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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세상읽기 - 서초동과 광화문/ 조국 대전과 촛불/ 김용희 투쟁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10. 14.

전지윤

 

● 서초동 촛불이나, 광화문 집회나 모두 공감할 게 없는가?

 

지금 마치 모든 사람이 당연히 서초동가서 촛불 들어야 하는 것처럼 말한다면 잘못이다. 아무리 많이 모이고, 정당한 요구가 있더라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사람에게 뭔가를 강요할 순 없다. 여기가 다수인데 왜 안 오냐는 식으로 압박한다면 폭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실제 2016년에도 여혐 발언과 성희롱이 존재하는 촛불집회에 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건 존중받아야 할 입장이지 비난하거나 강요할 순 없었다.

 

억눌린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소수자들이 더 많이 함께하길 원한다면, 그런 사람들이 자신의 투쟁이라 느끼며 찾아오고 싶은 분위기를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 또 어느 쪽이나 극단적 일부는 있을 수밖에 없고, 그들이 그 운동을 대표할 순 없지만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과한 언행들이 온오프라인에서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광화문과 서초동을 양쪽 다 지지할 게 있는, 또는 양쪽 다 지지할 게 없는, 저울의 양쪽처럼 보는 관점은 아니라고 본다. 세월호 가족들이 태극기 물결 속에 포위당해 몇시간 동안 공포를 느끼며 눈물만 흘릴 수밖에 없었던 집회와 세월호 가족들이 그 대열 맨 앞에 앉아서 같이 구호를 외치던 집회 사이에서, 양쪽 다 공감할 점이 있다거나, 어느 쪽도 편들 수 없다는 입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심지어 둘 다 관제시위이고 파시즘의 두 얼굴이라는 식의 주장엔 더더욱 동의하기 어렵다. 정말 이 나라는 며칠 건너 번갈아 서로 다른 파시스트들이 대규모 결집하는 절망의 나라가 돼버린 것일까? 많은 이들이 놓치고 있는 데, 개천절 우파집회는 조국 때문에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다. 그것은 군중시위-탄핵-정권교체의 우파버전을 성공시키겠다는 목표를 두고 3년 동안 매주 주말마다 광화문에서 행진해온 태극기 부대의 노력 속에서 봐야 한다.

 

개천절 집회 자체도 적어도 2달 전부터 공지, 조직돼 왔다. 특히 전광훈 목사측은 이날을 적그리스도문재인 탄핵으로 가는 디데이로 보고 오래동안 총력준비해 왔다. 여기에 이 날을 보수대단결의 기점으로 만들려던 자한당의 당원총결집 공문과 문자, 버스대절 등이 합쳐졌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도 몇 달 전부터 지하철역에서 북한과 손잡고 공산주의로 가는 문재인 하야 7대 이유를 내걸고 꾸준한 서명운동이 벌어져 왔다. 물론 근래 시작된 조국대전은 여기에 강한 탄력을 부과했다. 결국 9.28 서초동 촛불이 오히려 이런 흐름의 맥을 끊어놓은 누구도 예상못한 돌발변수였던 셈이다.

 

윤석열 검찰총장 임명 때 이런 상황을 예상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제 세월호, 장자연, 김학의 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란 환호와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동영상 속에 누가봐도 뚜렷한 김학의 얼굴은 또 덮어졌고, 긴가민가하는 조국 딸의 표창장, 자소서, 생기부만 탈탈 털면서 분노가 쌓이더니 결국 폭발했다. ‘윤석열을 그렇게 찬양하더니 꼴 좋다는 비아냥은 옳지 않다. 당연히 비난은 속은 사람이 아니라 속인 사람에게 향해야 한다.

 

이 나라 검찰처럼 자본주의 국가에 대한 좌파적 분석에 적합한 사례도 드물다. 좌파는 자본주의에서 진정한 권력은 선출된 의회가 아니라 검찰, 고위관료, 재벌, 거대언론 등에 있다고 주장해 왔다. 민주적 통제가 어려운 이들 진짜 권력자들은 개혁에 맞서는 반동의 보루이고, 선출된 개혁정부도 결국 이들에게 굴복하거나 제거된다고 말이다.(더불어 이런 억압기구들의 가부장적 폭력성에 대한 분석이 추가돼야 한다. 한국 검찰처럼 성폭력적인 기구도 없다. 내부에서 성희롱도 일상이었다는 게 임은정, 서지현 검사의 증언이다.)

 

좌파적 분석은 따라서 자본주의 국가의 개혁은 한계가 있고 평의회 국가로 대체돼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그런 사회변혁은 소수가 대리할 수 없고, 오로지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을 통해 가능하다는 게 좌파의 주장이다. 대개 자생적으로 폭발하는 대중투쟁은 모순된 의식 속에서 출발하지만, 투쟁 속에서 의식이 성장하며 급진적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좌파가 그토록 그 본질을 경고했던 국가기구에 맞서 아래로부터 대중투쟁이 폭발했는데 대부분의 좌파, 검찰권력의 최대 피해자인 노동운동이 그 의미를 깎아내리며 한계와 약점만 찾기 바쁜 안타까운 역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서초동의 저 거대한 촛불은 전부 김용희나 톨게이트 투쟁 등에 관심없는 문빠이고 민주당 지지자들일뿐이란 것이다.

 

이렇게 서초동 촛불을 단순히 친민주당 진영으로 묶어버리며, 그 안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보지 않는 게 오히려 진영논리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지난 토요일 김용희 고공농성장 밑에 있으면서 만났던, 서초동 가기 전에 들렀다는 그 많은 사람들은 뭘까? 서초동 촛불 무대 위에서 김용희 투쟁을 언급하는 발언들이 계속 나오는 이유는 뭘까?

 

게다가 막상 민주당에서는 벌써 거리의 촛불은 그만 끄고, 국회와 제도권이 타협을 통해서 문제를 풀자는 주장이 커지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촛불 때 민주당에서 나왔던 목소리와 똑같다. 자생적으로 등장한 대중투쟁이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날까봐, 더 급진적인 요구가 등장할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실제 지난 토욜에 주최측은 이미 윤석열 사퇴는 외치지 말자며 분노를 조절하려 했다. 자신들이 허용한 구호나 팻말만 들어야 한다는 통제 시도도 있었다. 또 많은 참가자들을 소외시키며 민주당 지지자들의 눈높이에만 맞춘 무대는 아쉬움이 많았다. 무대 위와 아래의 이런 불일치는 운동의 발전을 제한할 우려가 있다. 지난번 정봉주를 연사로 올린 것도 문제였다.(2016년 촛불 때도 노동자연대 간부들이 연사나 사회자로 무대에 등장할 때마다, 그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성폭력 피해자들은 힘들어했고 결국 발을 돌리게 됐던 게 기억난다.)

 

사실, 갑자기 등장한 이 운동은 홍콩과 마찬가지로 온갖 다양성과 모순을 품은 지도부없는 운동으로 봐야 한다. 몇주 전부터 소규모 집회를 진행해 온 시사타파TV’의 노고와 공을 충분히 인정하더라도, 이 분들이 이 거대한 운동의 공인된 지도부라 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지난 2016년 촛불 때나, 지금 홍콩투쟁처럼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이 임시적 연합전선을 만들어 민주적이고 투명하게 집회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게 더 적절할 것이다.

 

검찰개혁뿐 아니라 촛불혁명이후에도 적폐세력의 방해와 문정부의 타협 속에서 정체, 후퇴해 온 사회경제적 개혁에 대한 다양한 요구들을 결합시킬 필요가 있다. 2016년 촛불이 박근혜 퇴진에 머물지 않고 이재용 구속 등 다양한 이슈로 진화해 갔듯이 말이다. 2016년처럼 행진을 통해 열기를 높이며 더 많은 동참을 끌어낼 필요도 있다.

 

선출되지 않은 검찰권력과 기득권 우파에 맞서는 시위가, 선출되지 않은 경제권력의 핵심인 강남역 삼성본관을 향해 몰아쳐가는 것도 상상해 본다. 하지만 지금의 주최측은 이런 식으로 운동의 폭과 깊이를 확장할 생각이 없어보이고, 그런 방향을 제시하며 능동적으로 개입하려는 좌파도 안 보인다는 게 지금의 딜레마다. 이번을 그냥 손놓고 넘기면 과연 다음번엔 좌파의 기대와 입맛에 100% 딱 맞는 그런 대중투쟁이 등장할까?

 

* 추가로 지난 개천절에 있었던 반조국 대학생집회에 대해 쓰자면... 청년우파들이 거리로 진출하며 몸집을 키울 가능성 때문에 광화문보다 대학로에 더 눈이 갔다. 그러자 검은 마스크를 쓴 (주로 남성)청년들이 앞을 차지하고 이준석, 하태경이 정중앙에 자리잡고, 중장년층이 주위를 둘러싼 집회가 보였다.

 

발언은 많지 않았는데 여친 무서워서 이런 말도 못하면 그게 무슨 남자냐는 발언, 수능 만점 받고 서울대 다닌다고 자랑하며 나처럼, 대가리로 서울대가야 한다는 발언이 기억에 남는다. 대열 바로 옆에는 극좌파에서 뉴라이트로 변신한 김영환이 자리잡고 있었고, 하태경이 무대 발언 신청을 하자, 대열 전체에서 하태경연호가 울려 퍼졌다.

 

마무리 시간엔 이준석 주변을 둘러싸고 뭔가를 상의하는 청년들이 보였고, 검은 마스크의 청년들은 대부분 빠지고 중장년층이 대열의 대부분이 되자 결국 행진은 취소됐다. 여러모로 특이하면서 불길한 집회였다.

 


3년만에 다시 등장한 촛불의 의미

 

거대한 촛불바다가 2년반만에 다시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다. 그러면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리던 분위기는 좀 바뀐듯하니 쓴소리부터 하고싶다. 촛불 참가자들은 김용균 때, 김학의 때, 김용희 때 그동안 애타게 불렀는데 왜 안왔냐는 원망을 흘려듣지 말아야 한다.

 

삶의 고달픔 속에 촛불들 여유도 힘도 없다는 청년들의 신음에도 귀를 열어야 한다. 2016년과 달리 청년이나 조직노동자들이 왜 촛불 속에 잘 보이지 않는지도 성찰해봐야 한다. ‘검찰개혁조국 수호와 직결시킨 구호가 찜찜하다는 이야기도 그냥 넘기긴 어렵다. 성폭력 사건에 책임있는 사람이 왜 발언자로 올라갔냐는 말은 뼈아프게 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도 이번 촛불의 의미를 깎아내리기 바쁜 기득권, 보수언론의 주장엔 손톱만치도 공감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홍콩 시위대를 외세에 동원된 폭도로 매도했듯이, 저들은 촛불바다를 정권에 동원된 홍위병취급한다.

 

스카이대학에 1~2백명 모여도 모든 청년과 정의의 목소리라더니, 저 거대한 물결이 민주당 지지자들일 뿐이란다. 결함과 실수들만 눈에 불을켜고 찾고 있다. ‘스카이촛불도 그런 식으로 뒤졌다면, 특권에 반대하다면서 왜 세종캠 학생이 고려대 본교의 촛불에 오냐는 전형적 학벌의식을 꼬집어야 했다.

 

좀 더 세련된 공격은 검찰이 박근혜와 이명박을 수사할 때는 좋아하더니 문재인 측근을 공격하니 저런다는 비난이다. 이것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린다. 하지만 재벌, 우파와 구조적으로 한몸이던 검찰이 갑자기 정의의 사도로 탈바꿈됐던 게 아니다.

 

임은정 검사가 지적하듯이 그건 검찰 권력을 지키기 위한 카멜레온적인 화려한 분장술이었다. 검찰이 박근혜, 이명박의 수많은 잘못 중 몇 가지를 잡아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2016 촛불의 강제였던 것이다. 지금도 검찰은 박근혜의 세월호참사 책임에 대해, 이명박의 용산참사 책임에 대해선 묻지 않고 있다.

 

지금 조국 수사의 책임자인 한동훈은 악명높은 공안검사 진형구의 사위로서 자기 처남인 전검사 진동균의 성폭행 문제를 덮고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니 검찰이 입시문제를 밑밥삼아 여론재판의 방아쇠를 당기고, 칼로 찌른 후 비틀면서 언론에 흘리고 곁가지를 뻗어나가는 식으로 조국 일가를 난도질한다는 반발이 커진 것이다.

 

최근에 정의당 대전시당 건부들이 장애인들에게 잔반을 먹이면서 야학 보조금을 빼돌렸다는 누명을 쓴 것도 언론-경찰의 비슷한 수법에 당한 경우다. 더구나 요즘 신문방송보다 더 입김이 세다는, 우파가 장악한 유튜브 채널에선 조국 가족 관련 가짜뉴스들이 놀랍게도 몇 억뷰를 찍었다고 한다.

 

그러나 저들의 오바는 2016년 촛불의 성과가 무너진다는 위기의식을 촉발해 촛불바다를 불러오는 역설을 낳았다. 여기서 내가 조국이다는 구호는 당연히 나도 돈많은 특권 엘리트이고 고위 권력자다란 뜻이 아니다. ‘나도 저런 마구잡이 먼지털기에 당할 수 있겠구나,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괴롭히면 나도 얼마나 힘들까하는 공포와 공감이다.

 

그리고 선출되지 않는 국가(심층)권력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선출된 정치권력만 겨눴던 2016년 촛불의 진화라는 측면도 있다. 물론 특권구조 자체를 바꾸는 사회경제적 변혁으로 나가야 한다는 더 먼 길이 남아있다. 하지만 어떤 사회변혁도 처음부터 명확한 내용과 형태로 등장하진 않는다. 내가 저번에 인용했던 말은 레닌이 했던 말이고 전문은 이것이다.

 

온갖 편견을 가진 프티부르주아지의 혁명적 분출 없이도, 정치의식이 없는 프롤레타리아와 반()프롤레타리아 대중이 지주교회왕정의 억압과 민족 억압 등에 저항하는 운동 없이도 사회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회 혁명을 거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군대가 한 장소에 죽 늘어서서 우리는 사회주의를 지지한다고 외치고 맞은편에서 다른 군대가 우리는 제국주의를 지지한다고 외치는 것이 사회혁명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누구든지 순수한사회혁명을 기대하는 사람은 살아서 혁명을 보지 못할 것이다.”

 

이제는 레닌의 공뿐 아니라 과를 보게 되고, 이 말도 카우츠키에게서 가져온 게 아닐까 싶지만, 암튼 설득력있는 좋은 말이어서 자꾸 되새기게 된다. 그리고 지금 촛불바다의 등장을 민주당 쪽에서 무조건 좋아할까도 의심스럽다. 문정부가 적폐청산과 민주개혁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촛불의 분노는 그들에게도 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4년 탄핵반대 촛불시위 때 당시 노무현은 측근에게 난 촛불 시위하는 사람들 보면 한숨이 팍팍 나온다, 저 사람들이 나중에 용산기지 이전 반대 시위도 할 사람들인데 저걸 어떻게 말리나라고 했었다. 퇴임 후에도 이렇게 회상했다.“한밤 중에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그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봤습니다.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진보의 미래>)

 

따라서 지금의 촛불대중에 대한 과도한 폄하, 비난(민간파시즘? 광란의 쇼비니즘? 사이비종교?)은 좌파적 버전이라도 적절치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를 타격하고 끌어내리더라도 그것은 우리 좌파와 민중이 해야 할 일이지 검찰과 우파연합군 너희는 나대지 마라는 관점에서 그 바다 속에서 함께하며 주장하는게 맞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개인적 사족. 이번에 조국 가족이 당하는 것에 무관심한 사람들을 보면서 약간 무서웠다. 제기된 의혹들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가정하더라도 검찰과 언론이 너무 심한게 명백해보였지만, 뭔가 결함이 있으면, 나와 입장과 진영이 다르면 그 사람의 인권은 중요하지 않아 보였다.

 

그러면서 나와 입장이 달라지자, 내가 조리돌림과 막말, 욕설을 당하는데도 무관심하거나 오히려 거기에 돌을 얹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이래서 사람들은 온 세상이 다 나를 틀렸다고 해도 나를 믿고 지지해줄 사람을 절실하게 찾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어도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한다. 그 한 명이 등을 돌릴 때 세상은 무너지게 돼 있다. 그런데 이번에 거의 모든 언론이 계속 한쪽 이야기만 두 달간 쏟아냈는데도, 그것을 거스르면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촛불을 보면서 숨통이 트이는 느낌을 받았다.


 


서초동에서 강남역의 김용희까지

 

김용희 동지는 오늘도 이렇게 118일째 고공농성중이다. 저렇게 깃발을 흔들며 이재용을 구속하라고 목이 터져라, 30분을 외쳤다. 얼마나 쌓이고 쌓였을지 짐작할만 하다. 그래도 오늘은 고맙게도 검찰개혁 촛불로 가다가 일부러 들렀다는 분들이 농성장에 찾아오신다.

 

그래서 거대한 촛불바다를 보면서 왜 이제야 나타났냐고, 왜 여기는 오지 않았냐고 원망하고 싶지 않다. 지난 2016년 촛불 때도 촛불은 너무 늦었던 게 사실이다. 이명박근혜 9년 내내 그렇게 많은 반동과 개악이 지나가고 나서야 나타났는지 원망스러울만 했다. 왜 여기에서는 같이 촛불을 들지 않는지 따지고 싶기도 했다.

 

촛불바다 속에서 같이 걸으며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가버린, 지켜주지 못한 그 소중한 동지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박근혜 퇴진을 외치던 촛불이 나중에는 이재용 구속도 외치게 되는 것을 보면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이번에도 그런 희망을 보고 싶다. 그러려면 서초동에서는 민주노총 깃발이 안보여서 좋다는 이런 가슴 아픈 말을 하는 사람들은 없어야 한다. 톨게이트 투쟁은, 차별금지법은 나중에라는 이런 억장무너질 소리도 없어야 한다.

 

검찰개혁 촛불바다가 이어서 이재용 구속을 외치며 강남까지 행진해오길 바란다면 아직 꿈일 것이다. 다만 오늘 서초동 가는 분들은 가다가나, 끝나고 나서 바로 옆의 강남역에서 외롭게 농성중인 김용희 해고자의 투쟁도 꼭 응원해주길 기대한다


(기사 등록 2019.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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