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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대한민국, 마냥 '자랑'만 할 수 있는가?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4. 24.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요즘 저같이 해외 한국인으로 살기가 참 좋은 계절입니다. 한국이 대응을 잘 한 것인지, 특히 미국과 남유럽이 엄청나게 못한 것인지 따져봐야 할 일이지만, 좌우간 '코로나' 차원에서는 한국에서의 상황은 '나머지 세계'보다 지금 훨씬 좋아서 주위에서 한국을 선망하는 목소리들만이 자주 들립니다. 안들릴 수 없는 이유는, 현재로서 한국보다 인구가 10배나 적은 노르웨이에서 한국과 사망률이 거의 엇비슷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한국어도 거의 못하는 저의 9살짜리 딸내미는, "노르웨이가 전혀 안전하지 않으니까 세계 모범국가인 한국에 가서 살자!"라고 옆에서 계속 조르고 있을 정도입니다. 그녀는 아마도 한국에서도 노르웨이처럼 누구나 영어를 '당연히' 다 이해하여, 거기에 가서 소통하는 데에 문제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한국학을 하고 있는 해외 국민으로서는 좋은 계절이지만, 저는 솔직히 마냥 '자랑스럽다'는 생각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질본의 조직 운영이나 특히 의료진, 담당 공무원들의 투지나 헌신성이야 당연히 고맙고 자랑스러운데 말입니다. '코로나'라는 진리의 순간은 전세계의 각종 격차들과 차별들을 다 가시화시키고 클러즈업하게끔 해놓았는데, 한국도 전혀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이 미증유의 난리 속에서는 세계에 대해서도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도 너무나 많은 것을 학습할 수 있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꼭 좋은 것만 알게 된 건 아닙니다.

 

예컨대 이것 하나 보시지요. 재난 기본 소득을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국민"한테만 준다는데, 안산시는 아주 예외적으로 외국 체류자들에게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안산은 외국인들의 인구 대비 비율은 12%, 거기에서 86천명 정도의 외국인들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 지자체 중에서는 최고의 외국인 거주자 비율입니다. 이 외국인들이 모두 다 한꺼번에 사라져버리면 안산 경제의 상당부분은 그냥 멈추어질 것이지요. 그런 안산인 만큼 '외국인들에게도 주겠다'는 결정은 충분히 예상할 만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국내외국인 차별 없이 주겠다'는 식이 아니라 '외국인에게는 국내인 70% 수준에서 주겠다'는 결정이었습니다. '국내인의 수령액 70%'일까요? 외국인은 국내인보다 밥이나 반찬을 더 적게 먹나요? 옷을 덜 입나요? 아니면 아파트 관리비를 덜 내나요? 일상의 비용이야 누구나 여권의 색깔과 무관하게 똑같지만, 안산의 외국인들이 국내인보다 30% '' 받는 유일무이한 이유는... 바로 그들이 '외국인'이기 때문입니다. '외국인'을 국내인만큼 대접할 수 없다는 것이죠. 아주 간단합니다. 어떻습니까? 자랑스러운가요?

 

제가 만약에 위와 같은 이야기를 '코로나 속 한국의 대응'을 제게 묻는 노르웨이 기자에게 한다면, 상대방이 바로바로 당연히 할 질문은 딱 하나입니다. 안산의 외국인 주민들이 왜 소송을 걸지 않았느냐지요. 같은 주민이자 납세자인데, 외국 여권이라고 해서 노르웨이 여권 소유자가 받는 돈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노르웨이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20년동안 노르웨이에서 한국 여권으로 살아왔는데, 여태까지 그렇게 해서 억울하게 못 받은 돈은 한 푼도 없었습니다. 지금도 다달이 아이 양육 보조비 (한 아이당 한화 약 13만원) 등등을 다 챙겨 받고 있죠. 부모 양쪽이 다 외국여권인데 말입니다.

 

저는 이런 삶이 당연하다고 늘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에서는 이게 절대 당연하지 않을 것입니다. 소송? 포괄적인 차별방지법도 없는 나라에서는 과연 무슨 근거로 소송하겠습니까? 헌법상 인종차별 등은 금지돼 있지만, 그게 '국민'에 해당되는 조항입니다. 그러니 "국민들이 받는 수령액의 70%"도 다 감지덕지하는 분위기인 모양입니다. 우리를 당연히 (?) 차별하지만, 그래도 다른 지자체보다 덜 차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분위기는 정말로 '자랑'스러운가요?

 

저는 아무래도 한국 인터넷을 보는 걸 자제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댓글을 보다가는 혈압이 너무 올라가니까요. 며칠 전에 정의당의 이자스민 전 의원이 외국인을 차별하는 재난 기본 소득 지급 규정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의 내용을 담은 기사를 봤습니다. 사민주의 정당의 이민자 정치인으로서는 그저 자신의 '직무'를 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노릇입니다. 사민주의 정당의 이주민 정치인 아니면 이주민 인권을 누가 챙기겠어요? 여야가 다 아무 관심도 없는 판국에요? 그런데 그 기사에 달린 댓글을 보면... "니네 나라 가서 이런 개소리 해라!" 정도는 가장 얌전한 편에 속했습니다.

 

"니네 나라"? 이자스민 전 의원에게도 제게도 '니네 나라'는 대한민국입니다. 그런데 이 '외국인 수령액은 우리 국민의 70% 수준'과 같은 소리를 듣다가는, 이 대한민국에서는 외부에서 왔거나 '다르게 생긴' 사람이 이 사회 구성원으로 언제쯤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을 것인가는 궁금해지기만 합니다. 지금 한국을 '세계에서 모범이 되는 안전한 나라'라고 확신하고 있는 제 딸 아이는, 비록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지만, 잘 안되는 한국어와 '외관상 식별이 가는' 얼굴로 대한민국에서 '한국인'으로 살 수 있는 날이 언제쯤 올까요?

 

, 코로나 덕에 우리가 우리 사회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중요한 부분들을 알게 된 것이죠. 인제 알게 된 만큼 바꾸는 것이야말로 급선무입니다


(기사 등록 20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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