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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박노자] 김정은 위원장의 "부활"에 덧붙여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5. 6.

김정은 위원장의 "부활"에 덧붙여: 대북 악마화의 뿌리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 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드디어 제 고통이 당분간 종료된 듯합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살고 있다"는 확증이 나와, 더이상 이 문제로 노르웨이 기자들로부터의 전화나 전자우편 등이 없을 것 같아 천만다행입니다. 지난 2주 동안은, 평상시에 "근현대 사상사,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사" 등을 공부하면서 북조선에 한 번 가본 적도 없는 저 같은 사람까지도 동원이 되어서 "김정은 사망" 여부와 "북한 붕괴" 여부에 대한, 말도 안 되는 질문에 땀을 흘려 계속 답해야 했습니다. 이러다가는 정말 짜증이 나는 것은 한 두 번 도 아니었습니다.

 

"북한 붕괴"? 1995~7년에, 여러 추산에 따라 20만 명에서 100만 명까지 "고난의 행군" 시절 대기근으로 잃어도 전혀 "붕괴"의 조짐도 보이지 않았던 사회는, 상황이 이미 크게 개선된 지금 같은 시기에 설령 최고 지도자가 급서한다고 해도 "붕괴"한다고?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왜 살균제를 마시면 코로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공석에서 발언해 수십 명을 중태에 빠뜨린 정도의 전문 사기꾼을, 유사시에 핵전쟁을 발발시킬 권한을 갖고 있는 대통령으로 "모시고" (?) 있는 미국에서 앞으로 상당한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노르웨이 언론들이 그다지 무관심하면서 "북한 붕괴"나 계속 운운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아무리 설명을 해도 또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끝에는 피곤해서 더 이상 설명할 기운도 없게 됩니다. 듣는 쪽에는 모종의 인식 편향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명백하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인식편향도 아니고 다층적인 인식편향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여러 층위들을 이야기하자면 가장 기본에 깔려 있는 건 일종의 오리엔탈리즘입니다. 몽테스키외(1689~1755)부터 위트포겔 (1896-1988) 같은 냉전 시기의 학자까지, "근대 사회"를 자처하는 서방은 오랫동안 그 타자로 '동양'을 설정하면서 "법치적, 민주적인 우리"의 정반대로 "군주 1인이 만사를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오리엔트의 전제왕권"'동양의 정치형태'라고 믿어왔습니다. 실제로는 청나라나 조선의 관료 등용 체계나 지방관 배치, 지방관 보고 체계 등이 예컨대 1789년 이전의 구체제 프랑스 왕국 등에 비해 훨씬 더 합리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양'에다가 '1인 독단', '폭정'의 이미지를 덮어씌운 겁니다.

 

그러니 '만사를 친재하는 절대 군주'가 돌연사하면 '왕족의 난'이 발생하지 않겠느냐는 게 노르웨이 기자들의 호들갑 뒤에 갖추어져 있는 저들의 인식편향의 실체인 것 같습니다. 그들에게는 아무리 노동당 조직지도부 등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 통치 메커니즘 작동의 원리, 당이 군을 장악, 관리하는 방식 등을 상세히 설명해도, 그들의 귀에 그 설명들이 들어가지 않는 겁니다. 그들의 머리 속에서는 "오리엔트"인 북조선은 나름 원활히 작동되는 "근대 관료제"와 잘 합쳐지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같은 '오리엔트'라는 무의식적 범주에 포함되겠지만, 예컨대 사우디 왕조나 싱가포르의 '국부' 이광요의 대를 이어 싱가포르를 현재 통치하는 이현룡(李顯龍)총리 등에 대해서는 서방 언론들의 보도는 훨씬 더 조심스럽고 존중해주는 어투입니다. 물론 그 만큼 사우디나 싱가포르의 ""이 세계 경제에서 중요한 '흐름'을 형성하지만, 정치-이데올로기적 부분도 있습니다. 사우디 왕조나 이광요-이현룡은 서방의 '우군'이라면 북조선은 미 패권을 상대로 역사적으로 싸워온 사회입니다. 월남전쟁 시절에 북월남에 공군부대를 보내 항미 항쟁을 지원한 사회고, 짐바브웨의 무가베부터 쿠바까지, 서방이 탐탁지 않게 여겨온 거의 모든 제3세계 정권과 대단히 친하게 지내온 나라입니다.

 

지금 러시아, 이란에 이어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의 몇 안 되는 '우군'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오리엔탈리즘에다가 서방 주류 대북관의 기저에 깔려 있는 것은 확연한 '레드 콤플렉스' 같은 것입니다. 이 두 부분이 서로를 더 강화시켜 서방 주류의 대북관 전체를 거의 병리적인 악마화의 극단으로 끌고 갑니다. 바교를 하자면 예컨대 북조선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인 쿠바만 해도 북조선 만큼의 악마화 대상이 되지 않고 있는 것이죠. 쿠바 혁명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해도 이 역사를 서방의 '혁명'이라는 대서사 일부분으로 어쨌든 보고 있는 것인데, 북조선의 혁명사에 대한 원칙적 접근부터 좀 다릅니다.

 

오리엔탈리즘과 '레드 콤플렉스'의 서로 강화시키는 조합에다가, 하도 오랫동안 습관적으로 타자화, 희화화해온 대상인지라 '섹시 광고 전략'과 같은 미디어의 생리가 추가됩니다. 왜 세탁기부터 살충제까지, 꼭 광고판에다가 그 광고 대상인 상품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반라의 여성 모델이 종종 등장합니까? 맞습니다, 그렇게 해서 일단 '시선 장악'부터 해보는 겁니다. 북조선도 이미 서방의 미디어에서 거의 에로나 포르노와 같은 역할을 맡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일단 김정은 사진을 싣기만 하면 조회수가 막 올라가니까 툭하면 또 무슨 김정은 관련 ''을 날조하여 클릭수를 올리는 겁니다. 옷을 '덜 입은' 할리우드 스타 스포츠 스타의 사진을 실어 거기에다가 그 사생활을 씹는 루머성 기사를 같이 싣는 clickbait 전략과 아무런 차이도 없지요.

 

오리엔탈리즘, '레드 콤플렉스', 그리고 유사 포르노 수준의 황색 언론의 상업 전략...이건 코리아학 하는 사람들로서는 절대 수수방관할 일은 아닙니다. 타자를 희화화시키고 열등시하는 것은, 그 타자가 누구든간에 이와 같은 현상을 허용하는 사회를 타락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조선에 대한 거의 병리적인 수준의 타자화, 오리엔트화, 악마화 등은, -미 갈등이 다시 첨예화될 경우 유사시에 제노사이드 수준의 '대북 공격'을 사전에 서방 대중들에게 합리화하여 설득시키는 '전쟁 준비'의 역할도 할 수 있는 겁니다.

 

수수방관을 하지 않고 대북 악성 사실날조, 허위보도를 일삼는 매체들에 대해 일일이 정정을 요구하고, 북조선이 걸어온 역사적 여정에 대해서 보다 많은 객관적인, 세계사적 시각에서 쓰여지고 북조선의 역사적 경험들을 20세기 탈식민화라는 큰 이야기의 유기적 일부분으로 적절히 다루는 책들을 보다 많이 내야 합니다. 냉정한 분석적 시각과 세계사적 시야, 객관성만이 인식편향들을 수정하게끔 할 수 있습니다



(기사 등록 20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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