을 곳을 고르는 데는 많은 요인이 작용하기 마련이지만 나의 경우에는 세계가 너무 미워서 노동자의, 여성의, 유색인의, 장애인의, 소수자의, 식민지의 편을 들게 되었다. 늘 떠나고 싶다.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적어도 이곳처럼 포악하고, 잔인하고, 위험하고, 고통스럽지 않은 어딘가로.

 

날 데려가 줄 사람을 오래 찾아 헤맸고 병원을 오래 출입하면서 정신 의학에서는 그걸 경계선 성격장애라고 부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어떤 의미에서 그건 경계 너머에 대한 갈망인데 말이야. 어쩔 수 없지. 그 학문은 우릴 위한 게 아니니까. 나를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존재하는 정신의학은 그래서 대충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 않을 수준과 방식으로 그 기갈을 얼버무리는 법을 가르쳐주었고 나는 이제 꽤 능숙한 연극배우다. 하지만 내가 정말로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알게 되면 이 세계는 나를 잡아 죽일 거야. 그렇게 되기 전에 선수를 쳐서 도망쳐야 한다는 공포가, 조금이라도 심지가 약해질라치면 뱃속에서부터 용솟음친다.

 

사회주의는, 사회주의만이, 그곳으로 나를 데려가 주기로 약속했다. 그것이 내게 가르치는바… … 자본주의적으로 조직된 임노동은, 자유 계약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사실 생존을 인질 잡힌 강제 노동이다. 자기 노동의 생산물과 그것을 교환해 얻은 화폐를 노동자는 절대로 다 돌려받을 수 없고, 운이 꽤나 좋은 경우에 하루하루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대고 가족을 건사할 수 있는 정도의 재생산 비용만을 간신히 손에 쥔다. 그 착복, 그 착취가 이윤의 원천이고, 자본주의 사회를 지배하는 자유 기업의 목적이자 동력원이다. 강제와 착취 없이 자본주의는 단 하루도 유지될 수 없고 단 한 순간도 작동할 수 없다.

 

거기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단 하나, 그러한 생산 관계 하에 놓인 이라면 그 누구 하나 배제하지 않는 노동자 계급 전체의 단결뿐이다. 우리가 노동이 존엄함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자본주의 하의 현재의 임노동이 마치 자신의 자유에 따라 온전하게 대가를 수취하고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활동인 양 윤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 노동이 지금과는 다른, 아주 다른 것일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역설하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스스로의 통제 하에 스스로를 위해서 쓰는 세계가 가능하다고, 그것이 우리의 본성에 합당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장 힘들게 일하는 이가 가장 멸시당하고 천대받는 세계는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 싸움에 말글을 대고, 그 신진대사를 매개하는 것이… … 나의 전부다. 모든 것을 그런 식으로밖에는 볼 수 없다. 나는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밖에 없고 그건 여기에서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 무엇을 하고 말하거나 간에 결국에 모든 것은 그 수단이 되어버리고 만다.

 

내가 지금 이 일을 한다는 건, 그러니까 분명히 내 이기심이다. 메루님은 열사 같은 건 세상에서 가장 되고 싶어 하지 않아 하는 종류의 사람. 대학 시절 내내 죽은 사람들의 이름을 품에 넣고 싸운 기억뿐이라서 자꾸만 그 자리에 나를 놓게 되는, 그것 말고는 누군가의 죽음을 이해하고 소화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그러니까 살아서나 죽어서나 근처에도 가지 않는 편이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기적이라서. 어떻게든 이르고 싶은 세계와 결단코 보고 싶지 않은 세계에 대한 생각이 그런 예의와 염치를 늘 압도하고 만다.

 

나의 희망은 그저, 나의 그런 이기심이 당신의 이기심과 어떻게 공존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인간으로서 제대로 되질 못 해서 내 소원밖에는 생각할 수 없어. 그렇지만 최소한 남을 속이거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지 않고서도 당신과 내가 교섭할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공히 원하는 것을 찾거나, 생각을 바꾸거나, 양보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하나가 될 수는 없어도, 서로 도우며 함께일 수 있는 방법이, 계속 찾아간다면 분명.


한국에 돌아와서 한동안은 혼자 남기만 하면 질질 울었다. 제대로 애도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에 가서는 파국을 맞게 된다고 어떤 동지가 내게 말했다. 둔감해지지 않으면서 계속하는 것은 분명 힘든 일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있고 싶은 장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걸 이젠 알아. 그러니까 나조차 믿지 않으면 그건 정말로 없는 것이 되어버린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대로 세상을 만들어가니까, 아무리 불완전할지라도 조금씩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면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 하면 안 되는, 사람이 당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니 이제 다들 제발 그만하자.

분명 우리 모두에게 더 나은 방법이,

함께 살아갈 방법이 있을 것이다.



(기사 등록 2020.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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