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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월호도, 퍼거슨도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4. 8. 27.

전지윤

 

 

지난 77일부터 시작됐던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학살과 공격으로 이미 수많은 가슴아픈 희생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 공격에서 이스라엘의 목적은 관철되지 않고 있다.


일단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뿌리를 뽑겠다는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이번 공격은 하마스가 아니라 오히려 파타의 존재 기반을 약화시켰다. 이스라엘에 협력해 온 파타에 대한 불신은 커진 반면, 하마스처럼 이스라엘에 맞서겠다는 청년들은 더 늘어날 것이다.


2009년 캐스트리드 작전 때보다 더 짧은 시기에 더 많은 이스라엘군 사상자(거의 6)가 발생한 것도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물론 팔레스타인 희생자 규모에 비하면 비할 것은 없지만, 핵으로 무장한 군사강국이 세계최강대국(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벌인 전쟁이란 점을 감안해 봐야 한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은 이 전쟁에서 결코 정치적으로 승리하지 못하고 있고 완전히 국제적으로 고립됐다. 라틴아메리카의 좌파 정부들은 이스라엘과의 외교적 관계를 단절하고 있고, 친미국가의 정치인들마저 말로나마 이스라엘을 비판해야 했다. 이란 핵문제에서 드러났던 미국과 이스라엘의 불협화음도 이번에 더 커졌다.


국제적으로 역사상 최대규모의 반이스라엘 반전 시위가 일어났고, 앞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BDS 운동’[불매(Boycott)·투자회수(Divestment)·경제제재(Sanction)를 통해 이스라엘에 압박을 가하는 국제 캠페인]은 더욱 더 강력해질 듯하다. 이 때문인지 이스라엘은 이 전쟁을 끝내지는 않으면서 휴전안도 제시하지 않는 어정쩡한 태도로 시간만 끌어 왔다.


이처럼 자기 경비견이 미쳐 날뛰다가 깨갱거리자, 이제는 개주인(미국)이 이빨을 드러내며 날뛰기 시작했다. ‘이슬람국가’(IS)의 흉포함을 핑계삼으며 이라크에 대한 공습에 나선 것이다. 이라크를 지옥으로 만들어 놓고서, 그 지옥에서 괴물이 태어나자 이를 핑계로 다시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IS는 누구보다 친미왕정인 사우디아라비아의 피조물이라는 게 모두의 지적이다. 반제국주의 활동가인 패트릭 콕번은 사우디아라비아는 프랑켄슈타인을 창조했으며 이제 이 괴물에 대한 통제력을 빠르게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동왕정들이 이런 괴물을 만들어낸 주된 이유는 아랍 혁명을 납치하기 위해서였다. 반동세력은 아랍 혁명 속에 정권과 민중의 대립이 격화되는 것을 보면서 두려움에 떨었다. 그리고 이것을 정권과 이슬람극단주의 세력의 대립으로 재구성하려 애썼다. 이것은 아랍 혁명을 왜곡시키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했다.


그런데 이것이 예기치않은 역풍(블로우백: 미국이 대외정책이 낳은 의도치않은 결과)을 낳고 있다. 미국방정보국(DIA) 국장 마이클 플린은 토로한다. “미국은 지난 13년간 두 개의 전쟁을 치르며 엄청난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오히려 알 카에다보다 더 극단적인 세력과 마주하고 있다.” 문제는 이제는 미군 누구도 결코 , 이라크로 다시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데 있다.


이것이 오바마식 다중인격적 제국주의를 낳고 있다. 학살과 폭격을 하면서도 뭔가 쭈뼛거리고, 지상군보다는 드론과 공군에 의존하는 식이다. 이에 대해 과거의 근육질 제국주의 시절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있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일부에서도 불만이 커지고 있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힐러리는 위대한 국가는 중심적 원칙을 필요로 한다봉쇄, 억제, 그리고 무찌름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매우 불길하다. 미국 제국주의의 흉포함과 파괴력은 IS와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다.


사실 IS의 미국인 기자 처형에 대해서만 놀랄 일이 아니다. ‘처형은 미국 경찰이 흑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자주하는 짓이다. 마이클 브라운이라는 18살 흑인 청소년이 길거리에서 아무 죄도 없이 경찰이 쏜 총 6발에 맞아 죽은 게 처형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는 가난한 흑인이었기 때문에 처형당했다. 미국 경찰은 항상 모든 범죄의 범인을 후드티를 입은 흑인 남성으로 추정한다. 전에는 후드티를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의 총에 죽은 흑인도 있었다. 물론 미국의 기레기 방송들은 마이클이 가게에서 담배를 훔치는 듯한 CCTV 장면을 반복 방영했다. 이것이 사실이라 해도 담배를 훔쳤다는 이유로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돼야 한단 말인가!


지금 퍼거슨시에서는 손들어, 쏘지마구호를 외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항의 시위가 벌어지고 있고 항의 행동은 미국 전역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장갑차를 앞세운 중무장 경찰력과 주방위군 투입으로 대처하고 있다. 뉴스 화면을 보면 저기가 가자지구나 이라크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대통령이 흑인이지만 흑인과 백인으로 노동계급을 분열지배하는 미국자본주의의 전략은 그대로였다. 역시 하워드 진이 말했듯이 정말로 중요한 것은 누가 백악관에 앉아있냐가 아니라 누가 거리를 점거하고 있느냐이다.


미국 정부는 지금 항의 시위의 폭력을 과장하고 핑계대며 폭력 진압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말콤 X국가 폭력에 맞선 자기방어는 폭력이 아니라 지성이라고 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자들은 거리로 나설 이유가 없고, 부와 권력뿐 아니라 목소리조차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행동하기 시작할 때 저들은 그것을 폭력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1992‘LA폭동때도 거리로 나선 민중들은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투쟁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 이 나라에서 우리도 마찬가지다. 


영혼과 심장이 없는 자들

 

교황과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만남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이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박근혜는 복수의 칼을 갈며 교황이 돌아가기만 기다렸던 것 같다.


마르크스는 종교가 심장이 없는 세계의 심장이고, 영혼이 없는 세계의 영혼이라고 했다. 그리고 박근혜 정부는 바로 심장과 영혼이 없는 인간집단이 무슨 짓까지 할 수 있는지 보여 준다. 자식을 가슴에 묻은 세월호 유가족의 등에 수없이 많은 칼을 꽂으며 백번은 더 죽이고 있는 게 이 정부와 지배자들이 하는 짓이다.


가장 역겨운 것은 세월호 때문에 이 나라 국정과 경제 활성화가 몇 달째 마비돼 있다는 저들의 악다구니다. 하지만 모든 통계와 수치는 세월호 소비 위축설이 아무런 근거도 없다는 것만 보여 준다. 민간소비는 세월호 전부터 이미 감소 추세였고, 여행숙박서비스업의 생산지수는 지난 4월 이후 오히려 증가해 왔다.


사실 소비가 늘지 않는 진짜 이유는 지배자들이 만들어 온 저임금과 비정규직화 때문이다. 월급과 소득이 늘지 않고 일자리와 미래가 불안한 데 어떻게 소비를 늘리겠는가. 나아가 한국 자본주의의 진정한 문제는 투자가 늘지 않는 것인데, 이것은 자본가들이 만족할만큼 이윤율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이 체제와 지배자들에게는 이것을 해결할 방법이 없다.


그래서 경제부총리 최경환은 지금 지도에 없는 길을 가겠다고 하고 있다. 실제로 지도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경환노믹스는 결국 부채 주도 성장에 불과하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규제완화와 민영화 등을 통해 사람보다 돈이라는 논리를 더욱 강화하려한다. 이것이 바로 세월호 참사의 근본적 원인인데 말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를 일으켰던 체제와 그 지배자들이 잠깐 머뭇거리다 다시 세월호노믹스를 강행하려는 게 지금 상황이다. 그러니 이들이 세월호의 진실과 정의를 밝히자는 특별법을 허용할 리가 없다. 저들은 지금, 다시 재범을 계획하고 있는 범죄자처럼 행동하고 피해자들에게 반응하고 있다.


저들은 왜 세월호만 국정원 보고가 의무로 돼 있었는지, 왜 국정원이 세월호 실질 경영주처럼 행동했는지, 왜 사고당시 세월호의 CCTV를 동시에 꺼버렸는지, 박근혜는 7시간 동안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유병언은 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인지 등을 모두 덮으려 한다.


여기에 방해가 되는 모든 것에 무자비한 공격과 저주를 퍼붓고 있다. 딸을 잃고 40일 넘게 단식해서 죽어가는 아비도 예외가 되기는커녕 더 강력한 저들의 증오와 저주를 받고 있다. 김영오 씨는 배고픔보다 저 독기서린 비방에 상처받아 숨이 멎을까 걱정될 정도다.


사실 세월호의 진실따위는 묻어버리고 이윤 추구과 자본 축적을 지속하자는 지배자들의 의지는 너무나 강력해서, 잠시 동요하던 새민련과 자유주의 언론들도 곧 굴복하고 일부 진보진영조차 기가 꺽일 정도였다. ‘수사권과 기소권까지 요구하고 다 얻기는 무리라는 분위기가 퍼졌고, 개혁적이라던 박영선이 앞장서서 두 번이나 우파에 굴복하며 야합을 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진실과 정의를 요구하며 버티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과 지지자들의 용기와 의지다. 이것이 우파 지배자들의 엄청난 탄압, 새민련의 타협 압박을 이겨낸 힘이었다. 나아가 이 힘은 지금 새민련 내부에 큰 균열을 일으켰고, 심지어 우파 지배자들의 결집에도 금이 가게 만들었다.


따라서 안전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세월호 유가족의 호소를 우리는 결코 흘려보낼 수 없다.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 동지는 이렇게 말했다.


쌍용차에서, 강정에서, 용산에서, 밀양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싸워나가고 있지만 또한 끊임없는 패배를 목도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기 위한 발걸음은 경찰들의 폭력으로 막히고, 최소한의 상식적인 요구는 늘 거절당합니다. 진실은 언젠가 밝혀진다는 이야기를 이 싸움에서만큼은 듣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만큼은 우리가 이겨야 하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끔찍한 비극이 일어났고, 이토록 지배계급이 궁지에 몰린 적이 없고,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이 운동을 지지하고 있는 데 승리하지 못한다는 것은 생각하기 싫은 일이다. 물론 2008년 촛불항쟁 이후, 거리의 운동은 몇 가지 요인 때문에 쉽게 전진하지 못해 왔다.

 

세월호노믹스

 

먼저 2008년 촛불항쟁 자체가 승리하지 못했고, 이것이 일종의 트라우마를 낳았다. ‘1백만 명이 거리에 나왔는데도 별로 바뀐 게 없고 이명박은 임기 5년을 채우고 박근혜로 권력을 넘겨주기까지 했다는 정서였다.


둘째,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거리의 운동이 아니라 [제도] 정치가 중요하다며 이 정서를 더욱 증폭시켰다. 유모차 엄마에게까지 소환장과 벌금을 때리는 정권의 탄압이 거리운동의 가능성을 더욱 위축시켰다.


셋째, 제도정치적 해법을 우선시하는 과정에서 극단으로 치달은 진보의 분열 상황이다.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도, ‘묻지마야권연대도 제도정치적 해법 우선시의 결과였다. 그 결과 진보정당은 사분오열되고 말았다.


넷째, 민주노조운동은 부문주의에 갇혀 거리 정치운동과 거리를 뒀다. 촛불항쟁 때도 민주노총의 구실은 잘 보이지 않았고,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거리의 정치운동과 노동자 투쟁의 상호작용을 어렵게 하면서 운동의 결합발전을 가로막았다.


올해 상반기를 돌아보면 세월호 국면과 투쟁이 규제완화와 구조조정에 맞서는 다른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고 기회를 제공한 측면이 크다. 삼성전자서비스노조의 역사적 전진도 이때 있었다. 동시에 두 투쟁은 위에 지적한 요인들 속에서 잘 결합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 노동자 투쟁들은 여전히 잘 전진하지 못하고 있고, 세월호 투쟁도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세 가지 장면이 현재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이 직면한 어려움을 보여 준다.


첫째, 현대차지부 지도부는 금속노조의 통상임금 파업 이틀 전에 불법파견 투쟁 10년의 역사를 무덤에 파묻고, 투쟁하는 비정규직의 뒤통수를 치는 배신적 합의를 했다. 이 배신적 합의로 정몽구는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받고 비정규직의 피땀을 계속 빼먹을 수 있게 됐다. 더 한탄스러운 것은 아산전주의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도 이 합의에 함께했다는 것이다.


둘째, ‘공공부문 정상화에 맞서는 관련 노조들의 총력 파업을 앞두고 철도노조 지도부는 정부에 굴복하는 합의를 하고 말았다. 지난 연말 파업의 아쉬운 마무리 뒤에 이어진 수백 억의 손배, 수백 명의 해고, 수천 명의 징계라는 엄청난 압박에 잘못된 타협을 택한 것이다.(일부 좌파의 지난 연말 철도파업에 대한 승리적 평가와 올해 공공부문 정상화 투쟁에 대한 낙관적 전망 모두 정확치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셋째, 지방선거와 재보선에서의 참담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진보정치의 단결과 재건은 쉽지 않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내란음모 항소심 재판을 앞두고도 단결해서 진보당을 방어하는 모습은 찾기 어려웠다. 지금 정의당과 진보당 의원들은 똑같이 세월호 문제로 청와대 앞 단식을 하는 데도 서로 다른 자리에서 따로하고 있다. 노동정치연대는 또다시 진보당을 제외하고 진보정치 연합을 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진보정치가 새민련으로 흡수될 위험은 여전하다.


세월호 모멘트이후 이 사회는 밑으로부터 들끓고 있다. 최근 참교육연구소가 고교생 1천 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과 정부를 믿는다는 답은 6.8%에 불과했다. 촛불시위와 서명운동에 공감한다는 의견은 85.5%에 달했다.


문재인 등 새민련의 일부도 이런 커다란 압력에 밀려 거리로 나선 상황이다. 이것은 이 운동의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는 증거이자, 동시에 새민련이 다시 운동을 통제하며 뒤통수를 칠 가능성 둘 다를 보여 준다. 새민련에 주도권을 넘기지 않고, 넓어진 외연을 이용하며 운동을 더욱 발전시킬 책무는 진보진영과 노동운동에 있다.


지배계급은 일치단결해 세월호 문제와 노동자 투쟁을 분리시키고, 새민련의 찌질함과 진보의 사분오열을 이용해 왔고, 이제 유가족을 비방하고 이간질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계급의식은 철두철미하고, 경험은 풍부하고, 방법은 극단적으로 야비하고 노련하다.


우리가 각자 자기들만의 울타리에 갇혀서 눈 앞의 이익만 본다면 저들에게 휘둘릴 뿐이다. 그래선 안 된다. 대규모의 위력적인 파업과 시위행진이 지금보다 더 필요할 때가 있었던가. 전교조 선생님들이 아니면 누가 죽어간 아이들의 한을 풀어줄 수 있겠는가. 금속노조의 동지들이 아니면 누가 슬픔과 굶주림 속에 죽어가는 조합원을 살릴 수 있겠는가. 진보정당들이 아니면 누가 진실과 정의를 원하는 유가족들의 눈물을 닦아줄 수 있겠는가.


지금 유가족들이 놀라운 투지로 버티면서 광화문 광장은 진실과 정의를 위한 투쟁의 엔진이 되고 있고 투쟁이 연결되기 시작하고 있다. 파업 대오를 결집시켜 청와대로 행진하겠다는 김영오 동지 생명살림 금속노조 투쟁계획은 특히 반갑다. 서울대병원 원하청 공동파업 가능성, 홈플러스 전면파업 예고, 93일 금융노조 총파업 계획 등도 불거지고 있다.


누군가 진실과 정의를 바라며 죽어갈 때, 그 손을 잡고 일으켜세워줄 의지와 힘이 있는 세력은 진보진영과 민주노조운동이라는 것을 보여줄 때다.


빈틈을 드러낸 종북몰이 이제는 단결로 맞서야

 

지난 8월 11일 법원은 내란음모 사건에 대한 항소심 선고를 내렸다그 내용은 내란음모는 무죄이고 내란선동은 유죄라는 것이었다형량은 여전히 중형이었다.


법원은 다시 민주주의를 짓밟았다. ‘구체적 시기대상수단이 측정되지 않고 결의하지 않았더라도 내란을 선동할 수 있다’? 민중가요만 불러도 9년을 감옥에 가둬야 한다진보당 강령도 이적표현물이다이런 비민주적 사회에서는 세월호 유가족들이 눈물로 호소하며 받은 무려 4백만 명의 서명이 화장실 휴지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나마 내란음모 무죄가 나온 것에서 위안을 삼을 수는 있다워낙 억지이고 증거도 없는 조작된 사건이기도 했지만 저들이 언제 그런 거 따지던 자들인가?

따라서이것은 지난 1년간 계속돼 온 반박근혜 운동과 정서뿐 아니라 무엇보다 진보당의 헌신적 투쟁의 결과라는 점을 봐야 한다.


이정희 대표와 진보당 당원들은 지난 1년 동안 비가오나 눈이 오나욕설과 차가운 눈초리를 온몸으로 받으면서 탄원 호소와 서명을 받았다진보진영의 다른 단체들 대부분이 못 본척하는 데도 매주 꼬박 서울역에서 행진을 했다피해자와 그 가족들과 함께 아파하고 눈물 흘리며 끝까지 손을 놓지 않았다.


이것이 없었다면, 10만 명이 이석기 탄원 서명을 하고, 4대 종단과 교황의 마음까지 움직이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이것은 종북몰이 광기 속에서 대부분의 진보 단체들마저 외면하고 있을 때 벌어진 일이다어마어마한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무릎 꿇거나 꼬리 자르기를 택하지 않은 이정희 대표와 진보당 당원들은 찬사받을 자격이 있다그리고 이 동지들이 지켜 온 것은 단지 자신들의 존엄만이 아니다.


이 재판은 피고인들만의 재판이 아니라우리 모두에 대한 재판[이다.] … 이 사건에서의 유죄판결은 우리 모두의 입과 눈과 귀를 가리고 막을 것을 요구하는 … 슬퍼도 울지 말며아파도 신음하지 말며억울해도 분노하지 말며불의를 보고도 저항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판결이 되는 것이다”(한상희 교수)


놀랍고도 비판받아 마땅한 것은 여전히 일부 진보가 보이고 있는 태도다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에 찬성하는 씻기 힘든 잘못을 저지른 정의당 지도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말이 안 되는 입장을 내놨다이제 법원마저 RO는 실체가 없고 내란음모는 증거가 없다고 하는 마당에 자기반성 한마디 없는 것이다.


노동당의 무미건조한 입장도 실망스럽다. “정세를 오판함으로써 혁명을 농담으로 전락시킨 행위에 대한 단죄는 사회적 비난만으로 충분하다정세를 오판하고 혁명을 논의했다고 단죄와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하는가정세에 대한 견해는 견해 차이 아닌가무엇보다 이 상황에서 좌파의 성명이라면 무엇보다 당장 무고한 피해자들을 가족 품으로 돌려보내고 조작범들을 처벌하라가 돼야지 않는가?


비교적 분명하게 진보당을 방어해 온 노동자연대(다함께)의 태도에도 아쉬운 점은 있다.‘단지 조작은 아닐 것이라며 한사코 조작” 규정을 피해오다가이제와 역시 RO의 실체 여부는 진정한 쟁점이 아니었다며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다무엇보다 종북몰이는 큰 효과가 없었다던 주장은 이해하기 어렵다종북몰이에 몰려 9년을 갇혀야 되는 사람과 그 가족과 해산 위기에 몰린 당이 뻔히 있는 데 말이다.


많은 좌파들이 단지 조작이 아니고 실체가 있다알게 모르게 진보당과 그들의 사상에 대해 선 긋고 거리두다가 법원마저 ‘RO의 실체가 없고 내란음모는 아니다라고 하니까 애써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바로 이런 진보진영의 분열과 외면 덕분에 내란음모와 선동이라는 70년대 법이 무덤 속에서 살아나온 것이다이런 말도 안 되는 법을 적용하고 판결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원래 그런 악법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 게 아니라 말이다.


이번 분위기 속에 세월호 유가족이 금속노조 조합원이거나 정의당 당원이라는 이유만으로 비난받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최근에는 사노련도 대법원에서 국가변란 선전·선동 단체라며 유죄를 확정받았다. ‘진보당 다음은 우리라는 말은 점점 현실이 되고 있다.


지금도 편견에 의한 조작의 파장에서 자유롭지 않은 사람들은, ‘진보당은 종북이고 폭력혁명을 추구하고 비밀지도부가 있으므로 진보연합 논의에 끼워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급진좌파도 여기에 별다른 이견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내가 가장 이해 안 되는 것은 일부 진보진영이 관심법을 쓰는 것이다. ‘진보당의 종북이 문제인 것은 사실이라니머리 속에 들어가 봤나백보양보해 주사파가 많이 남아있다고 치자북한식 국가자본주의로의 변혁을 대안으로 삼는 것은 신앙이고서방식 시장자본주의의 개혁을 추구하는 것은 과학이라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어떤 정치적 입장이든 공동의 실천 속에서 토론비판하고 검증할 문제이지 선험적 배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진보와 좌파는 오류를 인정하고 교정할 수 있어야 한다같은 운동 내에서 다른 동지들을 왕따하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무엇보다 진실을 직시하려고 해야 한다그래야 진보와 좌파는 단결할 수 있고세월호같은 문제에서도 손을 잡고 거대한 투쟁을 만들어낼 수 있다진실과 정의를 바라는 사람들의 희망으로 우뚝설 수 있다.


이제 남은 내란음모 사건 대법원 판결과 정당해산 심판을 앞두고라도진보진영과 노동운동은 종북몰이에 강력한 단결을 통해 맞서는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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