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지윤
● <지록위마>와 종북몰이 마녀사냥의 추억
얼마전 내란음모 조작과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을 다룬 다큐 영화 <지록위마>를 보고 왔다. 이어서 경순 감독과 이정희 전대표의 GV도 있었다. 내겐 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영화다. 영화는 2012년 경선부정 사건에서부터 종복몰이가 시작돼, 2013년 내란음모 조작으로 이어졌고,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마무리됐다는 관점이 담겼다.
영화에서 인터뷰한 허재현 기자도 ‘1년후에 경선부정의 진실이 다르단 걸 알았지만, 이미 사회적으로 결론난 사안을 왜 다시 꺼내냐는 주변의 시선에 입열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국정원, 검찰, 언론, 박정부의 진실왜곡과 마녀사냥에 우리 모두 자유롭지 않았던 것이다.
나도 2013년에 ‘경선부정부터 잘못 봤고, 이것이 내란음모 조작과 종북몰이에서 우리가 타협하게 만들고 있다’는 주장을 했다가 주변 동료들에게 ‘경기동부연합의 변호인’ 취급을 받았다. 결국 나는 징계까지 받았고 18년 동안 있던 조직을 나왔다.
영화는 통합진보당 당권파, 경기동부연합에 대해서 선을 긋고, 거리를 두면서, 같이 돌을 던지던, 스스로 자기검열을 하던 당시의 이런 분위기를 보여 준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히 국정원, 검찰, 언론이 만든 프레임 속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마지막 에필로그 - 가족들의 인터뷰 부분이었다. 새벽에 수많은 방송카메라와 함께 들이닥친 국정원. 아이를 깨워서 일단 학교에 보내는데 놀란 아이는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학교에 가서 전화가 왔다. 몸이 너무 아프다고. 그리고 무작정 다시 집으로 온 아이.
엄마는 왜 왔냐고 크게 화를 냈고. 아이는 아빠 어딨냐고 묻고. 저녁 늦게 압수수색과 체포가 다 끝나고 아이에게 이 상황을 어찌 설명할지 막막했던 엄마. 언론과 검찰과 국정원을 통해 경기동부, 내란음모, 종북이라는 막강한 프레임이 전사회적으로 형성된 상황에서 무슨 말로 어떤 설명이 가능했을까. 피해자들은 가깝고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마저 등을 돌리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던 상황을 돌아본다. 그 트라우마는 평생 남을 것이다.
영화에는 당시를 돌아보는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인터뷰도 담겼다. 저기에는 솔직한 인정과 반성도 있지만 ‘그 사람들이 일탈을 했고 빌미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라는 여전한 자기검열의 흔적과 앙금도 있다. 그러나 이어진 GV에서 경순 감독과 이정희 전대표는 그런 태도가 또 어떤 상처나 트라우마에서 비롯됐는지 이해하자고 했다.
먼저 다가가서 벽을 낮추고 간격을 좁히자는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선을 그으면서 큰 상처를 준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먼저 이해하면서 다가가야 한다는 게 오랜 고통의 시간 끝에 다다른 생각으로 보였다. 하지만, 상대가 먼저 잘못을 인정하면서 손을 내밀지 않는 현실이 그런 결론을 낳은게 아닐까 서글프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마녀사냥을 낳았던 구조와 주역들은 이 사회에 여전하다. 그리고 조건과 상황은 많이 달랐지만 ‘조국 사태’에서도 그것은 반복됐다고 본다. 여전히 검찰과 언론과 우파가 만들어내는 프레임의 힘은 강고했다. 그래서 이정희 전대표에게도 질문을 던져봤다.
이정희 전대표는 구체적 언급은 피했지만 먼저 ‘어떤 개인의 이름으로 이번 사태를 부르고 역사에 남기는 것부터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또 ‘계급의 문제가 드러났다는 말도 일리있지만, 정당하지 못한 세력이 주도한 게 사실이고 그것에 고통받은 사람들에게 마음을 보탤 필요’에 대해 말했다. 조심스러운 것도 이해가 갔고 답변도 공감갔다. 정말 이번에 진행된 일도 ‘검찰대란’이라고 부르고 역사에 남겨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종북몰이 혐오사냥의 피해자로서 이정희 전대표의 생각이었다. ‘혐오 문제를 논의할 때 자꾸 종북혐오를 빼놓는 것부터 적절하지 않다.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이주민 등 혐오로 고통받는 모든 사람이 손을 잡아야 한다. 혐오선동을 모두 처벌로 접근해선 안 되지만 핵심대표자나 지도자들에 대해선 달라야 한다. 차별금지법으로 혐오에 대한 규제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내용이 최근 이정희 전대표가 발간한 <혐오표현을 거절할 자유> 책에도 담긴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역사적으로 심각했고 실질적이었던 종북혐오가 혐오 문제에서 자꾸 간과되는 건 암묵적 편견의 작용일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있었던 차에 더 공감갔고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 나이팅게일/ 오피셜 시크릿
영화를 좋아하지만 사실 좋은 영화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소문에 찾아봤지만 나중에 시간이 아까웠던 영화도 많은 게 사실이다. 그런데 근래 2개의 좋은 영화를 연달아보는 행운이 있었다. 먼저 ‘나이팅게일’은 반제국주의와 교차성 페미니즘의 영화라 할만하다. 공포영화 ‘바바둑’에 페미니즘적 문제의식을 담았던 감독의 후속작인데, 이번에는 자기 조국인 호주가 건설되는 과정에서 저질러진 젠더적 인종적 범죄를 그려낸다.
호주에서 영국 이민자들이 유배식민지를 건설하는 야만적 과정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다. 이 과정에서 1세기만에 선주민 100만중에 90%가 사라졌다고 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아일랜드에서 온 여성죄수인데, 영국 군인들은 그를 집단강간하고 그 과정에서 저항하고 울부짖는 남편과 아이를 살해한다.
분노에 가득찬 그는 그 군인들을 쫓아가기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 길잡이 해주는 것이 흑인 선주민 빌리다. 처음에 그는 빌리에 대한 인종적 혐오와 편견, 불신을 드러낸다. 그러나 같이 군인들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일들과 나눈 이야기는 빌리와 선주민들에게 백인 정착민들이 얼마나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보여 준다. 예컨대 백인들은 선주민의 목을 칼로 썰어버리면서 킬킬 거린다.
결국 이 로드무비는 강간 생존자이며 아일랜드인으로서 영국인들에게 차별받던 여성과 인종청소의 대상이 된 흑인 선주민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하는 여정이 된다. 그들은 서로의 분노와 고통에 공감하면서 함께 복수의 길로 나아간다.
두 번째는 ‘오피셜 시크릿’인데, 2003년 이라크 침공으로 가는 과정에서 미국과 영국 지배자들이 도청을 통해 유엔 이라크 결의안을 조작하려는 것을 내부고발한 영국정보기관 직원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그 직원을 공격하는 영국 정부와 검찰, 언론의 수법은 참 익숙한 것이다. ‘검사스러움’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듯하다. 먼저 독재자 후세인을 돕기 위해 국가기밀을 누설한 반역자로 몰아서 공격한다. 폭로 과정에서 문건의 문구가 변형된 것을 문제삼아 신뢰를 떨어트리려 한다. 나아가 ‘먼지털이’를 한다.
‘정보기관에서 일하며 시민들을 도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하고 사생활을 뒤져서 인신공격한다. 그런 사람의 말은 믿을 수 없고 정의를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이다. ‘가족인질극’도 벌어진다. 당신이 계속 그러면 무슬림 '불법체류자'였던 남성 파트너가 무사하지 않을 것이라는 압박을 계속하다가, 결국 ‘별건수사’를 통해 그 남성을 해외추방시켜버리려 한다.
요즘 검찰과 기성언론의 주장을 안 믿고 비판하는 것을 ‘탈진실’과 ‘거짓선동’으로 몰아가는 주장들이 있던데, 과연 그럴까. 진짜 ‘거짓선동’의 원조는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면서 전쟁으로 몰아가던 서방 정부와 그걸 받아쓰던 기성언론들이 선보였었다. 당시 언론은 후세인이 얼마나 부도덕하고 옹호할 수 없는 독재자인지로 넘쳐났다.
대량살상무기는 없다는 게 밝혀지고 나서도,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쨌든 후세인은 독재자가 맞고 후세인의 폭정을 변호하는거냐고 우기던 게 ‘탈진실’이었다. 트럼프의 ‘탈진실’은 미국 기성언론들의 ‘탈진실’이 만들어낸 결과이지 그 역이 아니다. 한국에서 유튜브의 부상은 기성언론들에 속고 실망했던 시민들의 경험에 바탕한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영화는 영국 검찰이 뒤늦게 무리한 기소를 포기하면서 끝난다. 인권변호사와 사적으로는 친구인 영국 검찰총장은 같이 낚시도 하기 싫다는 친구의 말에 고개를 숙인채 자리를 피한다. 영화를 보면서 한국 검찰이라면 저 정도로 그칠 리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독점했고, 언론의 받아쓰기도 더 심한 한국에서라면 절대 쉽지 않았을 결말이다.
(기사 등록 20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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