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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혁신

무엇을 할 것인가 - 신화를 뒤엎기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11. 15.

라스 리(Lars T Lih)

번역: 두견

 

 

역사학자 라스 리(Lars T Lih)가 레닌의 가장 유명하지만 가장 오해 받고 있는 팸플릿 중 하나인 <무엇을 할 것인가?>를 비판적으로 해부하며 기존의 신화에 도전한다. 이 글의 필자인 라스 리는 러시아어 원자료와 구체적인 상황과 맥락에 입각한 러시아 혁명과 레닌주의에 대한 혁신적 재해석으로 주목받아 왔고, 수많은 책과 논문을 쓴 역사학자이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러시아에서 빵과 권위: 1914~1921>(1990), <레닌 재발견: 맥락에서 본 무엇을 할 것인가’>(2006) 등이 있다.

 


출처: https://weeklyworker.co.uk/worker/838/scotching-the-myths/

 

 

<무엇을 할 것인가?>1901년 가을부터 1902년 봄 사이에 처음으로 러시아어로 쓰여졌다. 그것은 레닌이 청중으로 삼은 다소 제한된 수의 사람들, 즉 러시아의 사회민주주의 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과 당에 관심이 있는 이들 사이에서 성공적이었다. 물론 이 청중이 진정한 베스트셀러로 만들기에는 부족했지만, 영향을 미쳤다. 오늘날 그 팸플릿을 볼 때 우리는 그가 언제, , 누구를 위해 그것을 썼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선 레닌과 그의 동지들이 스스로 정했던 기본적인 과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 이유는 그가 운동의 다른 지도자들과 이 과제를 공유했고, 심지어 그가 맞서고 있다던 일부 사람들과도 공유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그것을 공유하기 때문에, 그것은 사실 책 자체에는 나와 있지 않다. 그것은 배경이 됐다. 그는 기본적 임무에 모두 동의한다고 간주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 특정한 시기와 장소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직면하고 있는 상황을 겨냥한 책 속의 구체적인 정책 제안을 살펴볼 것이다. 우리가 본문으로부터 어떤 의미를 끌어내고자 하든지, 우리는 그 당시 팸플릿의 구체적 제안을 통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면 나는 책의 첫 부분, 아마도 가장 잘 알려진 부분, 그리고 아마도 가장 논란이 많은 부분에 있는 논법들을 살펴볼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한 걸음 물러서서 레닌이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하고 그것을 그럴듯하게 보이게 하기 위해 끌어낸 경험적 증거들 중 일부를 살펴보겠다. 불행히도, 비록 책의 논쟁적 부분이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내 생각에는 그것이 가장 유용하지는 않다. 정책 제안도 그 시기에 묶여 있다. 기본적 과제는 레닌 시대에 좀 더 오래 지속되었지만, 가장 단기적 요소라고 가정할 수도 있는 경험적 정당화가 레닌과 그의 생각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것이 왜 그런지 보자.

 

기본적 과제는 무엇이었는가? 그가 비사회민주적 청중에게 러시아 사회민주주의의 전망을 설명하기 위해 쓴 1903년 팜플렛인 <시골 빈민들에게>에서 레닌은 '사회민주주의는 무엇을 원하는가?'라는 제목의 장을 쓴다. 이 장의 첫 번째 줄은 '정치적 자유'라는 해답을 분명히 제시한다.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었고, 러시아 사회민주주의가 지향하는 바였다. 이것이 궁극적 과제는 아니었지만, 바로 눈앞의 과제였다. 볼셰비키들에게 있어서 그 당시와 상황에서 이것은 조직적 개념으로서, 1903년과 1904년 시위 때 현수막을 보았을 때 그들은 대담하게 '정치적 자유 만세!'를 선언하곤 했다. 구체적으로 이것은 독재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을 의미했다.

 

정치적 자유는 본질적으로 사람들이 조직할 수 있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공개 캠페인을 벌이는 정당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언론의 자유, 집회의 자유, 조직의 자유, 파업의 자유 등을 의미한다. 20세기 초, 일부 혁명가들은 정치적 자유를 매우 무시하여, 그것을 일종의 부르주아적 사기에 비유했다. 이 모든 것이 어차피 대다수의 사람들이 읽을 수도 없는 신문을 내는 일부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의 권좌에 오른 것인데 왜 차르를 타도하려 하느냐고 일부 사람들은 말했다.

 

마르크스주의는 정말로 이런 분위기의 예외였고, 정확하게 이 바탕 위에서 다른 사회주의나 혁명적 관점에 도전했다. 그것은 사회주의가 정치적 자유를 그것의 필수적 전제조건으로 요구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노동계급이 권력을 잡고 사회주의를 도입해야 하는 역사적 사명이 있다면 이를 이해하고 떠맡을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러한 이해는 단지 지역 마을과 동네에서 대중 선동만 하는 것을 배제하고 최소한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전국적 신문과 다른 의사소통 수단들을 필요로 한다. 결과적으로, 이것들은 정치적 자유를 요구한다.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카우츠키는 모두 이러한 자유를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빛과 공기'라고 부른다.

 

이런 의미에서 독일 사회 민주주의에서 SPD(사회민주당)의 사례는 매우 유익하다. 이것은 매우 혁신적인 정당이었다 - 매일 매일의 대중 선동과 사람들과의 캠페인,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에 의존한 최초의 정당이었다. 내 책에서 나는 '캠페인주의'(campaignism)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이 접근법을 요약한다.

 

노동자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을 확신시키고, 모든 수준에서 그리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들을 설득하기 위한 영구적인 캠페인의 아이디어들. 예를 들어 SPD 사회주의 합창단, 자전거와 걷기 동호회는 매우 인기가 있었다. 그래서 러시아 사회민주당이 그러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위해 싸우는 것이 이 당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주장하던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이것을 조잡한 개혁과 동일시했지만 말이다.

 

1860년대와 1870년대 러시아 혁명 1세대는 정치적 자유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즉각적으로 사회주의를 가져오기 위해 차르를 타도하는 것이었다. 그 밖의 것은 배신이었고 단순히 자본가들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들이 정치적 자유 없이는 대중을 자신들 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할 것이고 이 마을이나 저 마을에서 폭동을 일으키는 것으로는 도저히 충분하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기 전에 그 문제들을 헤쳐나가고 다른 생각들을 시도해보는 데는 한 세대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이런 의미에서 순교자 중 한 명은 1887년 차르를 암살하려다 죽은 레닌의 형 알렉산더(Alexander)였다.

 

그는 무엇을 이루려고 했는가? 그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회주의자였다. 그는 그들이 차르 타도를 통해서만 대중운동을 이룰 수 있을 뿐이며, 당연히 이 시점 이전에는 대중운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그 여건을 조성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테러나 그런 종류의 다른 개별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의견이었다.

 

레닌은 나중에 러시아가 "그 길을 통해 마르크스주의에 빠져들었다"고 썼다. - 나는 그가 그의 형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말은 전체 세대가 정치적 자유의 필요성을 이해했다는 것이다. 1890년대 에르푸르트 강령에 대한 카우츠키의 해설을 읽을 때 레닌이 왜 그렇게 사로잡혔을까? 왜냐하면 그는 러시아의 젊은 혁명가로서 SPD를 그의 특별한 문제에 대한 가능한 해답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카우츠키는 '빛과 공기'라는 은유를 사용하여 정치적 자유의 중요성을 경시하는 사람은 누구든 프롤레타리아트에 게 있어서 중대한 해악으로 취급하면서, 정치적 자유가 최우선 의제로 다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서구[사민주의자들]의 공통된 입장을 대표하면서, 카우츠키는 정치적 자유를 얻기 위해 부르주아지에게 기대할 수 없다고 덧붙인다 - 그들이 처음에 그것에 관심이 있었든 아니든 간에, 그들은 빠르게 그 관심을 잃고 있다 - 그리고 정치적 자유가 없는 나라들에서 부르주아지는 그것을 위해 싸우지 않을 것이다.

 

SPD 전략은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이었는데, 그렇다면 절대주의 아래에서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1890년대 혁명가 전체 세대는 이 전략을 어떻게 러시아 절대주의의 조건에 적용할 것인가를 정확하게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그런 조건들을 고려할 때 이것은 분명히 역설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장 노동자들과 연결시켜 줄 끈을 가진 지방 위원회와 같이, 그들이 누구와 함께 일하게 될 것인지 등의 방법들을 가까스로 알아냈다.

 

전국적 정당

 

이제 1900년으로 빨리 넘어가자. 러시아의 많은 도시에는 지역 사회민주당 위원회가 있고, 전국적 정당이 좋은 생각이라는 개념이 있었다. 러시아 노동자들의 전투성도 증가하고 있었다. <이스크라> 신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문이 전투적인 노동계급 운동이라는 발화성 물질의 '불꽃'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스크라>의 임무는 그 당을 국가적 기관과 전국적 조직을 얻는 다음 단계로 이끄는 것이었다.

 

<이스크라>1900년 후반에 시작되어 약 1년 동안 존재해 왔었는데, 그 시기에 레닌은 '나는 A에서 B로 어떻게 갈 것인가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제시하는 작은 책을 쓰겠다'고 했다. , 지역 위원회에서부터 전국적 조직까지 차르의 타도를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다룰 것이다. 레닌은 또 경제주의를 둘러싼 논의는 끝났고 이제 논쟁의 여지가 없는 책을 쓸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볼 때 당신은 분명히 많은 논쟁적인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1901년 여름과 가을에 일어난 분파적 발전과 관련이 있다. 이 책이 실제 시간과 실제 장소에서 쓰여졌다는 것과 레닌이 반응하고 있는 사건과 사상을 구체적으로 볼수록 좋다는 것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 책의 연대를 살펴보는 것이 더욱 더 중요하다.

 

그래서 그 책은 결국 매우 논쟁적이 되었고, 정책 제안들은 뒤로 가고 논쟁들은 책의 앞부분으로 밀려나오게 되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논쟁적 측면만을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하려는 것은 5장부터 시작하여 나중에 논쟁적인 부분으로 돌아가면서 책을 거꾸로 살펴보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이것이 텍스트를 애초의 실제로 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5장은 지역 위원회에서 전국적 조직으로 이동하기 위해 신문을 사용하려는 레닌의 생각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매우 억압적인 전제정치 아래에서 어떻게 이것이 가능할까? 딜레마는 위원회를 하나로 모으기 위해서는 관점의 통일이 필요하데, 역으로 단결하기 위해서는 전국적 조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레닌이 여기서 빠져나온 길은 우리가 어떤 식으로든 공식적이 아닌 자칭 단체라고 말하는 것으로, 우리가 모든 사람들에게 신문을 보낼 것이고, 그것은 위원회를 통일시킬 수 있는 어떤 강령적 메시지를 전파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나둘씩 그들을 설득하여 우리의 강령을 채택하도록 할 것이다. 사실상 우리는 그들을 단결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문을 통해 우리의 협력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신문을 위한 자료를 보내줄 것이고, 배포와 건설을 도울 것이고, 그래서 처음으로 우리 사회민주당은 전국적 목소리와 전국적 존재감을 가진 전국적 프로젝트를 위해 협력할 것이다. 1년쯤 지나면 당 대회를 소집하는 입장이 될 것이고, 당 대회는 이미 이데올로기적으로 통일되어서, <이스크라>가 정식 당 간행물이 되면서 문제가 해결될 것이다.

 

물론, 신문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또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수백 개의 출판물을 가지고 있던 SPD에서 나온다. 책 전반에 걸쳐 레닌은 모델로서의 SPD의 경험을 바라보고 있다. 레닌은 독일과 대조적으로 러시아 사회민주주의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면에서 전단지나 출판물 이상의 거의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다음 단계인 신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신문을 이용하여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 메시지에 기반한 통합을 달성하는 것이다.

 

레닌은 정당 조직이 구성된 후에 그것에 대해서 제안과 권고를 하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지 않다. 그는 이에 대한 의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중앙위원회가 어떤 권한을 가져야 하는지, 규율이나 지역적 자율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중앙위원회가 아직 존재하지 않을 때 그것을 어떻게 한데 모을 것인가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일 뿐이다.

 

신문은 또한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인식하게 하기 위해 있다. 이것은 다시 발화성 물질에 대한 생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것은 차르를 싫어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추정에 근거한 것이다.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들, 교사들, 젬스트보(지방 자치 기관), 관료들, 자본가들, 심지어 토지 소유주들까지 그들만의 특별한 이유 때문에.

 

그들 모두는 단지 이 무능한 차리스트 폭력배 무리들이 역겹고 지치지만, 아무도 감히 어떤 것도 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이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대규모의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들이 불평하는 것은 좋지만, 그들이 동참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다면,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에 가까운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 신문은 전국적인 존재감을 갖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들에게 핀란드 사람들과 다른 민족들의 모든 불평, 탄원서에 서명하고 그것에 의해 체포되는 교사들 등등을 알게 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른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알게 될 것이고, 신문은 그동안 노동자들이 점점 더 차르 타도라는 과제를 의제에 올려놓고 그것을 실제 가능성으로 만들 수 있는 대중적 세력이 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

 

프로페셔널리즘(직업적 전문성 Professionalism)

 

4장은 '프로페셔널리즘'에 전념하고 있다. 여기서 내가 '작업으로서의 혁명가'(revolutionary by trade)라고 번역하는 것을 옹호하는 '전문적 혁명가'(professional revolutionary)라는 용어가 생겨난다. 나는 이런 용어에 얽매이지 않고, '전문적 혁명가'가 더 일반적이기 때문 그것을 유지할 것이다.

 

나는 내 책에서 '프로페셔널리즘'에 엘리트주의의 냄새가 나는 일부 함축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의사, 변호사, 건축가 같은 전문가들은 그들이 가장 잘 알기 때문에 우리가 따르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의 작업을 매우 잘 알고 있는 것과 더 비슷한 것이었고, 그래서 나는 그 용어를 다르게 번역했다. 어쨌든 레닌이 끄집어내려고 했던 직업적 전문성의 함축이 있는데, 우리가 '이 일에 대해 프로페셔널하게 하자, 동지들'이라고 말할 때처럼 말이다.

 

레닌은 덜 민주적이고 더 엘리트적인 것을 주장하기 위해 '프로페셔널리즘'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 운동에서 엉성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본 것과 싸우기 위해 사용하고 있다. 당시 그와 가장 관련이 있었던 이것의 특별한 형태는 지역적 고립이었다. 이것이 그를 화가 나게 한 것이다. 키예프의 사람들은 모스크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고 신경쓰지 않고, 크라코프의 사람들은 페테르부르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등등.

 

그래서 레닌은 이러한 비효율성에 대처하려고 하고 있으며, 이것이 그가 '수공업자''장인'을 의미하는 '쿠스타르'(kustar)라는 단어를 사용한 이유다. 레닌이 원하는 것은 전국적 시장과 노동력의 분업을 가진 현대적인 정치 공장인 반면, 쿠스타르는 개인적으로는 꽤 숙련되어 있지만 지역 시장을 위해 다소 비효율적인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고 있는 누군가를 암시한다. 레닌은 전국적 조직을 얻기 위해서는 내가 다소 어설프게 번역하는 '장인적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하조직에 대한 이런 생각을 어디서 얻었을까? 내가 하려는 주장은 당시의 다른 러시아 혁명 작가들로부터 따왔다는 것이다. 그도 암시하지만, 나는 그것이 그 자신의 발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레닌이 하고 있는 일은 지난 10여 년 동안 실천 속에서 풀려온 조직적 도식의 논리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는 SPD 논리를 러시아 조건에 적용하려고 시도하고 있으며, 이를 경험적으로 풀어서 책으로 읽을 수 있도록 제시함으로써 운동을 고무시키고, 이러한 과제를 그들이 전문적인 노동 분업으로서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었다.

 

나중에 멘셰비키를 포함한 레닌의 일부 비평가들은 그들이 지나친 전문화로 본 것에 화를 냈다. 신문 인쇄를 하는 사람, 배포를 하는 사람 등 그들은 이것을 영혼 없는 관료주의에 비유했다. 그러나 이 비판은 적어도 레닌이 실제로 말한 것에 대한 비판이었는데, 그가 마주친 모든 비판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내 책에서 내가 한 일 중 마음에 드는 것 중 하나는 지하에 있던 혁명가들이 사용했던 콘스피라치아(konspiratsiia)라는 단어의 의미를 끄집어내는 것이다. 그 단어는 결코 '음모'(conspiracy)로 번역되지 않는다 - 만약 당신이 초기의 버전을 읽으면 당신은 그 용어가 보통 '비밀'(secrecy)로 번역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지하 활동의 맥락에서 콘스피라치아가 의미하는 것은 경찰에 체포되지 않는 일련의 규칙들, 즉 내가 '체포되지 않는 좋은 기술'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에 가지고 있는 것은 '콘스피라티시아 지하'이다. 그것은 그 단어와 관련된 일반적인 논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정확히 그 반대인 '음모'.

 

파업을 조직하고, 문건을 배포하는 것 등을 통해 대규모의 뿌리를 가진 지하 조직을 갖는 것. 콘스피라치아는 따라서 음모와는 정반대다. 음모는 정보와 지식을 소그룹 내에 보관하여, 그것으로서 누군가를 때려눕히거나 궁정 쿠데타를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콘스피라치아는 그 반대다.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지식과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에 약간의 구절이 있는데, 거기서 레닌의 비평가 중 하나가 비밀 파업 같은 것은 없다고 말한다. 레닌은 파업이 일어나는 마을에서는 누구에게도 비밀은 아닐지라도, 전국에 걸친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모를 수도 있다고 주장하면서 동의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의 임무는 그 말을 꺼내서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보고를 얻기 위해 지하의 조건에서 전문적으로 조직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며, 보고를 작성해서 신문이 인쇄되는 제네바로 보낸 다음 러시아로 다시 밀반입하여 배포해야 한다. 이것은 체포되지 않은 것에 대한 경험으로 연습된 규칙인 콘스피라치아의 논리를 요구한다.

 

여기서 내가 강조할 것은, 지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기본적인 생각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것들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부분이 아니다. '전문적 혁명가'라는 용어는 멘셰비키, 사회혁명가당, 심지어 자유주의적 입헌민주당을 포함한 러시아 지하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지하조직을 가지고 있을 때 채택했다.

 

나는 종종 '전문적 혁명가'라는 용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지 않은 것은 레닌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을 할 것인가?>의 한 장에서만 사용되며, 레닌은 확실히 그것을 발명했다고 주장하거나 새로운 생각으로 내놓지는 않는다 - 그것은 공기에 퍼져 있었다. 그는 단지 지하가 이러한 전문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것에 대해서 한 가지만 더 보자. 지식인과 전문적 혁명가 사이에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으며, 만일 이것이 있다면 이것은 진정으로 시공간적으로 한정된 하나의 연결일 뿐이다. 레닌이 글을 쓰고 있을 때에도 이미 이 기구에 대한 철저한 '노동자화'(workerisation)가 진행되고 있었고 그것은 지하 활동의 나머지 기간 동안 계속되었다.

 

조직을 파악하는 것은 전략과 연계된다. 여기서 레닌이 하고자 하는 것은 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중조직과 지하조직이다. 이에 대한 논평에서 레닌은 종종 대중조직보다 지하조직을 택했다는 비난을 받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은 레닌이 짜르를 타도하기 위해 지하 조건에서 가능한 한 대중조직의 논리를 관철하려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레닌의 기본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가능한 많이 독일 SPD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차르를 타도할 수 있도록 하자. 그리고 그렇게 되면 SPD보다 더 나은 조직을 위한 조건을 갖게 되는 것이다.

 

선동

 

이제 우리는 선동에 대해 3장으로 간다. 그 강조점은 정치적 선동에 있다. 다시 말하지만, 이것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위한 것인데, 레닌은 이제 정치적 선동을 크게 강조할 때가 왔다고 주장한다. 한 가지 이유는 <이스크라>가 이제 전국적인 조직이기 때문에 이전에는 할 수 없었던 방식으로 전국적인 정치 문제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논의를 맛보기 위해서 우리는 그가 경제적 선동에서 정치적 선동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을 보아야 한다. 경제적 선동을 수행한 라보차야 미즐’(Rabochaya Mysl: 노동자의 사상) 같은 조직과 매우 중요한 선동의 형태인 (때로는 꽤 긴) 전단지를 생산하는 조직이 다수 있었다.

 

그래서 종종 지식가(intelligyent: 지식인은 아니지만, 교육을 받고 글을 쓸 줄 아는 사람)으로 알려진 위원회의 일부 지역 선동가들은 노동자들에게 가서 공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물어보고 보고하면서, 그들의 파업 요구를 나열한 다음, 이 문제들에 대한 선동 전단을 작성하곤 했다. 끝에 여유가 있다면 그들은 또한 '더불어, 우리는 차르를 타도해야 한다!'고 쓸 것이다.

 

레닌은 이전에 지하에서 경제적 선동을 수행할 때, 노동자들이 그들의 이야기가 해주며 밖으로 나갔고 지역 위원회는 압도당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닌은 또한 사람들이 이것으로부터 노동자들이 단지 경제에만 관심이 있다고 단정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인다. 그들은 정치적 이슈에 관심이 있고, 그들의 일상 생활에서 그들은 종종 경제적 억압보다 정치적 억압에 더 많이 부딪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왜 러시아 노동자들은 인민에 대한 경찰의 짐승같은 대우, 소수종파에 대한 박해, 농민에 대한 체벌, 검열관의 만행, 군인들의 괴롭힘, 가장 무해한 문화적 행사에 대한 박해 등과 관련하여 그들의 혁명적 적극성을 그렇게 제한적 방식으로 보여주는가?”

 

레닌은 묻는다: 이것은 노동자들이 경제적 문제만을 생각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그가 대답하는 것은, 지하운동이 이러한 잔학행위에 대한 뉴스를 많은 대중에게 알리는 데서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비열한 일들에 대한 고발을 넓고 명확하고 시의적절하게 조직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민중의 움직임에 뒤처진 우리 자신을 비난해야 한다." 그가 문자 그대로 말하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대중에게 던져야 한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렇게 하면 그들이 반응할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다면, 레닌은 이렇게 주장한다. “가장 단순한 노동자도 이해하게 될 것이며 학생, 농민, 작가를 모욕하고 억압하는 어두운 힘이 그의 삶의 모든 단계에서 그를 억압하고 짓누르는 것과 같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그가 이것을 느낄 때, 그는 스스로 응답하고 싶은 압도적 열망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책의 처음 두 장에서의 논쟁들에 너무 집중하면 놓칠 수 있는 일종의 웅변적인 구절이다. 이것이 레닌의 본질이다. 이와 같은 구절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잘 알려질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이 레닌의 한쪽 면이다. 의지와 갈망을 가지고 있고 준비가 돼 있는 노동자를 위한 그리고 노동자에 의한 정치적 선동을 하려는. 우리는 '차르 타도'라는 측면에서 '끝장 게임'에 돌입하고 있고, 결국 이것은 일어날 것이다.

 

정치적 선동과 함께 "모든 계급들에게"(to all classes) 가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레닌은 또한 우리가 가능한 한 "모든 계급들에게" 메시지를 보내야만 한다고 말한다. 나는 여기서 레닌이 정확히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있었는지에 대해 약간 모호하다. 왜냐하면 그가 이 책을 썼을 때 러시아 사회민주당은 특정한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무렵에 조직화된 유일한 지하당이었기 때문이다. 포퓰리즘적인 사회주의혁명가당은 그들 자신을 결속시키지 못했고 자유주의 정당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들은 형성되면서 사회의 구체적 이익을 대변하려고 하고 있었다.

 

그 호소는 양면성이 있다. 첫째, 노동자들은 사회적 상황 전반을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하며 단순히 노동계급 문제에 스스로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다른 계급의 많은 사람들도 차르를 타도하는 데 정치적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은 혁명적 변화와 차르 타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인식해야 하며, 그들이 이것을 깨달았을 때 차르에 대항하는 주력이기 때문에 우리 당과 우리를 도울 것이다. 이것은 레닌의 주장에서 매우 빨리 시대에 뒤떨어지게 된 부분이다.

 

그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많은 것은 내부고발, 추문 자료의 출판에서부터 명예로운 의사나 변호사가 전문적 혁명가에게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방을 내놓는 것까지 사회민주당이 그러한 사람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른바 헤게모니 전략에 대한 예견이다. 그럼에도 <무엇을 할 것인가?>는 전체로서 레닌 전략의 중심에는 도달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1905년 동안 그리고 그 이후에나 극히 중대해진 농민 문제와 농민들을 이끄는 것을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논쟁들

 

논쟁들은 첫 두 장에 있다. 그들은 왜 거기에 있는가? , 이전에 이스크라 그룹에 적대적이었던 또 다른 망명자 그룹인 라보치에 델로’(Rabochee Delo: 노동자의 대의)가 여기에 함께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19019월에 통합 대회를 열었지만, 이것은 산산조각이 나고 양측이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떠나갔다. 그러자 라보치에 델로쪽은 <이스크라> 그룹에 대항하는 큰 논쟁들을 시작했고, 게오르기 플레하노프와 율리우스 마르토프(Georgi Plekhanov and Julius Martov)가 거기에 대응했다.

 

레닌도 끼어들었지만, 이 논쟁적 의견교환의 가장 중요한 고비는 레닌의 책으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전에 쓴 편지들에서 그는 라보치에 델로에 맞서 책을 마무리하는 것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아마도 불행하게도, 이것은 이 책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되었지만, 처음에 그것은 내가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논쟁적이지 않도록 의도되었다.

 

그는 그것을 최고의 속도로 썼는데, 거의 전적으로 1901년 가을에 발표된 기사들을 참조한다. , 신문에서 뜨겁게 보도된 부분들이다. 이것은 레닌이 논쟁에서 활용하는 유명한 카우츠키의 인용문에도 해당되는데, 그는 자신의 주장을 다시 한 번 퍼올리기 전에 카우츠키의 저널인 <신시대 Die Neue Zeit>에서 이 말을 인용한 후 계속 진행한다.

 

나의 결론은 <무엇을 할 것인가?>는 레닌의 이론적 또는 강령적 관점을 얻기에 좋은 장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그것은 이런 식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극좌파와 학계의 인물들에 의해서 그러한 왜곡을 낳았다. 그것이 레닌의 전체적인 견해에 있어서 좋은 근거가 아닌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이 지나간 논쟁이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인 그림의 관점에서 볼 때 논쟁에서 꽤 많은 것을 추출할 수는 있지만, 이것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한 하나의 논쟁이었다. 그는 종종 그들 자신의 용어를 다소 빈정거리는 태도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자기 자신의 생각과 용어로 주장을 세우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그와 그의 지지자들은 그가 자신의 생각을 매우 잘 공식화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대체로 인정했다.

 

이것이 내가, 이 논쟁에서 그가 '너무 멀리 나갔다'고 생각했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뭔가 다르게 말했다. , 그가 자신을 잘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은 완벽하게 논란의 여지가 없고 정통적인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만약 그가 자신을 명확하게 표현하지 못한 것이라면, 아마도 그는 사과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는 이것을 너무 강조하지는 않지만, 당신은 그와 다른 사람들이 같은 요점을 만드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레닌의 옹호자들은 누구나 이 책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지만, 멘셰비키들이 레닌에게서 등을 돌렸을 때 그들은 결함이 있는 공식을 찾아낼 수 있다는 희망으로 현미경을 들고 그것을 검토했다. 그 의미는 그들이 실제로 취약한 공식을 발견했고, 그들이 레닌을 어리석게 보이게 하기 위해 용어의 문제를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는 또한 한 번에 적절한 하나의 문제를 논하는 것에 맞서서, 자신의 전체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뭔가 전반적인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체계적이지 않다. 더구나 이 책의 많은 견해는 그와 그의 독자들 사이에 공통적이어서 별도로 다루지 않았고, 마침내 그 책은 당시 그에게 필수적인 견해였던 농민 정책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 모든 이유들로, 나는 그의 일반적인 관점을 더 잘 보기 위해 그의 단편인 1903년 책 <농촌 빈민에게>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나는 다소 논쟁적인 측면을 무시하면서 강조하고 싶다. 그는 노동자들은 제대로 된 계급의식을 얻을 수 없다고, 지식인들만이 훌륭한 혁명가를 된다고, 전문적 혁명가들만이 당원이 되어야 한다고, 당이 촘촘히 짜여진 음모론적 엘리트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 어쨌든 이 책에서 - 그는 높은 수준의 중앙집권화와 규율을 옹호하지도 않았다.

 

그가 한 말은 그 당이 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 그것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조직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잘하면 노동자들이 반응하고 관심을 가질 것이고, 민중들도 더 일반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것을 가져와라, 그러면 그들이 다가 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이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어떤 종류의 정당화를 하고 있는가? 결국 그것은 이상하게 야심만만한 프로젝트인데, 한편으로는 강력한 차르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차르를 전복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망명 혁명가들이 카페에 둘러앉아 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다음과 같은 일련의 낙관적 가정을 해야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준비가 되어 있고, 그들 주변에는 체포되어 서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의향이 있는 헌신적인 혁명가들이 있고, 그리고 신문이 도착할 것이고 노동자들은 그것을 이해할 것이고(<이스크라>는 빽빽한 메시지를 담은 매우 작은 인쇄물이었고 - 지나친 단순화는 없었다) 등등.

 

여기에는 레닌의 전망을 그럴듯하게 만들기 위한 일련의 낙관적인 가정이 필요하다. 그는 만약 모든 것이 조직적으로 제자리에 놓여진다면, 이러한 가정들이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매우 자신했다. 레닌의 저술에 곳곳에는 이러한 주제들의 메아리들이 많이 있다.

 

그는 일관되게 '기적'과 같은 단어를 사용한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현실적이라고 자랑하지만, 러시아의 모든 현실적 노동자들이 알고 있는 것, 서클뿐만 아니라 개인조차 혁명적인 대의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에너지, 즉 기적을 보지 못한다." 실제로 '기적'이라는 단어는 레닌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레닌의 글 전체에서 우리가 거듭해서 발견하는 것은 혁명 의식과 우리가 성취될 수 있는 것에 대한 낙관적인 가정이다.

 

(기사 등록 20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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