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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과 주장

코로나19, 자본주의, 그리고 계급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20. 3. 30.

전지윤




 

코로나 팬데믹, 국제적 주가 폭락, 정치적 카오스

 

지난주까지 세계 주요국가에서 증시 대폭락으로 일주일 만에 수천 조 원이 날라간 데 이어서 이번 주에도 미국을 중심으로 주가 폭락, 반등, 폭락이 이어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과밀 교도소에서 코로나 확산에 대한 공포로 폭동까지 벌어졌다. 국제적 주가 폭락과 팬데믹으로 향하는 전염병, 정치적 카오스로의 경향 등 그야말로 불길하고 뒤숭숭한 상황이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미 존재하던 세계경제의 매우 취약하고 불안정한 토대 위에서 지금의 여러 사태들이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토대는 2008년 세계금융 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진행된 양적완화와 구제금융, 긴축정책들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결과로 세계 자본주의는 당장의 위기는 벗어날 수 있었지만, 재앙을 낳을 수 있는 씨앗을 더욱 키우게 됐다. 대표적으로 전세계 부채 규모는 2008년 위기 때보다 지금 거의 1.5배는 증가했다는 게 대부분의 공통된 추정이다. 가계부채, 기업부채, 국가부채 모두가 다 골고루 늘어났고 중국에서는 위태로운 그림자금융의 규모가 커져왔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하는 좀비기업의 전세계적 비율도 2배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 즉 생산적 투자를 통해서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면서 위기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일단 돈을 퍼부어 붕괴하던 거대은행과 거대기업들을 살리는 과정에서 거품과 부채가 엄청나게 많아진 것이다. 그래서 좌파 지리경제학자인 데이비드 하비는 지난해 이런 지적을 했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투자를 통해서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공간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런 상황의 돌파구는 통화팽창이고, 2008년 위기 이후 양적완화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 돈은 주식시장으로 흘러갔고, 부동산 시장에서 자산 거품이 됐다. 세계의 주요 대도시에서 자산 가격은 크게 올랐고, 탈산업화 속에서 도시 재개발을 통한 구조조정이 이루어졌다. 지금 시간과 공간은 모두 부족하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의 큰 문제들이다.’

 

<21세기 자본>의 토마스 피케티도 얼마 전 같은 맥락의 경고를 했다. ‘또 한 번의 경제 붕괴가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양적완화, 우리가 했던 모든 돈 풀기, 그리고 금융부문의 부풀려진 대차대조표를 보면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금융 붕괴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주식시장의 큰손들도 모르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그 전에 최대한 손해보지 않고 돈을 뺄 기회를 서로 노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19 사태가 방아쇠가 됐고, 너도나도 몰려나가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코로나19세계의 공장인 중국에서부터 휴업, 생산 중단을 통해 국제적 생산망 사슬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

 

이것은 투자의 중단과 축소, 기업의 영업중단과 파산, 노동자 해고 등으로 이어질 수 있고 무역만이 아니라 여행과 관광, 소비의 급격한 세계적 위축으로도 이어지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갑자기 망하거나 어떤 빚과 부실을 얼마나 껴안고 있는지 모르니까 은행과 금융기관들은 대출을 회수하거나 줄일 것이고, 그것은 다시 더 큰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

 

물론 금융 붕괴와 경제 위기가 반드시 정해진 미래는 아니고, 누구도 그것을 바랄 리가 없다. 그러나 상황은 매우 좋지 않고, 우리가 그것을 피하지 못한다면 이번에는 2008년처럼 극복하기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미국, 중국, 영국, 일본, 유럽연합 등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면서 위기에 대처하기도 2008년보다 훨씬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 보리스 존슨, 아베같은 우익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아메리카(또는 영국, 일본) 퍼스트같은 구호를 외치며 국경장벽을 높이고 이민자, 외국인, 무슬림, 소수자 들을 혐오하며 어떤 식으로든 희생양을 찾으려 할 것이다. 이미 코로나19에도 가장 취약하고 고달픈 이런 사람들은 경제 위기와 그런 공격에도 가장 취약할 것이다.

 

반면 코로나19와 경제적 불안정이 가져올 정치적 혼란과 위기는 그런 극우세력을 물리칠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적 약육강식, 각자도생의 논리가 아니라 사회정의와 연대의 원리로 함께 위기를 극복하고 사회를 급진적으로 재구성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재난 속에서 서로를 걱정하고 돌보고 도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사회가 공동체 구성원의 기본적 생계와 소득을 보장하고 취약계층을 더욱 지원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커가고 있다. 이재웅 쏘카 대표도 스스로 기본소득 국민청원을 올릴 정도다. 자신들과 같은 대기업과 부자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서 그것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인식까지 갔다면 더욱 좋았겠지만.

 

물론 그런 가능성과 희망은 우리 스스로가 투쟁과 연대를 통해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럴 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종말론적 구원의 종교적 메시아를 찾아가다가 낭패에 처하게 되는 일도 결국 사라질 것이다. 반신자유주의 투쟁의 저명한 이론가였던 프랑스의 활동가 에릭 투상이 최근에 올린 말에 더욱 공감이 가는 순간이다.

 

주류 매체들은 이 세계 주식시장의 붕괴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염병은 단지 그것을 촉발시켰다. 적어도 2017~2018년 이후 새로운 금융 위기의 재료는 모두 갖춰져 있었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의 다차원적 위기에 맞서 싸우며 생태 적-페미니스트적-사회주의적 출구의 길을 단호히 찾아가야 한다. 이것은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필요이다.”

 

코로나19 - ‘엘리트 패닉재난 유토피아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내가 혹시 확진자가 되면 아프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보다 더 큰 것이 14일 동안 일도 못하고 사람들도 못 만나고, 무엇보다 바이러스의 숙주로 낙인찍히고 비난받을 거라는 두려움이 크다는 목소리들이 있다.

 

실제로 중국인, 대구경북 사람, 신천지 교인으로 이어지면서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해자를 바이러스 확산의 가해자로 매도하는 일은 여전히 반복되는 것 같다. 100년전 미국에서 가정부였던 메리도 먹고살기 위해 여러 집에서 계속 일을 하면서 균을 옮겼고 장티푸스 메리라고 낙인찍혀 괴물로 비난받았다. 결국 국가권력이 강제 영구격리해서 쓸쓸히 죽었다.

 

팬데믹 속에서 언제든 나도 혐오와 낙인의 대상이 돼서 사람들의 집단적 공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가 미국에서 생필품만이 아니라 자기방어를 위한 총기와 실탄 사재기도 낳고 있다는 보도를 보면 씁쓸하면서 섬뜩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집단감염 속에서 누가 슈퍼전파자구실을 했는지 색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왜 요양병원, 장애인시설, 콜센터 같은 곳에서 마치 공장식 축산에서 밀집사육 당하는 동물처럼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서 힘겹게 생활하고 노동해야 했는지, 거기서 과연 인간이 우선이었는지 이윤과 효율성이 우선이었는지 물어야 한다.

 

미국 트럼프는 취약계층을 구하기 위해서보다 주가폭락 속에서 은행과 투자자들을 구하기 위해서 수조 달러를 주입하겠다고 선언하며 여전히 변하지 않은 우선순위를 보여주고 있다. 트럼프, 보리스 존슨, 아베 등의 대응을 보면 이들이 멜서스의 후예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건강하지 않고 나이 들어서 일도 못하고 폐만 끼치는 사람은 죽게 내버려두거나 빨리 죽도록 하는 게 당사자나 주변 사람이나 사회와 국가를 위해서도 좋은 일이라는 생각이 엿보이는 것이다.(영화 어벤져스에서 타노스의 세계관도 떠오른다.)

 

그러나 미국의 사회주의자인 조나선 닐은 1980년대 에이즈 공포가 미국 사회를 강타할 때, 성소수자들이 만들어낸 연대의식와 공동체를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당시 동성애자들은 아픈 친구들을 돌보고, 다른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안전한 섹스 캠페인을 벌이고, 정보를 공유하고 연락을 유지하며 공동체를 만들어갔다. 정부가 시급하게 치료약물을 연구하고 개발하고 저가에 공급하도록 요구하며 집단적으로 행동했다. 에이즈 사망자가 특히 많았던 남아공에서는 이런 운동이 무료약 공급을 얻어냈다.

 

레베카 솔닛은 <이 폐허를 응시하라>에서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거대한 사회적 재난 속에서 오히려 이처럼 상호부조와 이타주의의 천국이 나타난다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서로를 구조하고 서로를 보살피는 사회, 먹을 것을 나눠주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 밖에서 함께 보내는 사회, 사람들 사이의 오랜 벽이 무너지고 아무리 가혹한 운명이라도 함께 공유함으로써 한결 가벼워지는 사회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아비규환 속에서 기적을, 슬픔 속에서 기쁨을, 두려움 속에서 용기를 주는이 현상을 재난 유토피아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것을 부와 권력을 가진 사회 상층부에서 나타나는 공포와 불신, 혐오 조장과 악선동이라는 엘리트 패닉과 대비시킨다. 지금 한국 사회의 일부 언론들과 정치세력들이 보여주는 모습이야말로 바로 엘리트 패닉이라 할 수 있다. 레베카 솔닛은 더 나아가 재난과 혁명의 연결성과 유사성을 지적한다. “혁명이 재난이라면, 그 이유는 재난 역시 일종의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재난과 혁명, 이 두 현상은 연대와 불확실성, 가능성, 평소에 가동되는 체제들의 전복 같은 측면들을 공유한다. 다시 말해, 규칙들이 깨지고 많은 문이 열린다.”

 

지금 코로나19 속의 한국사회에서도 우한에서 귀국한 교민들의, 대구경북의 시민들의, 취약계층의 고통을 나누고 도우려던 여러 모습들에서 상호부조와 이타주의의 가능성들은 나타나 왔다. 가끔씩 전해지는 그런 소식과 장면들은 우리에게 감동과 용기를 준다. 이런 가능성을 확장해서, 언제나 병을 달고 다니는 가난한 사람들, 자가격리하면 아무도 돌봐줄 수 없어 잊혀질 사람들, ‘거리두기가 삶을 위협하는 처지의 사람들에게 사회적 지원의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 이윤과 효율성이 아니라 인간적 삶과 연대성이 우선되는 사회로 급진적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이런 공동의 요구와 방향을 위한 운동이 건설돼야 한다.

 

방역의 국제적 모범이라는 한국사회가 더 나아가서 이런 운동과 대안 건설의 모범이 되면 좋겠다. 감염병과 자본주의의 상호연관성과 커지는 위험에 대한 선구적 분석을 제시해 왔던 마이크 데이비스도 최근 발표한 글에서 그런 운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는 이제 진정한 국제 공중보건 인프라가 없는 한 생물학적으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게 드러났다. 대중의 행동이 거대제약회사와 영리의료의 힘을 꺾기 전에는 그러한 인프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운동은 국제적 차원에서 건설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자국의 취약계층도 별로 신경 안 쓰는 트럼프, 존슨, 아베같은 권력자들이 코로나가 제3세계 슬럼가와 난민촌에서 확산될 때 벌어질 상황을 신경쓸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영국의 식민지 수탈에 시달리던 인도가 20세기 초 스페인 독감의 최대 희생자였고 거기서 전세계 사망률의 60%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가 국경을 존중하고 여권을 검사하고 인종이나 성별이나 종교를 가리지 않듯이, 우리에게도 모든 벽을 넘어서는 운동이 필요하다.

 

 

급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코로나 19 팬데믹 속에서 세계적으로 전례없는 정책들이 도입되고 있다.

 

미국: 모든 국민에게 1인당 1000달러의 긴급생계지원금을 지급하겠다.

 

스페인: 모든 민간 의료기관을 일시적으로 국가가 접수해서 통합 운영하겠다.

 

이탈리아: 당분간 노동자에 대한 어떠한 해고도 금지한다.

 

지금은 비상 상황이고, 그동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을 시도해볼 수 있는 급진적 상상력이 필요하다. 민간의료 기관들을 공공화하고, 의약품을 탈상품화하고, 임대료를 통제하고, 주요 생필품에 대한 가격 통제와 배급을 도입하고, 돌봄과 보건의료와 사회복지를 위한 대규모 공공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시장에 맡기지 말고 국제적으로 공동으로 백신을 연구 개발하고, 공공의료와 사회기반 시설이 취약한 남반구에 대한 국제원조를 추진하고...

 

그동안의 잘못된 우선순위들을 뒤집으면 모든 게 가능할 것이다. 예컨대 지금 영국에서는 코로나로 인한 급성폐렴 증상으로 노약자들이 사망하는 것을 막아낼 산소호흡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리스 존슨은 민간기업들에게 빨리 만들어달라고 읍소중이다. 그런데 산소홉흡기는 F-16같은 전폭기를 제조하는데 쓰이는 재료, 기술들과 겹친다고 한다.

 

사람을 죽이는 전폭기는 그토록 많이 만들어두던 체제가 왜 사람을 살리는 기구는 부족하게 만들어둔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한국에도 출판된 <좌파 세계사>의 저자이고 브렉시트에 맞서 투쟁해온 영국의 좌파역사학자 닐 포크너의 주장에 강하게 동의한다.

 

팬데믹은 40년간의 신자유주의와 10년간의 긴축에 의해 야기된 사회적 긴장감의 거대한 격화와 세계적인 경제 붕괴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코로나 위기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깊은 병리학을 관찰할 수 있는 렌즈를 제공한다. 우리는 전례 없는 사회적 원자화를 낳은 신자유주의 디스토피아에 살아왔다. 사회적 연대의 네트워크는 강화되는 기업권력에 의해 침식돼 왔다. 대안은 세계의 근본적 변혁, 즉 민간기업의 인수, 민족국가 해체, 그리고 평등, 공공복지, 생태적 지속가능성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경제사회질서를 향해 빠르게 나아가기 위한 대중권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기사 등록 202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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