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우리는 행성을 위한 저항운동이 필요하다

 

 

기후 운동은 중심이지만 우리는 인권에 대한 폭넓은 방어와 전쟁과 제국주의에 대한 반대를 결합하며 모든 전선에서 싸워야 하고, 인간의 거주지로서 지구를 구하기 위한 투쟁도 병행해야 한다고 존 벨라미 포스터(John Bellamy Foster)는 주장한다. 이 인터뷰는 2017년에 진행된 것이다. 포스터는 오리건 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서 미국의 사회주의 잡지 <먼슬리 리뷰: Monthly Review>의 편집자이다. 그는 여러 권의 정치경제학, 제국주의 이론과 관련한 책의 저자이며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 생태학에 관한 이론적 기여와 저술로 유명하다. 한국에도 <마르크스의 생태학>, <환경주의자가 알아야 할 자본주의의 모든 것>, <생태계의 파괴자 자본주의>, <환경과 경제의 작은 역사>, <생태혁명> 등이 번역돼 있다.(번역: 두견)

 

출처:

https://climateandcapitalism.com/2017/04/11/foster-a-resistance-movement-for-the-planet/

 

 

 

 

* 인류가 만들어낸 기후 변화가 어떻게 통제할 수가 없고, 에너지 생산에 대한 대대적인 정비없이는 지구 환경의 재앙으로 이어질 것임을 보여주는 압도적인 증거가 있다. 당신은 우리가 정밀하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평가치를 제시받았지만 과학·사회과학 기관들이 효과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데 계속 실패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왜 그런 것 같은가?

 

우리는 지구 시스템, 특히 기후의 붕괴가 인간의 거주지로서 행성을 위협하고 있는 인류세 시대의 긴급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경제적 체제인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에 주로 맞추어져 있는데, 이것은 우리가 이 거대한 도전에 대처하지 못하게 하고 파괴를 가속화한다. 자연과학자들은 탄소 배출과 다른 행성의 경계들을 존중하지 않고 평상시처럼 사업을 계속하는 것의 엄청난 위험에 대해 경종을 울리는 훌륭하고 용기 있는 일을 해냈다.

 

그러나 오늘날 존재하는 주류 사회과학은 거의 완전히 자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재화했다. 그래서 전통적인 사회과학자들은 그 문제를 규모에 맞게 필요한 역사적 개념을 통해서 완전히 다룰 수가 없다. 그들은 사회가 오래 전에 자연을 정복했고 사회과학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만 관심이 있다는 견해에 익숙하다. 이것은 지구 체제 규모의 문제와 관련한 부정주의’(denialism)를 낳는다.

 

환경 문제를 더 자주 다루는 주류 사회과학자들은 우리가 마치 비아날로그적 상황도 아니고, 행성의 비상사태도 아니고, 상당히 정상적인 조건들을 다루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끔찍한 생태학적 문제에 대해 점진주의적, 에코모더니스트적[기술로 생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 대답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구에 대한 인간의 영향을 볼 때, 그것은 대규모 가속과 지구 시스템의 균열이지 점진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지만, 그것이 제시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든 종류의 중대한 위태로운 한계점을 넘어서고 있고, 놀랄 만큼 많은 티핑포인트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이 환경 위기의 행진을 중단하거나 역전시킬 수 있다면, 왜 우리는 올바른 속도로 그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는 것일까?

 

짧은 답은 "이윤"때문이다. 긴 대답은 다음과 같다. (1) 화석연료 금융 복합체에 묶여 있는 기득권과 (2) 화석연료 경제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경제의 높은 수익률이라는 두 가지 큰 장벽이 있다. 에너지 투자에 대한 에너지 복귀의 문제만은 아니다. 화석연료 기반시설은 이미 존재하고 있어 화석연료가 대체에너지에 비해 수익성과 자본 축적 측면에서 결정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어떤 대체 에너지 시스템도 완전히 새로운 에너지 기반 구조로서 실제로 경쟁하기 전에 처음부터 실질적으로 구축되어야 한다. 화석 연료에 대한 보조금도 훨씬 더 많다. 그리고 화석 연료는 자본가 회계장부에서 자본에 대한 자연의 일종의 "공짜 선물"을 의미하는데, 태양열 발전보다도 더욱 그러하다.

 

가장 거대한 은행과 월가를 포괄하는 재무구조는 화석연료 경제와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화석연료 매장량은 기업의 재무장부에 나타난다는 의미에서 이미 오늘날 경제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수조 달러의 자산을 대표한다. 기후예산을 5번에서 6번이나 망치는 이런 매장량을 모두 태우면 우리는 기후지옥으로 갈 수 있다. 그러나 화석연료 매장량과 관련된 수조 달러의 자산은 화석연료 연소가 중단된다면 사라질 것이다.

 

세계에서 선도적인 환경사회학자 중 한 명인 내 동료 리처드 요크(Richard York)'자연 기후 변화'라는 글에서 대체에너지가 현재 구성돼 있는 에너지 산업 내에서 화석연료의 대체물이라기 보다는 보완물로 취급되고 있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증명했다. 그러므로 대체 에너지의 빠른 성장을 화석연료의 지배에 대한 급진적 파괴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것은 여전히 일어날 필요가 있다.

 

* 당신은 금융자본의 확대, 경기 침체의 패턴, 그리고 미국 패권주의의 쇠퇴가 환경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근본적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이것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주겠는가?

 

점점 더 세계경제를 운영하고 있는 이른바 '세계의 주인들' - 오늘날 6명의 사람들(몇 달 전에는 8명이었다)이 세계 인구의 절반만큼의 부를 가지고 있다 - 의 입장에서 볼 때 현재 가장 큰 문제는 기후변화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침체다. 이러한 침체는 선진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심한 것이다. 미국 경제는 지난해 1.6%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역사상 처음으로 10년 넘게 3% 미만의 성장률을 기록했다.[이 인터뷰는 2017년에 진행됐다] 지난 10년간 유럽의 성장률은 약 1.7%를 기록했다. 1929년부터 1939년까지 불황의 10년 동안 미국의 1.3%의 성장률과 비교해보자.

 

독점 금융 자본은 우리가 수십 년 동안 <먼슬리 리뷰>에서 주장해 온 바와 같이, 과잉 축적과 침체의 경향이 강하다. 1980~90년대에 경제를 주로 끌어올린 것은 금융화(생산과 금융 거품에 비례한 금융의 성장)였다. 거대 금융 위기의 침체가 무기한으로 시작된 이후 금융화는 더 이상 그 기간 동안 같은 정도로 경기를 부양할 수 없게 되었다. 이것은 사실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쓴 두 책의 논지이다 - 2009년 프레드 맥도프(Fred Magdoff)와 함께 쓴 '거대한 금융 위기', 2012년 로버트 W. 맥체스니(Robert W. McChesney)와 함께 쓴 '끝없는 위기'.

 

오늘날의 모든 것은 경제가 다시 돌아가도록 하는 데 맞춰져 있다. 경제 성장이 환경에 더 많은 압력을 가하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증가시키는 등의 문제 때문에, 어떤 면에서 경기침체가 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요크가 '자연 기후 변화'의 또 다른 글에서 실증했듯이, 이 시스템은 경제가 하강할 때는 경제가 상승할 때 증가시킨 것과 마찬가지로 비율로 기후 배출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더구나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모든 초점이 무엇보다도 경제성장에 맞춰져 있는 것은 지구 전체의 문제를 변두리의 한쪽으로 치워버리게 한다. 따라서,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환경 규제를 없애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있다. 우리는 엔진 속도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석탄을 엔진에 주입하면서 기후 절벽 위로 향하는 폭주 기관차를 타고 있다.

 

* ‘파리 기후 협정은 오바마의 환경적 유산으로 묘사됐다. 그것은 환경 재앙의 전진을 방지하고 역전시키는 도구로서 얼마나 효과적인가?

 

그것은 지극히 효과가 없다. 이것은 자발적인 합의를 필요로 한다. 기껏해야 세계 정부들의 선의를 대변하는 것일 뿐이다. 개별 국가들의 자발적인 계획은 많은 과학자들의 평가에서 문명의 종말을 알리는 것으로 생각되는 섭씨 4도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것이다. 미국의 제안은 오바마의 클린 파워계획에 바탕을 두고 있었는데, 이 계획은 너무 늦고 너무 적었고, 그 역할을 하기 힘든 시장 메커니즘에 의존했다. 지금은 트럼프 대통령의 기후위기 부정행정부에 의해 해체되고 있다. 미국이 파리 협정을 사실상 법적으로 포기함에 따라 파리 협정은 모두 무너질 위험에 있다.

 

기후 운동 관점에서 파리 협정에 가장 매력적인 한 가지 요소는 지구 온도 상승을 1.5° 이하를 목표로 제한하는 공식적인 인식이었다. 그러나 그 협정에 포함된 거의 모든 다른 사항들이 그것을 저버리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머지않아 이미 중간에 섭씨 1.2도가 더 증가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지금 트럼프가 오바마의 '클린 파워' 계획을 제쳐놓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단순히 불충분하지만 기후 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우리의 행동을 계속 증가시킬 가능성을 차단하지는 않는 조치들과 실제로 우리를 뒤로 데려가 제임스 한센(James Hansen)"인류의 마지막 기회"라고 불렀던 모든 것을 완전히 제거하겠다고 위협하는 정책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배우고 있다.

 

* 우리는 소비와 일상 생활의 선택, 즉 퇴비 주기, 재활용, 물 절약 등을 통해 기후 변화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불행히도, 우리는 그런 식으로는 큰 효과를 볼 수 없다. 자연보호를 위한 대규모의 국가적 운동을 제외하고, 그것은 전체 인구의 동원이 필요하며 또한 생산을 변경하려는 시도의 일부가 되어야 할 것이다. , 단순히 개인의 행동에 뿌리를 둔 보통의 소비 기반 전략은 문제를 해결하거나 충분히 빠르게 움직일 수 없다. 문제의 규모를 알기 위해서 보자면, 만약 누군가 미국 내 모든 가정에서 나오는 모든 도시 쓰레기들을 제거한다면, 사회의 총 물질적 폐기물에서 약 3%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기업들의 수중에 있다.

 

이것은 당신이 언급하는 모든 것을 우리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개인으로서 그리고 우리의 문화에서, 즉 우리가 지구와 관계를 맺는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우리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으로 만들기를 기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쓰레기를 치우고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자연에 가하는 손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은 필수적이다.

 

당신이 지구 반대편에서 만든 플라스틱 포크를 사용하고 나서 테이크아웃 샐러드를 먹고 그것을 1분 정도 사용한 후에 포장과 함께 쓰레기통에 버릴 때, 그래서 동일한 플라스틱 포크가 석유화학 제품과 함께 생산되어 당신의 다음 테이크아웃 식사를 위해 세계를 가로질러 운송되어야 할 때, 당신은 분명히 파괴와 낭비의 수단을 통해 자라는 파괴적이고 낭비적인 체제에 먹이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 주권"은 신화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이해되어 왔다. 상품 경제에 근본적인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생산에 대한 힘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진심으로 이 문제를 심각하게 여긴다면, 소비자들이 꼭 원하거나 필요로 하지도 않는 물건들을 구매하게끔 유도하는 연간 1조 달러의 미국내 마케팅 비용(타겟팅, 동기 연구, 제품 개발, 포장, 판촉, 광고, 직접마케팅)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마케팅을 다루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대응도 필요할 것이다. 마르크스는 언젠가 노동자들은 - 그리고 이것은 아마도 소비자들에게 훨씬 더 그러한데 - 자본주의 사회에서 항상 더 약한 편에서 순수하게 경제적 행동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적으로 조직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데이비드 하비(David Harvey), 나오미 클라인(Naomi Klein), 당신 자신과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자본주의냐 혹은 지구냐의 선택의 문제라는 생각을 공유한다. 더 설명해 달라.

 

그렇다, 현재 인류가 행성의 수준에서 자신의 보금자리를 더럽히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일반적으로 왼쪽에서 점점 더 많은 인식을 하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너무 자주 생태학적 문제를 충분히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서 자유주의 전통에 더 큰 잘못이 적용되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주의자들만의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20세기의 사회주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현재 지구가 당면한 생태학적 위기의 심각성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21세기의 진정한 사회주의자 내지 마르크스주의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우리는 인간의 거주지로서(그리고 무수한 종의 서식지로서) 지구를 지키기 위한 투쟁의 선두에 서거나, 우리가 알고 있는 지구 시스템의 창조적 말살론의 편에 서 있을 수 있다.

 

나오미 클라인이 최근 몇 년간 과학적 공동체 밖에서 경종을 울리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이 점에서 당신이 옳다. 내 생각에 그녀는 미국과 캐나다의 급진적인 기후 운동에서 선도적인 지적 활동가다. 빌 맥키번(Bill McKibben)과 같은 사람과는 반대로, 그녀는 개가 어디에 묻혔는지에 대한 문제를 피하지 않는다. 그녀의 책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의 부제는 명백하다: 그것은 '자본주의 대 기후'에 대한 문제이다.

 

그녀는 사회주의와 생태학적 사고, 환경 운동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발전인 생태사회주의와 나란히 간다. 좋은 사례는 지난해에 출판된 이안 앵거스(Ian Angus)<인류세를 마주하며: 화석자본주의와 지구체제의 위기>이다.

 

이 문제에 대한 나 자신의 기여에 대해서 보자면, <취약한 행성>,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생태학>, 브렛 클라크·리차드 요크(Brett Clark and Richard York)와 함께 쓴 <생태적 균열: 행성에 대한 자본주의의 전쟁> , 그 주제에 관한 여러 책을 썼다. 사안은 명백하다. 자본주의는 무제한적 자본 축적과 따라서 기하급수적 경제 성장에 맞춰진 체제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규모는 끊임없이 커진다.

 

3%의 성장률이라면 경제는 한 세기에 16, 두 세기에 250, 그리고 3세기에 4,000배로 팽창할 것이다. 우리가 잠금장치라고 부르는 측면에서 자원의 한계, 그리고 낭비의 한계인 지구의 저장소 용량은 본질적으로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생태적 한계의 현실과 경제적 상황이 그들에게 가하는 압력은 부정할 수 없다.

 

물론 문제는 위의 제안들보다 훨씬 심각하다. 더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가 지구의 생물 화학적 순환과 지구의 신진대사에 개의치 않고 환경에 자신의 운동 법칙을 강요하여, 지구 시스템의 생물 화학적 순환에 변형이나 파열을 일으키면서, 단순히 경제적 성장 효과라는 규모를 초월하는 방식으로 생태계 관계를 교란시킨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가장 심오한 도전인 것은 신진대사 균열의 문제이다. 지속 가능성은 더 높은 수준에서 점점 더 훼손되어 문명과 생명 자체에 대한 지속적인 가속화되는 위협이 되고 있다. 마르크스의 신진대사 균열 이론, 또는 "사회적 신진대사의 상호의존적 과정의 불가역적 균열"은 사회와 자연, 그들의 변증법적 상호관계를 모두 포괄하고 이를 생산과 연결시키는, 체계적인 생태학적 위기에 대한 실로 포괄적인 사회과학적 견해를 제시한 최초의 분석이었다.

 

사실, 이러한 통찰력은 매우 강력해서 오늘날 우리가 지구 시스템의 위기를 어떻게 보는가에 결정적이다. 마르크스의 <자본>을 인용하며 마르크스의 개념을 명쾌하게 그려내고 있는 <과학적 보고들> 20173월호 기사에서 이런 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오늘날 우리가 인류세에 대해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할 때, 우리는 1945년 이후 지구에 대한 인간 영향의 거대한 가속성이 지구 시스템에 인류에서 비롯된 균열을 만들어 냈고, 역사의 이전 단계에서 현재의 생태계를 지질학적으로나 인류학적으로 영원히 분리시켰다는 것을 분명히 인정하게 된다. 행성에 대한 인간의 관계의 이러한 균열은 이미 재앙이며, 만약 우리가 지구 평균 온도를 2°C 증가시킨다면, 곧 더 큰 재앙을 초래하고 인류 자체를 위협하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도달할 수 있다.

 

* 만약 당신이 추측해야 한다면, 당신은 인류가 너무 늦기 전에 이 오염을 향한 광기를 멈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부족한 물, 유독 가스, 더워지는 온도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더 쉽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미 기후 변화로 인해 점점 더 큰 재앙을 직면하고 있다. 치솟는 기온과 부족한 물, 극한의 날씨를 피하기엔 너무 늦었다. 그 배는 이미 여러 방면으로 출항했다. 지구는 미래에 인간들에게 훨씬 덜 친절해질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피하려는 것은 좀 다른 것이다.

 

제임스 한센의 이야기처럼, 그리고 내가 '트럼프와 기후 대재앙'에 대한 기고문에서 인용했듯이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역동적인 상황"은 우리를 4나 심지어 그 이상의 지구 온도 상승으로 몰아넣고, 이는 바로 인간 문명의 존재와 수많은 인간들을 위협할 것이다.

 

더 나쁘게는, 그것은 우리 종의 멸종의 가능성을 지적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디스토피아적인 관점은 위협의 커다란 심각성을 대부분의 디스토피아 소설이 투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디스토피아 소설은 최소한 한 사람의 인간이 적어도 일시적으로 살아남아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인간이 사라질 수 있는 미래로 충분히 멀리 투영한다면, 우리는 지구와 세계에 대멸종을 상상해야만 한다. 지금 과학자들은 우리가 이번 세기에만 6차 대멸종을 통해서 살아있는 종들의 절반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어쩌면 한센이 말하는 '비너스(Venus) 신드롬'[지구가 금성처럼 변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전에 우리는 수억, 심지어 수십억의 사람들이 비참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과학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거주지로서 지구를 파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본주의적 사업을 언제나처럼 현재와 같이 계속하는 것일 것이다.

 

이런 것, 또는 가장 큰 재앙적인 영향, 예를 들어 먼발치가 아닌 마당으로 넘치는 해수면, 아마존의 죽음, 대부분의 해양 생물의 죽음 등을 피하는 것이 여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산의 체제, 즉 인류와 지구 사이의 신진대사에 있어서 혁명적인 생태학적 변화를 필요로 할 것이다. 우리는 불과 몇 년 안에 지구 전체에서 매년 약 5% 씩 탄소 배출을 줄여나가기 시작해야 한다고 한센은 우리에게 말한다. 이것은 부유한 나라들이 그들의 탄소 배출을 두 자리 숫자로 줄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게다가 우리가 여전히 1.5°의 지구 평균 기온으로 기후를 안정화시키려면 대기중에서 아마도 150기가톤이나 되는 엄청난 양의 탄소를 제거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2°의 가드레일을 넘지 않으려면 연간 탄소 배출량을 3%씩 매년 감소시켜야 한다. 대체 에너지, 사회 구조적 변화, 환경 보존 등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을 모두 동원하면 가능하지만, 그것은 인류의 거대한 운동을 필요로 하고 화석연료 경제뿐만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논리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틴달(Tyndall) 기후변화연구소의 케빈 앤더슨이 우리에게 말하듯이, 우리는 "정치-경제적 패권"에 맞서야 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낙관론이냐 비관론이냐는 핵심이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겉으로 보기에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은 역경을 맞닥뜨리는 용기와 결단력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취해야 할 직접적인 생태학적 조치만 보면, 그 면면에서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것을 극복할 수 없는 문제처럼 보이게 하는 것은 세계 자본주의 사회의 괴물같은 장벽이다.

 

*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오늘날, 백악관과 EPA(환경보호국)의 수뇌부로 있는 기후변화 부정세력, 자본주의에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가? 지구를 위한 투쟁의 규모를 확대할 전망은?

 

트럼프와 함께 네오파시즘은 백악관에 진입해 있다. 그들의 목표는 자본주의 경제를 관리하는 다른 방법이다. 그것은 신자유주의와의 단절이자 동시에 그것을 오른쪽에서 계승하는 것이다. 즉 우리 시대 깊은 위기의 징후이다.

 

트럼프 정부는 기후 부정주의를 표방하고 환경운동가들을 국민의 적으로 선언했을 뿐만 아니라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훼손할 것이라고 위협하고 있으며 인종적 피억압자, 이민자, 여성, LGBTQ, 환경운동가, 노동자들을 공격하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저항 운동은 그 모든 측면에서 인간성 자체를 방어하는 것이 될 필요가 있다.

 

하비가 말하는 사회적 재생산과 지속가능한 인간 발전의 필요성에 맞춘 공동의 혁명적 운동이라는 것을 인간 거주지로서의 지구를 구하기 위한 투쟁과 결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어디로든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거대한 운동이 되어야 하고,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단결해야 하며, 제국주의와 전쟁에 반대해야 한다. 이 모든 것들이 연결되어 있다. 기후운동은 중증도 분류에서 중심이지만, 우리는 모든 전선에서 싸워야 어딘가에 도달할 수 있거나 하나의 큰 전선을 만들 수 있다.

 

그 모델은 아마도 전세계적 환경 정의 운동이며, 나오미 클라인이 우리 시대의 바리케이드를 위해 서 있는 "블락카디아(Blockadia)"[자원 채취에 맞서는 기층 민중의 저항]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살고 숨 쉬고 일하는 환경에 대한 물리적 투쟁들이 실제로 동일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생태적 프롤레타리아트(오늘날 남반구에서 가장 뚜렷한)의 출현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적이 누구인지 인식해야 한다. 세계 8대 화석연료 기업들은 세계 전체 총량에서 15%를 차지하는 미국보다 이산화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 우리는 자본과 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 다코타(Dakota) 석유 파이프 라인에 맞선 싸움은 미국 전역, 심지어 미국 밖의 원주민들로부터도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갈등은 여전히 열려 있고 트럼프 행정부가 다시 공세를 펼칠 준비를 하고 있지만 12월에는 큰 전투에서 승리했다. 스탠딩 록(Standing Rock) 지역을 지키기 위한 투쟁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을까?

 

스탠딩 록에서의 투쟁은 오늘날의 환경 투쟁에 지울 수 없는 발자국을 남겼다. 트럼프 당선으로 승리의 빛이 바래는 조건이 마련됐음에도 불구하고 대승이었다. 원주민들은 최근 몇 년 동안 환경 보호 투쟁에서 계속해서 드러난 그들의 지도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물을 보호하는 사람들은 얼어붙는 날씨 속에서 비살상 총탄과 최루탄을 맞고, 개들이 습격하는 동안에도 그 위에 굳세게 서 있었다.

 

온 세상이 숨이 막혔다. 짐 크로우(Jim Crow: 인종차별 악법) 남부의 시민권 시대의 투쟁을 떠올리지 않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이 전투는 주로 미주리 강 아래에 파이프라인이 뚫리면서 위협받는 물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환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특히 원주민들 자신들도, 이것이 지구 전체를 위한 싸움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그러나 나에게 있어 그 정점은 막바지에, 수 마일에 걸쳐 길게 구불구불 늘어선 차량들로 스탠딩 록에 접근하여 물 보호자들에게 "인간 방패"를 제공하기 위해 수천 명의 미군 참전용사들이 집단으로 도착했을 때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원주민들과 함께 서 있다고 선언했고 심지어 미국 원주민들에 대한 미국의 역사에 대해 무릎을 꿇고 사과하기까지 했다. 정부가 그 후 며칠 만에 물러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뒤 이어질 갈등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환경 저항에 끌어들였을 것이고, 그런 점에서 권력자들에게는 전면적인 재앙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 시점에서 철수를 택했다. 그러나 이것을 정말 중요하게 만든 것은 그것이 역사적으로 우리를 갈라놓았던 선을 가로지르며 연대의 행동을 대변한 점이었다.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바로 이런 식으로 곤궁한 시기에 인간의 연대가 출현하는 것이다.

 

(기사 등록 202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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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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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11.06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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