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6일에 ‘다른세상을향한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는 ‘한국사회에서 청년 남성들 사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고 있다’는 주장과 현상들을 검토하면서 어떤 관점과 대안이 필요한지 함께 모색하는 토론이 이뤄졌다. 이 토론회에서 박노자 선생님의 발제를 녹취해서 정리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다.]
몇 개월 전에 아주 놀라운 통계 하나를 봤습니다. 한국사회의 제일 중요한 갈등이 무엇이냐라고 여론조사했을 때는 20대들 중에서 50% 넘게 ‘성갈등’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비교하자면 빈부격차라고 답한 사람은 20% 미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한국사회의 빈부격차는 지금 같으면 남미 수준에 거의 임박하고 있고 대부분 OECD 국가에 비해서 훨씬 심각하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갈등’이 가장 심각하고 20대들이 절반 넘게 본다. 이런 거 봤을 때는 정말 모종의 기현상이 아닌가 생각을 좀 하게 됐었습니다. 이런저런 통계를 뒤지다가 저는 통계와 함께 여기에서 PPT에 보이는 이 사진을 봐서 기겁을 했었습니다.
이게 어떤 남성활동가라고 자칭하시는 분들께서 페미니즘 반대시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스스로가 페미니즘의 피해자라고 보는 듯한 느낌이었는데, 저는 이것 보고 믿을까 말까 했었습니다. 사실은 페미니즘의 국가담론화 수준으로 봐서는 노르웨이는 한국보다 몇 배 아닐까 싶습니다. 노르웨이에서는 국가 페미니즘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페미니즘적인 의제가 국가 전체 의제의 상당 부분이 많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는 저희 대학은 아직 까지는 여교수보다 남교수가 지나치게 많고 해서 여교수 비율이 25%밖에 안 되고 해서 지금 공식적으로는 교원 임용시에 ‘역차별’이 진행됩니다. 그러다보니 후보자 중에 여성이 있으면 가산점을 당연시하는... 그런 페미니스트적인 아젠다가 상당부분이 국가정책화되어 있고 그건 사실 노르웨이에서 극우들도 그다지 문제삼지 않고 있습니다.
극우들이 보통 예컨대 여기보다 훨씬 더 가시적인 외국인이라든가 노동자 이런 사람들한테... 한국에서는 외국인한테도 하고 있는데. 또 이렇게 분풀이를 좀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제가 한국의 이 현상에 대해서 본격적인 고민을 하게 됐습니다. 일단 분풀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왜 분이 생기는가. 아주 기본적으로는 이건 외국인과도 관계없는 사회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 자본주의가 고장났는데 이건 한국자본주의만 고장나는 것도 물론 아니고 기본적으로 한국 자본주의 모델이 유효기간이 일단 만료돼가는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한국 자본주의의 한때 높은 성장률이 가능했던 이유중 하나는 비교적으로 싼 임금. 그러니까 싼 임금으로 노동자를 착취를 해서 물건을 수출해서 비교적 많은 가치를 만들 수 있었던 그 시절의 성장률이 비교적으로 높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 이상은 이 모델이 구조적으로 더 이상 먹히지 않습니다. 이와 같은 모델을 이용하는 또 다른 경쟁국가. 중국을 비롯한 경쟁국가들이 생긴데다가 세계시장의 상대적인 포화현상, 그러니까 과잉생산의 위기가 이제는 특히 2008년 세계공황 이후 본격화되고 더 이상 이 모델로는 세계평균 성장률에 미치는 성장마저 달성할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 보시면 세계평균성장하고 한국의 성장이 비교되는데 세계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거죠.
민주노총 출범 등으로 더 이상 싼 임금으로 사람을 부려먹는 그런 형편은 어느 정도는 수정되게 되었던 것이고 전체적으로 물가와 함께 임금이 올랐고 그리고 그만큼 세계경제 속에서 한국기업들이 떨어졌고 그리고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전체적인 수익률, 그러니까 이익률이 떨어져나가는 추세를 통계를 통해서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기본적 축적모델이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하다는 것이죠. 그런데 더 이상 과거와 같은 예전의 초기 자본주의적인 임금착취에 기반하는 축적모델이 더 이상은 주효하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한국은 경쟁국가인 독일이나 일본과 달리 복지자본주의 연결도 완벽하게 진행됐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한국에도 90년대 초반 이후에는 예컨대 실업급여 같은 게 생기긴 했는데, 여기에서 보시면 실업급여 임금대체율이라는 게 직장을 잃어서 실업급여를 받는다면 이건 내 과거의 소득을 언제까지 대체하느냐 이 이야기인데 유럽에서는 7, 80%가 정상인데 한국은. 그러니까 구미권에 비해서는 2배 낮은 겁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복지국가 건설 노선을 나름대로는 발표를 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실업급여를 가지고 먹고 살 수 있습니까? 어렵죠. 아마도 불가능할 겁니다. 실업자들이 계속 많아지고 있고 청년실업률이 10% 넘었는데. 그리고 그건 이제는 숫자, 공식적으로 발표되는 숫자고 소위 암수, 그러니까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구직포기자라든가 등등까지 포함하면 30% 정도 되지 않을까라는 예측들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일단 축적모델이 고장났고 더 이상은 주효하지 않고 복지국가가 만들어 지지 않고 청년들, 20대들이 구조적으로 빈곤화되어 가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지금은 20대들이 평균임금 같은 경우에는 한 달에 180만 원 정도로 이렇게 집계가 되는 것이고요. 그것은 예컨대 50대에 비해서는, 50대 같은 경우에는 270 정도 되는 것이죠. 50대에 비해서 훨씬 낮은 임금이고 전체적으로는 이렇게 20대, 50대 두 연령집단 사이 임금격차는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유럽의 산업화된 국가에 비해서 훨씬 심각합니다. 그러니까 청년들이 절대적인 빈곤과 상대적인 빈곤으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죠. 이전의 자본주의 모델이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고통이 여러가지 인데 그중에서는 하나 큰 것이 예를 들어서는 주거난입니다.
여기에서 좀 특별한 부분이 있는 것이죠. 더 이상은 제조업에서 이윤율이 옛날만큼 높지 않은데 이럴 때는. 더 이상은 제조업에 투자해서 많은 이윤을 뽑아낼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잉여자금이 갈 수 있는 것이 외국투자나 부동산, 대체로 이렇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아직 까지는 외국투자나 금융상품보다 부동산으로 훨씬 많이 들어가고 그럼 부동산이 어떻게 됩니까? 8, 90년대 초반처럼 버블이 생기는 것인데.
제조업으로 가지 않는 엄청난 눈먼 돈들. 이렇게 잉여자금들이 부동산으로 과잉투자되어서 결국에는 생활수준이나 전체적인 물가수준에 비해서 부동산 값이 훨씬 올랐고 그만큼 특히 서민층, 빈곤층의 주거비 부담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지금 통계를 보시면 연령층별로 서울이 민간임차가구 주거비 부동산 능력 부족가구 비율 보면 그러니까 서울 가구들 중에서 집을 빌리는 사람만 보고 그들 중에서는 주거비 부담을 정말 할 수 없는 가구들의 비율 보면 20대들 중에서는 40% 넘습니다. 쉽게 얘기하면 20대 40% 이상이 비싸디 비싼 주거비용을 감당 못한다는 거죠. 큰 문제입니다. 사실은. 엄청나게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집세를 낼 수가 없고. 그러니까 건물주들한테는 과잉착취당하는 것이고 국가에 기댈 수 없고 국가한테 기대서 실업급여 받아봐야 그건 푼돈이고 직장 잡아도 다른 연령층에 비해서 덜 나오고. 지금은 20대들 중에서는 비정규직 비율이 3할 이상이 비정규직이죠. 다른 산업화된 사회에 비해서 훨씬 높은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인간이 어떻게 됩니까? 스트레스 받죠. 스트레스 안 받는 사람 대한민국에 드물긴 하지만 어쨌든 전체적 스트레스 비율로 봐서는 20대들이 다른 연령계층에 비해서 좀 높습니다. 스트레스 체감하는 20대는 한 58% 되는데 60대 이상이면 49%로 떨어집니다. 그러니까 나이가 젊을수록 스트레스 지수가 높고요. 그리고 만성피로된 사람들의 비율이 높습니다. 요즈음 이야기로는 번아웃이죠.
직역하면 태워버림이죠. 번아웃 비율이 전체적으로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에서 계속 높아져가고 있고 한국만 그런 건 아니지만 한국은 다른 사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높다고 봐야 하고 연령계층 중에서도 20대들이 제일 높습니다. 그러니까 쉽게 이야기하면 상대적 절대적 빈곤화가 이루어져가고 특히 집세문제가 많고 불안노동에 시달리고 거기다가 계속 스트레스 받고 번아웃되는 문제. 그런 상황인데, 이제 한국만이 그렇게 되는 건 절대 아닙니다. 전체적으로 신자유주의적 축적모델이 전세계적으로 위기에 봉착하는 있는 것이고요. 단, 그 위기는 주변국 또는 준주변부에서 훨씬 더 잔혹하게 느껴지고 그리고 주변부 국가 중에서도 한국처럼 복지국가 건설이 미완성되는 그런 사회에서는 더더욱 잔혹하게 느껴집니다.
그러니까 한국이 상대적으로 20대가 산다는 게 예컨대 일본이나 독일 같은 주요 경쟁수출국가에 비해서 한국이 훨씬 더 20대로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렇게 힘들어지면 과연 어떻게 되는 것인지. 여러 가지 가능성들이 열려 있습니다. 급진화될 수도 있죠. 잘못된 자본주의 체제 때문에 이모양 이꼴이 되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데 보통은 급진화되자면 예컨대 계급투쟁의 상당한 전통 그리고 이미 완비돼 있는 조직들. 계급에 대해 기본적으로 교육받을 기회가 있고 그러면 급진화가 됩니다.
급진화 추세가 잘 보이는 사회는 예컨대 같은 준주변부 중에서는 그리스라든가 스페인, 포르투갈. 거기에는 대체로 급진화로 지금 나아가고 있는데 거기 같은 경우에는 반독재 투쟁 이후로는 노동계급의 투쟁들이 상당히 오랫동안 투쟁해 온 역사가 있고 비교적으로 계급의식이 생겨날 수 있게끔 교육되어지는 과정이 어느 정도 이렇게 기본적으로 잘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사회가 있는가 하면, 같은 급진화지만 우파적 급진화. 그러니까 쉽게 얘기하면 극우화되는 사회들도 있죠.
여기에서 그림 한번 보시죠. 이건 오늘날의 폴란드입니다. 폴란드 같은 경우에는 지금 집권정당이 극우정당인데 거기에서는 인구 절반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고. 그러니까 백인만의 폴란드를 외치면서 데모하는 사람들을 아주 쉽게 자주 눈으로 볼 수가 있고, 극우주의로 흘러가는 분위기에서는 말 못할 사건들이 너무 많이 일어납니다. 몇 개월 전에는 성모마리아의 후광 대신에 LGBT 그러니까 성소수자의 깃발을 그린 한 예술가 여성분이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잡혀갔는데 죄목은 신성모독. 유럽에서 마지막 신성모독으로 사람이 잡혀간 것이 20년대예요. 이거 다시 돌아와서 다시 신성모독이.
하여튼 우파적으로 급진화되는 사회들도 있는 것인데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어떤 것인가. 대한민국이 청년들의 성향을 본다면 통계적으로 본다면 대체로는 중도라고 봐야 합니다. 지난 대선... 여기에서 보시면 지난 대선 때 연령계층별로 어떻게 투표를 했는가 적은 통계를 냈는데 20대들 보면 극우후보. 그러니까 2명의 극우후보 다 합쳐도 한 20%였다면 심상정 사민주의 후보는 그래도 한 13%가 된 것이죠. 그리고 가장 많은 20대들이 중도후보 그러니까 문재인 후보나 안철수 후보한테 투표했습니다. 그러니까 크게 봐서는 사민주의가 1할 조금 넘게, 극우주의는 2할, 나머지는 중도. 이 정도면 중도성향으로 봐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 중도성향이긴 하지만 요즈음에는 중도에서 조금 더 우파적 급진화 쪽으로 가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는 것이고.
단 폴란드와 또는 예컨대 헝가리와의 차이가 무엇인가 하면 분풀이 대상이 요구됩니다. 폴란드나 헝가리에는 실제로 그렇게 많지도 않지만 대체로 외국계열 사람들 또는 폴란드인이나 헝가리인이 아닌 소수자들 유대인들 이런 사람들이 분풀이의 대상, 집중적인 대상이었는데 한국이라고 해서 사실 크게 다른 건 아닙니다. 여기에서 한국의 일베적인 신흥극우들의 주된 분풀이 대상 중에 하나는 바로 외국인, 난민, 조선족입니다. 여기에서 보시면 조선족을 다 추방하라는 국민청원. 그런데 비율로 따져본다면 한국은 대부분의 유럽사회에 비해서 그렇게 까지 외국인이 많지가 않습니다.
많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유럽연합의 평균에 미달하는 것이죠. 유럽연합의 평균처럼 되자면 아마 한 10년 15년 정도 걸릴 겁니다. 지금 한국의 외국계통의 인구비율이 4.5%. 예컨대 노르웨이 같으면 비서구 외국계통 비율만 봐도 13% 정도 됩니다. 특히 오슬로 같은 경우 20% 정도 되고 많은 경우에는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지하철 타면 옆에 노르웨이 사람 보이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이민자. 저도 이민자입니다. 둘러싸여 있다는 그런 느낌이죠. 그러니까 거기에서는 이민자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훨씬 더 체감되는 사회인데, 한국은 전체적으로 외국계통의 인구는 지금 한 200만. 200만인데 대부분 사실은 동남아시아, 동아시아 계통의 이민자들이고요.
외관상 구별이 잘 안 가는 경우가 많고 거기에다가 전체 200만 중에서는 한 50, 60만명은 조선족. 약간 형태가 조금 다른 것이죠. 물론 한국의 극우화. 그러니까 극우화 과정에서는 일베를 비롯한 각종의 신흥극우 집단들이 그들한테도 분풀이를 하려고 하는데 어쨌든 유럽 극우만큼은 아직 이민문제를 걸고 넘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이민자 대신에 이민자 말고 또 극우적인 이지메 대상이 될 수 있는 집단이 누구입니까? 성소수자들이죠. 그런데 한국은 성소수자 문제는 기본적으로 근본주의적 기독교의 의제로 설정이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이 성소수자 문제를 가지고 계속해서 아주 폭력적인 망언을 해가면서. 그렇지만 근본주의적인 기독교인들도 사실은 어떤 면에서는 한국에서 일종의 마이크로네이션. 그러니까 내부자한테는 절대적이지만 외부자한테는 상당히 의심의 눈초리를 받는 그런 집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소수자 문제는 유럽만큼은 극우들한테 아마 중요시되는 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또는 유럽 극우주의 전통이 중세기독교하고 직결되어 있다면 여기에서는 유교문화권에서 성소수자들한테 중세 유럽기독교사회보다 전통적으로 훨씬 관대했습니다. 그런 부분도 있고 해서 외국인보다 성소수자보다 누군가가 다른 쪽을 때리기가 더 쉬운. 그런 분위기인데 여기에서 바로 그 대상이 페미니스트가 오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 왜 페미니스트들이 하필이면 극우적인 분풀이의 대상이 되었을까. 여러 가지 사회적 현상들이 복합적으로 중첩된 게 아닌가 싶은 것입니다.
일단 하나는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그것도 조금 가면 갈수록 제조업 비율이 조금씩 줄어들고 서비스 비율이 높아지는 사회. 일단 더 이상은 공장 노동자 중심이라기보다는 서비스 노동자 중심으로 이동하는 그런 사회인데 이런 사회에서는 고용률 같은 경우에는 여성이 조금 더 고용률이 높습니다. 서비스업 고용주들이 여성을 선호하는 경우가 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만큼은 물론 월급을 덜 주고 노동조건을 나쁘게 만들지만 어쨌든 고용하기는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남성들의 고용률이 계속 떨어져 가는데 여성들의 고용률이 어쨌든간 조금씩 올라가는 그런 통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남성들한테는 그것은 사실은 고용주 입장에서는 그저 그냥 보다 많은 착취를 위한 것일 테고 여성을 편들어주거나 예뻐해 주거나 이런 건 전혀 아닌데 남성 입장에서는 역차별로 오인되어진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성이 예컨대 인권침해가 많은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든가 국가한테 각종의 의무부담을 지고 있는데 국가 배려대상이 그다지 되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는 일반 국민이 그다지 배려되어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여성 같은 경우에는 여가부가 여성들만을 배려한다고 말하는 남성들이 상당히 오류적으로 이렇게 인식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여성들을 국가 배려대상으로 오인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군복무 이야기를 하자면 개발주의 독재시절, 그러니까 군대 갔다온 남성이 일종의 가부장주의적인 긍지 같은 것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나는 이 나라를 지킨다. 나는 어머니와 애인 등등 여자들을 지킨다. 남자로서 나는 여성을 지킨다. 여성보다 자신을 우위에 두면서 가부장주의적인 자긍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신자유주의 서비스업 위주 사회에서는 사실은 군대는 무엇입니까? 긍지를 준다기보다는 그냥 구시대적인 인권유린집단으로 보이고 거기다 2년이나 낭비해야 되고.
2년 낭비하고 사회에 돌아와서 여자들하고 경쟁하면서 그 경쟁에 치인다. 그렇게들 많이 남자들이 생각하는 겁니다. 사실은. 군대에 끌려가야 한다는 것이 남성한테는 생존경쟁에서는 불이익으로 돌아온다고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있는데. 그런데 군대를 만든 게 페미니스트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군대를 만든 것도 아니고 운영하는 것도 아닌데. 만약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분노하자면 아마 분노대상이 조금 달라야 합니다. 하필이면 강자가 아닌 약자한테 분노하는 것이 이제는 너무나 아쉬운 현상 중에 하나죠.
그러면 이런 부분들. 신자유주의적인 서비스업 사회에서 여성의 고용이 높아져도 남성 고용이 조금 떨어져간다든가 그리고 최근에 민주화 이후에는 여가부 등등이 여성들만 배려해 준다는 왜곡된 의식이 퍼진다든가 그리고 남성들한테 한때 일등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줬던 군대는 지금은 구시대적인 인권유린집단으로 대부분의 인식에서 전락되고 경쟁에서 여성들한테 오히려 그렇게 뒤처지는 하나의 요인으로 인식된다는. 이런 부분들이 중첩되는데 또 하나 더 가미되는 게 뭐냐하면 여성 쪽에서는 페미니즘이 사실 굉장히 다양하지 않습니까.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이 있고 중간적 페미니즘들이 있고 기독교에 기반을 두는 페미니즘이 있고 시민사회 페미니즘이 있고. 한 가지가 절대 아니고요. 한국사회의 많은 일반인들한테는 이런 다양한 페미니즘의 관례들이 잘 알려져 있지는 않고요. 알려져 있는 게 뭐냐면 스캔들 많이 일으킨 쪽이 많이 알려지는 것이죠.
그래서 잘 알려지는 것이 예컨대 워마드라든가 상당히 제가 봐도 투쟁 방법이 조금 문제적인. 이런 분들이 마치 페미니즘의 대표선수처럼 많은 사람들한테 인식이 됩니다. 그런데 이유들이 많지만 그중에 하나는 페미니스트들에 대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많이 써주겠습니까? 그런데 워마드라든지 이런 스캔들이 될 만한 행동이 되는 집단이 있으면 바로 대서특필됩니다. 그러니까 보수언론들한테 먹잇감이죠. 그렇게 해서 많은 한국남성들이 워마드야말로 페미니즘의 대표주자라고 오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요소들이 중첩이 되어서 지금 예를 들어서 미투에 대한 지지만 해도 20대들 중에서는 사실 7% 만 미투운동 지지하고 비교하자면 50대는 75%. 50대는 훨씬 더 진보적으로. 여성운동에 임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20대들이 소위 여혐을 본다면 이건 물론 과거의 남존여비 따위하고는 좀 다릅니다. 남존여비는 남성과 여성의 폐쇄적 불평등을 당연시했던 사상적인 그런 입장이라면 요즘은 남자들이 그렇게 보는 남자들이 거의 없어진 것 같고요. 이제는 20대들의 여혐이라면 보수언론들의 잘못된 정보에 힘입어 여성들이 이제는 남성 위에 군림하는 강자가 됐다고 보는 것이고 기본적으로는 여성들을 남성의 경쟁자로 보는 이런 경향이 강한 거 아닌가 싶습니다. 한국의 신자유주의적 사회의 핵심코드가 경쟁인데 이제는 남녀관계도 경쟁구도로 인식되면서 여성이 불공정하게 우리와 경쟁한다. 여성이 여가부 등등의 후원으로 우리보다 먼저 취직하고 우리보다 더 잘나간다. 말하자면 이런 식의 여혐이 지금 20대들 사이에서 외국인 혐오처럼 이렇게 퍼져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여성이 강자다. 새로운 강자다. 사실 저처럼 통계 먹고 사는 사람한테는 맞는 게 아니죠.
통계적으로 보면 여성의 입장이 경향적으로는 나아져간다는 건 사실인데 아직은 산업화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만큼은 구조적인 여성차별이 심한 사회는 없습니다. 일단 지표들을 보면 제일 큰 것이 임금격차입니다. 그러니까 여성의 평균임금이 남성의 평균임금에 비해서 한국에서 36%나 떨어지는 거죠. 이만큼은 임금격차 심한 사회가 없습니다. 일본이 좀 심하지만 26%밖에 안 되고요. 그러니까 이게 아주 아주 심각한 것이죠. 그다음에는 더 심각한 게 예를 들어서 가정폭력 문제입니다. 이게 불충분한 통계지만 한국에서는 약 15%의 가정에서 아내에 대한 구타가 이루어진다 이렇게 나온 통계가 있는데 이건 예컨대 터키 같은 나라에 비해서도 비교적으로 높은 것이죠.
그러니까 일단 임금 차원에서는 계속해서 착취를 당하게 돼 있고 폭력에 여전히 노출돼 있고 그다음에는 소위 유리천정. 그러니까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평등. 요즈음에는 나름 조금 개선되는 추세지만 요즈음에는 예를 들어 공공기관 여성임원은 11% 그리고 고위공무원 중에서는 여성이 6%. 이건 산업화된 사회 치고는 굉장히 초라한 겁니다. 말 그대로 그러니까 한국이 주요 경쟁국가들 독일, 일본 등 수출국가들하고 비교했을 때는 말이 안 되는 통계죠. 여전히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기본구조는 여성에 대한 비교적으로 더 높은 착취율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여성이 역차별 정책 덕분에 남성보다 우위에 선다? 그런데 통계적으로 보면 소위 ‘글로벌 젠더 갭 인덱스’라는 게 있습니다. 그러니까 여성이 직장에서 겪는 불이익. 만약에 100%가 여성과 남성이 평등하게 직장생활한다는 것이라면 한국은 20% 정도입니다. 그러니까 주요 산업화된 국가 중에서는 한국, 일본, 터키는 가장 여성이 직장에서 태생적 불이익을 많이 당하는 것인데, 그런데 순서는 한국이 제일 심하고 그다음 일본, 독일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산업화된 사회치고는 한국에서의 여성에 대한 차별이 거의 세계 최악에 가까운 것이죠. 그러니까 새로운 강자가 됐다는 얘기는 어쨌든간에 통계적인 뒷받침이 전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여혐. 여혐에 불과한 얘기죠. 그러면 제 시간도 거의 안 남고해서 그럼 우리 어떻게 해야 되죠? 이렇게 여성 또는 페미니스트들이 20대 일부 남성들 사이에서는 일종의 집단이지메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느냐. 결국에는 교육과 연대 말고는 답이 별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페미니즘이 마치 여성들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남성들이 많은데 페미니즘은 사실은 모두에게 다 해당되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페미니즘은 또 예컨대 남성성, 남자로서 사는 방법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고민, 자성적인 고민을 하게도 하는 그런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이고요. 사실 페미니즘에 대한 본격적 공부는 여성한테도 남성한테도 똑같이 필요합니다.
그러니까 페미니즘의 보편성 그리고 페미니스트들의 의제의 보편성은 부단히 얘기해야 되고 남성들 사이에서도 연대주의적인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보다 많이 생겨야 합니다. 이런 생각밖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성대결’을 해서 한국 자본주의 고장난 모델을 고칠 수 있는 것도 전혀 아니고요. 앞으로 성장이 더더욱 둔화되고 결국 멈출 것인데 우리 유일한 살 길이 근대사회 구조를 고치는 겁니다. 그 이야기를 우리가 좀 더 본격적으로 많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기사 등록 2019.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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