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균
[영화 줄거리에 대한 자세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 일단 윤가은 감독의 작품인 전작 <우리들>이 평가가 좋은 작품인 것은 듣고 있었지만, 나는 보지 못했다. 윤 감독의 작품으로는 이 작품이 첫 만남이 된 셈이다. 그래서 몇몇이 하는 <우리들>과 <우리집>의 비교는 나는 하기 어렵고, 더더욱이 <우리집>에 카메오로 나온 <우리들>의 두 주역이 어디에 나왔는지도 잘 모른다. 그래서 일단 영화 <우리집> 얘기만 하려고 한다.
2. <우리집>은 집, 가족 그리고 어린이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즉, 영화 내내 등장하는 세 여성 어린이에게 집과 가족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영상을 통해 직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단 공통으로 하나와 유미, 유진 자매에게 집과 가족은 자신을 곤란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어떨 때는 매우 폭력적으로 다가오는 곳이었다.
3. 일단 유미, 유진 자매는 점점 빈곤의 상징처럼 다가오고 있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오르막길 오래된 다세대 주택 중에서도 옥탑방에서 사실상 둘만 살아가고 있다. 멀리 일하러 간 부모님은 물론이고, 부모님 대신 보호자 역할을 해야 하는 삼촌도 제대로 찾아오지 않고 집주인 역시 부모님과 연락하여 집을 내놓은 다음 그 집을 보러 오는 사람들을 부동산 중개업자랑 함께 대동하는 등 심적으로 불안감을 가중하는 존재다.
8번 이사도 어린 두 자매에겐 감당이 안 되는데, 현재 상황은 부모님도 없고 제대로 연락도 안 되는 - 아빠는 아예 휴대폰으로 연락이 안 되고, 엄마조차 제3의 폰으로 전화를 하는 걸 보면 부모님이 자식에게조차 제대로 연락하기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만 짐작할 뿐이다. - 상황에서 갑작스런 이사에 직면한 상황이다.
4. 반면 하나는 유미, 유진보단 안정적인 집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부모님이 심하게 다투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부모님은 아침에도 싸우고, 저녁에도 싸우고 한밤중에도 싸운다. 그리고 그 싸움 속에서 나오는 언어들은 매우 폭력적으로 하나와 오빠에게 다가온다. 둘의 출생 얘기로 싸움이 이어지자 오빠는 뛰쳐나와서 왜 우리를 낳았냐며 절규한다. 다행히도 자식에게 물리적인 폭력이 이뤄지는 집이 아니었지만 - 현실에서는 이렇게 폭력적인 부모님에게 자식이 이렇게 절규하면 적반하장으로 이게 무슨 버르장머리냐며 손찌검하는 되먹지 못한 부모들이 부지기수니까 - 물리적인 폭력이 없다 할지라도 하나와 오빠에게 집은 안정감이 아니라 지옥 같은 트라우마를 유발하는 곳이다.
하나는 최대한 이 가족을 유지하기 위해 예전 경험을 생각하며 가족여행을 가자고 하거나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등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러나, 이미 끝을 향해 가는 부모님은 물론이고 이런 가족보단 사귄 지 100일 된 여자친구가 더 관심 있는 오빠조차 시큰둥하다. 이런 상황에서 세 여성 어린이들은 우연히 만나게 된다.
5. 세 아이는 서로의 상흔을 보듬어 주고 급속도로 친해지는 관계가 된다. 아픈 유진을 돌봐 주고, 함께 장을 봐서 오므라이스를 먹고, 유미, 유진 자매 집이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집을 엉망으로 만들고, 서로의 꿈을 나타내는 박스를 쌓아 집을 만드는 등 서로에게 불안정하기만 했던 일상에 위로 같은 사이가 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서로가 서로를 부러워하기도 한다. 유미, 유진은 굳이 여러 번 이사를 할 이유가 없고 자기가 이사를 할 처지에 가족여행이 잡혔다고 좋아하는 하나가 부럽고, 하나는 그런데도 가족 간의 관계가 좋아 보이는 유미, 유진이 부럽다.
6. 영화는 서로가 가지고 있는 집과 가족의 고통이 극대화될 때 세 아이가 무턱대고 유미, 유진 부모님을 만나서 집을 지키겠다고 길을 나서면서 절정에 다다른다. 유미, 유진 남매는 치안 문제로 아리송한 집 보러 온 여성의 결정이 남아 있지만 다시 이사를 하는 것이 확정적이고, 모처럼 가족여행이라고 좋아했지만, 이것이 부모님이 이혼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확인한 하나에겐 이 무모한 로드 무비가 매우 절박했을 것이다. 그러다 이 로드 무비가 좌절될 때 서로 끝까지 죽고 못 살 것 같던 세 여성 어린이는 심하게 다투게 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부러웠던 점, 자신의 힘든 점을 토로하게 되고 급기야 어렵게 어렵게 가져 왔던 박스집을 서로 부수며 눈물 흘린다.
7. 그러면서 세 아이는 성장하게 된다. 갑작스러운 산통 때문에 비게 된 남의 텐트에 들어가 잠을 자고 굳이 부모님을 찾는 것을 포기하고 집에 돌아가는 과정 모두가 성장처럼 느껴졌다. 누군가가 탄생을 위해 비워 둔 텐트 속에서 세 사람은 여길 우리집으로 지내볼까 하면서 다시 미소짓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하지 못했을 편안한 공간에서의 잠을 잔 후 돌아간 일상에서 세 아이는 이사를 하더라도 끝까지 언니 동생 할 것을 맹세한다. 세 사람에겐 마치 집과 가족으로 저당 잡혔던 행복과 안정이란 굴레를 그 하루 동안 내려놓았던 것이다.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됐을 때 갓 만났고 여름방학이 끝나갈 때 즈음 헤어져야 하는 서로에게 혈액을 넘어서는 관계로 자리 잡았다고 본다.
8. 결말 부분에 하나의 성장이 울컥할 정도로 빛나 보였다. 하나는 영화 내내 언제 끊어질지 모르는 가족을 이어가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엄마가 외국으로 떠나갈까 봐 여권을 몰래 자기 보관함에 넣고, 술 취한 아빠에게 낯선 직장 여성 동료가 너무나 살갑게 전화를 하니까 아빠에게 거짓말을 하며 휴대폰조차 자기 보관함에 넣어 버렸다. 그 불안함이 모두 담긴 보관함을 유미, 유진 자매에게 떠넘기기도 했다. 특히 우리집 가족을 지키기 위한 일환으로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해 가족들과 함께 먹으려고 했다.
그 주요한 소재가 계란이었는데, 처음엔 계란찜을 그 다음엔 오무라이스를 그 다음엔 계란샌드위치를 만들어 낸다. 계란은 노른자와 흰자가 특성이 다르고 맛도 다른데, 하나는 이 서로 다른 노른자와 계란을 섞여서 요리를 만들어 가족과 함께 먹으려고 했다. 특히 여행 전날 하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곧 다가올 가족의 해체로 인해 가족여행에 회의적이거나 제대로 준비하려 하지 않을 때, 하나 혼자만 그 끈을 이어가기 위해 정성스럽게 노른자와 흰자를 으깨고 으깨며 계란 샌드위치 재료를 준비했다.
결국 하나의 모든 노력은 영화에서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아빠가 새 휴대폰을 샀고, 엄마는 계속 외국으로 나가는 것을 계획하는 것처럼 보인다. 결정적으로 여행 후 아빠와 엄마는 헤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었다.
하지만, 짧지만 굴레를 벗어난 1박 2일의 여행 혹은 가출 속에서 성장한 하나는 아무도 없는 빈 집에서 또 계란을 이용한 요리를 하더니 집에 돌아온 나머지 가족들의 추궁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리에 앉힌 다음 밥을 먹자고 한다. 그런데, 이번 계란을 이용한 요리는 어떠한 결합과 믹스를 하지 않은 노른자와 흰자가 본연히 남아 있는 계란후라이를 밥 위에 그저 얹힌 거였다. 그리고 하나는 밥을 다 먹고 가지 못한 진짜 여행을 마저 가자고 이야기한다.
유미, 유진과 함께 했던 여행 후 하나는 그동안 다른 밥상을 가족들에게 선보이며 자신만 혼자 전전긍긍하고 괴로워했던 가족을 다시 연결시키고 억지로 계란과는 달리 섞이지 않는 가족을 융합시켜 행복을 찾으려고 무리했던 자신의 노력을 포기했음을 식사로 선포한 것이다. 마치 노른자와 흰자의 관계처럼 너무 달랐고 결국 섞이지 못했던 서로를 별개가 될지언정 서로의 차이와 갈라짐마저 존중하고 인정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9. 기존의 공중파 드라마건, 가족 영화건 가족이 최대의 행복이고 그것을 위해 최대한 지켜야 할 보루인 것처럼 묘사되었다. 어느 소재건 가족이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가족에게 모든 것을 전가하며 결국 가족이 행복해야 모든 것이 해결될 수 있는 것처럼 보는 사람들에게 강요했다. 그러나, <우리집>은 현실에서 가족은 어쩌면 불행과 불안함, 상처의 시작임을 무미건조하면서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그것은 가족이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을 보여줬다. 사람들은 대부분 억지같은 전자보단 후자에 더 공감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가족은 행복과 별개로 가족이란 관계로 인해 떨어지지 않는 상처나 곤혹스러움이 있고 그런 문제는 가족만으로 완전히 해결되기는 어려우니까.
그렇지만 영화에선 굳이 가족이라고 억지로 매달리거나 집착할 필요가 없음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그 굴레에서 불행해 지는 것보다 굴레를 넘어선 행복이 있음을, 그리고 그런 관계를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과의 교류와 소통을 통해 만들어 갈 수 있음을 보여줘서 기뻤다. 어쩌면 세상의 전부일 수 있는 세 아이의 가족이 무너지거나 삐걱하더라도 언제든지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고 그 속에서 자신과 다른 사람이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서 좋았다.
어떤 가족 형태든, 어떤 주거 형태든 어떤 환경이든 그것으로 구성원이 어려움을 겪게 하지 않고, 억지로 개인에게 가족과 집에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요하는 사회를 바꿔야 한다. 그 속에서 영화 속 세 여성 어린이뿐만 아니라 다른 일상의 사람들도 가족 프레임이 주는 불행을 넘어 행복해 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기사 등록 2019.9.15)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와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하고 행동합시다.
newactorg@gmail.com / 010 - 8230 - 3097 / http://www.anotherworld.kr/608
* '다른세상을향한연대’의 글이 흥미롭고 유익했다면, 격려와 지지 차원에서 후원해 주십시오. 저희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지지와 후원밖에 없습니다.
- 후원 계좌: 우리은행 전지윤 1002 - 452 - 402383
'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화평] 날씨의 아이 (0) | 2019.11.13 |
---|---|
리뷰 - 조커/ 도미니언/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체르노빌 (0) | 2019.10.23 |
리뷰 - <당신이 옳다> / 정태춘·박은옥/ 오뉴블 (0) | 2019.05.13 |
미래의 미라이 - 아이의 일상 속 판타지로 보는 사람의 성장 (0) | 2019.01.30 |
책<당신이 옳다>/ 영화<블랙클랜스맨>/ 연극<세자매> (0) | 2019.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