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 [박노자] 발언권 없는 타자들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저는 지금도 23년 전의 그 날을 기억합니다. <러시아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을 토론하는 학회의 날이었습니다. 제가 그 학회에 참가한 게 아니고 통역으로 불려 나간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때 국내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무늬만 교수('강의전임강사')인지라 백오십만원인가 하는 월급만 가지고 생존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알바를 열심히 구했는데, 전공과 유관한 학회 통역 알바는 그 중에서도 최고이었습니다. 그때 제게 그 고마운 알바비를 주었던 곳은, '외국 교과서의 한국 관련 내용 분석' 사업을 주관했던 교육개발원이었습니다. 이 사업은 나중에 한국학 중앙 연구원으로 이관돼 아마도 지금도 지속되는 걸로 이해합니다.

 

학회는 좀 기괴(?)했습니다. 한국측 참가자들이 러시아 교과서의 코리아 관련 내용이 너무 소략하다, 한국전쟁 이외에는 '코리아' 언급 자체가 거의 없다고 추궁을 했고, 러시아 측 참가자들이 그 추궁에 신경질났는지 "세계사 무대에서 나선 만큼 교과서에서 기록한 것이다, 근대 이전에 세계사 무대에 그렇게까지 많이 나타나지 않은 게 우리 책임이냐"고 다소 거칠게(?) 대응했습니다.

 

사실, 추궁할만했죠. 러시아 역사 교과서들이 대단히 서구중심주의적이며, 그나마 인도사나 중국사는 소략하게나마 소개될뿐, 코리아뿐만 아니라 예컨대 필리핀이나 러시아의 우방인 베트남도 아예 전쟁 이야기 이외엔 한 줄도 안 나올 정도입니다. 그런데 한국측 참가자들이 물론 (?) 배트남이나 필리핀의 억울함을 풀어줄 생각 없이 오로지 러시아 교과서에서의 '코리아'의 자리를 문제 삼았습니다.

 

문제 삼아봐야 러시아 교과서의 수준이 나아진 것 같지 않은데, 저로서는 그 학회 자리는 참 의미심장했습니다. 알바비도 매우 후했지만, 무엇보다 "외국 교과서에서의 한국 관련 내용" 연구 프로젝트를 알게 돼 아주 흥미로운 자료를 많이 본 것입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그 프로젝트에서는 중점적인 분석의 대상에 오른 것은 바로 동구를 포함한 구미권, 그리고 동아시아권의 교과서이었습니다.

 

예컨대 아프리카의 교과서나 중남미의 교과서 내용에 대해서는 한국의 '분석가'들은 이렇다 할만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러시아 교육관료들의 관심의 서열에서 '코리아'의 위치가 별로 높지 않다는 걸 (정당하게) 문제 삼았지만, 사실 그들의 대외적 관심도 대단히 서열적이다는 걸 아마도 스스로 별로 생각하지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최근 샘 오취리의 한국 인종주의 비판이 한국 사회에서 일각의 이해와 함께 상당수의 '반발'을 샀기에, 제게 23년 전의 그 학회가 바로 연상됐습니다. 제가 그 때 '외국 교과서에서의 한국 관련 내용' 사업의 내용에서 본 것은 바로 '구미권/동아시아권이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에 대한 지극한 관심과 '나머지 세계'의 의견이나 평가에 대한 상대적 무관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와 같은 관심의 서열은 동시에 타자들에게 차등적으로 주어지는 발언권의 서열과도 연결돼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 사회에 대해 발언할 수 있는 '타자'는 과연 누구인가요? 일차적으로는 물론 (?) 구미인일 것입니다. 강준만 선생님과 같은 주요 국내 논객들도 종종 예컨대 그레고리 헨더슨의 <소용돌이의 정치: 한국>과 같은 한국 정치문화에 대한 구미권 출신들의 서술들을 인용하곤 합니다. 헨더슨이 유력한 집단에의 소속을 통한, 내지 '줄서기'를 통한 출세 지향 등을 예리하게 분석한 참가관찰자(주한 미국 외교관을 역임한 학자)이었는데, 이 내용은 읽기가 불편해도 어쨌든 '참고'가 되는 셈입니다.

 

이와 함께 예컨대 일본 전문가들의 발언은 적어도 일각에서 경청되는 셈입니다. <산케이 신문>이란 극우매체의 서울 특파원 구로다 가쓰히로의 저서 (<문재인의 혼밥, 박근혜의 혼밥> 등등)들을, 최근에도 조갑제닷컴 등이 계속 냈었던 것이죠. 일본 극우 논객의 '한국 민족주의 비판'도 어느 사이에 한국에서 '시민권'을 얻은 셈입니다. 일본에 대한 과거의 '기억'은 어떻든간에 '선진국''선진국'이죠. 한국에서 이 단어는 여전히 엄청난 ''을 발휘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예컨대 한국에서의 체류 경험이 충분한 중국 조선족 동포 출신이 신문 칼럼을 쓰거나, 한국에서의 조선족 차별을 구조적으로 폭로하는 저서를 내는 걸, 현재 대한민국에서 상상할 수 있습니까? 조선족 분들의 한국어 구사력 수준으로 봐서는 기술적으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발언권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조선족 동포들의 차별에 반대하는 소리를 그나마 간헐적으로 신문 보도를 통해서라도 들을 수 있는데, 조금 더 작고 잘 보이지 않는 '못사는 나라에서 온 동포' 집단이면 아예 그 가시성마저도 없습니다.

 

제발 한국에서 살게 해달라는 4대 고려인 동포 소녀의 눈물어린 호소가 한번 한국 언론에서 소개됐지만 (4대가 지나면 더이상 '동포'로 간주하지 않아 '일반 외국인'과 같이 취급합니다), 눈물어린 호소가 아닌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을, 이 사회가 고려인 동포로부터 들어볼 준비가 돼 있을까요? 탈북자(새터민) 같으면 언행들이 계속 감시를 받는 상황에서는 아예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적 발언의 자유가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명색상 '동포'라 해도 발언권이 이처럼 차등적으로, 차별적으로 주어진다면, 동포도 아닌 '못사는 나라 출신의 틈입자'에게 허용되는 발언의 순위는 과연 어디까지일까요? 안봐도 비디오죠...

 

말 잔치가 아닌 명실상부한 다문화주의로 나아가자면, 한국 사회는 경제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지역 출신의 타자에게 '비판의 권리'를 부여하는 데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국제적 경제 서열의 내면화는, 끝에 가서는 구미권보다 더하는 인종차별만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대접'을 받는 구미인/일본인보다 우선적으로 한국에서 구조적으로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지역/계층/집단 출신들의 쓴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지금 인구 통계 추이로 봐서는 아마도 수십년, 수백년 후에는 한반도에서 정착된 이 '못사는 나라 출신 이민자' 분들의 후손들은 결국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져야 할 것입니다..... 


(기사 등록 20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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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 변혁 재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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