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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과 차별

[박노자]"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 없는 키스를 하지 말라!"

by 다른세상을향한연대 2019. 5. 31.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사는러시아계 한국인 교육 노동자/연구 노동자라고 본인을 소개하는 박노자는 <러시아 혁명사 강의>, <당신들의 대한민국>, <우승열패의 신화>, <나를 배반한 역사> 등 많은 책을 썼다. 박노자 본인이 운영하는 블로그에 실렸던 글(https://blog.naver.com/vladimir_tikhonov)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것에 정말 감사드린다.]

 

 


얼마 전 최근의 러시아에 대해 참 불쾌한 뉴스 하나를 접했습니다. 러시아 성매매 관련 업종 여성 종사자 총수는 인제 3백만 명 정도 된다, 그리고 최근의 조사에 의하면 약 55%의 러시아 남성들이 성 구매 경험이 있다는 뉴스이었습니다. 이걸 보고 맨 먼저 든 생각은, 아아, 인제 러시아도 한국처럼 다 돼버렸단 생각이었습니다. 총인구 비례해서 세본다면 인제 성매매 관련 업종의 종사자 수가 양국이 거의 비슷해진 셈입니다. 한국은 약 1백만 명, 인구는 거의 3배 많은 러시아는 3백만 명... 물론 시장 규모는, 업종의 중류 (단란주점, 룸살롱, 각종 변종 업종 등등)도 많고 쓰는 돈의 규모도 더 큰 부자 나라 대한민국은 비교적 더 큽니다. 암시장 조사 전문 기관인 미국의 Havocscope에 의하면 한국 성매매 시장의 규모는 세계 6, 즉 중국, 스페인, 일본, 독일, 미국 다음입니다.

 

미국보다 인구가 약 6배 적은 대한민국의 성매매 시장의 규모 (37조원 정도 추정)가 인제 거의 미국과 비슷해졌다고 하니... 믿어지지 않지만, 통계의 근거들을 세밀히 조사해보면 대체로 사실로 보입니다. 하기야 미국 남성들 중에서는 성구매 유경험자의 비율은 약 15% 정도 되지만 (2008Abt Associates 보고서), 대한민국은 아예 50% 정도랍니다. 러시아와 거의 같은 수준인 셈입니다. 한국과 러시아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는 부분에 있어서는 어째서 이렇게 비슷해진 것인지... 대체 이 정도 성구매 남성 비율이라면 동남아시아 (태국 - 75%)보다 좀 낮고 남구(이태리 - 45%)보다 약간 높고 북구(스웨덴 - 13%)보다 아주 높은 것입니다. 역사적 통계로 보면 성해방의 바람이 강하게 분 1960년대말 이전의 서구 내지 북구와 엇비슷한 수준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이 문제를 계속해서 안고 왔지만, 소련/러시아의 경우에는 1991년을 기점으로 해서 엄청난 단절이 이루어져 저로서는 이 통계는 왠지 수용하기가... 참 힘듭니다. 소련을 '사회주의 국가'로 보기가 좀 어렵긴 하지만, 1917년 혁명 이후로는 확실히 많은 면에서 사회주의적 '에토스'(도덕률)가 강하게 영향을 끼친 사회임에 틀림없습니다. 그 중에서 하나는 성매매를 "구사회의 최악의 사회악"으로 보고 나아가서 섹스와 돈의 그 어떤 교환도 아주 강하게 죄악시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섹스는 꼭 일부일처제의 틀 안에서만 이루어질 필요야 없었지만 (레닌을 포함한 초기 볼세비키들은 결혼의 틀에 꼭 얽매이지 않을 수도 있는 '자유연애'를 인정했습니다. 이 자유연애론을 콜론타이가 체계화시켜 식민지 조선에도 한 때에 "적색연애' 바람을 일으킨 바 있었죠...) 일단 "평등한 정서의 교환"이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일회적 섹스라 해도 "자유 의지""쌍방의 사랑이라는 정서"를 전제로 해야 했습니다.

 

사랑이란 단명에 그칠 수도 있었고 평생에 걸쳐 갈 수도 있었지만 좌우간 섹스는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죄악시됐단 셈이죠. 러시아 사회주의 전통의 고전이라고 할 체르느세브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1863)의 한 여주인공의 말대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랑 없는 키스를 하지 말라!"는 건 절대 명언에 가까웠습니다. 암흑의 제국, 제정러시아에서 톨스토이의 <부활>에서 묘사된 것과 같은 성매매부터 양쪽 집안의 이해관계에 따라 맺어지는 각종 중매결혼 따위를 하도 많이 본 사회주의자들은, 이와 질적으로 다른 사회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소련 시대 소설책이나 영화들을 보면 혼전 섹스는 물론이거니와 혼외 정사부터 원나이트스탠드까지 온갖 "다양한 사랑의 방법"들은 다 나타나도 "돈과 섹스의 교환"을 보기가 드물죠. 소련 말기에 가야 외화벌이 차원에서 국제 성매매에 나선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룬 <인터걸>(1989) 같은 영화가 나오는데, 거기에서는 "돈만 보고 하는 섹스"와 사랑이 없는 부자나라 스웨덴의 중산층 남성과의 결혼은 결국 주인공을 완전한 파멸("매춘녀를 키웠다"는 사회의 비판에 직면한 교사인 어머니의 자결, 본인의 사고사)로 몰고 갑니다. 소련이 완전하게 망하기 전까지는 '돈과 섹스'의 교환을 긍정한다는 건 문예 차원에서 불가능했습니다.

 

오늘날에는... 1991년 직후의 빈곤화 쇼크 속에서는 러시아는 일종의 "2차적 가부장화"를 경험해 많은 면에서 대한민국과 비슷해진 겁니다. 여가부의 2016<성매매 실태 조사>에 의하면 임원급 정도나 그 이상의 한국인 남성 70%가 성구매 경험이 있는 등 "직급이 높고 소득이 높을 수록" 성구매가 일반적이라고 나옵니다. 한국 중상층, 부유층 남성들은 성구매에 대해 죄책감 같은 걸 그다지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재수 나쁘게 걸린다" 해도 이게 체면 상실도 안되나 봅니다. 이건희의 성구매가 한번 비밀 촬영돼 인터넷에 공개된 일이 있었는데, 이건 삼성으로서 별로 문제되지 않은 셈이었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도 마찬가지죠. 1999년에 그 당시에 옐친 측근들의 부정부패를 수사한 검찰총장 유리 스쿠라토브의 성구매 몰카 비디오가 엘친 측에 의해 공개돼 스캔들이 일어났는데, 스쿠라토브는 검찰총장 사퇴를 해도 나중에 대통령에 출마하는 등 정계와 법조계에서 계속 활약해왔습니다. 지금도 전국판사협회 회장이죠. 성구매에 대한 남성들의 죄책감이 이렇게 없어진 것은, 통념적 여성에 있어서의 엄청난 변화들과도 직결돼 있습니다.

 

제가 학교에 다녔던 1980년대만 해도, 우리는 "남자""여자"가 본질상 뭔가 크게 다르다고 젼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교육 받고 상급 학교 진학하고, 졸업하고 직장 배정 받고 일하고... 이런 코스는 '성별'과 그다지 상관이 없었습니다. 여성은 남자의 성적 욕망의 대상이기 이전에 일차적으로 '공민'이자 '일꾼'이었습니다. 한데 이미 1990년대 중반에 저는 제 옛 동급생 (여성)으로부터 "요즘 여자로서 상점에 판매원으로 취직하자 하면 무조건 지배인과 한 번 자야 한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일체 공민들이 평등하게" 대접 받아야 했던 나날이 이렇게 끝나고 여성의 성이 '재화'로 거래되는 악몽적 시대가 이렇게 다시 개시된 겁니다....

 

이 악몽이 끝날 날은 올까요? 이미 쉽지 않을 겁니다. 지난 28년 동안 러시아의 성모럴, 여성관 등은 거의 못알아볼 정도로 변모됐습니다. 소련 시절에는 섹스란 인간의 존엄성과 직결되는 문제이었고 사랑이 빠진, 물질과 교환되는 섹스란 "인간 존엄을 훼손시키는 일"이었다면 오늘날 섹스의 상업화도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도 과거에 상상 못할 정도로 일반화된 겁니다... 앞으로 계속 이어질 반자본주의 운동 속에서 러시아의 다음 세대는 아마도 사회주의적 성모럴을 아주 다시 배워야 할 셈입니다. 처음부터요. "사랑 없는 키스"를 상상하기 힘들었던 시대와의 단절은 인제 거의 완전하게 이루어진 거니까요. 슬프지만 인류의 역사란 지속만 아닌, 단절들의 역사이기도 하니까...과거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 밖에는 인간으로서 없는 거죠.  



(기사 등록 2019.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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